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동원조엘비스 일상생활성경공부 ELBiS Club 레위기 12장 1절-8절, 15장 1절-33절 요약
페이지 정보
작성자 1391 작성일 19-05-02 23:58본문
일상생활성경공부 ELBiS Club 레위기 12장 1절-8절, 15장 1절-33절 요약 190502
두 장은 전체적으로 출산(12장)과 성과 생식기에서 유출되는 것과 관련한 문제, 몸과 관련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단락을 나눠보면 여성의 임신과 출산(12장)과 월경(15:19-24)과 비정상하혈(15:25-30)을 다루고 남성의 경우 병으로 인해 성기에 고름이 나는 부정함(15:1-15)과 사정(15:16-19)의 경우를 다루고 있습니다. 가장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삶의 부분인 생식과 생명의 문제를 다루시면서 이것이 성막의 거룩함과 부정함에 연결될만큼 중요하게 취급하신다(15:31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이 부정을 타지 않도록 하여라. 그들 가운데 있는 나의 성막을 부정하게 하였다가는, 그것 때문에 그들은 죽음을 면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면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 몸과 일상의 가장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부분까지 관심을 가지신다는 감탄을 하며 본문을 보게 됩니다.
12장의 임신과 출산의 장면에서 산모를 “피로 더럽게 된 몸”으로 세 번이나 반복하여 표현할 뿐 아니라 심지어 일정기간이 지나면 깨끗하게 하기 위해 “속죄제”를 드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임신과 출산 과정이 죄를 짓는 것이기 때문에 속죄제를 드려야 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여기서 드리는 속죄제는 좁은 의미의 죄를 범한 것으로 출산을 이해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온전한 몸의 상태가 불온전한 상태가 된 것을 부정하다고 진단하여 격리하므로 회복의 여지를 주고 그 기간을 통해 다시 온전한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 이 규정의 취지이므로 속죄제를 드리는 것은 불온전함에서 온전함으로의 회복을 의미하는 더 통전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임신과 출산의 장면에서 또 하나 남녀차별처럼 보이는 대목은 아들을 낳았을 경우 한 주간 부정하고 그 이후 33일을 지나야 몸이 정결하여진다고 선언하는 속죄제를 드리는 데 딸을 낳았을 경우 두 주간 부정하고 그 이후로도 66일이 지나야 동일한 과정을 거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여성이 산모와 여아를 보호하려는 모녀보호의 의도가 더 큽니다. 당시 문화를 고려하면 애굽의 경우 남아를 선호하여 여아를 낳았을 경우 죽여 버리거나 혹은 여아를 낳은 산모는 큰 스트레스에 맞닥드리게 되는 데 남아를 낳았을 때 보다 오랜 기간 부정하다고 여겨 이런 압력과 압박으로부터 격리시킴으로 오히려 산모의 심리를 보호하고 여아에게도 오랜기간 돌보는 것을 통해 정을 더 가지게 됨으로 애착이 생기게 하는 효과를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15장에서 다루는 생식과 관련한 규례 역시 매우 여성을 보호하려는 의도가 많아 보입니다. 1절에서 15절까지 너무나 많은 분량을 남성의 성기의 이상 현상인 고름이 나오는 상태의 부정함에 대해 다루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렇지 않은 경우도 가끔 있겠지만 이것은 대개 임질과 매독등 성병으로 인한 증상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고대의 일부다처 상황속에서 남성의 이런 증상은 급속도로 다른 여성들에게 영향을 미쳐서 어떤 의미에서 25절에서 30절까지의 여성의 이상하혈(cf. 이 지점에서 구성애와 매독, 쑥훈증의 간증 이야기가 나옴)이라는 증상을 낳게 만들게 되었기 때문에 이 문제를 심각하게 다룬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또 월경(19-24)이 부정한 것이 아니라 월경상태의 여성과 잠자리를 가지려는 남성의 정욕을 통제하기 위해, 그리고 불온전한 몸을 쉬도록 그 기간을 부정한 기간으로 설정하는 것도 여성의 몸과 마음을 지키시려는 하나님의 배려가 아닐 수 없습니다. 모든 부정한 경우에 잠자리나 옷이나 기타 물건에 접촉했을 경우 “옷을 빨고 물로 목욕을 하여야” 한다고 반복적으로 밝히는 것은 어쩌면 광야의 경우 물이 매우 부족한 경우가 많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확실하고 고금을 통해 중요한 보건수칙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본문을 통해 우리는 종교적인 성결과 일상적인 성결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봅니다. 레위기를 제일 먼저 외웠다고 하는 유대인들은 아마 이 대목을 읽으면서 제대로 된 성교육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역사는 이 규레집이 어떻게 여성들을 차별하고 몸이 온전하지 못해 심신이 불행해 있는 사람들을 사회와 종교적으로 배제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의도가 정반대로 사람들을 그 몸의 불완전함으로부터 온전하도록 치유하시려는 배려였다는 것을 무시한 처사였습니다. 일상의 삶속에서 주기적으로 혹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혹은 실제로 범죄함으로 몸이 온전하지 못한 상황에 언제든지 인간은 처할 수 있기 때문에 사회와 공동체는 이 온전하지 못한 사람들이 온전함을 회복할 수 있도록 배려하여야 합니다. 이 본문에서는 긍정적인 의미로 그 배려가 부정적인 의미인 “부정”함과 “격리”였던 것입니다. 우리의 몸과 사회적 관계 모두가 온전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 본문을 통해 배울 수 있다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생명, 생식, 몸, 여성의 문제를 새로운 상상력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삶,일,구원(3191) 지성근목사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