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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엘비스클럽 마가복음 12장 35절 44절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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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 건 조회 1,406 회
작성일 23-06-17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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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1명 및 문구: 'Oppressing The Widows In God's Name'의 이미지일 수 있음

엘비스클럽 마가복음 12장 35절 44절 요약 230616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고...

 

대제사장, 율법사들, 장로들, 바리새인들, 헤롯당들, 사두개인들이 성전에 나타난 예수를 흠집내려고 애썼으나 34절 이후 “감히 예수께 더 묻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제 예수께서 무리들과(35-40절) 제자들(43-44절)에게 가르치시며 말씀하시는 설화체 속 강화가 펼쳐지는 데 뭔가 산발적인 것 같은 내용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사실은 매우 핵심적인 마가의 지속적인 메시지가 여기에 들어 있으며 바로 다음 문맥인 13장 초두에서 “무너질 것”을 예고한 성전의 형편이 어떠한 것인지 그 실체를 드러내는 말씀입니다.

 

35절에서 37절에서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다”라는 당대의 상식적이고 매우 대중적인 다윗메시야 사상을 율법학자들이 이야기한다는 점에 문제제기합니다. 사실 이 다윗메시야 사상은 마가복음 10장에서 제자들과 함께 걸으시면서 많이 다루었던 당시에 일반인들에게도 편만한 생각이었습니다. 여기서 군림하고 으뜸이 되려 하는 생각이 제자들에게도 많았는데 예수님은 다니엘 7장에 입각한 “인자 메시야”를 통해 섬기고 자기 목숨을 희생하는(막10:45) 삶으로 제자들을 초대하였습니다. 율법학자들이 이야기하고 가르쳤던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다”라는 주장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 전통적이고 상식적인 가르침에서 나온 삶(38절-40절)이 그 가르침의 한계를 보여줍니다. 38절과 39절에서 예수님이 율법학자들의 삶을 조심하라고 비판하신 것을 보면 이들이 좋아하는(4회반복) 것은 기본적으로 높아지려하고 대우받고 싶어하는 모습입니다. 이것은 군림하려하고 힘을 과시하는 메시야 관점에서 당연한 귀결입니다. 41절을 보면 그렇기 때문에 이웃들, 특히 가난한 이웃인 과부들을 착취하는 일을 하면서도 종교성을 과시하고 있는 아이러니를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종교이데올로기, 지도자들에 대한 심판의 선고를 하십니다.

 

율법학자들의 힘과 부의 종교적 이데올로기의 근거인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다”를 다윗 자신의 이야기인 시편 110편 1절을 인용하시므로 무효화시키십니다. 메시야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라 다윗보다 선재(先在)하신 주(아도나이는 야훼의 대체어)이시다라는 선언을 하시므로 성전체제를 정당화하던 생각을 거부하십니다. 시편110편과 다니엘서 7장을 통해 인자가 주가 되시는 하나님나라의 비전을 이야기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앞 본문에서 “하나님 나라에서 멀지 않다”고 칭찬받은 율법사가 제대로 이해한 것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제사 즉 성전종교보다 더 낫다는 사실을 당대의 율법학자들의 가르침과 삶을 통해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무리들의 기쁨은 깨달음의 그것이라기 보다 당대의 지배층에 대한 비판을 즐기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릇된 신앙, 그릇된 메시야 사상이 낳은 그릇된 삶, 군림하고 힘을 자랑하기를 추구하는 종교, 가난한 사람을 착취하는 종교적 이데올로기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41절에서 44절의 이야기입니다. 통상 이 구절은 그동안 교회에서 “과부처럼 전 재산을 바치는 것이 주님께 칭찬받는 일이다”라는 식의 적용으로 귀결되던 본문입니다. 그러나 이 본문의 앞뒤문맥을 고려하여 볼 때 예수님이 여인의 뜰에 놓인 13개의 양각나팔모양의 헌금함에서 보는 모습, 현상들을 좋게 보고 계신 것이 아님이 틀림없습니다. “과부들의 가산을 삼키”는 율법학자들과 그들이 확산하고 있는 가르침, 영성의 형태는 부자들로 “남에게 보이려고 길게 기도”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모두 다 넉넉한 데서 얼마씩을 떼어 넣”게 만들고, 가난한 과부에게는 “가진 것 모두 곧 자기 생활비 전부를 털어 넣”도록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가난한 과부의 모습을 어리석다고 이야기하시지 않으시고 오히려 인정하십니다. 대신에 부조리한 성전종교의 모습을 제대로 까발리고 계신 셈입니다. 이게 성전종교의 모습이었기 때문에 13장 2절에서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다”라고 성전의 붕괴를 예고하신 것이 아닐까요?

 

가르침이 아무리 상식적이고 정통이라고 해도 그 삶을 보면 힘을 추구하는 지 섬김을 추구하는 지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정통기독교의 교리적 진술이 만일 이웃을 내몸과 같이 사랑하는 일을 하지 못하게 한다든지, 아니면 힘의 과시를 위해 작동하여 가난한 자, 연약한 자들을 배제하고 착취한다면 그것이 과연 예수를 주로 따르는 것인지, 하나님나라에 합당한 것인지 의심해 볼 일입니다. 특히 돈의 문제는 중요한 바로미터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종교, 성전종교의 몰락과 심판을 이야기하시는 예수님이 이런 교회, 이런 기독교에 심판을 선고하시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삶,일,구원 (3191) 지성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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