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성령 일과성령 첫번째 서문-1장 (홍정환정리) 요약, 토론,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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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4-28 11:06본문
ETT(Experiencing The Trinity)_일과 성령
2020년 4월 22일
참가자: 지성근, 정한신, 부순애, 김종수, 홍정환, 박주현, 이하정, 조민주, 배성우
범위: pp. 13~
한국어판 서문 / 서문 / 서론
한국어판 서문.
일은 인성 형성과 세계 형성으로 요약되는 두 과정이 함께, 현대 세계에서 인간의 일에 독보적인 중요성을 부여한다. (p.14)
인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 전체가 땅 위에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것을 지향한다고 해석한다면…., 인류의 일에 부여된 목적은 세상이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창조세계 전체 공동체의 단일한 집이 되도록 돕는 것이다. (p.15)
서문
‘소명으로서의 일’ 이해는 봉건주의/초기 자본주의 사회의 맥락에서 나온 것. 역동적 현대사회에서는 일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필요하다. (pp. 17-18)
그 새로운 이해는 ‘카리스마’개념을 활용하여 성령 안에서의 일이 성령을 따라 걷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한 차원으로서 이해햐는 것이다. 일에 대한 소명적 이해를 은사적 이해로 전환할 것을 제안한다. (p.18)
‘카리스마’ 개념에 기초한 성령론적 일의 신학을 제안하는 것. (p.21)
서론
이 책의 목적 - 일 문제의 신학적/윤리적 고찰을 위한 폭넓은 신학적 틀을 수립(p. 32)
이 책의 구조 - “1부는 현대 사회에서 일의 성격과 일에 대한 이해를 분석함으로써 일의 현실을 다룰 것이다. 2부에서는 첫 장에서 방법론을 다룬 다음, 종말론적 틀 안에서 성령론에 기초한 일의 신학을 발전시킬 것이다.”(p. 32)
일의 정의 - “일이란 일하는 개인이나 그들과 공생하는 존재들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생산물 또는 상황을 만들어 내는 것을 일차 목표로 삼는, 정직하고 목적이 있으며 지정된 방법으로 행해지는 사회활동이다. 또는, 일차적으로 그 자체가 목적인 경우, 그 활동 자체의 필요와는 별개로, 일하는 개인의 필요 충족을 위해 필수적인 활동이다.”(pp. 37-38)
나는 경제 체제가 세 가지 주요한 규범적 원칙에 따라 판단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개인의 자유, 모든 사람의 기본적 필요 충족, 자연이 회복 불가능한 손상을 입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 세 원칙 모두 이 책에서 핵심적인 윤리 규범 역할을 하는’새 창조’에 대한 인식에서 나온다.
새 창조의 개념은 첫 째로, 개인의 존엄 보호를 함축한다. 둘째, 공동체를 위한 함축 의미를 갖는다. 셋째, 자연환경을 위한 의미를 내포한다. (pp.44-45)
참조 :
교황 레오 13세의 회칙 새로운 사태 (레룸 노바룸 : RERUM NOVARUM)
http://www.catholicjp.or.kr/lib_doc/2559
교황 바오로 2세의 회칙 노동하는 인간 (라보레 엑세르첸스 : LABOREM EXERCENS)
1부 이 시대 일의 세계
1. 일의 문제 - 일의 중요성 / 일의 변화 / 일의 위기
“이 시대 일의 세계를 분석하는 목적은 일의 신학이 고려해야 할 중요한 특징을 강조하는 것과, 여전히 해결되지 않아서 해답이 필요한 문제를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 두 가지다.”(pp. 55-56)
일의 중요성
일의 변화
농경사회에서 정보사회로
농업생산/ 소규모 농사에서 기계식 영농으로
제조업/ 수공생산에서 기계식 생산으로 그리고 자동생산으로
일의 위기
일의 위기는 신학이 해결책을 제안해야 할 문제들이다. (p.69)
일의 위기 : 아동노동, 실업, 차별, 비인간화, 착취, 생태적 위기
일의 위기를 초래한 원인 3가지 수준
개인적 수준 | 구조적 수준 | 기술적 수준 |
일의 위기 뿌리를 개인적 태도와 행동에 둠 - 피고용자의 문제도 포함 | - 경제생활의 구조 (이윤극대화에 따른 불합리한 국제 경제 구조) | 기술혁신 -기계 생산은 경제 성장과 인구 전체의 생활 수준 향상했으나 노동자의 가치 폄하 결과 초래 |
* 토론
부순애: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는 이야기가 소련 헌법의 일부라는 것이 놀라웠다. 공산주의는 기독교와 정반대인 줄로만 알았는데...
