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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엘비스클럽 마가복음 2장 1절 12절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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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 건 조회 739 회
작성일 22-04-09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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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비스클럽 마가복음 2장 1절 12절 요약 220408

 

지금까지 1장에서 상당히 속도감있게 하나님나라 복음의 권위, 권세를 가르침과 병고침, 귀신 쫓아내시는 예수님을 보았다면 2장의 시작부터 그 권위, 권세에 대한 분명하고 깊은 예수님의 자기 주장을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네 사람이 데리고 온 중풍병자를 고치시는 일을 통해 벌어지는 사건의 기록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예수님은 자신이 선포하는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 나라의 권세가 “죄를 용서하는 권세”이며 자신이 그 권세를 가졌다는 엄청난 주장을 하고 계십니다 (사면권은 오늘날까지도 정치적 권위의 최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런 엄청난 주장이 어떻게 생각하면 매우 우연한 일상적 사건을 통해 시작되었다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위한 마가복음>에서 톰 라이트는 이 사건이 일어난 장소가 가버나움에 있는 예수님의 집이었다고 봅니다. 요즘 스포츠나 대중스타의 팬들처럼 그 당시 소문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가버나움에 있는 예수님의 사저(?)로 몰려들었고 그 때문에 예수님께 데리고 가지 못하는 중풍병자의 자리를 예수님의 집 지붕을 걷어내고 구멍을 뚫어 달아 내리는 충격적인 방식으로 예수님 앞에 내리도록 했습니다. 톰 라이트는 “이 사람아! 네 죄가 용서받았다”라고 하신 말씀은 자신의 집을 망가뜨린 행위에 대한 언급이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 뉘앙스가 그것을 넘어선다는 것을 눈치 챈 것은 율법학자들이었습니다.

 

“율법학자 몇”(6절)이라고 표현된 이들이 예수님을 감시할 목적으로 여기 와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거기 앉아 있”을 만큼 나름 예수 소문에 대한 관심이 있었는지 이 단계에서 확인할 수 없습니다만 그들이 마음속으로 “하나님 한 분 밖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는가?”라는 사실은 틀린 말이 아닙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죄를 용서하는 권세(10절)”는 엄청난 권위의 주장임에는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들이 “마음속으로 생각”한 그 “마음을 알아채신” 예수는 일부러 그들의 마음의 생각을 청중들 앞에 드러내시면서 자신의 의도, 주장을 명확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음을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여기 사용되고 있는 “인자”라는 단어와 “권세”라는 단어는 다니엘서 7장 13절과 14절의 그림을 떠올리게 하는 단어입니다. (“내가 밤에 이러한 환상을 보고 있을 때에 인자 같은 이가 오는데,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계신 분에게로 나아가, 그 앞에 섰다. 14옛부터 계신 분이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셔서, 민족과 언어가 다른 뭇 백성이 그를 경배하게 하셨다.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여서, 옮겨 가지 않을 것이며, 그 나라가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병자를 고치는 이적이 곧 죄를 용서하는 그 사람의 아들의 권세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연결시키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주장은 이제부터 계속 이것을 받아 들일 수 없는 기존 교리의 확증편향을 보이는 율법학자 바리새인들과의 갈등으로 연결 되게 됩니다. 율법학자들은 눈으로 보는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권세를 대하면서도 기존의 틀, 신학, 교리 때문에 예수님을 의심하고 받아들이지 못할 뿐이었습니다. 이들의 반응은 예수님이 “하나님을 모독하는구나(7절)” 하는 것이었습니다.

 

반대로 중풍병 환자와 그를 데리고 온 네 사람(5명)은 틀에 매이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파격적이었습니다. 모험을 감행했습니다. 집주인의 눈치를 보지 않았습니다. 지붕을 걷어내고 구멍을 뚫어서 환자의 자리를 달아 내렸습니다. 행동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이들로 인해 예수님이 일하실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의 정체를 이야기하실 수 있었습니다. 결국 이로 인해 하나님의 통치의 신비함, 경이감이 거기에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크게 놀라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우리는 이런 일을 전혀 본 적이 없다” 하고 말하는 일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새로움, 생동하는 능력, 힘, 권위, 권세가 때로는 기존의 틀과 편견, 고집 가운데에서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반드시 하나님 나라 복음의 권세는 “이런 일을 전혀 본적이 없다”라는 반응으로 드러납니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물론 많은 이단들이 자신들을 “권위 있는 새로운 가르침”인 것처럼 주장하면서 유사한 논리를 펼칩니다만 이와는 구별되는)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권위 새로운 권세 새로운 가르침은 종종 기존의 틀을 깨고 모험에 열려 있는 사람들을 통해 파격적인 방식으로 다가올 때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주 지금 내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경이감이 있는지 없는지, 너무 (교리적, 신학적, 종교적) 틀에 매여 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오는 경험들을 확증편향에 가까운 자기논리로 판단하는 것은 아닌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삶,일,구원 (3191) 지성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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