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량연구소 ELBiS Club 갈라디아서 1장 6절 12절 요약
페이지 정보
작성자 1391 작성일 16-09-21 16:03본문
ELBiS Club 갈라디아서 1장 6절 12절 요약 160920
바울의 안타까움의 감정(“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1절)이 불쑥 편지글 인사를 마치자 마자 나오는 터라 정황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당황스럽고 격앙된 언사(”저주를 받을지어다“ 2회 8,9절)들마저 눈에 보여서 당황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최근 주변에서 신천지의 폐해를 겪은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바울의 경우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됩니다. 바울도 “다른 복음”의 폐해를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7절의 표현대로 갈라디아 교회를 “교란하고(confusing)” 복음을 “변하게(pervert)”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들의 공동체가 뭔가 혼돈스러우며 뭔가 변질되는 모습을 복음을 직접 전하고 직접 제자 훈련한 이(cf.행16:6; 18:23)로서 안타까워 하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일 것입니다.
“다른 복음”에 대비되는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8절)”은 또한 1절에서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와 관련된 것입니다. 갈라디아 사람들이 “받은 것(9절)”인 이 복음은 또한 11절에서 “내가 전한 복음” 즉 바울이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직접 전한 것인데 이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12절)”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받고 배운(12절) 것을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선교팀으로 들어가 전하였고 그 내용은 “너희를 그리스도의 은혜로 부르셨다”는 것인데 여기에서 떠나게 하고 헷갈리게 하여 복음을 변질 왜곡시키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세절에 다섯 번이나 “사람”이라는 단어가 반복되고 있는 것을 보아 갈라디아 지역 교회 전체가 이 사람들의 뜻이나 가르침을 의식하고 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그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하다가 이런 혼란과 변질에 빠졌다고 바울은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자신의 이야기를 먼저 합니다. 자신은 사람들에게 좋게 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지 않고, 사람의 뜻을 따른 복음도 아니고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배운 것도 아니라고 단언합니다. 다음 문맥에서 보면 바울은 그의 배경이었던 유대교도 회심 이후의 사도들과의 관계나 권위를 빌리는 일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하므로 이 복음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의존한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갈라디아의 신생 교회가 사람과 인맥을 의식하다가 자칫 복음의 핵심을 놓쳐 버릴까봐 바울은 매우 노심초사하는 듯 합니다. 갈라디아 교회 선교의 출발이 다름 아닌 이방인의 회심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를 논의했던 예루살렘 공의회 바로 직후에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바울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부르심을 받은 교회와 성도들이 다시금 유대교나 유대적 그리스도교로 인해 헷갈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를 위해 바울은 우선 자신의 스토리를 먼저 이야기합니다. 그것이 다음에 살펴볼 자신의 회심과 그 이후 스토리입니다.
최근 이단 논의가 이런 저런 모양으로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신천지의 발호와 세자랑집회, 통합총회장의 이단사면발언과 번복 등으로 왈가왈부 말이 많습니다. 어떤 이는 애시당초 이단논쟁은 교회정치문제라고 폄하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절대적 진리를 거부하는 포스트모던 시대에 “이단”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가능한가라고 묻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속에서 갈라디아서에서 만나는 바울의 분개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일단 이단이라는 말보다 갈라디아서는 복음과 관련하여 “다른 복음”이라고 표현하는 실체가 있으며 이것이 핵심적이며 본질적인 복음을 교란하고 변하게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것이 이론과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 개인과 공동체를 아프게 하고 무너지게 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바울이 그의 일상속에서 이 아픔을 겪고 있기 때문에 매우 personal하게 이 문제에 반응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 복음과 다른 복음의 문제는 저 멀리 남의 집 불구경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여기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아픔이요 현실이기에 당하지 않고 마주치지 않은 사람은 쉽게 누구든지 폄하하지 못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를 쓰는 바울도 말입니다.
일,삶,구원 지성근목사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