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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아버지 6장 토론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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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한신
댓글 0 건 조회 4,049 회
작성일 08-10-22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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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T 2008년 2학기 과정]

제4강

톰 스매일, 잊혀진 아버지 : 기독교 복음의 핵심 재발견(IVP)

6장_아버지와 아들과 십자가

■ 일시 : 10월 22일 수요일 / 연구소

먼저 의문이 되는 것은 예수님의 적극적인 “예”와 소극적인 “예”의 차이점이다.

톰 스매일은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예수님은 순종하심으로써 사람의 반역의 “아니오”를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적극적인 “예”로 바꾸어 놓으시고, 그것을 인류 한가운데서 우리를 대신하는 인간의 “예”로 말함으로써 올바른 관계가 회복되게 하신다. 그리고 동시에 예수님은 죄인과 연대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스스로 받으심으로써 그 심판에 소극적인 “예”를 말하신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대한 적극적인 순종의 행위로 하나님에 대해 “예”라고 반응하셨고, 심판을 받으심으로 소극적으로 “예”라고 응답하는 것이다.

성자 중심의 십자가 이해가 가져올 수 있는 부정적 이미지에 대하여 삼위일체적 십자가 이해를 도모하기 위한 것이 본 장의 의도이다.

하나님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하나님인 것으로, 하나님은 멀리 떨어져 있는 분으로 오해하는 부분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교정될 필요가 있다.

십자가에 대한, 속죄에 대한 온전한 이해는 성자 하나님의 단독적 사역이 아니라 속죄가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에 대하여 온다는 것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임을 또한 확인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값없고 무조건적인 은혜를 희생하면서 속죄의 대가를 지나치게 강조할 때에는 원수 마귀가 그리스도인의 양심을 짓누르려 하는 정죄를 나타내는 것으로 그 결말이 나게 된다.

십자가를 향한 전인격적인 하나님의 계획과 실행을 보면 십자가와 신앙에 대한 율법주의적 태도를 다시금 회개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십자가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행동의 일차적 원천은 성부의 뜻과 주도권임을 굳게 붙잡아야 한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계획되고 실행된 것이다. 이것이 희미해질 때 교리적 차원과 목회적 차원 모두에서 재앙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우리에게 분노하신 하나님이 꾹꾹 눌러참고 계신 진노에서 구원받기 위해 예수님의 사랑 뒤에 숨어야 하는 공포로 움츠리고 죄책감에 사로잡힌 종교로 귀결되게 된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을 풍성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다. 속죄교리에 대한 온전하지 못한 이해, 특히 성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몰이해 때문에 신앙생활은 엄격하고 진노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끝없는 완벽주의적인 인정을 구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고, 신앙생활의 행태는 교회의 여러 의무들을 수행함으로써 하나님께 잘 보이고자 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부모에게도 그 사랑에 의지하여 자유롭지 못하고 진노에 대한 회피를 목적으로 하는 그런 억압된 삶으로 자라가게 되는 것이다. 성부 하나님의 사랑이 속죄에 대한 모든 말의 제일 앞에 나오지 않는다면, 그 사랑은 훼손당하며 신자의 확신은 그 보증의 원천을 빼앗긴다.

제자훈련의 많은 모습들도 하나님에 대한 오해에 바탕하여 진노하고 엄격한 하나님 상 앞에서 죄책감을 유발하여 제자훈련에 참여하도록 하는 잘못된 모습들도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복음 안에서의 자유를 나누고,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이해에 기반하여 자유의 제자도를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나아가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의 맏아들이 된 것을 진정으로 믿으며, 우리도 역시 아들됨의 특권을 주신 것을 믿는다면 이 자유를 더욱 확증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 자신이 엄위하신 하나님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니라(소위 만족설의 입장),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그 사랑에 부응하여 순종하신 것과 같이 우리도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누리며 그 사랑에 부응하여 순종하는 것임을 기억하자. 더 나아가 그 사랑의 순종에 있어서 성령님의 도우심과 역할도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이 은혜로 구원받고 은혜로 사는 삶이며, 아버지에 대한 오해에서 기인하는 율법주의적 삶에서 벗어나 온전해지는 삶인 것이다.

한편, 성부수난설에 대하여 자칫 잘못하면 양태론으로 빠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부수난설은 매우 중요하며, 삼위일체적 견지에서 이를 정리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성자는 죽는 것을 겪으시고 성부는 성자의 죽음을 겪으신다.”

탕자의 비유를 성자의 무한하신 사랑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제시하는 톰 스매일의 통찰은 주목할 만하다. 그 무한하신 사랑의 깊이를 알아가는 참된 이해의 지평을 넓혀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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