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여는사연 | 미시오데이 와 바운더리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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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6-05-28 22:35본문
2026년 6월 여는사연
미시오데이 와 바운더리 문제
초여름의 볕이 점점 뜨거워지는 6월입니다. 한 해의 절반을 통과하며 일상의 현장에서는 서서히 피로감이 쌓이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일터나 세상 속에서 겪는 피로감 못지않게, 때로는 안식처가 되어야 할 신앙 공동체 안에서 남모를 피로를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우리는 하나다”, “우리는 영적 가족이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공동체성을 강조할 때, 자주 개인의 고유한 인격과 삶의 경계(Boundary)가 무례하게 침해당하는 일들이 종종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한 교계 언론에 언급되었던 복음주의권 공동체 운동의 사례는 그 증상이 심각합니다. 사실 상당히 많은 그리스도인 공동체 안에서 서로의 내밀한 약점이나 ‘비밀을 나누는 것’을 영적인 친밀함이나 건강성의 척도로 여기는 문화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겉으로는 좋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불건전한 역동으로 쉽게 변합니다. 공동체 안에서 선의로 나눈 비밀이 어느새 상대를 얽어매는 ‘통제력’으로 변질되고, 마침내 인격 대 인격으로 존중하는 건전한 사귐이 아니라, 합리적인 판단이나 독립성을 갖지 못하여 의존성이 깊어져 스스로 독립적인 판단이나 결정을 하지 못하거나, 반대로 리더십의 경우 이해하지 못할 지배력을 행사하려 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합니다. 이런 공동체나 구성원들은 마침내 삼위 하나님이 보내시는 세상 가운데서 건전한 공동체적 혹은 인격적 영향력을 행사하기가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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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공동체적 하나됨이 중요합니다. 잘 아는 것처럼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시면서 “우리가 하나인 것과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22절)”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구하신 ‘하나됨’은 분명히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됨입니다. 그런데 이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비밀을 가지고 서로를 통제 지배하거나 다른 인격을 흡수하여 하나가 되신 것이 아닙니다. 서로의 고유한 위격이라는 완벽한 ‘경계’를 유지하면서, 자발적인 사랑으로 관계하시는, 각자가 어울려 춤추듯 내주(Perichoresis)하시는 신비적 하나됨입니다. 그러므로 삼위 하나님이 하나인 것과 같이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참된 연합은 나를 지우고 경계없이 밀착하여 그저 한 덩어리가 되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고 독립된 인격체들로서 자발적으로 서로 서로를 받아들이고 환대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불건전하고 폭력적인 밀착을 넘어 건강한 경계를 세우는 힘은 어디서 올까요? 예수님은 “진리로 그들을 거룩하게 하여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입니다(17절).”라고 기도하십니다. 요한복음의 맥락에서 “진리”는 단순히 교리적인 지식이나 딱딱한 신념 체계(Belief System)를 뜻하지 않습니다. 진리는 곧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며, 우리는 진리이신 분과의 살아있는 ‘인격적 사귐,’ 관계를 통해 거룩해집니다. 거룩함이란 세상과 단절하여 고고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격적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모시고 그분안에 거하는 것, 그분과 깊이 연합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안전하게 거하고, 나의 인격적인 고유성을 온전히 확인받을 때, 거룩한 우리는 비로소 타인의 인정이나 공동체의 통제력에 휘둘리지 않는 단단하고 유연한 경계를 세울 수 있습니다.

2)
이렇게 인격적 진리 안에서 건강한 경계를 세운 이들을 향해 예수님은 마침내 파송을 선언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과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으로 보냈습니다(18절).” 이것이 미시오데이(Missio Dei)의 역동입니다. 진리로 거룩해 진 이, 성도는 세상과 무관하게 무균실같은 그리스도인 공동체 안에서만 살아가는 자가 아닙니다. 오히려 진리이신 그리스도께 깊이 뿌리내렸기에, 건강한 바운더리를 지닌 한 인격으로서 복잡한 세상, 일터와 사회를 살아갑니다. 세상에 있지만(in), 세상에 속하지 않은(of)자로 존재합니다. 원래 바운더리의 목적은 ‘고립’이 아니라 ‘안전한 침투’에 있습니다. 세포막이 외부의 독성은 막아내면서도 생명 활동을 위해 영양분은 통과시키는 반투과성(Semi-permeable, 혹은 선택적 투과성) 경계를 가진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악(세속적 가치관)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는 거룩이라는 단호한 경계를 가지면서도, 동시에 이웃을 향해 사랑과 복음이 흘러가도록 경계를 개방하는 유연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한 인격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경계, 바운더리를 통해서 자기 외부, 타자와 잘 소통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자신의 인격이 건전한 경계를 통해 안전함과 평화를 누려야 다른 사람과 건전한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그리고 세상 속에서 바운더리, 경계, 선을 제대로 긋는 것은, 차가운 개인주의 혹은 이기주의가 아니라 상대를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하겠다는 가장 성숙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변, 교회와 공동체들, 관계 속에 얽혀있는 통제와 밀착의 사슬을 끊어내고, 인격적 진리이신 삼위 하나님 안에서 서로의 다름을 기뻐하는 안전한 바운더리를 회복하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모습으로 혹은 공동체의 리더나 어떤 사람의 의도대로 공동체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하나됨이 아니라, 서로에게 스스로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주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서로 환대할 때, 비로소 세상은 하나님의 뜻, 생명의 복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삶,일,구원(3191) 지성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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