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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엘비스클럽 마가복음 12장 1절 12절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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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 건 조회 363 회
작성일 23-05-27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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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비스클럽 마가복음 12장 1절 12절 요약 230526

 

포도원, 부재지주, 소작농의 전복적 이야기

 

성전에서 일어난 소위 성전정화사건으로 인해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를 묻는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장로든, 즉 권한을 가진 자들의 질문에 “내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를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11:33)고 말씀하신 후에 오히려 비유로 말씀하기 시작하십니다. 비유는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재료를 가지고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참신하고 전복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자신이 누구인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지, 그리고 당대 성전을 둘러싸고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들의 문제가 무엇인지가 여기에서 잘 전달되고 있습니다.

 

1절의 비유의 도입은 이 비유가 잘 알려진 이사야 5장 1절에서 7절과 연결된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이사야 5장 2절에 있는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 포도를 맺었도다.”라는 말씀을 생각나게 하는 단어들이 있는 것을 보니 그렇습니다. 전체적으로 예수님의 이 비유는 이스라엘을 포도원으로 보던 전통적인 이야기의 연장입니다. 5장 7절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글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여기에다가 예수님의 비유는 당시 누구라도 익히 알만한 사회 경제적인 구조와 지주와 소작농의 관계를 가져와 전복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하십니다. 부재지주들은 소작농에게 포도원을 경작하게 하고 평안하고 안정감 있게 소출에서 세를 받으려 하지만 종종 여러 가지 이유로 소작농들의 반발이나 폭력적인 행동으로 인해 손해를 보는 사례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점에서 이 비유를 듣는 대제사장들, 율법학자들, 장로들은 이런 부재지주의 반열에 있는 자들이어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제일 두려워하는 자들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가장 큰 경제적 관심을 가지고 예수님은 파격적으로 이 종교 사회 지도층들을 포도원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반역하는 농부들이라고 전복적으로 비유를 드시는 것이기 때문에 이 비유가 듣는 대상에게 직격탄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 비유가 자기들을 겨냥하여 하신 말씀인 줄 알아차리고, 예수를 잡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무리를 두려워하여 예수를 그대로 두고 떠나갔다.(12절)”

 

비유를 듣는 대상과 관련하여 그 적실성과 전복적인 것에 덧붙여 비유 내부를 들여다 볼 때 하나님의 성품과 예수님의 자기정체성에 대해 시사하는 점이 많습니다. 우선 이 비유에서 주인이신 하나님은 농부들(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 종들(선지자들, 마지막선지자 세례요한까지)을 끊임없이 보내십니다. 9절의 표현은 아마도 나단의 비유에 반응한 다윗의 말처럼 들립니다. “그러니,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 이 질문은 포도원의 부재지주인 너네들이라면 어떻게 하겠느냐 라는 질문이고 아마도 그들은 당장에 때려죽이고 새로 소작농을 놓으려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에 나타난 주인은 바보스러울 만큼 참을성이 많은 분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이 비유 안에 예수님 자신의 정체성과 운명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나타납니다. 주인의 “단 한 사람, 곧 사랑하는 아들”이시지만 농부들에 의해 죽임당하여 포도원 바깥에다가 내 던져질 존재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기 인식을 더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10절과 11절에서 시편 118편 22-23절의 인용하시면서 “너희는 성경에서 이런 말씀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라고 물으시는 장면입니다. 시편 118편의 앞뒤 문맥은 메시야시편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 질문은 자신을 사람들이 버린 돌이자 참 성전이신 집 모퉁이의 머릿돌(cf.엡2:20-22) 메시아가 되심을 일부러 드러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전복적이며 노골적인 예수님의 비유에 성전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를 잡으려 하였지만 무엇보다도 무리를 두려워하는 그들의 한계 때문에 당장에 그렇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미 이런 행보는 몇 번이나 있었습니다(11:18; 11:32). 이들은 근본적으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않고 보이는 민중들 군중들의 동향에 움직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성경을 보고 있는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입니다. 우리가 이 전복적이고 노골적인 비유를 농부라고 생각하는 누군가에게 던지는 자가 아니라 우리가 이 비유를 듣는 자여야 합니다. 이 비유가 다른 사람을 겨냥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겨냥하신 말씀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바로 농부이며 나는 주인을 주인으로 인정하고 있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나를 배신하고 반역하는 사람들에 대한 내 감정으로 본다면 주인이신 하나님의 참으심은 길이 참으심이요 은혜의 참으심입니다. 나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보이는 나의 손해를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눈에 보이는 사람들의 평판을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삶,일,구원 (3191) 지성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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