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량연구소 ELBiS Club 고린도전서 14장 1절-40절 요약 12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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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1391 작성일 12-07-19 17:34본문
ELBiS Club 고린도전서 14장 1절-40절 요약 12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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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장에서 바울은 12장과 13장에서 이야기하던 신령한 것과 사랑의 원리를 구체적으로 고린도교회의 모임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현상에 적용하여 이야기를 하는 듯 합니다. 바울의 대원칙은 덕을 세우고 유익을 끼치는 것(6회)입니다. 이 원칙을 교회 공동체 모임에서의 말과 소리에 적용한다면(7-12절), 소통이 되는 방식으로 말과 소리를 사용하라는 것이며 이를 예언과 방언, 방언통역과 관련하여 적용하고 있습니다.
사실 바울이 이야기하려는 논지의 1차 결론은 이미 두괄식으로 1절에서 5절에서 명확히 진술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교회의 덕을 세우는 입장에서 볼 때 방언은 통역이 없으면 예언을 하는 것 만 하지 못하기 때문에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나서 바울은 모든 소리는 뜻을 가지고 있다(10절)는 전제하에서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것에 있어서도 이런 원칙이 적용되어야 함을 6절에서 12절에서 논증합니다. 13절에서 25절까지에서 바울은 방언에 대해 초점을 맞추어 심층적으로 접근하면서 예언의 유익이 더 크다는 논지를 폅니다. 방언의 특징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1)사람에게가 하나님께 말하는 것(2절) 2) 자기의 덕을 세우는 것이 목적임(4절), 3)개인의 영이 기도하는 것이나 마음 혹은 지성이 배제된다는 점(14절) 4)믿지 않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22절) 방언의 특징이 이렇기 때문에 바울은 방언이 믿는 자의 공동체에서 유익을 끼치기 위해서는 스스로 통역하기를 기도하거나(13절) 혹은 방언을 통역하는 자가 필요하다고 단언합니다(26-28절).
이렇게 공동체 안에서 모든 것(영적인 것의 사용)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26절)라는 원칙으로 할 것을 권하는 바울은 예언하는 것에 대해서도 동일한 원칙을 잃지 말 것을 한번 더 강조합니다. 29절에서 33절까지 예언을 할 때도 그런 원리가 적용될 때 그것은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하는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초대교회가 훨씬 더 상호가르침과 상호배움의 원리가 두드러진다고 여겨 집니다. 질서, 무질서를 이야기하는 맥락이 상호적 학습의 맥락인가 아니면 일방적 지시의 맥락인가에 따라 뉘앙스가 많이 달라집니다.
이런 바울에 대한 뉘앙스의 인식의 부조화가 두드러진 것은 33절 하반절에서 38절까지에 이르는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라는 대목인 듯 합니다. 바울을 여성혐오론자쯤 되는 것으로 여기고 이 대목을 대하면 성경에는 받아들일 수 없는 말씀도 있다라는 결론을 재빨리 내리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33절 하반절의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라는 전제를 우선 생각하면서 37절을 보면 공동체의 모임 중에 어떤 여성들은 “자기를 선지자나 혹은 신령한 자로 생각”하는 자가 있었으며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로부터 난 것인양 혹은 자기들에게만 임한 것인양 교회의 모임을 어지럽히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점에서 (여성의 발언권이 상대적으로 우세했던) 다른 곳(에베소, 디모데전후)에서 제기했던 창조의 원리의 맥락에서 그것을 무시한 다른 이데올로기와 문화의 영향으로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이 부적절한 것이라 이야기하는 것이지, 이미 바울은 고린도전서의 앞의 문맥에서 여자들이 가르치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던 것을 무시해서는 안됩니다(11:5). 그러므로 주변 문화의 영향속에서 여성 성도들 중에 안하무인격으로 덕을 세우며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에게 배우고 가르치는 원리를 무시하는 덕을 세우지 못하는 여성들의 발언을 바울이 자제시키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마지막으로 39절과 40절에서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모든 것을 품위있게 하고 질서있게 하라.”라고 결론을 맺습니다. 방언의 유익이 없는 것이 아니기에 방언에 부정적이 아니라 다만 품위와 질서로 표현되는 공동체의 모임에 덕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랑을 추구하며 행한다는 입장에서 바울은 예언을 사모하기를 권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오히려 이 본문을 통해 개인적인 유익을 위해 방언을 사모할 마음이 생기기도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성경은 늘 우리의 관심이 공동체의 유익에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공동체안에서 우리의 모든 말과 행동이 전체의 유익, 질서와 품위를 생각하고 있는지를 곰곰이 따져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을 구하는 자의 첫 번째 덕목인 셈입니다.
일,삶,구원 지성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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