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톡톡크리스찬 #73 용서(2010년6월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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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한신 작성일 10-06-15 15:23본문
부산 CBS 방송 - 월요일을 기다리는 사람들
2010년 6월 7일 방송분 준비
일상생활사역연구소 정한신 기획연구위원
주제 : 용서의 영성
* 참고자료
루이스 스미디스, 과거를 바꾸는 용서의 힘,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한국판 20009년 7월호
▲ 들어가면서
용서란 지은 죄나 잘못한 일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하지 아니하고 덮어 주는 행위라고 정의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용서에 대해 단순히 생각만 할 것이 아니라 용서의 능력을 간구해야 할 강력한 이유를 제시하셨습니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6:14-15) 내 안의 원망하는 마음은 애써 무시하고 싶겠지만, 예수님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우리를 용서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막11:25)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죄 용서를 받고 비로소 참된 삶을 살 수 있게 된 우리는 일상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용서의 진정한 의미에 대하여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숙고하고 행하여야 하겠습니다.
▲ 용서의 세 단계
모든 용서의 행위에에는 고통, 영적 수술, 새 출발이라는 세 단계가 있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고통입니다. 이는 용서가 필요한 조건을 만듭니다. 고통은 불성실과 배신과 같은 깊은 상처로 사람들의 관계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지지하고 옹호해 주어야 할 사람이 우리를 버리고 오히려 등을 돌릴 때 우리는 깊은 실망과 상처를 받고 관계는 원수지간으로 치닫게 되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한다고 부인한 베드로의 불성실,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의 배신이 준 고통을 우리는 상기할 수 있습니다. 정말 지켜주기로 했던 비밀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고 다닌다든지, 중대한 약속을 저버리고 다른 사람에게 가버리는 경우나 신뢰했던 사람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우리를 깎아내리고 모른 척할 때 우리는깊은 고통에 빠지게 되고 이것이 용서해야 할 지를 결정해야 할 조건을 만드는 것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영적 수술입니다. 용서하는 사람이 기억 속에서 영적 수술을 집도하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용서하는 것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과 잘못한 행위를 따로 떼어 생각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저지른 가슴 아픈 행동으로부터 상대방을 분리해서, 그 사람을 재창조합니다. 지금까지는 상대방이 우리에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었지만, 이후로는 그 사람을 상처를 준 사람이 아닌 우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 재인식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잘못을 저질러서 고통스로운 과거를 안겨준 사람을 재창조하여 이제는 우리를 필요로 하는 연약한 사람으로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이렇게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에서 이와 같이 우리를 해방시키십니다. 때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인 경우가 있습니다. 이미 죽은 사람이나 우리의 용서를 바라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기억 속에서 영적 수술을 하는 것으로 용서의 과정은 끝이 나게 됩니다.
세 번째 단계는 새 출발입니다. 용서하는 사람은 자신이 용서한 사람과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즉 화해의 단계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화해는, 원래는 좋은 사이였지만 멀어졌던 두 사람이 재결합하는 것입니다. 화해는 함께하는 새로운 여정의 출발점입니다. 우리는 바로 지금 여기에서 재결합을 시작해야 합니다. 과거의 일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고, 아직 해결하지 못한 질문들도 있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대로의 모습에서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 용서가 아닌 것들
용서와 유사하게 보이지만 용서가 아닌 것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1. 용서는 잊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입니다. 마음 속에 담아두기에는 너무나 사소한 일들이라서 쉽게 잊고 사는 상처들이 있는가하면 너무 끔찍해서 잊고 싶어하는 상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고 용서할 때 진정한 용서의 기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2. 용서는 책임에 대해 묻지 않고 그저 봐주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용서는 봐주고 싶지 않을 때, 그렇게 할 수 없을 때 먼저 책임을 묻고 난 다음에야 가능한 것입니다. 또한 사태를 무마하는 것은 용서가 아닙니다. 우리는 상처를 인정하고 원한을 표출할 때에만 용서가 가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하는 것이 참된 용서입니다.
▲ 용서해야 하는 이유
죄를 지은 사람에게 용서는 놀라운 은혜입니다. 그러나 상처를 입은 사람에게 용서는 너무나도 잔인하고 불공평한 처사인 것 같습니다. 우리의 직설적인 도덕 감각은 죄 지은 사람은 응분의 대가를 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용서를 생각할 때 우리는 부당한 마음과 증오감이 생깁니다. 복수와 경멸의 마음이 우리 안에서 일어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용서해야 합니까?
첫째는 우리 자신이 용서를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주님께서 우리도 다른 사람을 용서하라고 명령하시기 때문입니다. 죄로 인하여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우리가 용서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놀라운 은혜이기 때문에 헤아릴 수조차 없는 것입니다. 하물며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 같은 큰 죄에서 용서를 받은 우리가 우리에게 죄를 지은 사람을 용서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경멸하는 태도이며 교만한 모습일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일곱 번을 일흔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명하시는 것입니다.
