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 엘비스클럽 요한계시록 8장 1절 9장 21절 나눔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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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5-03-22 00:24본문
엘비스클럽 요한계시록 8장 1절 9장 21절 나눔요약 250321
재앙이 주는 나팔 경고-주권자에게 돌아오라.
요한계시록은 묵시장르이기 때문에 문자적인 해석이 아니라 판타지 드라마와 같은 마음으로 볼 때 더 잘 이해됩니다. 오늘 8장과 9장을 함께 보는 것은 6장과 7장과 대비되는 패턴들을 통해서 본문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6장과 7장 다음에 일어날 일에 대한 기록이 8장과 9장이 아니라 같은 역사의 다른 면을 보여주는 플래시백 장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6장과 7장이 역사의 봉인을 떼어서 역사와 성도의 고난을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면 8장과 9장은 세상이 겪게 되는 재앙의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려주거나 경고(나팔)해 줍니다.
일곱째 봉인이 떼어지고 반 시간동안의 고요함이 하늘에 있습니다. 앞 문맥의 보좌의 찬양소리가 일순간에 고요함으로 변할 때 주목의 강도가 더 강해질 것이므로 새로운 장면에 대한 집중도가 높아질 것을 예상합니다. 8장 2절부터 5절까지의 “향”“향로”는 성도의 기도와 합해져서 보좌에 계신 하나님께 올라갑니다. 아마도 이 기도는 6장 9절 이하의 탄원의 기도와 연결될 것입니다. 출애굽의 배경속에서 7장을 이해한 것처럼 오늘 본문도 출애굽의 배경이 도움이 됩니다. 왜냐하면 8장 6절에서 13절까지의 네 번의 나팔로 인한 재앙들이 출애굽이 있기 전의 열가지 재앙과 많이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나팔은 우레로 인한 곡물이 상하는 일곱째 재앙(출9:13-25), 두 번째 나팔은 물이 피가 되는 첫 번째 재앙(출7:20-21), 세 번째 나팔은 열재앙은 아니지만 출애굽기 15장에 나오는 마라사건과 유사하며, 네 번째 나팔은 어둠이 지배하는 아홉 번째 재앙(출10:21-23)을 닮아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위의 성도들의 기도와 그 향로에 불을 담아 땅에 던지는 하나님의 심판의 임재의 장면은 열 재앙이 있기전 출애굽기 3장 7절과 9절의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주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나의 백성이 고통받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또 억압 때문에 괴로워서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의 고난을 분명히 안다....지금도 이스라엘 자손이 부르짖는 소리가 나에게 들린다. 이집트 사람들이 그들을 학대하는 것도 보인다.” 한편으로 세상이 경험하는 재앙은 성도들의 탄식을 들으시는 하나님의 응답, 하나님의 진노의 임재 때문입니다.
9장 1절에서 11절은 다섯째 천사의 나팔 후 장면인데 이와 관련된 장면은 계시록 20장 1절에서 3절에 아비소스(무저갱)에 갇혔다 잠시 풀려나오는 사탄과 관련이 됩니다.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cf.사14:12)이 이 재앙의 권세를 가진 것이 다른 재앙과 다른 특색입니다. 기묘하게 생긴 메뚜기(cf.출10:12-20)는 출애굽때 와는 전혀 다르게 나무나 초목이 아니라 “이마에 하나님의 도장이 찍히지 않은 사람만을 해하라는 명령(9:4)”을 받습니다. 이 재앙들이 7장에서 이마에 인을 받은 사람들이 아닌 불신자들에게 내린 것이라는 걸 봅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사람들을 죽이지는 말고 다섯 달 동안 괴롭게만 하라는 허락이(5절)” 주어졌습니다. 분명 엄청난 괴로움이지만 사탄은 죽음의 권세를 가지지 못했음을 보이는 대목입니다. 아바돈, 아볼루온 파멸, 파괴자라는 이름에서 세상이 경험하는 재앙은 다른 한편으로 주권자이신 하나님이 그들에게 허용하셔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그들은 끝내 죽음(삶은 물론하고)의 권세도 없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마침내 죽음의 권세는 9장 12절에서 19절까지 하나님께서 보좌에서 권세를 가진 네 천사에게 정확한 시기(그해, 그달, 그날, 그때 15절)에 맞추어 행사하도록 명령하실 때 드러납니다.
본문에는 “삼분의 일(14회 반복)”만 재앙의 영향을 받도록 하나님께서 명령하시고, 다섯 번째 나팔에서는 “다섯 달”만 괴롭힘을 당하게 허용하시는 장면이 인상적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가 무자비한 것이 아님을 드러내는 장치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9장 20절에서 21절의 이런 재앙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여전히 “회개하지 않았”다는 언급을 통해 볼 때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의 재앙들의 의도는 회개하기를 바라시는 긍휼의 의도였다는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출애굽때 바로가 마음을 바꾸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열재앙가운데 더 마음을 강퍅하게 한 것처럼 세상도 이런 재앙을 통해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통해 돌아오기 보다 여전히 귀신이나 우상에게 절하기를 그치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것을 역사가 보여주는 셈입니다.
악한 세상 가운데 공의를 갈구하는 성도들의 간구는 저주 시편과 같은 방식으로라도 하나님께 전달이 되고, 하나님은 가만히 계시지 않는 주권자이시기에 그런 기도에 반응하셔서 세상을 교정하시기 원하십니다. 어떤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어떤 것은 파괴자 사탄의 세력을 통하여 주권적으로 세상을 교정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 자비를 우리는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생과 사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이 천사를 통해 경고하시고 알리시는 이 나팔소리에 우리는 귀 기울이며 살고 있는가요?
삶,일,구원 (3191) 지성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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