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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온라인 ELBiS Club 전도서 5장 1절 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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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 건 조회 1,345 회
작성일 21-10-30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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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ELBiS Club 전도서 5장 1절 20절 211029

참된 종교, 예배, 영성, 기도, 신앙 인가

거짓 종교, 예배, 영성, 기도, 신앙 인가

 

훌륭한 안내자, 괜챦은 이야기꾼인 전도자(코헬렛)은 회중들의 관심을 헛됨(헤벨:신비,수수께끼, 바람)이란 정서에서 시작(1장)하여 일상생활이라는 현실을 직면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존재를 생각하도록 만들고(2장), 때에 대한 감각을 통해 마지막을 생각하고 이 땅에서의 수고를 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로 보도록 이끌며(3장) 헤벨한(헛된) 세상 속에서 그나마 “더 나은” 삶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혼자가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는 삶, 즉 공동체에서 그 가능성을 보게 될 것(4장)이라고 이야기해 왔습니다.

 

오늘 본문 5장 역시 지금까지의 논조를 유지하지만 “하나님”이란 단어가 1-7절에서 8번, 18-20절에서 4번 사용될 정도로 전도서에서는 드물게 매우 많이 반복되는 점을 볼 때 “하나님”과 관계하는 문제, “하나님의 집으로 갈 때에(1절)” “하나님 앞에서 말을 꺼낼 때에 (2절)”이런 표현들을 참고하면, 속칭 종교, 영성, 기도, 신앙등의 문제를 다루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4장의 강조점인 연결되어 있는 삶, 공동체의 가능성은 자연스럽게 종교, 영성, 기도, 신앙과 연결된다는 점도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특히 1절에서 7절에서 “말”(입, 혀, 소리 7회) “(하나님께 맹세하는 말인) 서원(5회)”에 대해 왜 이렇게 많이 언급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생깁니다. 이 말과 서원이 왜 이렇게 “많(14회)”게 되었는 지를 본문에서 살펴보면 문제의 윤곽이 드러납니다. 3절과 7절이 그 핵심입니다. “걱정이 많으면 꿈이 많아지고 말이 많으면 어리석은 소리가 많아진다(3절).” “꿈이 많으면 헛된 것이 많고, 말이 많아도 그러하다. 오직 너는 하나님 두려운 줄만 알고 살아라(7절).” 꿈이 많다는 것은 일견 좋은 의미의 말 같지만 여기서는 아마 야망, 욕망, 욕심, 망상과 같은 의미일 것입니다. 걱정은 이런 꿈의 이면으로 그런 욕망을 이루지 못할 것에 대한 걱정입니다. 이 욕망과 걱정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의 말(기도, 종교적 수사등)이 많아지고, 하나님께 지키지 못할 서원들을 하는 셈입니다. 종교적인 많은 말들은 증상일 뿐 심각한 원인은 욕망과 걱정, 두려움입니다. 이런 자신의 욕망과 걱정이 종교적인 모습으로 드러날 때, “하나님의 집으로” 가서 “제물이나 바치면 되는 줄”로 아는 “어리석”고 “악한 일”(1절), “죄를 짓(6절)”는 (종교적인) 말과 서원을 일삼는 것입니다. 이런 종교를 가장한 자기 야망과 걱정 두려움에 사로잡힌 이들에게 “하나님 두려운 줄만 알고 살아라(7절)”고, 그리고 더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집에 갈 때에,...말씀을 들으러 갈일이다(1절)”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전도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과 자기 야망과 걱정이 동기가 되어 하나님의 집으로 가서 제물이나 바치는 사람, 두 종류의 하나님의 집으로 가는 사람을 비교하고 있는 셈입니다. 8절에서 17절까지는 헛된 삶속에서 걱정하는 삶의 정황을 보여 줍니다. 우선 8절에서 9절은 해석하기가 어려운 데 새번역, 공동번역의 경우 9절의 왕을 “더 높은 이”의 최고로 이해하고 왕보다 더 높은 이 즉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권면에 연결하여 법과 정의의 문제 정치적 구조가 장기적인 안목에서 이런 하나님을 상정하도록 한다는 의미를 비추는 것 같지만, 개역개정이나 현대인의 성경의 경우 9절을 “땅의 소산물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있나니 왕도 밭의 소산을 받느니라”라고 옮기고 있어 뉘앙스가 다릅니다. 이렇게 번역하면 10절 이하의 부조리, 헛된 것과 이 구절이 더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어떤 해석이든 여기서는 범과 정의, 정치적인 제도로 인한 욕망과 걱정거리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10절에서 15절은 “돈(재산,부 12회반복)”으로 인한 욕망(꿈)과 걱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특히 12절에 “막일을 하는 사람은 잠을 달게 자지만, 배가 부른 부자는 잠을 편히 못잔다”라는 부분에서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걱정과 직결된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16절과 17절은 모든 수고로운 인생의 결말인 죽음으로 인한 걱정을 표현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앞장들에서 돈, 인생, 수고 모든 것이 헛된 것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이것에 몰두한 인생은 스스로 꿈을 꾸고 동시에 걱정을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찾지만 순서와 방향이 잘못된 종교요 신앙이요 영성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전도자는 어떤 종교 어떤 신앙 어떤 영성을 권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대답이 18절부터 20절의 결론 부분입니다. 분명 이 짧은 구절에서 위에서 언급한 모든 것, 즉 부와 재산과 수고와 같은 인생을 “덧없는(18,20절)”것이라고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이며 “몫(18,19)이며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선물“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인생을 “즐거워하는”것이 하나님의 의도라고 말합니다. 20절이 이것을 대조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사람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시니, 덧없는 인생살이에 크게 마음 쓸 일이 없다.” 덧없는 인생살이는 1절부터 17절까지의 삶입니다. 아무리 종교적인 포장을 하고 덧칠을 해도 자기 욕망과 인생 전반에 대한 걱정에서 나오는 것들은 무의미한 종교, 신앙, 영성입니다. 순서가 달라야 합니다. 방향이 달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선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의도를 알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관점으로 인생을, 부와 재산, 수고를 볼 수 있다면 우리의 종교 신앙 영성, 다른 말로 “하나님의 집으로”가는 것은 의미가 있는 셈입니다.

 

오늘날도 물질추구, 권력추구, 자기보존의 본눙과 자기욕망에 사로잡혀서 사는 사람들이 대다수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돈도 많이 벌고 싶고 더 높은 이가 되고 싶고 오래 오래 죽지 않고 살고 싶은 꿈을 여전히 꾸고 있습니다. 이 본능과 욕망과 걱정을 갖고도 얼마든지 종교생활, 기도생활,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습니다. 많은 말은 많은 부와 권력과 보존본능에 대한 욕망과 걱정이 많다는 것의 표현일 뿐입니다. 참된 종교, 참된 예배, 참된 영성, 참된 기도, 참된 신앙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많은 말을 발설하기보다 그 분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그리고 들어야 할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시며 하나님이 주신 몫으로서의 부와 재산과 기타 모든 인생을 선물로 누리며 살라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면 똑같이 “하나님”을 이야기하지만 여기에는 완전히 다른 두 가지 선택이 있습니다.

 

삶,일,구원(3191) 지성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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