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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량연구소 ELBiS Club 아모스 3장 1절 15절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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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1391
댓글 0 건 조회 4,277 회
작성일 16-04-20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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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BiS Club 아모스 3115절 요약 160419

 

모든 족속가운데 너희만을 알았(2)”다고 할 만큼 특별한 족속들인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내가 너희 모든 죄악을 너희에게 보응하리라선언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대변하여야 했던 아모스는 독특하고 사뭇 시니컬한 어법으로 이스라엘의 죄를 고발하면서 하나님의 보응을 예고합니다.

 

3절부터 8절까지 아모스는 어찌 ...하겠느냐?”라는 의문문 형식을 반복하면서 원인이 없는 데 결과가 있을 수 있는가?’하는 일반적인 내용의 어구의 점층을 사용하면서 선지자 자신의 이스라엘에 대한 재앙의 신탁의 불가피성과 자신의 신탁의 정당성을 이야기하는 데 까지 나갑니다. 으르렁거리는 사자 (4번반복)이신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선지자는 두려움으로 예언할 수 밖에 없습니다(8). 전쟁의 경고 나팔을 불면 사람들이 두려워 하듯이 하나님께서는 그의 행하심의 결과인 재앙의 경고의 나팔로 그 비밀을 선지자에게 먼저 보이십니다(6-7). 이 재앙은 그 백성들의 행위의 결과이며(4-5), 그것은 마치 두 사람이 약속(an appointment)가운데 뜻을 합하여 동행하던 데서 이제 뜻을 달리 하기 때문에 동행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3).

 

9절과 10절은 이런 심판의 불가피함의 원인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 행태가 얼마나 심각하였던지 아모스선지는 매우 시니컬하게 당대에 가장 악명 높은 두 도시인 아스돗과 애굽을 거명합니다. 거기가 와서 봐야(견학해야) 할 정도라고 비꼬고 있는 것입니다. 그 내용은 그 성중에서 얼마나 큰 요란함(tumult)과 학대(oppression)이 있나하는 것입니다. 10절은 그 요란함과 학대는 구체적으로 생계형범죄자들이 아닌 궁궐(혹은 요새)에 사는 부자들, 사회지도층들, 15절에 의하면 동궁, 하궁, 상아궁, 큰 궁들(복수)로 표현되는 부동산거부들이자 상아와 같은 사치 수입품을 누릴 수 있는 왕족들이 포학(violence,폭력)을 일삼고 겁탈(robbery, 다른 사람들의 것을 탈취 도둑질)하며, 도대체 바른 일 행할 줄을 모르는 것 때문에 생기는 문제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11절과 15절까지 그 모든 죄를 보응하는 날을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11절에 의하면 사면에 대적으로부터 침략을 당하고 약탈을 당하는 재앙입니다. 그 정도를 표현하는 데 매우 소름끼치도록 시니컬하게 12절에서 아모스가 이야기합니다. “사자 입에서 양의 두 다리나 귀 조각을 건져냄이란 표현은 한마디로 살아남아도 산 것이, 구원받아도 구원받은 것이 아닌 상태가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회적 정치적 지도층의 포학과 겁탈 압제로 인한 사회적 요란함은 그냥 생긴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14절에서 그 근본 이데올로기, 종교적 세계관을 제공해 주었던 벧엘의 제단15절의 궁들을 무너뜨리는 것과 함께 벌하겠다고 이야기합니다. 왕상 1225절 이하에서 여로보암이 북이스라엘을 이념적으로 남유다에서 독립시키기 위해 만들었던 두 송아지 신상을 두었던 벧엘의 제단은 기본적으로 출애굽시 광야에서 만들었던 금송아지 신상을 본딴 것이었고 그것 역시 힘과 물질, 풍요를 갈구하던 애굽의 종교에서 온 것이었기 때문에 북이스라엘 전체사회에 물질주의와 힘에 대한 숭배의 종교적 이념을 제공한 터전이었던 것입니다.

 

이 본문은 많은 부분 오늘 우리가 사는 물질만능, 물질적 힘에 기초한 세계관으로 살아가며 가난한 사람들을 압제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요란한 대한민국을 생각나게 하는 본문이었습니다. 벧엘 종교처럼 오늘날 교회 역시 그런 기능을 감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희망은 있는 것일까요? 아모스 선지자처럼 이렇게 냉소적인 방식으로 죄에 대한 철저한 보응을 이야기하는 마음은 어떨까요? 과연 아모스는 남쪽 유다 사람으로서 어렵사리 북쪽 이스라엘과 특히 도시 사마리아에서 자신을 변명하면서까지(3-8) 이런 이야기를 전하면서 도대체 어떤 마음을 가졌을까요? 철저한 보응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처음의 관계, 동행의 삶을 회상시키는 하나님의 설득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한가지 대답은 13절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 여호와 만군의 하나님의 말씀이니라 너희는 듣고 야곱의 족속에게 증언하라.” 아직 말씀이 있는 동안에는 그 말씀의 엄중함과 소름끼침(사자 입에 남은 양의 귀?)에도 불구하고 아직 들을 수 있고 증언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법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시대를 향한 아모스를 통한 하나님의 엄중하신 말씀, 그 사자의 으르렁거림 혹은 포효앞에서 귀를 막은 듯 듣지 않고 증언하지 않는다면 결국 그 책임은 누구의 것이 되겠습니까?

 

,,구원 지성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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