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량연구소 ELBiS Club 고린도전서 7장 17절-24절 요약 11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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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1391 작성일 11-10-26 17:06본문
ELBiS Club 고린도전서 7장 17절-24절 요약 11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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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본문을 문맥과 상관없이 읽거나 피상적으로 읽게되면 오독(誤讀)하게 되어 바울은 영락없이 체제순응적인 기독교를 부르짖고 있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께 함께 거하라”라는 바울의 권면이 자신의 한계와 구조의 억압을 극복하고 뚫고나가려는 의지를 꺾는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 자체만 찬찬히 읽어 보더라도 이것은 정당하지 못한 주장입니다. 노예에게 “네가 자유롭게 될 수 있거든 그것을 이용하라”라는 등의 권면은 그 당시로서는 취하기 쉽지 않은 생각을 바울이 피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은 몸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라는 맥락에서 결혼과 관련된 주제를 다각도로 다루고 있는 문맥에서 “부르심”(9회반복)으로 한 번 정리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미 7절에서 어떤 상황이든 하나님의 선물(은사)로 이해하여야 한다고 이야기한 그는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대로”라고 다시금 선물의 관점에서 문제를 대할 것을 강조하면서 “부르심”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18절-20절은 할례자와 무할례자의 대비를 통해, 21절-24절은 종과 자유인의 대비를 통해 “부르심”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바울의 “부르심” 이해는 정적(static)이기보다 훨씬 역동적(dynamic)합니다. 겉으로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20절)”라고 이야기하므로 있는 자리에 속박시키는 것 같이 느껴지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바울은 어떤 사회적 상태, 종교적 외양을 무위로 돌리면서 현재를 “부르심”이라는 더 고상한 가치로 관조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할례자가 할례자가 될 수 있고, 종이 자유인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닫아 두지 않습니다.
바울에게 있어 어떤 행위나 외양이나 사회적 상태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느냐 마느냐(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19절)”이며 “주께 속하였느냐 아니냐(주께 속한 자유인, 그리스도의 종 22절)”이며, “하나님과 함께 거하(24절)느냐 아니냐”입니다. 이것을 “부르심”의 관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쌍꺼풀 수술과 같은 성형수술을 하느냐 혹은 술을 먹느냐 마느냐등과 같은) 이런 “부르심”의 관점에서 생각하게 될 때 훨씬 올바른 판단을 하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상력으로 결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본다면, 결혼이 좋은 것이다 혹은 결혼하지 않는 것이다 라고 주장하기 보다 현재 결혼한 상태 혹은 결혼하지 않은 상태를 부르심으로 이해하고 자신의 자리에서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소속과 교제를 더 중시하며 살게 되면, 뜻을 따라 상황이 변하게 될 때에도 그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께 속하여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것이라면 변할 수 있고 그것을 또 다른 부르심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어 어떤 도그마의 노예가 아닌 참 자유인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선물의 관점과 부르심의 관점으로 공동체 내에서 몸의 사용과 결혼의 문제를 다루는 바울의 목회적 전망을 우리가 이해할 때에야만 고린도전서 7장의 가치를 제대로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일,삶,구원 지성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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