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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이 시작된 날 혁명이 시작된 날 11장-15장 느낌, 밑줄, 질문, 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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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 건 조회 3,497 회
작성일 20-04-22 11:29

본문

11장

1.느낌



2.밑줄친 부분


“'소명 언약' 안에서, 예수 메시아에게서 구원을 발견한 인류는 전에 이를 가로막았던 어둠의 세력의 유혹과 방해물에서 해방되어 지금 여기서 역사하는 새로운 창조세계 내에서 능동적 참가자가 될 것이다. 바울이 보기에 예수님의 죽음에는 강력한 과거의 중요성이 있었지만, 그것을 깨닫고 하나님 사랑의 궁극적 계시로 경축하는 이들은 그 깨달음 덕분에 거룩함과 연합, 고난과 사명의 삶으로 부름받고 회복된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이 오늘날에도 그렇듯, 1세기 교회의 핵심 소명이었다.” (307면) - 정한신, 차재상


“바울의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메시아로 보기를 거부한다면, 우리는 바울이 예수님의 죽음에서 발생했다고 이해한 내용을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312면) - 정한신


“그분은 아브라함 백성의 운명을 약속된 목적으로 이끄셨는데 그것은 그들이 이 세상을 떠나 천국에 갈수 있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열방중에서 찬양의 백성이 되게 하기 위해서였다 바울에 관한 한, 현재의 분열된 교회의 삶과 죽음 이후의 머나먼 ‘천국’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하나 된 예배가 늘 하나님이 염두에 두신 메시아 죽음의 목적이었다”(313)-조민주, 이하정


“메시아 안에서, 특히 그분의 죽음을 통해, 한 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행하셨다. 하나님은 그에게 한 가족을 주셔서 믿는 유대인과 믿는 이방인이 한 몸을 이루게 하셨다.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십자가에 대해 한 말은 모두 이 목적을 겨냥한다.” (314면) - 정한신, 차재상


“우리의 과제는 그 ‘목표’를 ‘천국에 가는’ 플라톤화된 해석에서, 그 ‘수단’을 ‘진노하신 하나님이 예수님을 벌하신다’는 이교화된 해석에서 구출하여, ‘속죄 신학’에 대한 보통의 인식을 어둠과 불쾌한 신비에서 벗어나, 활기를 주고 적실성 있는 진리로 변형하는 것이다.”(314-315)- 지성근, 정한신


하지만 다른 단락들과의 긴밀한 유비는 바울이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을 이야기할 때 우리가 이것이 십자가형을 언급한다고 해석해도 무방함을 확실히 해 준다.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하나님은 ‘새로운 출애굽’을 통해 오래전 약속하신 그분의 계획을 성취하셨다. 그리하여 이제 유대인과 이방인을 불문하고, 종이었던 이들이 “아들”로 환영을 받을 수 있다.(319쪽) - 이하정


죄가 용서되면 '권세들'은 힘을 잃고 만다(323)-부순애, 정한신


“플라톤화된 왜곡과 비교해 볼때, 목표는 아브라함에게 그의 후손이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약속의 성취다(로마서4:13을 보라). 문제는 인간의 죄나 그 죄로 인한 죽음 같은 일반적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만이 아니라 아브라함을 통해 온 세상에 약속하신 것이 문제다.신명기에서 주장하듯이 약속을 받은 민족이 신명기의 저주 아래 있다면 그 약속들은 더 넓은 세상으로 확산될수 없다. 그렇다면 수단은 이스라엘의 메시아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저주를 감당하시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죄와 ‘유배’의 결과들을 해결하여 ‘현재의 악한 세대’의 권세를 영단번에 깨실 수 있다. 죄가 용서되면, ‘권세들’은 힘을 잃고 만다. 우리가 성경 서사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여 “메시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습니다”라는 말씀의 제대로 된 효력을 볼수 있다면, 복잡한 성경 본문이 논리 정연하게 눈에 들어오게 된다.”(323)-조민주


바울은 메시아에게는 두 가족이 아니라 한 가족이 있으며, 이를 부인하는 것은 복음 자체를 부인하고 메시아형을 불필요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324)-부순애


“이스라엘에 대한 메시아의 대표적 지위와 아브라함의 가족을 위한 하나님의 목적들을 통해 해석된 메시아의 십자가형은 한 언약 가족, 곧 죄 사함을 받은 하나님 백성, 이미 ‘오는 세대’의 삶을 경축하는 백성의 창조와 유지를 뜻한다.” (327면) - 정한신, 차재상

이 두 단계- 하나님의 승리인 유월절, 그 승리의 수단으로서 죄를 위한 메시아의 죽음 – 가 갈라디아서의 모든 내용을 뒷받침한다. (328면) - 차재상

십자가에 대한 바울의 메시지는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연합과 거룩함, 그 둘에 동반되는 고난은 메시아의 죽음에 뿌리를 둔다. 그것들이 없어도 된다고 여기는 것은 메시아가 죽으실 필요가 없었다고 여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329쪽) - 이하정

메시아가 다시 사셨을 때 죽음을 정복하셨다. 죄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그것이 연결고리다. 그것이 성경대로, 모든 ‘권세들’로부터의 자유라는 메시지(유월절메시지)가 ‘죄 사함’의 메시지(포로 생활의 종말이라는 메시지)와 직결되는 이유다. (332쪽) -이하정