지성근: 초기 기독교는 공산주의의 형태를 가지고 있기도 했지. 앞 부분은 일이 역사적 시기마다 어떻게 근본적 조건이 변화했는지, 그리고 뒷부분은 우리시대의 일의 위기 양상을 묘사하고 있다. 일의 위기를 찬찬히 부패, 비인간화, 또 최근에 우리가 가장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생태계 위기 등과 연관해 이야기하는 대목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일반적으로 소명으로서 일을 이야기 할 때는 일의 위기를 어떻게 서술할까? 사회적인 면밀한 검토보다는 실업, 일하지 못하는 것으로 단순화해서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일의 위기를 전사회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인상적. 그런 것이 어떻게 일이 인간을 비인간화하는지… 이것이 일의 신학을 구성하는데 영향을 미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한신: 1월에 일의 영성에 관련된 나눔을 위해 청년들과 이야기했음. 자신들이 속한 직장의 환경, 업종에 따라 받아들이는 입장이 많이 다름. 자신이 어떤 일의 맥락 속에 있는 가에 따라 상당히 다른 느낌. 예컨데 제조업에 속한 사람들이 단순반복을 함. 그런 속에서 어떻게 일의 신학을 구성할 것인가? 간판 등 홍보물을 만드는 업종이 가진 구조, 관공서와 거래하며 말도 안되는 프로세스로 일이 진행되는 것을 이야기.
일을 신학적으로 풀어내고 삶으로 구현하는 과정이 종전에는 개인의 태도(근면 성실 소명)에 기초해 이야기되었다면, 사회적 맥락/업종별 맥락을 제대로 짚는 것이 중요하겠다, 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보편적 신학 이론으로 폭력을 행사할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
김종수: 중고대학생에게 진로/직업 교육을 할 때, 일의 의미에 대한 교육이 있기는 한데, 형식적이다. 고2,3학년 정도 되면 가장 많이 일과 직업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하는데 실제로 그것에 대한 철학적 함의를 이야기하는데가 많이 없다.
이하정: 1장은 사회학 서적을 읽는 것 같았다. 30년 전의 글인데도 요즘 이야기 같았다. 일을 소명이 아닌 은사의 관점에서 이야기하겠다고 선언했는데, 내 기준에선 은사도 되게 옛날 이야기라서 약간 의아했다. 일과 일의 위기에 대한 분석은 적실해보였는데 은사적 접근은 낡게 여겨진다.
박주현: 톰 라이트와 마찬가지로 개인적 이해를 넘어 사회적, 종합적 이해를 제공해줘서 좋다. 따라가기 버겁지만 좋다.
지성근: “만약 전 세계가 아주 긴 휴가를, 예를 들어 몇 달 동안 휴가를 갖기로 결정하고 그 기간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전 세계 인구는 그 휴가가 채 끝나기도 전에 멸종할 것이다.”(p. 56)
미국에서 일하겠다고 총 들고 나오는 모습이 떠올랐다. 일, 경제 활동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박을 가진 사람들의 모습이 잘 드러난다. 비록 30년 전의 책이지만 오늘 우리 시점에서도 생각할 것이 많아 보인다.
* 개인적 소회 - 이 아래에 적어주시면 됩니다.
홍정환
1장은 저자가 전개할 작업(성령론적 일의 신학 구축)이 필요하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한 기초에 해당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거칠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일은 중요하다. 그런데 과거와 달리 일의 양태가 많이 달라졌으며, 그 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 때문에 소명론에 기초한 고전적 일의 신학을 넘어선 신학적/윤리적 비전이 필요하다.
새로운 비전의 필요성을 역설하는데 힘을 쏟아서, 결론부터 빨리 확인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딱딱하고 피곤한 부분이었으라 생각된다(다음주에 읽을 2장도 비슷할 듯).
조민주
무엇보다 혼자서는 절대 못읽었을 책을 함께라서 읽을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관념적으로는 기독교적 소명의 관점으로 일을생각하면서, 현실적으로는 생계유지를 위한 밥벌이로서 일을 하고 바라보는 시각을 넘어 새로운 관점으로 일을 바라볼수 있을것에 대해 기대가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코로나 이후 삶의 여러부분이 급격하게 바뀔텐데 특히 아이들에게 평생 일하는 자로서 교육을 어떻게 하며 도와줘야 할지 고민을 하던 중인데 일의 개념이 새롭게 바뀌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지성근
찬찬히 읽으면서 30년전 볼프가 처한 상황에서 고민과 현재 코로나를 경험하면서 우리가 하는 고민을 비교하는 재미를 느껴보는 것도 좋겠다 여겨봅니다.
