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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량연구소 ELBiS Club 창세기 25장 1절-34절, 2009년 9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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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1391
댓글 0 건 조회 6,352 회
작성일 09-09-15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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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아브라함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경계의 기록이 이 장인 듯 합니다. 창세기에서 족보의 기록은 한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기 아브라함의 아들들의 이름의 족보는 아브라함과 함께 한 언약, vision이 일단락을 하고 이어 이삭과 야곱의 계보로 그 언약의 흐름이 이어질 것을 예고하는 한마디로 등장인물 소개와 같은 역할을 하는 장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처 그두라가 낳은 자손들의 이름과 이스마엘의 후예들의 이름들을 기록하는 가운데 유독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자기 모든 소유를 주었고”(5절) 하나님도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하나님이) 그 아들 이삭에게 복을 주셨”다고 이야기하므로 오늘 본문 마지막 부분에 있는 야곱과 에서의 “장자의 명분(birthright)"이라는 이슈가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비록 그두라가 낳은 자손들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기는 하지만 이들이 아브라함의 후사를 이을자로 여겨지기 보다는 “떠나 동방 곧 동국으로” 사라져 가고, 오히려 아브라함의 아들로는 특히 9절에서 아브라함 사후에 장례에 나타나는 것을 참조하여 볼 때 오직 이삭과 이스마엘이 인정되는 듯 하고, 12절에서 18절에 이르는 이스마엘의 “후예”와 19절의 이삭의 “후예”가 여러 모양으로 대조되는 형국으로 묘사되는 데 이는 전체적으로 이스마엘이 외견상으로는 장자의 자격을 더 가지고 있는 것 같으나 결국 이삭이 그 권한을 얻은 것과 같은 패턴이 그 후손인 야곱과 에서 대(代)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암시를 주는 것 같습니다.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이 말씀은 결혼 후 20년만에 생긴 아이의 임신상태가 너무 힘들어 죽겠다고 하는 리브가에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만 종종 사람들의 몰이해로 인한 비난의 대상이 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왜 누구는 미리 잘 되리라 정하고 왜 누구는 미리 안되리라 정해두었습니까?”라는 식의 소위 예정에 대한 그릇된 접근을 극복하는 길을 전혀 다른 독법으로 읽는 것입니다. 그것은 일단 이 기사를 읽는 독자들이 언약의 백성들일 것이므로 그들로서는 어떻게 더 자격이 있는 것 같은 저들은 놔두시고 자격이 없는(나중에 태어났으면 인간적으로는 무리한 방법으로 속이므로 맹세를 이끌어낸 방식으로) 것 같은 우리들을 택할 수 있단 말인가?“라는 감사와 놀람의 감정으로 이 말씀을 대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언약과 하나님나라의 비전이 뭔가 부족한 가정생활과 부부관계 그로 인한 가족시스템 전체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비록 교과서적으로 받아 들일 수 없는 마음의 불편함이 있지만 본문에 분명히 나타나고 있는 사상입니다. 이미 암시되었던 것처럼 조용하지만 “게임을 좋아하는”(28절의 영어표현-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아버지 이삭과 밀가라는 모계적 리더십으로부터 뭔가 보고 생래적으로 습득한 것이 있는 지배성향(?)의 리브라 사이에 태어난 이란성쌍동이 에서와 야곱은 그 기질적 특성이 정반대인데다가 그로 인해 부모각각으로부터 편애를 받으며 자라난 것 같습니다. 지나치게 즉흥적이고 다혈질의 모습(혹시 ENFP 혹은 ESTP)을 지닌 에서는 조용하고 여성적이지만 주도면밀하고 집착이 강한 모습(혹시 ISTJ 혹은 INTJ)의 야곱과 전혀 판이하게 성장하였던 것 같습니다. 본문에는 우리가 평가하기에 약삭빠르고 비열한 야곱의 모습이라 할 수 있는 모습에 대한 어떤 판단이나 평가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어쩌면 장자의 명분이 없어도 자신의 힘으로 충분히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었던 에서가 맹세하라는 야곱의 끈질긴 요구에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 행동을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김이었더라”라고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본문을 기록한 저자의 의도는, 혹은 독자들이 느꼈으면 하는 것은 비록 삶의 정황속에서 이런 방식을 택할 수 밖에 없었지만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통해 이루고자 하신 비전, 언약, 하나님나라의 꿈을 어떻게든 자신의 것으로 하고 싶어 했던 야곱의 손을 들어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열망은 즉흥적이고 현세적이고 당장의 배고픔을 해결하려는 데 있는지 아니면 부족하지만, 그리고 오히려 자격이 없고 부족하기 때문에 이 꿈, 이 비전, 하나님이 주시는 언약의 권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그것에 매달리는 데 있는지 우리의 삶을 돌아 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일,삶,구원 지성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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