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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엘비스클럽 마가복음 10장 1절 16절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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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1391
댓글 0 건 조회 1,623 회
작성일 23-04-08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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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비스클럽 마가복음 10장 1절 16절 요약 230407

평평하게 성경읽기 vs. 입체적으로 성경읽기

“일상이 지뢰밭이고 덫입니다~” 이 본문을 함께 나누는 마무리 부분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이 문장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오늘 본문을 너무 평면적으로 혹은 평평하게 읽어서는 안됩니다. 첫눈에 교회에서 많이 듣던 말씀, 결혼식 주례사에서 혹은 어린이주일에 듣던 익숙한 말씀이라 쉽다고 느낍니다. 교훈적인 혹은 윤리적인 해석적용에 익숙해 있는 본문입니다. 물론 이 본문을 통해 이혼에 대한 교훈, 결혼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 어린아이들이 주님께 나오는 것을 막지 말라는 권면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본문의 맥락을 고려하면 이 본문은 좀 더 입체적인 이야기, 앞뒤 맥락에서 돌출적이라고 느낄 만큼 평이한 이야기가 아니라 앞뒤맥락을 연결하는 이야기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내러티브 속 대화들의 시간적 공간적 배경이 되는 1절이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께서 거기(가버나움 9:33)에서 떠나 유대 지방으로 가셨다가, 요단 강 건너편으로 가셨다. 무리가 다시 예수께로 모여드니, 그는 늘 하시는 대로, 다시 그들을 가르치셨다.” 첫 눈에 보기에 이 구절은 9장 50절까지의 이야기와 내용이 확실히 분리된다는 것을 말하는 장치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지도를 놓고 예수님의 행적을 따라가 보면 2절의 “바리새파 사람들이 다가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물었던 의도가 드러납니다. 남쪽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해 유대 지방으로 가시다가 사마리아 에브라임 산지를 피하기 위해 요단을 건너 베레아를 거쳐 다시 베다니 여리고를 통해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을 택하곤 했습니다. 지금 여기 베레아는 요단강 중심으로 사역하던 세례요한을 투옥했다가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6:18)”라고 한 말에 참수하였던 헤롯안티파스 치하에 있던 곳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3장 6절에서 예수를 죽이려고 헤롯당과 결탁하고 있던 바리새인들은 예수에게 일종의 덫을 놓는 질문을 하기 위해 등장한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이 뜬금없는 질문은 질문의 외피보다 그 의도가 중요한 것입니다. 세례요한을 죽음으로 내 몰았던 헤롯과 헤로디아의 문제를 갖고 예스라고 하면 율법에 저촉된 대답으로, 노라고 하면 헤롯에게 도전하는 대답으로 몰고 갈 작정이었던 셈입니다. 예수님은 정면 대결을 하시기보다 지혜롭게 덫을 피하십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의 최후보루인 “모세(3회)”를 들어 그들이 신명기 24장 1절에서 4절을 자의적 해석으로 왜곡시킨 부분을 지적하시고 원래 의도(5절 “모세는 너희의 완악한 마음 때문에)를 이야기하실 뿐 아니라 창조의 원리의 확인(6절-9절)으로 마무리합니다. 여기서 세부적으로 결혼의 창조의 원리를 찾아내 이야기할 수 있겠으나 예수님의 의도는 일단 바리새파 사람들의 책략에 넘어가지 않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대신 10절부터 12절에서 집에 들어갔을 때 따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내용을 보면 그 이야기를 듣는 제자들의 마음을 흥분시키는 내용이었을 것입니다. 이 말씀은 분명히 헤롯과 헤로디아를 두고 하시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바로 그 말뜻을 알아들었을 것입니다. 여기까지 이르면 우리에게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지금 제자들의 감정, 정서 상태는 어떠했을까?” 아마 제자들은 8장 11절이하에 나오는 “바리새인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삼가라”는 말씀을 기억하였을 수도 있습니다. 당대의 문제의 핵심에 해당하는 이들의 덫을 피하시고 이제 혁명을 위하여 새로운 정치를 위해 우리 주님이 마음을 잡숫고 계시는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제자들의 가슴을 벅차게 만드는 정치이야기, 혁명이야기, 큰 이야기를 하고 있는 데 13절에 의하면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께 데리고 와서, 쓰다듬어 주시기를 바라”는, 제자들이 보기에는 하챦은, 속없는 요구를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자들이 그들을 꾸짖었”습니다. 이건 당시 제자들의 심리상태를 고려하면 당연한 행동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이것을 보시고 ‘노하셔서’ “어린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허락하고 막지 말아라. 하나님 나라는 이런 사람들의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게 노할 일입니까? 예수님의 일관된 관점에서는 노할 일이 맞습니다. 여기 “하나님나라”라는 단어가 갑자기 등장하여 두 번 사용되고 있는 데 제자들은 이 하나님의 통치인 하나님 나라가 마가복음 내내 특히 8장과 9장에서 일관되게 정치적 혁명을 통해, 힘을 통해, 우월함을 통해, 배제와 차별을 통해 도래할 것이라고 믿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니 거대담론을 이야기하는 중에 작은 자중 작은 자, 꼴지(cf.9:35;10:31)인 어린이들이 등장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제자들의 모습은 늘 어린아이들을 사랑하시고 쓰다듬어 주시고 껴안아 주시는(9:35) 예수님을 보았던 사람들과 달리 이데올로기와 욕망으로 눈이 멀어 있는 모습이었기에 예수님은 노하시고 꾸짖으셨던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의 덫에 예수님이 아니라 제자들이 걸린 셈입니다. 예수님은 16절에서 하나님나라를 바로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어린이들을 껴안으시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서 축복하여 주셨다.” 가장 낮은자, 천한 자, 꼴지 인생, 배제되고 소외된 이들을 어떻게 대하는 지가 하나님나라의 도래의 증거입니다.

이렇게 보면 오늘 본문은 앞 문맥과 상관없이 새롭게 뭔가가 시작된다기 보다 앞 문맥과 다음 문맥을 잇는 중요한 단서가 되는 본문입니다. 하나님나라는 단순히 교훈과 윤리의 평평한 나열과 준수가 아니라 매우 복잡하고 입체적인 덫과 지뢰밭을 통과하여 깨닫게 되는 실체입니다. 그 덫과 지뢰밭은 정치적인 선택의 문제입니다. 거대담론, 욕망을 감춘 이데올로기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나라는 작은 사람들, 작은 이야기를 포옹하고 축복하는 일상적 선택과 실천속에 경험되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사람들을 껴안고 손을 얹어 축복하는 일을 실천하여야 하겠습니다.

삶,일,구원(3191) 지성근 목사

상단 그림출처 및 묵상내용

https://www.heartlight.org/wjd/mark/0713-wjd.html

Jesus frequently touched people. So must we. In a world so devoid of human contact, especially genuinely supportive and affectionate, but clearly non-sexual contact. Many people ache to just be appropriately touched without being abused, manipulated, or exploited. Reach out and touch someone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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