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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망명자 3부 '5장 사랑안에서 진리를 따르는 삶' 요약 > ETT 3191 자료실

Summer,Winter School 즐거운 망명자 3부 '5장 사랑안에서 진리를 따르는 삶'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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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ilgrim
댓글 0 건 조회 7,307 회
작성일 10-03-08 11:24

본문

 3부 

공동체 안에서 성숙하고 개인적으로 전수하라


5장 

사랑 안에서 진리를 따르는 삶


신앙은 우리에게 일상에서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에 최대한 충실하게 살아가는데 전념하라고 요청한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변화는 감지할 수 없을 만큼 조금씩 일어난다. 신앙과 인격의 진정한 통합을 위해서는 이해와 회심과 변화가 적절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감옥 생활이나 망명생활의 의무


회심자들은 모두 타고난 본성과 다른 삶을 살아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 변화가 일반적인 변화보다 훨씬 더 느리게 나타나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은 교만 때문이거나 문화적인 무분별함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깊은 지식을 갖는 것이 오히려 방해물로 작용하기도 한다. 오늘날 기독교 서적이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그것이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고 이론으로 그칠 수도 있다. 신앙적 착각만 부추길 수 있다. 이런 모습을 ‘신학적 저널리즘’theological journalism이라 표현 한바 있다.


사도 바울은 극적인 회심도 경험했지만 수많은 투옥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상징적이건 물리적이건 감옥 안에서만 참된 의미, 즉 자아로부터의 해방을 배울 수 있다. 참된 자유는 적의에 굴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다(갈 5:13). 좌절하는 순간에도 더없이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커다란 역설이다.


낙심천만한 상황에서도 환대를 베푸는 샬롬의 삶은 하나님께 소망을 둔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과 보좌를 바라보고 그분의 공의로우심으로 모든 것이 회복될 하나님 나라를 갈망한다. 새 시대를 향한 약속이 우리를 희망으로 가득 채운다.


장기간에 걸친 유배 생활은 우리가 전례없는 유익을 누릴 준비가 되기도 한다.


다르게 살아가기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약함 가운데 강함을 발견하는 일이다.

바울은 약함과 강함, 어리석음과 지혜, 가난과 부요, 수치와 명예, 노예 상태와 자유, 고통과 평안, 좌절과 영광 사이에서 변증법적인 존재로 살았다.(고전 4:7~17) 그은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기위해 큰 희생을 치렀다. 우리도 주 예수를 위해 자아를 죽이고 그분의 생명이 우리 안에 드러나게 할 때,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줄 수 있다. 모든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변증법적으로 체험하는 자신의 신앙을 일상생활에서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세상 문화에 완전히 잠겨있다. 그러므로 그 어느 때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생활, 행동, 정체감이 크게 달라져야 함을 명심하자.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안식을 누리는 존재라는 정체성을 주셨다. 그리스도인은 주중 나머지 날의 다른 업무와는 다르게 주일을 지켜야 한다. 할례가 그렇듯 우리는 안식일을 지키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세상과 다른 정체성을 주셨음을 상기해야 한다. 우리 삶에는 여전히 유배나 감금의 기간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안식하는 존재라는 정체성이 흐려지는 것을 바로잡을 수 있다.


혼전순결을 지켜야 한다는 초대교회의 요구도 그리스도인의 삶의 증표로 자리 잡아야한다. 성적 방종은 하나님께 죄를 짓는 일이다.(고전 6;12~20)우리는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순결을 지키는 것을 격려하고 기뻐해야한다.


그리스도인이 사는 방식이 세상과 아무 차이가 없다면 신뢰를 얻을 길이 없다.

‘성화’(聖化)라는 용어는 말 그대로 ‘성결에 이르는 길’이다. 우리는 일평생 그 길을 걸어가야 한다.


공적 사역과 개인의 성결


설교자는 일상에서 다정한 대화를 통해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기보다 사람들 앞에서 혼자 말하곤 한다. 이렇듯 전문 사역자만을 중요하게 여기고, 현장 그리스도인들의 일상생활과 교회의 종교적 활동을 부자연스럽게 분리시키는 관행에서 잘못된 엘리트주의가 생겨났다.

