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 엘비스클럽 요한계시록 17장 1절 18절 나눔요약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5-05-24 00:59본문
엘비스클럽 요한계시록 17장 1절 18절 나눔요약 250523
바벨론, 로마 그리고 오늘의 제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
15장과 16장의 연장선에 17장이 있다는 것은 “대접 일곱 개를 가진 그 일곱 천사 가운데 하나가 와서(1절)”라는 말로 17장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창녀”(16회)와 그녀가 타고 있는(3절) “짐승”(11회)에 대한 묘사와 그 비밀에 대한 천사의 설명이 17장의 주된 내용입니다만 그 묘사와 설명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선 왜 “창녀”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구약의 호세아서나 잠언의 두 여인(지혜로운 여인과 음녀) 전승을 생각하거나 가나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실족시킨 아세라와 같은 여신 우상숭배를 생각하게 만드는 단어입니다. 1절에서 “큰 바다 물 위에 앉은(sits on many waters) 큰 창녀가 받을 심판을 보여 주겠다”라고 하는 데 이것은 유브라데스 문명에 자리 잡은 바벨론을 생각하게 하며 5절에서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 큰 바빌론”이라는 묘사와 연결됩니다. 고대의 물은 문명을 가능케 하였으나 이것이 가져다 주는 풍요와 부의 추구는 사회적 도덕적 타락과 윤리적 일탈 그리고 그와 연결된 우상숭배를 갖고 왔습니다. 문명은 당연하게 많은 사람들을 결집시켜서 정치적인 헤게모니를 가지게 됩니다. 천사가 알려주는 창녀와 관련된 비밀인 15절과 18절이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천사가 또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네가 본 물 곧 그 창녀가 앉아 있는 물은 백성들과 무리들과 민족들과 언어들이다.” “네가 본 그 여자는 세상의 임금들을 다스리는 통치권을 가진 큰 도시를 가리킨다.” 문명은 창녀처럼 음행을 하도록 유혹하는 특징을 가집니다. 4절의 화려한 치장은 속에 있는 것(가증한 것들과 자기 음행의 더러운 것들)을 가릴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절에서 보는 것처럼 세상의 왕들과 땅에 사는 사람들은 음행에 취하고 동참하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 문명은 제국이 되는 데 이 제국은 하나님을 반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만히 두지 않고 피를 흘리게 할 뿐 아니라 그것에 취할 만큼 즐기는 속성을 가집니다(6절).
이런 사실에 놀라는 계시록의 저자 요한(6절)에게 천사는 “왜 놀라느냐(7절)?” 라고 하면서 여자의 비밀과 짐승의 비밀을 알려 줍니다. 8절에서 18절까지 긴 분량이 이 비밀의 내용이라면 계시록의 이 부분의 의도는 문명, 제국의 속성에 놀란 요한(과 그 독자들)에게 “지혜를 가진 마음(9절)”을 가지고 문명, 제국의 결국을 보는 관점을 제공하려는 것입니다. 8절에서 14절까지에서 “여자를 태우고 다니는 머리 일곱과 뿔 열이 달린 짐승(7절)”의 비밀을 말하는데, “머리 일곱”은 9절에서 일곱 산과 일곱 왕이라고 표현합니다. 이는 당시 로마 제국 치하의 독자들은 “그 여자가 타고 앉은 일곱 산”이라는 말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일곱 산(언덕)의 도시(키케로, 버질등이 묘사한)” 로마로 자동 이해했을 것입니다. 그런 이해를 갖고 10절과 11절을 보면 구체적인 로마 제국의 왕들, 혹은 로마에 이르기까지의 제국들의 이야기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들을 포함하여 아직 나라를 차지하지 못한 열 뿔들은 “한결같이 짐승과 함께 한동안 왕권을 차지(12절)”하고 “한 마음이 되어서 그들의 능력과 권세를 그 짐승에게 내(13절)”주는 특성을 가지는 정치적인 실재들입니다. 그리고 여기 짐승은 이미 앞에서 13장에서도 등장하지만 17장에서는 비록 잠시 아비소스에서 올라 와서(8절) 다시 나타날 것이지만 (8절) 반복적으로 어린양과 어린양과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나중에는 멸망하여 버릴 자(8, 11, 14)”로 묘사됩니다. 짐승을 탄 창녀에 놀라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15절에서 18절은 이 싸움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대한 놀라운 묘사입니다. 한 마디로 자중지란으로 스스로 이 팀이 무너질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네가 본 그 열 뿔과 그 짐승은 그 창녀를 미워해서 비참하게 만들고, 벌거벗은 꼴로 만들 것이다. 그들은 그 창녀의 살을 삼키고 그 여자를 불에 태울 것이다.” 이 묘사는 보편적인 제국들의 흥망성쇠의 역사속에서 자주 찾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제국의 내부에서 스스로 무너지는 일들이 비일비재해 왔는데 이것을 17절에서 일종의 하나님의 섭리라고 천사가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이루실 때까지 당신의 뜻을 행하려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셔서 그들이 한 마음이 되어 그들의 나라를 그 짐승에게 주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짐승은 19장에서 산 채로 유황이 타오르는 불바다로 던져질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으로 가득(4절)”한 짐승과, 그리고 현재 “세상의 임금들을 다스리는 통치권을 가진 큰 도시(18절),” 이며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 큰 바빌론(5절)”인 “큰 바다 물 위에 앉은 큰 창녀(1절)”가 우리를 놀라게 하지만 놀라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짐승과 창녀의 결국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아는 지혜, 묵시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제국의 정신, 문명의 유혹에 취한 땅에 사는 사람들(2절)이 될 것인가 아니면 “어린양과 함께 있는”“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신실한 사람들(14절)이 될 것인가 본문이 우리에게 질문합니다. 역사속에 어떤 정치적인 선택을 하더라도 세상 정치의 속성, 혹은 제국 추구의 정치 속성을 우리가 안다면 어느 특정 인물을 과도하게 신뢰할 일이 아닙니다.
삶,일,구원 (3191) 지성근 목사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