“메시아의 십자가형은 하나님이 죄와 죽음에 요술을 부려서 한번에 해결하신 이상한 거래가 아니었다. 그일 이후로 일상활동이 재개되고, 늘 작용하던 힘이 돌아오고, 인간들이 잠시 중단했던 명예와 수치, 자랑과 명망, 출세주의와 허세 같은 보통의 인간 생활방식을 다시 채택한 것이 아니었다. 메시아의 십자가형이 죄를 해결함으로써, 모든 권력 구조를 타도하기 위해 자신을 주시는 넉넉한 사랑 가운데 일하고 계신 하나님의 본성을 드러냈기 때문에, 그와 동일한 하나님의 본성이 이제는 복음의 내용뿐 아니라 그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의 성품과 환경을 통해 일하실 것이다.”(336)-조민주


“메시아의 십자가형이 죄를 해결함으로써, 모든 권력 구조를 타도하기 위해 자신을 주시는 넉넉한 사랑 가운데 일하고 계신 하나님의 본성을 드러냈기 때문에, 그와 동일한 하나님의 본성이 이제는 복음의 내용뿐 아니라 그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의 성품과 환경을 통해 일하실 것이다.

  이것이 고린도후서에 나타난 바울의 핵심 주장이다.” (336면) - 정한신, 차재상, 이하정


메시아의 죽음의 결과는 인간, 이 경우에는 사도의 사역을 맡은 이들이 그 사역의 부르심을 받고 구비되는 것이다 (337쪽) -이하정


“십자가가 사람들을 죄에서 해방시켰고,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이 실제로 활동하는, 하나님을 반영하는, 그분의 형상을 닮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고린도후서 전체가 정말로 이야기하는 바다.” (338-339면) - 정한신, 차재상, 이하정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지만, 죄인들의 죽음을 죽으셨다. 하지만 이 진술을 표현하는 전반적 서사가 무엇인지 주의하여 보라. 그것은 화가 나거나 변덕스러운 신과 우연한 피해자에 대한 유사 이교도 서사가 아니다. 사랑, 언약적 사랑, 신실하신 사랑, 화목하게 하시는 사랑 이야기다. 메시아의 사랑이다. 자기를 주는 그 사랑이 세상에 알려진 그 어떤 권세와도 전혀 다른 종류의 힘을 지녀서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약할 때 강하다고 기꺼이 말할 수 있다) 사랑이 승리한 이야기다.” (339)-지성근, 정한신, 이하정


“죄없은 분이 죄인 대신 죽으셨다. 이것만이 사랑, 새로운 출애굽, 포로기의 종말이라는 서사 안에서, 예수님의 서사 안에서 말이된다. 이것을 다른 서사에 갖다 놓으면 음울한 이교도의 공포물이 된다., 원래 있던 자리로 돌려 놓으면, 강력한 사랑을 들려 준다. “메시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를 사도적 삶에 급진적으로 적용한 모습이다.”(340)-지성근, 정한신


“예수님은 … 자기를 비우고 겸손히 낮추셔서 잔인하고 수치스러운 죽음을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다. 일반적인 인간 행위, 일반적인 왕들의 행위와는 정반대다. 그 결과, 예수님의 중개로 십자가가 하나님나라를 세운다.” (342면) - 정한신


이들은 이미 예수님께 속했고, 예수님의 ‘마음’이 이렇게 움직이니 그들의 마음도 같은 방식으로 움직여야 한다. 그 이유는 단순히 이들이 예수님을 닮아 가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분의 ‘마음’이 이들의 마음 가운데 일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343쪽) -이하정


“메시아는 만유의 주인이시지만 종이 되셨다. 전능하시지만 약해지셨다. 아버지와 동등하셨지만 이런 지위를 악용하지 않으셨다...그분은 죄가 없으시지만 죄인들의 죽음을 죽으셨다. 이렇게 십자가가 죄와 죽음의 무게를 떠안고 제거함으로써 하나님나라를 세울 수 있다. 하나님나라는 우상의 권세를 무너뜨림으로 세워지는데 우상은 인간이 죄 가운데 그들에게 권세를 부여하기 때문에 권세가 있다. 죄가 해결되면 우상들은 원래 모습 곧 번쩍거리는 쓰레기 더미로 축소된다. 죄가 해결되면 세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다.”(344)-조민주, 차재상, 정한신 

“첫 그리스도인들은 ‘삼위일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예수님과 그분의 죽음에 대해 믿은 내용의 핵심에서, 그들은 십자가에서 일어난 일이 세상을 만드신 사랑의 자기표현이었다는 통찰을 확인하고 설명하고 주장하고 훌륭한 시로 탄생시켰다.” (345) - 차재상

“메시아 사건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예수와 함께 여러분을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범죄를 용서해 주셨”기 때문에 통치자들의 권세는 무너졌다. … 새로운 유월절이 이제 확실히 발생했다. 다시 한 번 죄 사함을 통해 권세들을 이기고 승리를 성취했다.” (347면)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죄사함’이 ‘권세들에 대한 승리’라는 결과를 가져오는가? 여기서 우리는 죄와 우상숭배에 대한 앞선 분석으로 돌아간다. 우상들은-우상에는 사람들이 공식적으로든(로마제국에서처럼) 비공식적으로든 우상화한 인간 통치자도 포함된다. 인간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여한 덕분에 권세를 얻는다. 인간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분의 세상에서 책임을 지도록 설계되었다. 하지만 인간이 우상을 숭배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담은 인간성이 부패하고 죄를 짓고 인간소명의 특징을 잃어버릴 때 우상에게 자신들의 힘을 내주고 만다. 그러면 우상들은 이 힘을 이용하여 인간과 세상 위에 군림하고 궁극적으로는 이들을 망가뜨린다. 하지만 죄를 용서받으면 우상들은 그 힘을 잃고 만다….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셨을때 ‘권세들’은 그 힘을 잃었다 죄가 패하고 죄인이 용서받았기 때문이다”(348)-조민주, 정한신, 이하정


