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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광고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입니다 _ 홍정환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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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88회 작성일 19-07-01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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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를 끄고 원고지를 꺼냈습니다. 메모장 프로그램에 두서없이 나열한 글감들을 잘 배열하면 뚝딱 글 한 편 나올 것 같은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쓸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무엇부터 어디까지 써야할지 답이 나오지않아 시작할 수가 없었습니다. 고민 끝에 알 수 없는 충동에 끌려 손으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2019년 6월 말, 저는 일상생활사역연구소를 떠납니다. 우리나이로 마흔하나, 삼십대를 꼬박보낸 곳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왜 그만두는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 먼저 말씀드립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재미있는 글을 쓰는 것입니다. 거기에 집중하기 위해 결정했습니다. 제가 얼마나 에너지가 부족한 사람인줄 잘 알기에 연구소 활동과 병행할 수 없다는 것도 잘 압니다. 가뜩이나 일이 늦고 서툴러서 동료들을 힘들게 하는데, 여기있으며 더 힘들게 하면 안되겠지요.


남을 생각하는체 글 썼지만 실은 제 생각 한 것입니다.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나 많이 컸으니 이제 나가겠다”가 정답일 것입니다. 주제도 모르고 나가서 설치다보면 제가 얼마나 오만했는지 금방 깨닫게 되겠지요.


연구소 사무실에 처음 발디딘 때가 생각납니다. “정환아, 내일 뭐하노?”라는 지성근 간사님(저는 ‘대표님’보다 ‘간사님’이 여전히 익숙합니다)의 목소리가 애니콜 폴더폰 너머에서 들렸습니다. 뭐 맛있는 거라도 사주시려나 싶어 “시간 많습니다”라고 대답하고 다음 날 연구소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삼위일체신학”두둥~!)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예수님만 잘 믿으면 되지 이 무슨 쓸데없는 짓인가?’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꾸역꾸역 매주 나갔습니다. 어려운 글을 읽고 대화한다는 것이 저의 저직허영심을 고양시켜준 탓도 있을테고, 지식과 음식을 언제나 한 꾸러미로 주시는 지간사님의 습관이 허기진 자취생을 유인했던 탓도 있을 겁니다. 그때가 스물아홉이었습니다.


어영부영 공부하며 밥 먹다가 ‘객원연구원’이라는 이름을 달게 되었습니다. 연구소의 중요한 방향을 결정하는 회의에서 제가 이상한 생각을 아이디러랍시고 내뱉으면 “젊은 사람 말대로 하자!”라시던 - 뼛속까지 청년사역자인 - 지성근 간사님의 반응이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덕에 저는 동년배의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지성근 간사님은 IVF 학생 소식지인 <대학가>와 졸업생 소식지인 <소리> 두 곳에 ‘일상생활의 신학과 영성’에 관한 글을 연재했습니다. 그리고 “간사님, 글이 너무 어려워요”라는 피드백을 자주 받았습니다. 신기하게도 저라면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쉽게 써볼까?’ 홀로 고민했을텐데 지간사님은 ‘회의 주제’로 삼아 새로운 방향을 함께 의논했습니다. 짐작컨데……


1. 이 연재는 연구소의 문제의식을 확산시키기 위한 활동이다.
2. 즉 이는 연구소 전체의 사역이다.
3. 따라서 이 문제는 연구소 구성원 전체가 함께 다루어야 한다.


……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으셨나 싶습니다. 그리고 개인의 과제를 함께 고민하며 돌파하는데 힘을 모으는 과정은 연구소의 근육 기억(muscle memory)이었습니다. 독불장군 처럼 나 잘난 맛에 혼자 설치고 다니던 제게 무척 생고한 방식이었습니다.


아무튼 그 회의에서 제가 낸 아이디어가 대안으로 채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코너는 네가 써봐라”는 말씀을 들으며 이른바 ‘공적 글쓰기’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대학가>에서 먼저 시작했고 곧 이어 <소리>에서도 쓰게 되었습니다. <소리>에 연재했던 “상연정(常戀亭)에서……” 코너 중 몇 편은 최근에 출간된 쉽고 재미있고 내용이 충실한데 표지까지 예쁜 <호당 선생, 일상을 말하다>(죠이북스, 2019)의 “번외편”에 실렸습니다. 많은 사랑부탁드립니다(응?!).


