6월 미션얼사연 | <평화만사> 힘을 빼야 찾아오는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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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6-06-01 00:11본문
* 평화만사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peacemakers10004
엘비스 클럽에서 다니엘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엘비스 모임은 한 사람의 가르침에 과도하게 의지하지 않고, 해석 공동체가 함께 말씀을 탐구하는 역동을 맛보는 공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모임에서는 다른 방식을 시도해 보기로 했습니다. 제가 30분 정도 그날 공부할 본문에 대한 발제를 먼저 진행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발제를 준비하면서 개인적으로 공부가 많이 되었고, 제게는 큰 유익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인도자의 말이 길어지자 오히려 참석자들의 역동이 눈에 띄게 축소된 것입니다.
이에 따라 지난 모임에서는 방식을 다시 바꾸었습니다. 준비한 발제 원고는 나누어주되, 모임 공간에서는 기존 방식처럼 함께 본문을 읽고 대화하는 형태로 돌아갔습니다. 인도자가 뒤로 물러서자 비로소 해석 공동체 고유의 역동이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인도자가 힘을 빼야 비로소 공동체에 평화가 찾아온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은 경험이었습니다.
이번 달은 두 개의 공동체와 함께 평화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앞서 말씀드린 엘비스 클럽으로, 평화의 관점으로 다니엘를 읽어 나가는 작업입니다. 다른 하나는 일상생활사역연구소 식구들과 함께 월터 브루그만의 저서 Peace를 읽고 대화하는 모임입니다. 두 공동체에서 공부하며 발견한 내용들을 몇 가지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해석 공동체와 함께 다니엘에서 발견한 평화의 이야기입니다.
첫째, 일상의 자리에서 묵묵히 책임을 다하는 것이 평화의 시작입니다.

다니엘 8장에서 다니엘은 악한 권력이 형통하고 진리가 땅에 떨어지는 참혹한 환상을 마주합니다. 너무나 큰 비밀과 두려운 현실 앞에 그는 며칠 동안 앓아누울 정도로 깊은 번민에 빠집니다. 그러나 다니엘이 보여준 다음 행동은 반전이었습니다. 그는 다시 일어나 왕의 공무를 보러 나아갔습니다. 언제 올지 모르는 끝날을 붙잡고 요동하거나 염려하기보다, 지금 당장 자신에게 주어진 일상의 책임을 담담히 살아낸 것입니다. 참된 평화는 거대한 역사의 풍랑 속에서도 내가 서 있는 오늘의 자리를 지켜내는 인내와 일상의 성실함에서 시작됨을 배웁니다.
둘째, 모두의 연약함을 품는 중보적 회개가 공동체의 평화를 가져옵니다.

다니엘 9장에서 바벨론 포로기 종결을 앞둔 다니엘은 처절하고 담백한 회개 기도를 올립니다. 주목할 점은 그의 기도가 '나'의 죄가 아닌 '우리'의 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니엘 자신은 누구보다 경건하게 살았지만, 불순종으로 수치를 당하는 백성들과 자신을 분리하지 않고 그들의 죄를 고스란히 짊어졌습니다. 남 탓을 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려는 인간의 본성을 거슬러, 공동체의 아픔과 잘못을 나의 책임으로 껴안는 중보자의 태도야말로 갈등을 넘어 진정한 영적 평화를 이루는 단초가 됩니다.
셋째, 하나님의 더 긴 전망을 신뢰할 때 평화가 찾아옵니다.

