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 엘비스클럽 마가복음 10장 46절 52절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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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1391 작성일 23-04-29 00:44본문
엘비스클럽 마가복음 10장 46절 52절 요약 230428
제자도: 눈을 떠 예수가 가시는 길을 따라 나서다
바디매오 이야기는 자주 귀납적 성경연구 훈련에서 다루곤 했는데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52)라는 예수님의 선언의 근거가 바디매오의 두 번의 외침인 “다윗의 자손 예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47,48)에 보이는 “다윗의 자손 예수님”이라는 신앙고백에 있었다고 평면적으로 해석하곤 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다윗의 자손” 메시야 이해가 당시에 편만했었던 메시야 이해이며, 본문의 앞 문맥에서 있었던 세베대의 아들(바세베대^^)들인 야고보와 요한을 비롯한 제자들이 갖고 있는 이해(혹은 몰이해)에 맞닿아 있는 호칭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루살렘의 북동쪽으로 25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여리고는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순례자들이 거쳐가는 곳이었고 눈먼 거지인 바디매오는 거점 길목에서 생계를 위해 “길 가에 앉아 있”었던 존재가 분명합니다. 이 길목에서 눈먼 거지로 있으면서 발달된 청각을 통해 자주 들었던 “나사렛 사람 예수(47)”에 대한 정보 혹은 지식에 근거하여 그는 “다윗의 자손 예수님”이라고 외쳤던 셈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제자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조용히 하라고 그를 꾸짖었”던 이유도 지금 이 거사를 치루러 가는 비밀을 이렇게 노골적으로 소리를 지르며 외쳐대는 것을 통해 들키게 될까바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점입니다.
마가는 매우 의도적으로 이 “눈먼 사람(4회반복)” 바디매오의 이야기를 여기에 배치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첫 번째로 8장 22절에서 26절에서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의 말미에 벳세다에서 맹인을 고쳐주시는 사건이 배를 타고 갈릴리 이쪽 저쪽으로 옮겨 다니면서 오병이어, 칠병이어들의 기적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누구신지 아직 깨닫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제자들의 형편을 드러내는 사건으로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이사랴 빌립보를 기점으로 도보로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길을 함께 하면서도 예수님이 가시는 길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제자들의 형편과 이 바디매오의 치유사건이 연결고리가 있음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이 “눈먼 사람”의 이름이 분명하게 밝혀지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때 이 바디매오는 오늘 본문 여기서 예수를 따르기 시작하여 후일 마가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 그가 누구인지 아는 실존의 인물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게다가 “디매오의 아들”인 바디매오는 앞문맥의 “세베대의 아들들”과의 대조를 통해 무언가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도 있을 개연성이 있습니다.
바디매오는 비록 대중적이지만 부족한 이해인 다윗의 자손 메시야라는 정보와 지식에 근거하여 외치기는 했지만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라는 말(cf.9;22의 귀신들린 아이 아버지의 말)이나 “선생님, 내가 다시 볼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라는 말을 통하여, 그리고 조용히 하라는 소리에 더 큰 소리로 외친다든지, 자기의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서 예수께로 온 모습과 같은 행동을 통하여 분명히 예수가 자신을 보게 하실 수 있는 존재라는 믿음을 말과 행실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특히 바디매오의 요구는 바세베대의 아들들의 요구와 매우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요한과 야고보의 요구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제대로 보지 못하면서 자신들이 요구하는 것을 관철시키겠다는 요구인 반면에 바디매오의 요구는 겉으로 볼 때는 바세베대의 아들들과 유사한 자신의 필요를 갈구하는 것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겸비하면서도(불쌍히 여겨...) 핵심적인 믿음 (내가 다시 볼 수 있게..)을 드러내는 요구인 셈입니다. 예수님은 바세베대의 요구는 완곡히(?) 거부하셨으나 바디매오의 요구는 들어 주십니다.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이 사건의 백미는 길가에 앉아 있던 눈먼 사람 거지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만나 다시 보게 될 때 예수가 가시는 길을 따라 나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가 가시는 길은 이미 10장 33절과 34절에서 말씀하신 대로 수난과 죽음의 길인데 “가거라”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눈을 뜬 바디매오는 그 자리에서 예수가 가시는 길을 따라 나서게 되고 후일에도 그 이름을 아는 사람들을 위해 공관복음의 저자들이 다 기록할 만큼 알려진 제자로서의 삶을 살게 됩니다.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랐으나 아직도 보지 못하는 제자들의 모습과 육신의 눈을 떠 보기를 원하였고 예수를 보자 마자 그 길을 따르는 바디매오의 모습이 비교 교차되도록 하는 것이 본문 저자의 의도라는 것을 감지하는 대목입니다.
제자의 길, 제자도란 어떤 위치에 앉으려는 자세,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자세가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제대로 사물을, 주님을 보기를 원하는 자세로 주님이 가시는 길을 따라 나서는 것이라는 것, 패러다임, 프레임이 바뀌면 보게 되고 제대로 보게 되면 예수가 가시는 길을 함께 갈 수 있을 것이라는 것, 신뢰의 대상이신 예수를 대면할 때 믿음의 기도(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기도?)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 이런 저런 생각, 상상력이 생기는 본문입니다.
삶,일,구원 (3191) 지성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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