“새로운 출애굽은 죄사함을 통해 성취되었고, 죄 사함은 진정한 한 분 하나님의 구현이신 메시아의 삶과 죽음으로 성취되었다.” (349면) - 정한신, 이하정

“여기서도 초기 기독교 사상에 암시된 삼위일체 구조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을 제외한 데서부터 일종의 이교 공식으로 돌아가는 하락세가 시작된 것이다.” (349) - 차재상


3.질문




4.소감

그동안 익숙하게 듣고 봐왔던 바울서신의 내용이 조금은 더 선명하게 다가오는것 같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인한 인간의 죄사함의 의미를 다시 생각본다. 이 죄사함으로 인해 우상들에게 넘어간 권세와 숭배가 무너지고 오직 하나님만이 다시 영광을 받으시고 경배받으심을… 십자가에서 인간의 모든 죄를 지심으로 인간은 그 죄에서 해방되어 본래의 모습으로 하나님을 따르고 그분을 찬양하는 삶으로 회복됨을.. 이것이 오늘 나의 삶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다주는것인가? 생각해보게 된다.(조민주)


죄의 핵심이 우상숭배, 죄사함으로 우상이 무너졌다. 하지만 여전히 여러 우상들에게 휘둘리는 나를 본다. 우상인지도 잘 모를 때도 있고 알면서도 모르는 척 귀찮아하기도 한다. 예수님의 죽으심, 십자가를 다시 생각하니 힘이 난다. 하지만 또 휘둘리겠지… 그럴 수록 주님을 주님으로 인정하는 예배, 언제 어디에 있든 그 예배하고자 하는 마음을 더 붙들어야겠다. 우상들과 정면대결은 솔직히 자신없다. 예배의 마음을 계속 품을 수밖에. (이하정)


12장


1.느낌



2.밑줄친 부분


“로마서 1-4장은 오랫동안 우리의 오랜 친구 ‘행위 계약’의 진술인 양 해석되었다. … 나는 그것이 잘못이라고 확신한다.” (356면) - 정한신, 이하정


“바울에게도, 예수님의 성취의 결과는 새로운 창조세계, 곧 인류가 ‘제사장 나라’와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진정한 인류의 소명을 회복할 수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이다.” (359면) - 정한신, 차재상


바울이  로마서 1장18절에서 지적한 인간의 주요 문제는 '죄'가 아니라 '경건하지 않음'이다 이것은 행위의 문제라기보다는 예배의 문제다(359)-부순애, 이하정


“‘죄’는 단순히 ‘하나님이 금하신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앞에서 보았듯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으로 온전히 기능하지 못한 것이 죄다. 바울이 3장 23절에서 요약한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359) - 차재상, 이하정

복음의 핵심은 족장들에게 하신 약속을 성취하고, 열방이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찬양하게 하는 것이다. (361쪽)-이하정

...십자가에서 성취된 ‘새로운 출애굽’, 특히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에 대해 요약한 것이다...이 새로운 출애굽은 인류를 애굽의 종살이가 아니라 ‘죄’에서 구출하여, 가나안이 아니라 회복된 창조세계라는 약속의 땅으로 인도한다. (363쪽-364쪽)-이하정

여기서도 구원의 목표는 진정한 인간의 운명을 회복하는 것,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름받은 소명의 언약을 회복하는 것이다. (366쪽) -이하정

그분께 속한 사람은 자신이 그분과  함께 죽고 다시 살았기에 더 이상 옛 주인에게 복종할 의무가 없다는 믿음으로 믿고 살아야 한다(373)-부순애, 이하정


“하나님나라 운동은 늘 새로운 출애굽 운동이었다. 그리고 예수님이 그 백성을 대표하는 이스라엘의 메시아이기 때문에, 그분께 적용되는 것은 모두 그 백성에게 적용되기에 이 모두가 효력이 있다. 예수님이 죽으셨기 때문에 그들도 죽었다. 그것이 직관에 어긋나는 듯해도 말이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신 메시아의 새로운 생명이 바로 ‘현재의 악한 세대’에 불쑥 뛰어든 ‘오는 세대’의 출발이다. 그분께 속한 사람은 자신이 그분과 함께 죽고 다시 살았기에 더 이상 옛주인에게 복종할 의무가 없다는 믿음으로 믿고 살아야 한다. 이것이 궁극적인 하나님나라 언어, 유월절 언어다.(373)- 조민주, 정한신, 이하정


“이스라엘의 죄는 유배라는 결과를 가져왔고, 포로기는 연장되었으며, 그 결과 새로운 ‘종살이’가 나타났다. 그래서 죄 사람을 통해 새로운 유월절이 시행되어야 했다. 사복음서와 바울의 다른 서신서들에서 보았듯이, 예수님의 대표 대리적 죽음을 통해 죄를 용서받는다. 하지만 바울은 로마서에서 극적이고 결정적이며, 독특하고 꼭 필요한 한 걸음을 더 내딛는다.”(374)-지성근


