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량연구소 ELBiS Club 고린도전서 15장 12절-28절 12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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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1391 작성일 12-09-04 16:09본문
ELBiS Club 고린도전서 15장 12절-28절 12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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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다고 하면서 그것은 그리스도에게 해당될 뿐 자신의 실제적인 삶에서, 교회의 생활에서 공동체안의 관계에서 마치 삶은 이 세상뿐인 것처럼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이 유대교의 영향권아래 있던 사두개인들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근거는 바울이 죽은자의 부활이 없다고 하는 자들에게 유대교적 종말사상으로 대답하고 있기 때문에) 아니면 현재의 삶이 너무 척박하고 힘들기 때문이지 모르지만 공동체안에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인생은 현재가 중요할 뿐이요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 “죽은 자의 부활”과 “그리스도의 부활”을 반복하여 마치 두 개의 파도(vv12-15, vv16-19)가 몰아치는 것처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다면 죽은 자의 부활을 믿어야 한다고 그리스도의 부활은 믿는다하면서 죽은자의 부활을 믿지 않는 것이 얼마나 논리적으로 모순되는 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삶에만 집착하는 삶은 결국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는 논리로 가게 되고 결국 이것은 기독교 신앙을 무로 돌리는 것이 되고 맙니다. 우리의 믿음도 헛되고, 그리스도안에서 죽은 자(바울이 두 번이나 “잠자는 자”로 표현하고 있는)도 망하고 그리스도인들은 불쌍한 자가 된다고 바울은 강조하여 이야기합니다.
20절에서 22절에서 아담기독론을 통해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시는 것은 모든 죽은 자의 대표로 살아나신 것으로 결국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게 되리라고 선언합니다. 죽음은 잠자는 것이고 죽음 이후의 삶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이 지점에서 바울은 독자들의 전망을 확 넓혀 놓습니다. 그것은 다니엘서 7장 13절과 14절과 같은 구약의 묵시 문학의 종말론적인 전망을 가져와서 독자들로 하여금 현실의 삶을 새로운 전망으로 볼 수 있도록 인도합니다. 큰 그림을 통해 가슴 벅찬 하나님의 주권(“만유의 주로서 만유안에 계시려 하심이라”)을 인식하고 그 큰 그림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의미(첫열매)를 보고 나아가 현실의 삶과 고난 죽음의 문제를 직시하도록 하려는 바울의 의도가 드러납니다.
오늘도 신앙적으로 신학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다고 하지만 실제적인 삶속에서는 이 세상만이 전부인 양, 이 세상이 마치 끝인 것처럼 사는 경우가 우리에게 없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전체적인 그림, 큰 그림을 놓쳐 버리면 신앙은 신앙이고 삶은 삶이 되어 버리는 비참한 현실에 놓이게 됩니다.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신” 분, 만우의 주로서 만유안에 계시려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삶은 현실의 삶에서 그 능력을 믿는 삶입니다.
일,삶,구원 지성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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