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량연구소 ELBiS Club 출애굽기 2장 1절 25절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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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1391 작성일 13-04-13 01:20본문
ELBiS Club 출애굽기 2장 1절 25절 요약 130412
히브리, 게르솜 그리고 모세
요셉을 모르는(하나님을 모르는)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하비루(사회 경제적 하층민)가 되어 히브리 족속으로 불리며 과중한 제국의 도시건설에 내 몰리며 나중에는 산아제한과 유아살해의 어려움에 처합니다. 이런 와중에 본문은 마치 몇배속 필름을 돌리듯이 매우 빠른 속도로 한 사람에게 포커스를 맞추어 진행됩니다. 그 사람의 약 40여년의 굴곡진 인생이 이 한 장안에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모세입니다. 물에서 건짐(10절)이라는 뜻의 그 이름처럼 모세의 일생은 물과 깊은 관련이 있는 듯 합니다. 본문안에서도 물에 버려둠을 당하나 그것으로 인해 바로의 딸의 눈에 띄어 죽음에서 벗어나 애굽의 왕족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 와중에 가졌던 젖먹이 시절 아마 깊이 내재된 민족의식 때문에 일어난 일로 바로의 쫓김을 당할 때 그는 미디안 땅 어떤 우물가에서 르우엘의 일곱 딸의 양에게 물먹이는 일을 도와 도망시절을 마감하고 십보라를 아내로 맞아 게르솜을 낳고 거기 살게 됩니다. 본문은 모세의 기본자질과 역량을 암시하는 언급(2절-잘 생긴 것, 10절-바로의 딸의 아들, 12절, 17절-애굽인을 죽임, 목자들을 제압함등)에도 불구하고 드러나게 될 때 오히려 숨겨지고(hid 2,3절) 낯을 피하여 은둔해야 되는 현실을 묘사합니다. 이런 답답함의 표현이 모세가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게르솜 즉 내가 타국에서 나그네(Resident alien-an alien residing in a foreign land)가 되었다고 부친데 드러납니다.
그러나 출애굽기 저자의 의도는 이런 답답함의 시간, 감추어진 시간, 숨겨진 시간을 모세를 비롯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비루(히브리 노예)가 되어 보내고 있고 하나님도 어쩌면 숨어계신 하나님처럼 보이지만, 한 사람 모세의 삶속에서 이미 구원의 일을 하고 계시며 때를 위하여 준비하시고 그 백성을 돌보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일은 모세의 삶속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준수하고 역량이 되는 모세 자신에 의해서가 아니라(11절-15a는 모세가 스스로 뭔가를 해 보려 했다는 암시와 더불어 이것이 동족에 의해 좌절되고 있음) 오히려 이방인 게다가 여인들을 통해 즉 애굽의 바로의 딸을 통해 혹은 미디안의 딸을 통해 일어나는 것을 보여줍니다. 언약의 자손이 계속되는 역사가 이방인 여인들을 통해 가능해 진 것입니다. (1-2절의 출생, 21-22절의 출생)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언약에 신실하심이며 돌보심입니다.
23절에서 25절은 이 사실을 분명하게 이야기합니다. 모세의 삶뿐 아니라 전체 이스라엘 백성의 삶은 모세를 잡으려 하던 애굽 왕이 죽고 나서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하비루의 삶,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는 이스라엘 백성의 삶은 여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들의 고통의 소리를 외면하시지 않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언약, 즉 복의 근원이 되게 하기 위해 자손과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을 기억하시고 그들을 돌보시는 분이셨습니다. 비록 남이 하비루라고 부르는 삶, 그래서 스스로 게르솜이라고 인식하는 삶, 숨겨진 삶, 은둔의 삶, 광야의 삶, 탄식과 부르짖음의 삶, 고된 노동의 삶속에서 하나님은 안 들으시고(24절 hear) 못 보시고(25 look upon) 기억을 하지 않는 숨겨진 하나님, 은둔하시는 하나님이라고 여겨질 지 모르나 하나님은 보시고 들으시고 기억하시며 구원을 자신의 방식대로 이루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억하기를 출애굽기 저자는 원하고 있습니다.
고된 노동가운데 현대의 하비루가 되어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 무엇보다도 스스로 정체성을 드러내려고 할 때 오히려 실패하고 물러서서 숨겨지는 일을 경험하는 게르솜의 이름과 같은 타국에 사는 나그네(resident alien)와 같은 현대를 사는 제자들에게 이 본문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뭔가를 해보고 싶고 드러나고 싶은 우리들의 마음과는 달리 뒤로 물러가야 할 때 광야의 삶을 살아야 할 때 우리는 어떤 자원으로 이 삶을 이겨 나갈 수 있을까요? 숨어계신듯 하나 여전히 일하시며 그 백성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을, 숨겨진 삶을 사는 우리들도 기억하는 일이 그 자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일,삶,구원 지성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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