“이스라엘의 메시아에 초점을 맞춘 유대 서사에서 한 걸음씩 멀어질수록 이교도 신앙에 한 걸음씩 다가가게 된다. 그래서 탈유대화한 이야기는 또 다른 서사틀을 찾아야 했기에 결국 ‘행위 계약’을 만들어 냈음이 장기적으로는 증명되었다.” (377면) - 정한신


“인간은 ‘영화롭게’ 되려고 구원받았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 그분의 지혜와 사랑을 세상에 비추는 진정한 인간으로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385면) - 정한신


“바울이 한 일은 복음서에서 했듯이 죄를 다루는 것을 더 큰 하나님나라 서사 안에 위치시킨 것이다. 새로운 유월절(노예 삼는 권세에서 구출되는 것)은 죄를 다루는 것으로 성취된다.” (385면) - 정한신


8장 4절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이 이야기는 인류가 구조되어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는 것’이다. 인간은 ‘영화롭게’ 되려고 구원받았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 그분의 지혜와 사랑을 세상에 비추는 진정한 인간으로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385쪽) - 이하정


“궁극적으로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바울의 관점을 이해하는  원형적 삼위일체 틀과 유사 세속 틀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 교회는 후자에 빠질 때가 많았다. 로마서는 재빨리 우리를 전자로 돌려놓는다.” (387)-지성근, 정한신


3.질문

로마서 8장 17-25절에는 “이스라엘의 전통에 확고히 뿌리를 내린, 초기 삼위일체 사상이 들어있다.”라고 라이트는 말하는데 얼마나 이해하고 얼마나 동의하는가?(390-393) - 지성근


로마서 8장 27절에서 성령의 말할수 없는 탄식이 하나님되심이라는 의미의 일부이듯이, 십자가에서 버림받은 외침도 하나님 되심 곧 넘쳐흐르는 사랑의 하나님 되심의 일부라는게 이치에 맞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삼위일체를 넘쳐흐르는 창조적 사랑으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393) 이 주장에 대해서 얼마나 동의하며 이해를 하고 있는가? 나는 정확하게 이해가 되지 않고 있다(조민주). ---> 삼위일체의 역동으로 십자가상에서의 예수님의 탄식과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행하시는 성령님을 연결시키는 해석… 어렵네요. 질문에 공감합니다.(정한신)



4.소감

구약이야기의 여러 사건이나 율법 등에 관한 것은 솔직히 신약에 비해 가볍게 여겼다. 나중에 예수님 십자가로 모두 완성되는 복음이 더 중요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율법적 요구와 유월절 사건이 십자가를 이해하는데 토대가 되고 더 풍성하게 만든다는 사실에 놀라웠고 더 묵상하고 싶은 부분이다. (이하정) 




13장


1.느낌



2.밑줄친 부분


“대부분의 바울 해석자들이 ‘속죄’ 신학을 파악하려고 애썼으며, 수많은 논란의 중심이 된 단락… 로마서 3장 21-26절…” (395면)


바울이 3장 21일 하반절에서 분명하게 호소하는 이스라엘 성경에서 하나님의 ‘의’는 단순히 윤리적으로 고결한 그분의 지위를 말하지 않는다. 더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을 말한다. 이 언약은 아브라함과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일 뿐 아니라, 이스라엘을 통해 더 큰 세상과 맺으신 것이다…’의’ 는 단순히 하나님이 옳은 일을 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그분이 하신 언약적 약속들에 신실하시다는 뜻이다. (405쪽~406쪽)-이하정


그는 좀 더 구체적으로 언약적 목적에 대한 그분의 신실하심을 가리키고 있는데, 이 신실하심은 신실하신 메시아 예수님이 세상을 바로잡는 목적들(그분의 정의)을 세상에 가져오셔서 실행되었다. (408쪽) -이하정


그렇다면 ‘죄’는 단순히 하나님의 규칙을 깨뜨린 것이 아니라, 우상숭배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411쪽) -이하정


“‘로마서의 구원의 길’을 사용하는 이들을 포함하여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렇게 ‘복음’을 제시한다...우리가 죄를 지엇지만,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 대신 죽게 하셔서 구원을 받는다. 이스라엘을 언급하지는 않지만, 이스라엘을 바뜨리면 이 단축된 이야기는 우리가 앞서 보았던 궁극적 목표에 대한 플라톤적 관점(천국)과 인간의 소명에 대한 윤리적 관점(선행), 구원에 대한 이교적 관점(진노한 신을 달래는 죄없는 자의 죽음) 같은 비유대 사고방식으로 뒤집어지기 쉽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 비유대 이야기가 반유대 이야기로 변하는 경우가 많다.” 416-지성근


하지만 그에게 성육신한 아들은 이스라엘의 메시아이기도 한다. 성육신이 택함을 취소하지 않고, 오히려 그 절정으로 이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이 이스라엘 대표자의 모습으로 그분의 세상에 오셔서 그들 스스로는 할 수 없었던 일을 이스라엘과 세상을 위해 하신다. 창조주와 그분이 창조하신 인간 사이에 만남의 장소가 되신 것이다. 그런 역할의 결합이 바울의 신학적 관점의 핵심을 형성한다. (417쪽) -이하정,조민주


“우상숭배와 불의, 오래된 ‘죄’라는 근본 문제가 있다. ….진정한 인간의 소명을 붙들지 못하여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한 것이 문제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죄가 문제요, 그 죄의 배후에 있는 우상숭배가 문제다. 하나님이 세상을 바로잡으려 하신다면, 이 모두를 다루셔야만 한다”(418쪽)-조민주


