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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엘비스클럽 마가복음 10장 32절 45절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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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 건 조회 619 회
작성일 23-04-22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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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비스클럽 마가복음 10장 32절 45절 요약 230421

 

위대한 (다윗)메시야 패러다임 vs. 종 인자 메시야 패러다임

 

이 익숙한 본문을 대하는 해석공동체의 첫 번째 질문은 “왜 제자들은 예수의 명백한 수난과 죽음(그리고 부활까지) 예고를 듣고 나서도 세베대의 아들들인 요한과 야고보의 유아와 같은 요구와 나머지 열 제자들의 그에 대한 분개와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32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예수께서 앞장서서 가시는데, 제자들은 놀랐으며 뒤따라가는 사람들은 두려워하였다.” 시온이라고 부르는 예루살렘으로 보무당당히 앞장서 가시는 예수를 보며 놀라움과 두려움의 감정을 가졌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이 길, 이 카리스마 넘치는 걸음이 뭔가 비장하고 정치적인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당시의 메시야 기대와 통하는 측면이 있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예수께서 “보아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라고 말씀하실 때 제자들은 이제 “영광을 받”을 때(37절)가 된 것으로 더더욱 확신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께서 분명하게 “앞으로 자기에게 닥칠 일들을 그들에게 일러주시기 시작”했지만, 그들은 예수님이 33절과 34절에서 분명히 강조하고 계시는 “인자(그 사람의 아들 the ‘Son of Man 단7:13)”도, 그가 경험하게 될 재판에 넘겨지고 사형선고를 받고 이방사람들에게 넘겨져 조롱받고 침뱉음과 채찍질 당함과 죽임 당함, 그리고 사흘 후에 살아날 것이라는 내러티브에 대해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게 된 이유였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제자들은 일종의 확증편향을 갖고 예수님의 말씀을 취사선택하여 들었던 것입니다.

 

35절에서 40절까지 세베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의 요구와 예수님의 대화가 이런 확증편향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자기 방식으로 알아듣고 취사선택해서 듣고 있다는 사실을 더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선생님,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주시기 바랍니다.”같은 유치하고 말도 안되는 말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앞 9장 2절에서 변화산 사건에 선택되어 목격한 세 사람의 제자 속에 이 세베대의 아들들이 들어 있는 점에서 보듯이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예수에게 이런 요청을 해도 괜챦을 만큼 가깝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마태복음 20장 20절 병행구절에는 이 둘의 어머니가 등장하여 이런 요구를 하고 있다는 점은 더욱 기가 막힙니다.) 그렇게 예수와 친밀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들의 생각과 예수님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이 대화를 통해 드러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내가 마시는 잔”과 “내가 받는 세례”는 분명 33절과 34절이 묘사하는 고난과 죽음을 의미하는 것인데 이들이 “할 수 있습니다”라고 호기를 부릴 때 그것은 그만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소프트하게 영광을 얻기 전에 당할 어떤 것 정도로 생각하였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것을 심각한 단어로 보지 못할 만큼 그들은 “영광”에 취해 있고 “선생님의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일에 집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열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이 야고보와 요한에게 분개(41절)한 것도 그 당시 제자들을 포함한 예수를 따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영광”을 얻게 될 메시야 사상, 그 메시야를 추종할 때 얻을 오른쪽과 왼쪽으로 표현된 세도(42절)에 대한 열망을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42절에서 44절의 내용속에 이런 메시야 열망의 그림자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방 사람들을 다스린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백성들을 마구 내리누르고 고관들은 백성들에게 세도를 부린다”라는 42절의 말씀의 내용은 마치 사무엘상 8장에서 왕을 요구하는 백성에게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는 대목입니다. 그 왕 중에 위대(43절)한 왕이라고 불리는 다윗왕은 이 당시 메시야 대망의 핵심이었습니다. 이런 다윗왕메시야 사상을 가진 사람들에게 “섬김”“모든사람의 종”이 되는 메시야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다윗 왕 메시야 패러다임, 프레임으로는 다른 프레임, 다른 패러다임을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고난받고 죽는 인자 메시야, 섬기는 그리스도 패러다임을 이야기해도 다윗왕 프레임으로 그 말들을 이해해 버리고 있는 셈입니다.

 

말이 도대체 통하지 않고 먹히지 않는 이런 사람들을 대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본문에서 보면 놀라울 따름입니다. 32절에서도 42절에서도 똑같이 예수께서 제자들을 “곁에 불러놓고” 일러주시고 말씀하십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화를 내시지도, 포기하시지도 않으시고 곁에 불러놓고 계속 대화를 이어가십니다. 이것이 제자들에게 희망일 뿐 아니라 이 제자들을 보고 비판하거나 혹은 제자들의 모습속에 자신을 발견하는 우리들에게도 희망이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포함하여 자신의 프레임과 세계 속에 갇혀 확증편향을 일삼는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우리 주님이 섬기시고 또 섬기시고 심지어 자기 목숨을 내주시기 때문입니다.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구언하기 위하여 치를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내주러 왔다.(45절)

 

우리도 영광, 성공, 세도에 우리의 시선이 고정되어 있기도 합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그리스도인들, 교회가 그렇게 느껴집니다. 관건은 우리의 눈이, 인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성공이 아니라 섬김, 구원, 목숨을 내주는 예수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이 이해할 수 없고 이행할 수 없는 프레임, 패러다임을 예수가 오셔서 우리로 이해하고 이행할 수 있도록 앞장서 길을 가시면서 때로 “곁에 불러놓고” 일러주시기 때문입니다.

 

삶,일,구원 (3191) 지성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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