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ETT 요한복음 13장 1절-20절 10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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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1391 작성일 10-06-15 16:57본문
ETT 요한복음 13장 1절-20절 100615
생애 마지막 유월절을 앞둔 시기에 12장에서는 무리들에게 대화하시다 13장이후로 자기 사람들 즉 제자들과의 긴 대화가 기록되기 시작합니다. 요한은 13장부터 17장까지 이어지는 대화를 임하는 예수님의 마음을 1절에서 표제처럼 이렇게 기술합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이런 예수님의 마음과는 대조적으로 2절에는 유다의 마음에 마귀가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다고 말하고 있는 데 (이와 비슷하게 13장 마지막에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할 것임을 예수님이 예고하시는 장면도 있음) 이런 유다의 배반 가능성을 몇 번 더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언급하시고 있지만 제자들은 나중에야 그 의미를 알게 됩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방식은 가장 가깝게는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을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으시는 행위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더 멀리는 17장에 이르는 제자들을 위한 강화와 기도에 그 사랑의 마음이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겉옷을 벗은 상태로 수건을 허리에 두르고 대야에 물을 떠서 발을 씻으시고 수건으로 닦으시는 행위는 한 마디로 “노예”가 하는 행위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은 상대방의 노예가 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퍼포먼스는 순식간에 저녁을 먹다가 일어난 일이기에 어정쩡하게 당하던 제자들 중에 베드로가 이의를 제기합니다.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라고 하는 말에 대해 예수님은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심으로 후일에 보는 우리들에게 이 씻음과 깨끗케 됨이 죄의 씻음과 깨끗케 됨을 상징하는 ‘세례’를 의미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빡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라는 말씀을 보면 통상적인 세례가 아닌 다른 그 무엇(‘안수’의 효과? 즉 예수님께서 하신 일의 패턴을 제자들에게 위임하시는)을 의미하시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발씻는 장면에서의 베드로와의 대화는 그냥 상식적으로 주고 받는 자연스러운 대화로 보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아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 의미를 12절 이하에서 예수님께서 직접 밝히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선생과 주가 되어 제자들의 발을 씻은 것처럼 제자들이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고’ 그 의미를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즉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의 행위, 즉 낮아져서 노예가 되어 다른 사람을 섬기는 역할을 공동체에서 제자들이 상호 보여주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기에 더 큰 도전은 그것은 “자기를 팔자”(11절)가 누군지 알면서도,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사랑하며 노예처럼 섬기셨던 선생과 주이신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결국 본문을 요약하면 배반의 모티프가 지속되는 가운데에도 예수님은 끝까지 사랑하심을 표현하시며 발씻음을 통해 자신의 사역 전체를 퍼포먼스로서 보여주시고 그 의미를 제자들에게 알려 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어떻게 함께 먹는 공동체속에서 나에게 발꿈치를 들고 나를 팔아먹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까지 포함하여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며 그들에게 종, 노예가 되는 삶을 살것인가? 이것은 충격적인 도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일,삶,구원 지성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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