“바울이 3장 21-26절에서 맞닥뜨린 질문은 인간의 죄와 우상숭배, 그리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라는 이중 문제다. 이 핵심 단락 앞뒤로는 이 인간의 곤경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 가족과 맺은 언약의 신실하심을 언급하는 단락들이 있다.” (420면) - 정한신, 이하정,조민주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이 이스라엘 전반의 대규모 실패에도 불구하고, 죄로 가득한 세상을 구원하실 것이다.” (422면) - 정한신


“3장 21-26절에서 통상적 ‘로마서의 구원의 길’에서 생각하듯이 단순 ‘행위 계약’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이 죄를 다루셔서 죄 사함을 받고 예배하는 세계 백성을 창조하시는 방식인 언약과 제의를 다룬다는 확고한 의미를 증가시킨다.” 424- 지성근, 이하정


“바울은 이 하나님의 언약적 정의의 계시가 값없는 은혜의 행위라고 강조하려 애쓴다.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자 되었느니라”3:24하 하나님이 이렇게 해야 할 의무는 전혀 없으시다. 그분은 아무에게도 빚지지 않으셨다. 이 역시 언약적 표현이다. 바울서신에서 하나님의 ‘은혜’는 성경의 비슷한 용어들을 돌아보는데, 하나님이 통제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사랑의 목적으로 약속하셨고, 순전한 자비로 이 약속들을 지키신다고 암시한다. 이것이 12장 1절에서 바울이 전체 주장을 요약하면서 강조하는 바다. 이 자비는 하나님 자신과 그분의 성품, 목적, 약속들에 충실하시기에 가능하다.”(426쪽)-조민주


“예수님의 죽음에서 핵심은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 곧 이스라엘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고, 아브라함에게 죄 사함을 받은 대규모 가족을 허락하셔서 온 세상을 새롭게 하시려는 계획에 대한 그분의 언약적 신실하심을 행동으로 보여 준다는 것이다.” 428- 지성근 , 정한신, 이하정,조민주


예수님은 하나님의 언약적인 목적들을 성취하신 이스라엘의 진정한 대표자, 메시아이셨다. 또한 사형이라는 법정 판결에도 불구하고 ‘의로운 분’이셨다. (431쪽) -이하정


바울은 하나님의 언약적 정의가 “메시아 예수 안에서 발견되는 구속을 통하여”드러났다고 말하면서 ‘아폴리트로시스’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노예시장에서 노예를 ‘구속할’ 때 사용하는 단어다…….이 단어는 바울 시대 유대인들에게 특정한 일련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종살이를 했다. 바로와 애굽의 신들을 이기고 그 백성을 구출하신 하나님의 크신 해방이 ‘아폴리트로시스’ 곧 이스라엘의 언약 이야기의 핵심에 있는 위대한 ‘구속’ 이었다. 예수님과 다른 많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처럼, 바울도 십자가를 유월절과 연관 지어 해석한다. 새로운 유월절, 새로운 출애굽인 것이다. (434쪽)-조민주


새로운 유월절은 옛 유월절에 기초했다. 하지만 새로운 유월절은 단순히 우리를 노예 삼는 인간 권력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지 않고, 종살이를 가져온 죄에서의 해방을 의미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종류는 종살이에서 해방되는 것은 유월절의 부정적 측면에 불과하다. 출애굽의 긍정적 목적은 이스라엘이 해방되어 언약의 하나님을 자유로이 예배하는 것이었다(435~436쪽) -조민주


따라서 바울이 로마서 3장 25절에서 하나님이 예수님을 ‘힐라스테리온’으로 세우셨다고 말할 때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이나 세상의 죄 때문에 예수님을 처벌하고 계셨다는 뜻이 아니다. 그런 말을 하고 싶었다면, 속죄일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었다.(440쪽) -이하정,조민주


하나님은 메시아 안에서 이스라엘을 통해 온 세상에 주실 언약에 성실하시기에, 그 목적을 위해 ‘전에 지은 죄’를 넘어가셨다(442쪽)-조민주


인간의 우상숭배, 죄의 근원에 대한 해결책은 한 분 참 하나님을 새롭게 드러내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열방이 똑같이 섬기던 우상들을 그분에 대한 새로운 계시로 대체하셨다. 이렇게 한 분 하나님이 행위로 새롭게 드러나신 것은 모든 민족이 자신들의 우상을 떠나 그분만을 예배하라고 요청한 것이다. (443쪽) -이하정,조민주


하지만 궁극적 문제에 대한 이 해결책, ‘우리를 온전케 하는 형벌’은 죄와 형벌에 대한 추상적 계획인 윤리적 행위 언약 내에서가 아니라, 소명 언약 곧 하나님의 형상을 품은 영광을 공유하는 언약내에서 의미가 있고 말이 된다. 인간의 소명, 이스라엘의 소명, 예수님의 소명. 하나님의 소명. 성육신이야말로 로마서 3장의 핵심이다. 예수님 안에, 그분의 죽음 속에 한분 하나님이 그분의 세상을 만나시는 장소, 하늘과 땅이 마침내 하나가 되는 장소가 있다. 예수님의 희생의 피로 죄와 죽음의 오염이 제거되어 그런 만남이 가능해진다. 바울은 로마서 5장 10절에서 현재의 논의를 다시 한번 요약하면서 “우리가 원수였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다고 쓴다. 정말 그렇다. 이것은 어떤 ‘행위’를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형벌’에 대한 문제도 아니다. 소명이야기, 성전 이야기, 그리고 사랑 이야기다(448쪽)-조민주


