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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엘비스클럽 마가복음 11장 12절 25절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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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 건 조회 1,455 회
작성일 23-05-13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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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비스클럽 마가복음 11장 12절 25절 요약 230512

참 성전 예수께서 무화과나무 성전을 전복시키다.

 

예수님답지 않은, 충동적인 것 같고 격하고 억지를 부리는 것 같고 종잡을 수 없고 동문서답하시는 장면들의 연속이 기록되어 있다고 느껴집니다. 자신이 배가 고파서 철이 되지 않은 잎이 무성한 무화과를 당장 먹을 열매를 내어 놓지 못했다고 ‘저주’(베드로의 표현 21절)하는 것은 이 예수야말로 정말 믿을 만한 사람이 되지 못한 증거라고 누군가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의도를 갖고 무화과나무를 일종의 교구재로 사용하여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에게 뭔가를 가르치기 원하여 퍼포먼스를 행하신 것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 충격적인 퍼포먼스를 통해 예수님은 진짜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어 하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마가는 예루살렘과 베다니를 오고가는 예수님의 일행과 무화과나무가 마주치는 이틀간의 이야기 가운데 예루살렘 성전 뜰에서 벌어진 예수님의 또 다른 퍼포먼스 일명 성전청결사건(15-16절)과 예수님의 말씀 (“기록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너희는 그 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17절)을 배치(다른 공관복음은 좀 다름)했다는 것은 무화과사건의 의미가 성전청결사건과 예수님의 말씀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성한 무화과나무”같이 무엇인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성전종교 안에서는 “열매”라고 할 수 있는 내실을 전혀 찾을 수가 없음을 몸소 두 퍼포먼스를 통해 보여주고 계신 것입니다. “성전 뜰에서 팔고 사고 하는 사람들”“돈을 바꾸어 주는 사람들”“비둘기를 파는 사람들”“성전 뜰을 가로질러 물건을 나르는 것”은 당시로서는 관행적, 평상적인 일이고 어쩌면 성전종교의 활력을 보여주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원래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제대로 회복되고 기도와 용서가 제대로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선한 의도로 생긴 종교적 관행이 종교지도자들의 이권이 개입되고 나중에는 이런 율법종교의 외적인 행습을 지키는 것에만 집중이 되어 버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이런 종교적인 규례와 관행을 믿는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18절에서 “어떻게 예수를 없애 버릴까 하고 방도를 찾고 있었”던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 바로 “그곳을 강도들의 소굴(17절)”로 만들고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예루살렘과 성전의 사회경제적인 기득권과 부를 가지고 있던 이들에 비교하면, 예수와 제자들은 갈릴리 출신으로 유월절 명절에 예루살렘으로 왔지만 거기에 머물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서 매일 저녁때가 되면 성 밖으로 나가서(19절) 베다니를 왔다 갔다 하여야 했습니다. (아마 그래서 12절에 베다니에서 나오실 때 예수님과 제자들이 식사를 하지 못할 상황이어서 “예수께서 시장하셨다”라고 했던 것이 아닐까?)

 

“랍비님, 저것 좀 보십시오. 선생님이 저주하신 저 무화과나무가 말라 버렸습니다.”라는 베드로의 말에 동문서답하시는 것 같은 22절에서 25절의 말씀은 실은 동문서답이 아니라 이 퍼포먼스의 결론과 같은 말씀입니다. 내실없는 무화과나무 같은 성전종교가 아닌 참된 성전이신 예수님 자신안에서 성전의 열매, 내실이 어떤 것인지를 명확히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17절에서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신 말씀의 확장이자 보충말씀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의례중심, 관행중심의 율법종교, 성전이 표상하는 종교체계를 믿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어라(22절)”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이란 사람들이 그토록 신뢰하는 관행적인 종교행위와 체제(이 산 this mountain 즉 시온산)는 놀랍게도 ‘번쩍 들려서 바다에 빠져’ 사라지게 될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 일은 참된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이루어질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 참 성전 안에서 참된 기도 믿음의 기도, 유대인뿐 아니라 온 세계 만민이 하나님과 교제를 누리는 일들이 이루어지고, 성전의 원래 기능대로 죄의 용서, 관계의 용납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가난한 사람(비둘기?)들로부터 강도짓을 하는 종교체제와 관습종교를 들어 엎어버리는 15절의 행동과 23절의 기도의 내용이 이해하기 힘든 무화과저주사건의 의미를 제대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전을 매개로 하는 현재의 종교체제는 이제 자리를 참 성전이신 예수님,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왕께 그 권위와 주권을 내어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에나 참 성전이신 예수, 삼위 하나님의 복음보다 종교적 관행이나 종교시스템을 믿게 만드는 “강도”들은 있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의 교회는 “강도의 소굴”이라는 직설을 피할 수 있을까요? 무엇을 믿고 무엇을 기도하며 어디서 용서를 경험하고 있는 지 돌아볼 일입니다.

 

삶,일,구원 (3191) 지성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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