기독교적 학식은 이기적일 수가 없다. 비판적인 자세를 견지해야 하지만, 그 목적은 긍휼을 베풀고자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교리와 생활이 결합되면 듣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말만으로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다. 신학이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하나님이 질그릇을 통해 그분의 말씀을 전하시는 이 신비는 바울이 삼위일체의 조명 아래 말한 대로 경건의 신비로 남으리라. (딤전 3:16)


우리는 자신이 동료 그리스도인들의 행동에 대해 상당히 분별력있고 지혜로운 판단을 내린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의 신앙에 따라 살아가는 모습을 경멸하지 않도록 극히 주의해야 한다. 우리가 아무리 통찰력이 있다 한들, 다른 사람들을 완전히 꿰뚫어볼 수는 없다. 독특성은 하나님이 인간성 안에 두신 선물이고, 우리는 각 사람에게 있는 독특성을 축하해야 한다. 기도하는 자세는 관계의 호흡이며, 세속적 정신분석의 불경한 독소에 대한 해독제이다.


목회적 보살핌을 삶의 중심에 놓고 매진하는 과정에서 온유함과 더불어 솔직한 지적이 있어야 함을 깨달았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속하시고 변화 시킬 수 있다는 소망을 품고 담대히 말한다.(고후 3:12) 또 그는 부도덕한 고린도 교인들에게 깨달음을 주기위해 군사적 운유도 이용한다.


목회 사역을 할 때 사람들에게 좋게 대하는 것이 그들의 영적 성장을 돕는 길이 아닐 수 있다. 예수님이 누가복음 14:26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는 도덕적으로 미워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미워한다는 것은 과거와의 단절을 나타내며, 종말론적으로 새로운 생명으로 부름 받았음을 보여준다.


존 번연과 함께 알레고리의 세계를 걸어


존 번연은 원죄의 인식, 정직성,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깊은 체험, 그리스도인의 삶에 따르는 유혹과 시련에 대한 현실주의, 천국의 소망을 보여준다. 그것들은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기독교 신앙의 가르침대로 살아갈 의욕을 불어넣어 준다.

모든 청교도가 그랬듯, 번연은 경건의 추구는 소수에게 주어진 과제나 커다란 고통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모두 따라가야 할 규범이라고 가르쳤다.


하나님은 분명하시며 그분의 계명 또한 분명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삶이 체계적으로 정리되면 결과적으로 추상적이고 빈약해질 위험이 있다. 그래서 무학의 땜장이 번연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알레고리로 표현하는 대담한 일을 했다. 알레고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사랑의 윤곽을 모든 차원에서 보게 해준다. 높이와 깊이, 너비와 폭을 다 가늠하게 해주는 것이다. 이를 이해하면 그리스도인의 체험이 지닌 풍성함과 확고함 또한 현실성을 「천로역정」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번연에 따르면, 크리스천이 여정에서 만나는 진정한 유혹은 세상을 본받으라는 속삭임이다.

비국교도이던 번연은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기에 어린 아내, 네 자녀와 떨어진 채 오랜 감옥 생활을 해야 했다.


리처드 백스터와 함께 천국을 바라고 묵상하기


열정적 신앙을 키우기 위해서는 상징과 알레고리와 더불어 묵상하는 생활방식을 길러야 함을 깨달았다. 묵상은 내적 확신을 낳고, 내적 확신은 일관성과 마음의 평정을 이루게 하고 그것을 다져 준다. 즉, 묵상과 내적 확신은 한결같은 기독교적 성품을 이루는데 일조한다. 이교도 철학자 플라톤은 지식을 얻는 방법을 이성, 감각 경험, 무아경, 사랑으로 구분했다. 현대 물질사회는 처음 두가지는 알지만 나머지 둘은 무시한다. 그러나 리처드 백스터의 고전「성도의 영원한 안식」은 무아경과 사랑의 역할을 살피며 히브리서 4:9을 묵상한다.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있도다.” 백스터는 이 안식이 천국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매일 30분 동안 천국 소망하기를 훈련하면 개선의 원리가 촉진되어 더 나은 것을 추구하는 행위로 이어진다고 했다. 최고의 것, 즉 천국 자체를 바라게 한다는 뜻이다. 천국 추구는 영적 순례의 중심이 되는 영적 동력이다.


중세에는 성경묵상, 즉 렉티오 디비나lectio divina의 오랜 전통이 있었다.


기쁨은 묵상을 통해 천극을 예견하게 한다. 그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어떤 즐거움에도 비할 수 없다. 기도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주요한 방편이자 숙고와 합리적 사색의 중요한 수단이다.