“우리의 로마서 연구는 바울이 ‘형벌’이 핵심 주제인 불완전한 행위 계약보다는 이 큰 서사를 염두에 두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는 ‘형벌’의 언어를 매우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쯤 해서 또다시 ‘행위 계약’으로 돌아가 균형을 잃기 쉽기 때문이다. 450…..’형벌’이라는 개념은 사실상 이스라엘 역사 전반에 걸쳐 만들어진 결과를 가리키는 뚜렷한 비유다….하지만 우리가 형벌 비유를 중심으로 삼으면, 전혀 다른 서사가 등장한다.” 451


“하나님이 예수님을 하늘과 땅이 만나는 장소, 한분 하나님의 사랑의 임재와 진정한 인간의 신실한 순종이 시공간과 물질 내에서 만나서 합쳐지고 실현되는 장소로 내놓으셨다.” (454면) - 정한신, 이하정


“메시아는 신실하신 죽음을 통해 이스라엘이 부름받은 목표를 매우 구체적으로 성취하셨다. 새 언약의 피인 예수님의 피로 이스라엘을 위한, 이스라엘을 통해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언약의 목적들이 드디어 세워졌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의 메시아 예수님은 하나님의 언약의 목적들과 이스라엘의 언약적 신실함이 만나서 합쳐지고 그 원래 목적을 성취하는 장소요 수단이시다.

그리하여 참 하나님이 죄의 핵심에 있는 우상들을 대체하시고 예배의 진정한 중심으로 세상에 깜짝 놀라게 드러나셨다. 이스라엘의 과거 죄들, 언약을 위험에 빠뜨린 불신실함은 눈감아 주시고, 전 세계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서 언약의 목적은 멋지게 이루어졌다. ‘소명 언약’ 곧 세상의 빛이 되라는 이스라엘의 소명이 성취되었다. 그 결과,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예수님 안에서 ‘만났다.’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하나님과 인류, 하나님과 세상이 만나서 화해했다. … 바울의 생각에서 메시아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실제로 자기 백성과 만나시는 독특한 장소다. …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들과 이스라엘의 소명이 동일한 인간, 동일한 사건 속에 와서 하나가 된다. 이것이 바울이 여기서 말하고 있는 내용이다.” (461-462면) - 정한신,조민주


예수님의 죽음을 “우리가 죄를 지어 하나님이 예수님을 벌하시고 우리 모두가 다시 의롭게 되었다”는 통상적 공식으로 축소해서는 안된다. 역사는 중요하다 …. 신약성경의 구원은 시공간과 물질세계에서 탈출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해야 하는 것으로 보기에 역사는 중요하다. 예수님의 죽음은 철근으로 굳게 닫히고 독한 잡초가 웃자란 인류 역사의 대문이 활짝 열리고 창조주의 하늘과 땅 화해프로젝트가 강력하게 시작될수 있는 순간이었다.(464쪽)-조민주


3.질문




4.소감


13장은 어쩌면 라이트가 하고 싶었던 알짬들이 소록히 들어 있는 부분이다. 행위계약으로 이해하는 의(칭의)를 넘어서야 본래 바울이 이야기하고 싶어했던 로마서의 서술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로마서는 단순히 구원받고 천국가는 구원의 길을 제시하는 책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의)”가 어떻게 구약에서 신약으로 그리고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으로 연결되는 지를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지성근


확실히 같이 윤독하는 것보다 혼자 읽는 것이 훨씬 더 집중력이 요구되는 작업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는 시간이었다. -지성근


하나님의 신실하심, 언약의 중심에 계신 예수님. 새롭고 거대하게 다가온다. -이하정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절정에 다른 그분의 사랑. 이 거대한 이야기 안에 내가 있음을 다시 한번 상기해본다. 개인적인 믿음을 넘어 그분의 약속과 혁명아래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나는 이것을 얼마나 체화하며 살아가고 있는가?-조민주





14장



1.느낌



2.밑줄친 부분

“기독교의 선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거두신 승리의 실행을 의미한다. 다른 모든 것은 거기서부터 비롯된다.” 474-지성근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 과제를 완성하셔서 만물을 새롭게 하시기 이전에 지금 이순간에도 하늘과 땅사이에 서서 창조주를 사모하고 그분의 목적들을 이 땅에 실현한다는 뜻이다(481쪽) - 조민주


“’왕같은 제사장’은 ‘땅’의 일부이면서 하늘의 하나님을 예배하고, 새로워진 폐로 하늘의 숨을 쉬면서 그 나라를 이 땅에 이루기 위해 일하도록 구비된 구원받은 사람들의 모임이다. 십자가 혁명은 우리를 해방하여 예배와 선교의 리듬에 사로잡힌, 중간 지대의 백성이 되게 하신다.” (482쪽)- 지성근,조민주


그리스도인의 순례는 리듬과 균형의 문제다. 그 양상은 다른 성품, 다른 교회, 다른 사회 문화적 상황에 따라 다양할 것이다. 그 리듬과 균형을 얻고 늘 새로이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도움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우리는 더 큰 그림에 시선을 고정해야 하고, 우리를 위한 치유의 가능성도 가득한 그 몸안에서 개인의 소명 또한 분별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따라 현재의 악한 세대로부터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신을 내주셨습니다”(갈1:4)라는 믿음의 핵심으로 끊임없이 돌아오는 것이다. (483쪽)-조민주