부순애
일자리가 없어지는 사회에서 어떻게 일(임금 받는 일)이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일(시간을 창조적으로 보내는 일)이 없이 행복할 수 있을까?
정한신
인간의 존엄을 핵심으로 하는 개인의 자유, 가난한 사람들의 경제적 필요를 포함하는 모든 사람의 기본적 필요 충족, 자연이 회복 불가능한 손상을 입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 볼프가 제시하는 새 창조의 개념에 내포된 이런 내용들과 오늘날 우리가 처한 상황들을 생각해 봅니다. 전통적인 일의 형태와 내용이 변화하고 플랫폼 노동자, 긱 노동자들이 양산되며,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인공지능의 발달이 가속화되는 구조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존중 받고 있는지, 사람들의 기본적인 필요는 충족되고 있는지, 또 지속 가능한 생태계의 조성은 가능한 것인지 고민하게 됩니다. 일의 의미를 개인의 일에 대한 태도에서 찾기보다 경제 체제, 산업 구조의 변화, 각 직종의 특성과 자본주의의 속성이라는 맥락 속에서 모색해본다고 할 때 지금의 시대는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앞으로의 논의들을 기대합니다.
김종수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힘은 중요하다. 특히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그안에서 서로 주고 받는 관계로서 일은 관계적이라 할 수 있겠다. 그 관계성이라는 일의 속성 안에 성령께서 어떻게 사역하시는지 기대가 된다. 서문과 1장의 내용을 통해서 짧은 글에 일에 대한 과거와 현재 흐름과 정의를 살펴 볼 수 있어서 유익했다. 특히 일의 위기 측면에서 개인적 구조적 기술적 수준으로 나누고 그 수준들이 서로 역동적으로 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관점은 지금 한국 상황 속에서 스스로 일에 대한 성찰을 해 볼 수 있는 툴을 제공한다. 또한 시장과 계획이라는 경제 관계 속에서 모든 개인의 자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 고려, 회복 불가능한 손상으로부터의 자연 보호라는 세가지 요소를 잘 이해하고 어떻게 시장과 계획의 관계를 세워가야할지는 성경적으로 일에 대한 의미를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관점이라 생각했다. 생태와 경제라는 하나님의 살림살이를 맡아서 살아가는 청지기로서 일과 성령 책은 귀한 통찰을 줄 것으로 기대가 된다.
박주현
하나님, 인간, 피조세계의 집짓기라는 한국어판 서문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집을 지어본 김종수님은 집짓기의 일련의 과정들이 얼마나 세심한 관심과 실천이 필요한지 잘 알 수 있을 것 같다. 함께 더불어 살아갈 집을 짓는 일을 잘 학습해야겠다.
복음주의 학생운동에서 ‘로잔언약’이 차지하는 위치만큼이나 그리스도인의 일과 경제에서는 ‘옥스포드선언’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듯하다.
‘일과 소명’의 이해는 복음의 이해만큼이나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정의와 이해로 한정된 경우가 많다. 그것이 볼프가 이야기하는 일의 소명적 이해의 부족함의 한 부분일 것이다. 개인을 넘어서서 공동체(사회 구조적인)와 창조세계를 아우르는 일의 은사적 이해가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된다.
이하정
일의 정의와 일의 위기와 여러 측면들 등 30년 전 글이라고 보기에는 놀라울 정도로 오늘날 여러 사회적 이슈들을 아우르고 있다. 이에 대해 그가 제안하는 ‘집짓기’와 ‘은사적 이해’ (대충...그외 다른 이야기도 있겠지만..)는 지금도 유효한 대안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그렇기 때문에 책으로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 안에서만 유효하고 사회 구조적으로 근본적인 변화를 끌어내지는 못하는 건 아닐까. 4차 혁명 시대에는 또 어떤가.
배성우
낯선 맥락을 가진 분들과 책읽기를 하게 되어서 긴장되기도 하지만, 신선했다. 자기의 처지에서 겪거나 듣는 이야기를 통해 책을 읽을 생각에 기대가 크다.
저자가 일을 소명으로 접근하는 것에 대해 가진 문제의식에 반가웠다. 아직 현재의 기독공동체는 일을 소명의 범주에 두는 것에 익숙한 듯하다. 하지만 이러한 이해는 다가올 현실을 설명하거나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줄거라 생각한다
30년전의 글이지만 현재에도 공감이 되어 신기했다. 저자의 관찰이 정확했던 걸까, 운이 좋았던 걸까.
어떻게 글을 쓰면 오래도록 읽어볼만한 글이 될까 궁리를 잠깐..
1장을 읽고 나니 새삼 왜 제목이 일과 성령일까, 왜 일을 성령과 연관짓는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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