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깨뜨리는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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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6-04-01 14:52본문
수요일 아침, 일상생활사역연구소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늘 그렇듯 "시냇가에심은나무" 진도에 따른 묵상 나눔으로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오늘 마주한 요한복음 9:24-34 말씀이 마음을 깊게 파고들었습니다. 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했던 사람이 마침내 빛을 선물 받았지만, 그 기적 앞에서 바리새인들이 내뱉은 한 마디가 유독 시선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주님이 눈을 뜨게 해주신 사람을 거칠게 몰아세우며 말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라. 우리가 알기에 그 사람은 죄인이다." 모순 그 자체인 짧은 문장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말은 본디 창조주를 향한 벅찬 감격이자, 가장 숭고하고 아름다운 찬양의 언어입니다. 하지만 종교 지도자들의 입술을 거쳐 나온 이 거룩한 표현은 곧바로 누군가를 옭아매는 무서운 칼날로 돌변했습니다. 은혜를 경탄해야 할 자리에 정죄와 배제의 언어가 이어졌습니다. 거룩한 언어를 빌려 이웃을 찌르는 광경은 인간의 자기 의가 얼마나 폭력적으로 변할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원래 종교(religion)가 감당해야 할 진정한 역할은 끊어지고 파편화된 세상을 다시 하나로 묶어주는 데 있습니다. 상처 입은 이들을 품어 안고, 무너진 관계의 다리를 다시 잇는 것이야말로 신앙의 참된 목적일 것입니다. 하지만 본문에 등장하는 율법의 수호자들은 정반대의 길을 걷습니다. 그들은 교리와 편견에 갇혀, 하나님의 놀라운 일하심을 보면서도 오히려 사람과 사람 사이를 매몰차게 갈라놓습니다. 맹인의 눈을 뜨게 한 분을 죄인으로 몰고, 기적을 체험한 이를 공동체 밖으로 내쫓으며 견고한 차별의 벽을 높이 쌓아 올립니다. 눈을 뜬 사람은 진짜 구원자를 알아보았지만, 정작 눈을 뜨고 있다고 자부하던 종교인들은 철저히 눈이 먼 상태였습니다.
본문의 거울 앞에 서면, 그 속에 비친 모습이 비단 이천 년 전 바리새인들만의 것은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 속에서 신뢰를 잃어가는 한국 기독교의 씁쓸한 단면이자, 저의 부끄러운 민낯이기도 합니다. 진리를 수호한다는 명목 아래 나와 다른 이를 너무나 쉽게 정죄하고 있지는 않은지, 신앙의 이름으로 나와 너를 가르고 배타적인 울타리를 치는 데 골몰하지는 않았는지 아프게 돌아봅니다. 우리는 평화를 일구고 생명을 살리는 사람일까요, 아니면 날 선 잣대로 평화를 해치고 이웃을 밀어내는 사람일까요.
우리 주님은 보좌를 떠나, 차별과 혐오로 갈가리 찢기고 깨어진 이 땅 한가운데로 친히 오셨습니다. 누구도 만지려 하지 않던 사람의 눈에 진흙을 이겨 발라주시며 하늘의 참된 평안을 선물하셨습니다. 그 따뜻한 손길과 포용의 발자취를 뒤따르기를 원합니다. 거룩한 말로 이웃에게 상처를 입히는 어리석음을 버리고, 갈등의 골짜기를 메우며 십자가의 샬롬을 삶으로 빚어내는 진정한 평화의 일꾼으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 평화만사 홍정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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