죄를 사하시는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목적은, 우리를 ‘현재의 악한 세대’의 권세에서 해방하여 하나님의 새 시대, 새 창조의 일부가 되게 하시려는 것이다. 이 새 창조는 예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을 때 이미 시작되었지만, 구조된 구조자들의 사역을 통해 지금도 활동 중이다. 이 구원받은 인류는 구원의 사랑을 세상에 가져오라는 부름을 받았다. 의롭다 하심을 받은 이들이 의를 불러오고, 화목하게 된 이들이 화해하는 자가 된다. 이들이 유월절 백성이다. (483쪽) -이하정


우리가 할 일은 우리 자신의 사랑으로, 십자가에 부어진 사랑에 반응하는 것이다.(484쪽)이하정,조민주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은 물론이요 우리 주변 사람들, 특히 어려운 이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를 실행에 옮기기 어려운 이유는 어떤 형태든 권세들이 분노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권세들은 계속해서 세상을 쥐고 흔들고 싶어한다. 그들이 반격할 것이다.(484쪽)-조민주


“메시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라고 쉽게 말하는 것이 위험한 이유는, 이후로 더 이상 죽음이나 고난을 겪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단 한번의 승리를 너무 쉽게 경축할 때에도 동일한 문제가 발생한다. 더 이상 승리는 없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친히 경고하셨듯이, 오히려 그 반대다. 예수님의 고난을 통해 승리를 거두고 혁명이 시작되었다. 이제 그 백성의 고난을 통해 승리를 거두고 실행으로 옮겨진다. (485쪽) -이하정


“십자가의 승리는 십자가라는 수단을 통해 실행될 것이다.” 485  지성근,조민주 


사실 고난이란 하나님의 구원의 사랑이 세상에 부어지는 수단인데 말이다… 고난과 죽음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방식이다. 이렇게해서 혁명이 지속된다. (487쪽) 이하정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 한 사람에게 닥치는 고난은 십자가의 승리를 새로운 현실로 만들고, 그 승리에서 새로운 무언가가 나타나게 하려는 것이다. (488쪽) 이하정,조민주


메시아께서 고난을 받고 악의 권세들에 승리를 거두셨다. 메시아 백성인 교회는 메시아의 삶, 죽음에서 부활하신 삶을 공유하기 때문에 현재 고난을 받아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메시아의 승리가 실행된다. 이것이 그분과 함께 ‘영광’을 받는다는 말의 의미다. 지금 온 세상을 다스리는 그분의 화려한 통치는 성령이 인도하시는 사역과 그 백성의 고난을 통해 이루어진다.(491쪽) -조민주


메시아의 승리의 고난에 뿌리를 둔, 세상을 변화시키는 하나님 백성의 현 과제는 기도, 특히 슬픔이 가득한 형용할수 없는 마음의 기도 가운데 깊어진다………. 로마서 8장26-27절은 어떻게 이스라엘 하나님의 살아 계신 구현인 예수님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셨습니까?”라고 울부짖으실 수 있었느냐는 충격적 질문에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 여기 성령이 계신다. 로마서 8장에서 성령은 이스라엘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이시며, 피조물의 마음에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하신다. 그리고 ‘마음을 살피시는 분’ 아버지는 듣고 계신다. 고난받는 교회는 이 특별한 대화에 집중한다. 창조주의 뜻은 늘 인간을 통해 그분의 세상에서 일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이 중보-참을성 있고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 중보-역할은 이런저런 작은 목표를 실행에 옮길 뿐 아니라, 창조세계를 종살이에서 구조하여 마침내 새로운 창조세계를 가져오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서 핵심초점이 된다. 바울은 다른 곳에서도 고난에 대해 할 말이 많지만, 이 본문이야말로 그 모든 내용의 핵심이라고 생각된다. 이 본문은 십자가 혁명이 이 시대에 실행되는 방식을 분명히 보여 준다. 고난은 승리의 수단인 동시에 승리를 실행하는 수단이었다.(493쪽)-조민주


우리가 예수님이 어떤 혁명을 성취하셨는지 이해한다면, 왜 이 혁명이 단 한 번의 완승이 아니라 한 단계식 실행되어야 하는지, 왜 이 각 단계가 예수님이 십자가로 가져가신 아낌없는 사랑과 동일한 단계여야 하는지 이해하게 된다. 사랑은 언제나 고난받을 것이다. 교회가 서둘러 완승을 얻으러 하거나 다른 정신이 담긴 단계를 거치려 애쓴다면, 한동안 성공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그러나 그 ‘승리’는 공허하고, 온갖 종류의 문제를 양산할 것이다. (495쪽) 이하정


“성례전은 예수님이 그 대가를 치르셨고, 그분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있음을 찬양하는 것이다. 성례전은 그분의 승리를 강력하게 선언하는 것이다. 성례전은 에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미 승리하셨다고 위협적인 권세들에 맞서 선언하는, 지혜로운 기독교 영성의 일부로 사용될 수 있고, 마땅히 그렇게 사용되어야 한다. ” 504 지성근,조민주



3.질문




4.소감


고난과 순교가 십자가의 승리를 새로운 현실로 만들고 이후 혁명을 지속시킨다는 내용이 인상적이다. 승리만 취하고 위로만 받고 싶은 게으른 마음이 새삼 부끄럽다. (이하정)