다니엘은 예레미야의 예언에 따라 포로 생활 70년이 차면 모든 성전과 명예가 즉각적으로 회복될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천사 가브리엘이 전한 응답은 그 기대를 무너뜨립니다. 역사는 여전히 괴롭고 암울한 과정을 거쳐야 하며, 성전에는 흉측한 우상이 서 있는 고단한 시기가 이어질 것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종종 내가 정한 기한과 정권의 교체 같은 눈앞의 회복에 갇히곤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더 긴 구원의 전망을 제시하시며, 역사의 주관자이신 당신을 한 번 더 믿고 기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고해 같은 인생사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과 결말을 신뢰할 때, 비로소 환경을 초월하는 평화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은 월터 브루그만의 Peace 제2부 "자유의 비전(A VISION OF FREEDOM)"을 읽으며 생각한 것들입니다.
첫째, 참된 평화는 나를 얽매는 세상의 강제와 파편화된 삶을 끝내고 진정한 자유를 누릴 때 시작됩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세상이 요구하는 유능함의 기준과 끝없는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쫓기고 조종당하는 "벽돌 공장"과 같은 억압을 마주합니다. 수많은 가치와 책임의 홍수 속에서 삶이 파편화될 때, 우리는 평화를 잃고 강제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가 더 이상 강요된 삶을 살 필요가 없으며, 기쁨을 가로막는 두려움과 의무로부터 해방되었다고 강력하게 선언합니다. 평화는 세상의 거짓된 요구에 굳건히 맞서, 하나님이 주신 온전한 자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나에게 주어진 자리를 책임감 있게 살아갈 때 비로소 시작됩니다.
둘째, 서로를 억압하는 장벽을 허물고 온전한 정신으로 연합을 이룰 때 공동체의 평화가 완성됩니다.

에베소서 말씀처럼 그리스도는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분열된 우리를 하나로 만드신 우리의 화평이십니다. 세상은 지위나 물질, 인종과 이념의 차이를 두고 서로를 분리하며 소외시키는 비정상적인 구조를 당연하게 여깁니다. 이러한 파편화된 충성심과 두려움은 공동체의 평화를 깨뜨리는 가장 큰 원인입니다. 진정한 평화는 천적이었던 사자와 어린 양이 함께 거니는 비전처럼, 서로를 통제하거나 순응을 강요하지 않고 각자의 자유를 존중하는 강력한 연합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나와 타인을 분리하지 않고 한 성령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갈 때, 공동체는 비로소 온전한 평화의 처소가 됩니다.
셋째, 출애굽과 부활이라는 구원의 서사를 내 이야기로 삼고 변혁의 길을 걸어갈 때 지속 가능한 평화가 찾아옵니다.

평화의 규칙은 박제된 문자나 사적인 덕목에 갇혀 있지 않고, 억압받던 노예들을 해방하시고 무능한 자들을 가치 있게 여기신 하나님의 생생한 행동과 이야기 속에 존재합니다. 과거의 노예 상태에서 자유로 옮겨진 밤을 기억하는 이들은 더 이상 세상의 물질을 탐하거나 이웃을 압제하는 죽음의 도덕에 안주할 수 없습니다. 비록 제도와 구조를 바꾸어 나가는 사회적 변혁의 과정이 우리의 기득권을 위협하고 두려움을 줄지라도,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선하신 출애굽 비전을 신뢰해야 합니다. 이 거룩한 이야기가 나의 삶을 청구하고 이끌어가도록 내어맡길 때, 우리는 환경과 제도를 초월하여 마침내 세상을 변화시키는 참 평화를 누리게 될 것니다.
다니엘의 메시지와 브루그만의 통찰이 공통으로 가리키는 평화는, 결국 내 손의 힘을 빼고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 삶을 내어맡기는 의탁에서 시작됩니다. 인도자가 힘을 빼야 해석 공동체의 역동이 살아나듯, 우리가 세상의 강제와 조급함에서 힘을 뺄 때 비로소 일상의 성실함과 중보적 연합, 그리고 출애굽의 변혁을 이끄시는 하나님의 평화가 끼어들 자리가 생겨납니다. 눈앞의 풍랑에 요동하기보다 더 긴 구원의 전망을 신뢰하며, 이번 한 달도 내가 서 있는 오늘의 자리에서 참된 자유와 평화를 묵묵히 경작해 나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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