아무튼(2) 연구소의 활동을 통해 저는 함께 먹고, 공부하고, 일하는 방법을 배웠고 매체에 글을 연재하는 기회를 또래들에 비해 빨리 얻었습니다. 역량은 있지만 기회를 얻지못한 사람들을 종종 보았습니다. 그래서 겸손하려 합니다. ‘내가 이런저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속한 공동체의 역량이 기반이 된 덕이다. 나 혼자 내 실력으로 한 건 아무 것도 없다’라고 생각하면서요. 아, 물론 제가 능력이 전혀 없는데 뒤에서 밀어주는 힘으로 모든걸 했다는 말씀 드리려는 것은 아닙니다. 저 꽤 유능합니다. 말 못할 치명적 결점들(!)이 제법 있다는게 문제지만.


아무튼(3) 스물 아홉에 객원연구원이 되었고, 신대원을 졸업한 서른 네 살에 정식연구원(자료개발위원)이 되었습니다. 하는 일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만 ‘객원’자를 떼고 가오가 더 올라갔지요. 드높아진 가오로 한껏 들떠있을 때, ‘우리가 학생선교단체(IVF) 소속 기관인데 학생들과의 접점이 너무 적다. 뭔가 방법이 없을까?’라는 주제로 함께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연구소’가 잘 할 수 있는 것은 책 읽고 공부하는 일이고 우리는 항상 그걸 뭔가 먹으며 하고있으니, 학생들에게 밥을 사주고 책을 함게 읽는게 어떠냐고 제안했습니다. ‘지식과 음식을 함께 나누는 벗들의 모임’인 “식객”을 그렇게 시작하였습니다.


그후로 오랫동안 “식객”을 진행하며(때로는 진행을 보조하며), 제가 많이 성장해버렸습니다. 독서모임을 만들고 운영하는 것에 대한 노하우가 많이 쌓여서 지역 평생학습관에서 성인학습자들과, 그리고 학교에서 학생들과 ‘독서’ 혹은 ‘독서 모임’을 주제로 수업할 기회도 많이 얻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수업들은 분들이 평가를 잘해주셔서, 자꾸 다시 불러주십니다.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불러만 주십시오(응?!).


아무튼(4) 함께 먹고 공부하고 일하며 저는 많이 컸습니다. 2012년 10월 18일에 쓴 독서노트에는 로버트 웨버의<젊은 복음주의자를 말하다>(죠이선교회, 2010)의 구절과 제 코멘크가 남겨져있습니다.


“이제 내가 어떤 의미로 젊은 복음주의자라는 말을 사용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젊은 복음주의자란 젊든 나이가 들었든 간에 20세기 문화에서 21세기 문화로 도약하는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는 모든 사람을 뜻한다. 성경에 뿌리내리고 교회 역사에 정통하며 문화적으로 깨어 있어서 새로운 21세기 복음주의 증인을 세우는 데 헌신하는 사람이다.” (pp. 27-28)


위 구절에 저는 이렇게 코멘트했습니다.

“이건 바로 나를 이르는 말이 아닌가!”


역겹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그때 그렇게 생각했다는 겁니다. 지금은…… 비밀입니다. 아, 그러고보니 <젊은 복음주의자를 말하다>와 <호당 선생, 일상을 말하다>가 같은 출판사에서 나왔네요.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절찬리에 판매 중이니 많은 사랑…….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지간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쓸데 없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걸 보니 마칠 시간이 된 것 같다.” 농담 처럼 진담인 듯 쓴 글이 너무 길어졌습니다.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입니다.


(190630)

追伸


저는 페이스북 글도 몇 번이고 강박적으로 수정합니다만, 이 글은 지성근 간사님을 본받아 퇴고 없이 (틀리면 틀린데로)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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