15장



1.느낌



2.밑줄친 부분

“부활과 죄 사함을 믿는 것은 새로운 창조세계라는 실재를 엿보고 그것을 붙드는 것이다…..예수님의 부활을 믿기 어려운 이유는 우리가 새로운 실재이자 새로운 존재방식이 세상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이해하도록 요구받기 땜누이다. 이것이 계속되는 혁명의 핵심이다. 즉 인간의 새로운 존재 방식이 시작되었는데, 이것은 죄사함(이제는 패배한 우상들에게서 돌이킨 사람들에게 베푸는 하나님의 용서)으로 시작해서 죄사함(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이 자신에게 잘못한 모든 이들에게 그분의 이름으로, 성령을 힘입어 베푸는 용서)으로 지속된다.”509 지성근, 이하정 


우리는 용서할 수 있고, 실제로 용서한다. 이것은 우리를 놀라게 하는데, 아마도 용서야말로 온전히 태어나기를 기다리는 세상의 확실한 진짜 표지이기 때문일 것이다. (510쪽) 이하정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혁명은 첫 번째 성금요일에 이미 일어났다. “통치자들과 권세자들”은 치명타를 입었다. 이 말은 “이제 우리가 이 세상을 탈출하여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이제 예수님이 이 세상의 주님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주되심 아래 살면서 그분의 나라를 선포해야 한다”는 뜻이다. 혁명을 이미 시작되었고, 또한 계속되어야 한다.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은 단순히 그 혁명의 수혜자가 아니라 실행자가 되어야 했다.” 518,519 지성근


"실용적인 단기 해결책으로 과거 문제들을 푸는 데 정신이 팔려 있는 서구 정치인들은 준비된 대답을 갖고 있지 못하다. 우리에게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는 커녕 이해할 수 있는 서사조차 없다....'종교'를 정의함으로 나머지 현실과 구분하려 했던 계몽주의의 방식은 누가 봐도 확실한 허세였고 이제 그 가치가 드러나고 있다." 521 지성근

 

"너무 많은 교회가 내가 앞서 설명한 모델에 근거한 '구원'의 사유화와 영성화에 공모했다는 사실 때문에 이 승리를 알리기가 훨씬 어렵다. 하지만 반드시 시도해야 한다...일종의 승리주의로 귀결되는 17세기 낙관주의로 돌아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복음의 온전한 진리, 곧 어둠의 세력을 깨뜨리는 죄 사함을 붙잡고, 말과 이성뿐 아니라 상징과 행동응로 그 진리를 선언하고 적용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기 위해서다. 이 과제가 불가능해 보일지 모르지만, 이것이 바로 그들이 말하는 부활의 내용이다. " 522 지성근

 

예수님의 십자가가 승리를 믿는다는 것은 그분이 십자가에서 이 우상들을 극복하셔서 이제-많은 사람들이 하는 말이나 대부분이 믿는 것과 상관없이- 우상에 저항할 수 있게 되었고, 세계적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고 믿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예수님이 화평하게 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525쪽) 이하정

 


528,529 는 정치와 권력의 문제에 대한 통찰들로 가득차 있음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역할은 권력의 부패를 개탄하거나 소위 기독교 정책을 옹호하는 후보자를 뽑는 것이 아니다. 우상이 점령한 영역에서 십자가에 달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름을 지칭하는 행동의 일부로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역할은 권력에 진실을 말하되, 특히 힘없는 자들을 대신해 말하는 것이다." 529 지성근, 이하정

 

“우리 개인의 삶도 동일한 비판과 동일한 소명에 예속되어야 한다.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의제를 실행하려고 남 탓을 하면서도, 개인의 거룩함에 대한 도전에서는 자신을 면제하는 사람이 설 자리는 없다. 자기 문제에 너무 경도된 나머지 가난한 사람들의 곤란을 보지 못하는 반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거대 담론을 핑계로 귀챦게 하는 문제들에 우리 귀를 막아버릴 위험은 늘 있다. 거룩함은 다차원적이다.” 533 지성근


“세상에서 정의나 자비가 실행되지 못한 상황이나 세계 정치나 우리 공동체에 큰 위기가 닥쳤을 때 당신이나 내가,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아는 하나님을 모든 악한 권세를 이기고 이미 승리하신 분으로 찬양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자신의 직장이 어떤 영역에 있든 두려움과 좌절로 가득 찬 사람과는 전혀 다른 정신으로 그곳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우리는 현대 서구에서 통하는 ‘좋은 인생’을 기독교화해서 살아가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가정할 수 없다. 우리가 고난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자요 왕 같은 제사장으로 행동한다면, 우리가 이 사역을 감당할 때 눈물과 피로, 성령님의 슬픔과 탄식을 통해 예수님의 승리는 축하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우리를 막는 유일한 방해거리는 우리의 관점이 부족하거나 메시아가 죽으신 진정한 이유를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534, 535 지성근, 이하정 


“복음전도가 정의와 아름다움의 영역에서 새 창조 사역과 나란히 가야 한다” 536 지성근


“신약성경의 관점에서 본 사명은 “영혼이 구원받아 천국에 가는 것”도 아니요,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이 참 하나님을 예배하고, 예수님의 승리의 소식으로 우상에 맞서서 인간의 삶과 제도 속에 하나님나라의 표지를 세우기 위해 일하는, 성령이 이끄시고 십자가가 빚어내는 사역이다.” 538



3.질문




4.소감


혁명군으로 잘 살아갑시다.


넵!  (이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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