둘째는 고통의 악순환을 끊고 참된 해방을 누리기 위해서입니다. 상처로 인한 복수심으로 가득한 마음을 가지고 용서하지 않고 살아갈 때 우리는 또다른 상처를 주고 받는 악순환의 고리 안에 갇히게 됩니다. 참된 사랑의 복음 안에서, 해방케 하시는 복음 안에서 용서함으로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누림이 있는 삶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용서받는 사람을 새롭게 하고, 용서하는 사람 스스로가 성장하기 위해서입니다. 용서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과거의 잘못을 돌이키고 새로운 사람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울 뿐만 아니라 용서하는 사람 스스로도 성숙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 용서입니다.
▲ 용서의 방법
그렇다면 어떻게 용서해야 하겠습니까?
1. 천천히 시간을 가지고 오래 참음으로 용서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도 모든 일에 오래 참으십니다. 용서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여정일 수 있습니다. 그러할 때 성령님과 동행하면서 오래 참음으로 마침내 온전한 용서에 이를 때까지 그 여정을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
2. 공동체와 함께 용서해야 합니다. 함께 상처를 보듬어 주면서 용서의 여정까지 나아가는 장애물들을 극복해 갈 수 있도록 돕는 공동체와 함께 용서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교회는 그런 면에서 용서받은 죄인들의 공동체로서 이런 용서의 공동체로 함께하기에 가장 좋은 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용서하시고 용서하는 힘을 주시는 주님과 함께 용서해야 합니다. 용서는 우리 인간의 능력으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용서의 은혜를 경험한 자가 용서하시는 주님의 도우심으로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용서하지 못하고 상처와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 주님께서 주시는 용서의 힘을 간구하며 용서함으로 나아가는 일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 나가면서 - 용서의 혁명
용서란 나에게 상처를 주는 과거로 돌아가 기억 속에서 그 과거를 재창조함으로써 새출발을 하는 것입니다. 용서란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심장박동에 맞추어 춤을 추는 것입니다. 용서란 가장 강력한 사랑의 파도 꼭대기에 올라타는 것입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 용서의 혁명을 불러 일으켜야 합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개인적으로 일어나는 상처에 대한 용서 뿐만 아니라 반목과 갈등으로 점철된 역사 속에서 참된 용서와 화해를 살아내는 것이 교회이어야 합니다. 남북 간, 세대간, 이념간, 지역간, 계층간의 갈등 속에서 참된 화해를 심는 교회이기를 기도합니다.
인간의 역사에는 악과 고통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용서의 문제가 수반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스 기니스는 유대교를 비롯한 다른 종교들의 방식과는 구별되는 기독교의 용서를 제시합니다.
"상대방이 회개할 기색을 보이지 않고 화해할 마음도 없다는 이유를 들어 용서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런 주장은 오해에 근거한다. 용서는 한쪽만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피해를 입은 측에서 먼저 용서를 베풀면 오랜 원한 관계를 청산하고 양측이 온전한 화해에 이를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비록 화해가 좌절되더라도 용서는 여전히 복종과 사랑의 행위로서 의미를 지닌다. 용서는 당사자들 가운데 한쪽 편에서 먼저 서로를 나누고 있는 장벽을 허무는 일이다."
우리 예수님도 그를 죽인 자들을 먼저 용서하셨고,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우리가 그를 대적하고 있을 때에 우리를 먼저 용서하심으로 우리에게 놀라운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이고 받을 자격없는 자에게 주어진 용서의 혁명입니다. 우리가 참된 용서를 배우고 구하고 살아갈 때 예수님께서 시작하신 혁명을 이어가며 따라가는 것임을 상기해 봅니다.
▲ 용서를 생각하면서 드리는 기도
우리를 먼저 사랑하시고 용서하셔서 영원한 생명을 주신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의 은혜를 힘입어 우리도 용서하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에게 고통과 상처를 안겨 주는 사람들을 원망하고 증오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주님께서 베푸신 그 사랑을 기억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복수심으로 우리를 감금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새로운 화해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주시옵소서. 그래서 우리가 과거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해방을 누릴 수 있게 하여 주소서. 용서의 여정을 걸어갈 때지치지 않게 하여 주시고 늘 우리와 동행하여 주시옵소서. 반목과 갈등이 편만한 이 세상에서 교회가 주님의 십자가를 온전히 따르는 모습으로 용서와 화해를 살아내는 일에 힘쓸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주님의 은혜를 이 땅 가운데 온전히 선포하는 일에 잘 사용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첨부파일
- 톡톡100607(월) TGIM 용서.mp3 (15.7M)
- [CBS73회] 용서.hwp (33.0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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