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량연구소 ELBiS Club 고린도전서 9장 16절-27절 요약
페이지 정보
작성자 1391 작성일 12-04-24 17:47본문
ELBiS Club 고린도전서 9장 16절-27절 요약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12절)”고 자신의 권리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도바울은 자신이 하는 모든 처신은 특별히 자유인이지만 모든 사람의 종이 된 것은 결국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이라고 하면서 자신도 “복음에 참여하고자(23절)” 하는 강한 열망을 비추고 있습니다.
사실 16절에서 18절은 바로 앞 문맥의 상황에 붙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재정적인 권리를 쓰지 않는 자신의 삶을 가지고 사도성에 대해 비난하는 이들에 대답하는 맥락에서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명하신 주님의 말씀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바울은 복음 전하는 것이 자랑할 것도 상을 받을 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전하는 것은 의무(부득불 할 일)요 사명이요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만약 상이 있다면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복음을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 자체가 그에게 있어서는 상(보상)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19절부터는 또 다른 비난에 대한 대답 같아 보입니다. 그 비난은 자신들이 보기에 바울의 행동이나 선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특히 율법이라는 단어가 많이 사용되는 것을 보면 율법에 착념하는 유대인들이 보기에는 바울이 율법을 없는 것처럼 처신했던 것 같습니다. 상대적으로 율법을 모르던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이 보기에 약한 자들이었고 일부러 바울은 이들과 같이 율법없는 자처럼 처신했던 모양입니다. 이런 일부의 비난에 대해 바울은 자신의 의도를 밝힙니다.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했고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했다고 그렇게 했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이것 역시 복음을 위하여 복음에 참여하고자 한 것이라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24절부터 나오는 “상(prize)”은 위에서 언급한 “상(reward)”과는 다름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치 바울이 서로 다른 주장을 몇 절 되지 않는 자리에서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자신은 상 받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하다가 뒤에서는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사람”이니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고,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애를 써야 한다고 하는 것 같다는 말입니다. 바울 자신만 상을 타려 하고 그것도 자신의 일신의 보전(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을 위해 그릇된 가치관을 설파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적자생존의 원리를 과연 바울이 갑자기 주장하는 것일까요? 이 올림픽 경기와 관련된 예는 23절의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과 관련이 됩니다. 선수들이 마지막 상을 받기 위해 달음질하며 싸우는 것처럼 그래서 상을 받기에 합당한 자가 되기 위해 자신의 삶을 “절제”하며 “몸을 쳐 복종하게”하는 것처럼 마지막 상인 “복음에 참여하”는 일을 위해 자신이 경주하듯이 분투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오해에도 불구하고 열정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복음을 위하여, 복음에 참여하고자 다른 사람의 종이 되고 자신의 몸을 절제하고 복종한 바울의 삶은 현재 무기력증에 빠지고 남의 눈치를 보기 좋아하는 우리의 삶을 부끄럽게 합니다. 복음을 위하여 복음에 참여함을 위하여 다시 한 번 우리의 삶을 우리의 열정을 돌아 보아야 합니다.
일,삶,구원 지성근목사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