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량연구소 ELBiS Club 시편 13편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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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1391 작성일 20-12-12 15:11본문
ELBiS Club 시편 13편 요약 20201211
항변과 탄식의 disorientation 시편의 성격이 2/3 (1-4절)이고 신뢰와 찬송의 reorientation 시편의 성격이 1/3 (5-6절) 인 시편 13편은 처음부터 이 둘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낳습니다. 어떻게 고통과 두려움 가운데 항변하고 탄식하던 데서 갑자기 “그러나”로 시작하여 의지와 찬양으로 바뀔 수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시인은 “언제까지..?”를 5번(?은 6번)이나 1절과 2절에서 반복하고 있습니다. 고통을 당할 때 우리는 왜?라고 질문하기 시작해서 그 고통이 끝이 없어 보일 때 “언제까지?”라고 질문하곤 합니다. 시인은 단도직입적으로 이 고통이 주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관계에서 잊혀진 것이 아닌가 질문합니다(1절). 왜냐하면 영혼(전존재)이 아픔과 고통과 괴로움을 당하고 있고 그것은 의기양양한 원수 때문입니다. 이 원수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일차적으로 이 시가 다윗의 노래이기에 다윗이 인생에서 마주쳤던 구체적인 다양한 대적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리고 나아가 이 시가 시편이라는 정경속에서 역할을 생각하면 이 대적은 포로기 하나님의 백성의 대적들을 의미하기도 할 것이고 더 나아가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원수 대적 마귀를 의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대적 원수들 때문에 시작된 고통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실제 전존재로 체감되는 아픔과 고통과 괴로움으로 인지되고 그 고통이 지속될 때 혹 하나님이 우리를 잊으신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과 함께 항변의 탄식의 기도가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5절에서)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의지합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외면당한다고 항변할 수 있는가 라고 질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인과 하나님의 인격적인 관계가 전제되기 때문에, 신뢰가 있기 때문에 이런 항변도 가능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항변과 고통의 탄식은 3절과 4절의 기도와 간구로 이어집니다 (“~주십시오”라고 3절에서 세 번 반복하여 드리는 간구의 내용을 보라). “내가 죽음의 잠에 빠지지 않게 나의 눈을 뜨게 하여 주십시오”라는 간구는 주님과의 관계에 의심을 가지게 될 때 영혼이 죽음을 경험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우울증에 빠져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모습의 묘사일 수도 있고 정말 고통이 심하여 죽음을 선택할 수도 있겠다는 우려의 표현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4절은 그런 선택을 했을 때 오히려 대적이 기뻐할 것이 두렵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인은 고통속에서도 철저히 주님을 붙들고 늘어집니다.
4절과 5절사이의 간격이 얼마나 일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 간격에 어떤 구체적인 일이 일어났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구체적인 일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탄식과 간구의 과정 속에서 시인의 내면에서 변화가 일어났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분명 고통 속에서 탄식하며 앞에서 자신의 상황을 토하고 자신의 감정을 가감 없이 내어놓던 시인은 이제 자신의 의지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전에 아픔과 고통과 괴로움과 두려움을 이야기하던 시인은 이제 마음의 기쁨을 그리고 주님께 찬송을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일어난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5절)” 때문입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동안 주님께서 보여주신 헤세드, 그동안 고통 속에서 기억나지 않았던 한결같은 사랑의 경험에 다시 눈이 열리게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함께 말씀을 나누는 해석공동체의 성원들 대부분이 시인이 탄식하는 상황에 공감할 만큼 어려움가운데 있었습니다. 어떤 이는 기도의 언어를 잊어 버렸다고 말했고 어떤 이는 이제는 그 어려움을 계속 토로하는 것이 주는 피로함을 피하기 위해 체념하고 기대를 안하기로 했다고도 했습니다. 시인의 탄식의 과정에서 관점이 바뀐 것처럼 해석공동체의 구성원들도 이 시편을 함께 나누면서 조금 변화의 여지를 발견한 것 같았습니다. “한결같은 사랑”을 보여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인격적 신뢰 속에서 가감 없이 우리의 현실을 표현하고 감정을 내뱉는 것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부재가 하나님의 임재의 자리일 수 있다는 한 형제의 고백이 귓가에 맴돕니다.
올해는 코로나로 인한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는 교회력으로 대림절기중에 있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하나님의 백성들, “언제까지입니까?”라는 기도가 끊이지 않는 중에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노래하던 믿음의 사람들처럼 우리도 이 시기를 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삶,일,구원 (3191) 지성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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