조나단 에드워즈와 함께 은혜로운 감정을 추구하기


에드워즈는 고전 「신앙감정론」에서 ‘은혜로운 감정’의 본질을 가르치려 했다. 이 감정은 잘못된 무아경도, 그와 반대되는 잘못된 주지주의도 아니다.“참된 미덕은 극심한 핍박을 받을 때 가장 아름답게 나타난다”고 했다. 에드워즈가 가장 기본적으로 단언하는 바는 ‘참된 신앙의 본질은 상당 부분 은혜로운 감정에 있다’는 사실이다.


은혜로운 감정을 품으면 다른 사람들을 위해 그것을 실행에 옮기에 되어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중의 명령을 성취하게 되기에 에드워즈는 ‘은혜로운 감정’이 실재라는 결론을 내린다.

이런 확신으로 조나단 에드워즈는 큰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은혜로움의 핵심은 성경에 충실함에 있다. 어떤 문화, 어떤 역사의 시기에서나 당대의 실제 개념에 반대하는 용기가 필요한 법인데, 에드워즈는 그러한 용기를 가지고 있었다.


오늘날 탈지성주의적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반지성주의도, 지성주의도 뜻하지 않는다. 이 두 양극단 보다 훨씬 포괄적이다. 역사를 통틀어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존경받는 모습이 아니라 복음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C.S.루이스와 함께 베일 벗은 얼굴을 추구하기


루이스는 1943년 출간된 공개강연 모음집 「인간폐지」와, 1956년 출간되었으나 다소 반응이 실망스러웠던 소설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가 지신의 관심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루이스는 「인간폐지」에서 도덕적 상대주의에 기반을 둔 교육이 ‘가슴이 없는 사람들’, 즉 마음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전문 기술자들의 세대를 낳게 되리라고 경고했다.


루이스의 친구이자 동료였던 돌킨은 기독교적 이야기와 신화의 전통을 구분하기 위해 ‘선善파국eucatastrophe’이라는 용어를 고안했다. ‘좋은 파국’은 우주 최후의 패배를 거부하며, 그런 점에서 복음이 그렇듯 기쁨을 얼핏 엿보게 해준다.


두 저자에게 ‘신화’는 거짓이 아니라, 지성이 아닌 상상력을 통해 전해지는 진실이었다. 그것은 외적 세계보다 내적 세계를 다루며, 타락 상태에 대한 반응에서 나온 환타지다.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 까지」에서 루이스는 큐피드와 프시케의 고전 신화를 새롭게 이야기 한다.


전혀 다른 장르를 통해 루이스는 우리에게 은혜로운 감정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고 죽음과 부활의 정화를 거쳐야 한다는 에드워즈의 말을 반복한다. 우리는 기독교를 체험하는 삶의 자리에서 이런 선파국을 찾아야 한다. 가장 큰 고통을 안겨 주는 것이 상상도 못했던 방식으로 우리를 자유롭게 해줄 수 있다.


요약


낙심천만한 상황에서도 환대를 베푸는 샬롬의 삶은 하나님께 소망을 둔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과 보좌를 바라보고 그분의 공의로우심으로 모든 것이 회복될 하나님 나라를 갈망한다. 새 시대를 향한 약속이 우리를 희망으로 가득 채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세상 문화에 완전히 잠겨있다. 그러므로 그 어느 때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생활, 행동, 정체감이 크게 달라져야 함을 명심하자. 또한 기독교적 학식은 이기적일 수가 없다. 비판적인 자세를 견지해야 하지만, 그 목적은 긍휼을 베풀고자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교리와 생활이 결합되면 듣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말만으로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다양한 장르로 목소리를 내야한다. 성경이 그렇게 하고 있다. 우리의 신앙은 신앙고백과 이야기, 시와 예언, 교훈과 상상력을 발휘하여 표현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만큼 정신과 감정과 의지와 영혼 등 모든 면에서 우리를 긴장시키고 자극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생각해 볼 질문


우리는 세상과 어떤 다른 방식으로 살고 있는가? (주일성수, 혼전순결 등)


우리는 세상에서 존경받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복음에 충실하기를 원하는가?


우리는 어떤 장르로 신앙고백을 표현하고 있는가?


우리의 삶 가운데 선파국의 경험을 나누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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