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ize Life 제12호 삶의 한 자락이라도 그리스도 주님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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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9-06-18 20:27본문
[연구지 읽기] https://drive.google.com/file/d/12TNfDQ6zs9hn7D6ofAr4w2t6dpkHIPsm/view?usp=sharing
발간사 | 지성근 (일상생활사역연구소 소장)
“삶의 한 자락이라도 그리스도 주님의 것”이란 문구는 본 연구소가 <일상생활사역> 캠페인을 위해 아브라함 카이퍼의 연설 중 한 대목을 이용해 만든 격문입니다. 카이퍼는 “만유의 주권자이신 그리스도가 ‘내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는 영역은 인간의 삶에서 한 치도 없다!”(There is not a square inch in the whole domain of our human existence over which Christ, who is Sovereign over all, does not cry, “Mine!”)라고 말했습니다(자유대학교 개교기념강연, 1880년 10월). 시간과 공간의 씨줄과 날줄로 엮여진 우리들의 삶 가운데 특정한 시간과 공간, 그리고 거기서 이루어지는 특정한 행위를 두고 거룩과 예배를 생각하는 것은 - 그것 자체로 명시적은 아닐지라도 - 어떤 시간, 어떤 공간, 어떤 행위는 그리스도의 주권과 상관없다고 여기는 것, 곧 주되심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되고 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몸과 돈과 인생의 주님(Lord)이 되신다는 제자도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 채 몽환적인 기분으로 “내 영혼의 구세주(Savior)”라는 찬양만을 되풀이 한다면, 이것은 기독교 신앙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 양태는 “값싼 은혜”라는 본회퍼 식의 비판을 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모든 삶의 영역, 시공간, 행위가 그리스도의 주되심 아래있다 여기고 그리스도의 주권에 걸맞은 삶으로 반응하는 것! 그것이 바로 “모든 일상생활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Service)와 이웃을 섬기는 봉사(service)라는 의미에서 사역(Ministry)이다”라는 소위 “일상생활사역”의 신학적/신앙적 기초가 됩니다.
이미 본 연구지는 이런 일상생활사역의 신학적 기초로 성부 하나님의 통치를 다루었고(“일상, 하나님의 나라,”제9호), 성령 하나님의 존재와 사역의 일상적 의미를 다룬 바 있습니다(“성령충만, 일상이 되다,”제11호). 이제 이번 연구지에서 제2위인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다루므로, 삼위일체적 구도 속에서 일상생활사역의 신학적 기초를 추구해 보려는 원래의 의도를 일단 마무리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주권, 혹은 주되심이 일상생활에서 구체적인 순종으로 드러나지 않는 데는 몇 가지 기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주지하다시피 영육 이원론과 공과 사를 구분하는 이분법의 심각한 폐해가 초두에 이야기한대로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삶의 어떤 부분에서 그리스도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결과를 낳게 합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리스도의 주권과 주되심을 교리적으로 확신 있게 강조하는 신학이 오히려 역사 속에서 구체적인 사랑과 정의의 계명에 대한 불순종을 심화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를 경험할 때 “그리스도의 주되심(Lordship)”에 대한 다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위에서 언급한 아브라함 카이퍼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단순하지만 않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주되심의 선언이 형이상학적 선언으로 그치게 될 때 그리고 이 선언이 역사적 강자 혹은 가진 자의 논리가 될 때, 이런 그리스도의 주권에 대한 이해는 다만 절반의 이해이며 절반의 이해는 실상은 오해에 다름없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주님으로 따르는 이로서의 구체적인 순종과 실천으로 연결되지 않는, 즉 제자도가 실행되지 않는 주되심의 선언은 구체적인 생활세계와 역사적 정황이라는 일상생활에서 그리스도 예수가 주라는 것을 보여 주지 못하고 말 것입니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같은 마음을 가지고 글을 기고해 주신 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립니다. 느헤미야의 김근주 교수(구약신학)는 그리스도의 주되심의 구약적 기반을 제거하면 복음을 축소하여 개인화 내면화시키고 말 것이라고 일갈합니다. 에스라성경신학대학원대학교의 이진섭 교수(신약신학)는 “퀴리오스(主)”라는 단어를 간결하면서도 꼼꼼하게 추적하면서 하나님나라 복음과 하나님의 아들의 복음이 주되심의 고백 속에서 어떻게 하나로 연결되는 지를 규명해 주셨습니다. 부산대학교의 주광순 교수(철학)는 개혁주의자인 아브라함 카이퍼의 영역주권론에 대한 비판적인 검토를 시도하셨으며, 이와 대조적으로 최근 진해에서 아나뱁티스트 교회 공동체를 세우고 계시는 한준호 목사는 예수의 가르침과 삶을 따르는 제자로서 주되심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천할지에 대한 메노나이트적 관점의 제안을 해주셨습니다. 구체적인 삶의 영역과 주되심이란 주제를 연결하는 글도 있습니다. 부산대학교의 이대식 교수(경제학)는 갑작스러운 건강 문제에도 불구하고 경제와 주되심이란 주제로 글을 써주셨고, 부산대학교에서 법학을 강의하며 본 연구소를 섬기고 있는 정한신 교수가 직장 혹은 일터의 주되심에 대한 글을 썼으며, 마지막으로 작가이자 본 연구소를 섬기고 있는 홍정환 연구원이 성생활에서의 주되심을 에세이 형식으로 흥미롭게 써 주었습니다. 덧붙여 제1호부터 이번 제12호까지 강영안 교수께서 <일상에 대한 묵상> 꼭지를 연재해 주고 계십니다. 이번에는 “생각한다는 것”의 일상생활의 의미를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발간이 연 2회여서 호흡이 대단히 느린 연구지에 발맞춰 주시고, 바쁘신 중에도 옥고를 보내 주심에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합니다.
2013년 제10호부터 후원 때문에 연구지 발간에 약간 어려움을 겪다가 제11호 이후 2014년 들어 급기야 상반기 연구지 발간을 한 번 쉬게 되었었습니다. 지난 3-4년간 본 연구지는 IVF의 D프로젝트 기금으로 만들어졌으나, 특별한 상황의 변화가 없는 한 첫 몇 번의 발간 상황으로 돌아가 매 번 발간 비용을 모금하는 형태로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번 제12호 연구지는 본 연구소 서울지역 실행위원인 김밥카페 이상용 대표의 후원으로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지면을 빌어 후원에 감사를 표합니다.
<목차>
[발간사] 지성근 _ 6
[연재] 일상에 대한 묵상(12) : 생각한다는 것 / 강영안 _ 9
[특집] 삶의 한자락이라도 그리스도 주님의 것
Jesus Christ, the Lord of Everyday Life
하나님의 주되심과 복음의 공적 성격 / 김근주 _ 45
신약성경에 나타난 ‘주’와 ‘주되심 ’ / 이진섭 _ 58
아브라함 카이퍼의 영역주권론에 대한 비판적 검토 / 주광순 _ 71
‘오래된 미래 ’, 과거에서 미래를 보다 / 한준호 _ 82
경제와 주되심 / 이대식 _ 91
주되심(Lordship)과 일터의 영성 / 정한신 _ 105
The LORD of the SEX / 홍정환 _ 121
[책소개] 홍정환 _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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