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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톡톡크리스찬 #81 나태(2010년8월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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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한신
댓글 0 건 조회 9,535 회
작성일 10-08-30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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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회 방송 녹음파일은 방송국 사정으로 제공해 드리지 못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부산 CBS 방송 - 월요일을 기다리는 사람들

2010년 8월 2일 방송분 준비

주제 : 7가지 죄악 "나태"

* 자료 발췌 및 참고 자료

신원하 (고려신학대학원 기독교 윤리학 교수)

기독교 사상 "죽음에 이르는 일곱 가지 죄 5"

▲ 들어가면서

1. 게으름을 즐기라는 현대 문화의 흐름

작가인 웬디 와서스타인은 사람들이 자기 계발이라는 이데올로기에 따라 부지런히 일에 내몰리며 살아가지만 그 결과가 행복보다는 도리어 삶의 피폐함을 가져왔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21세기 사람들이 좀 더 풍요로운 삶, 행복한 인생을 살려면 좀 더 게으른 생활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웰빙족, 다운시프터(downshifter : 시골로 낙향하여 일은 덜 해도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족, 슬로비(slobbie = slow but better working people : 천천히 일하면서도 출세보다 가정생활을 중시)족 등의 새로운 삶의 형태와 함께, 게으름을 더욱 즐기고 그것에 더 관용적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현대 문화 속에서 점점 더 높아가고 있습니다.

2. 게으름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본 기독교회의 전통

기독교회의 전통은 게으름에 대해 관용적이지 않습니다. 초기 교부들과 사막 수도사들은 게으름을 '대죄'의 하나로 취급했고, 성 베네딕트는 게으름을 '영혼의 원수'라고 했습니다. 게으름은 영적 삶에 치명적인 독으로 보았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서 단절되는 상태로 이끈다고 보았습니다. 게을러지면 영적인 생활에 느슨해지고 결국 하나님과 이웃에 대해 무뎌지게 마련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 나태의 의미

나태라는 영어 단어 슬롯(sloth)은 나무늘보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죄로 여겨지는 나태는 단순히 몸이 좀 게으르거나 느긋한 습관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나태는 어떤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없는 심각한 무기력과 무능력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것은 단순한 육체의 문제가 아니라 다분히 영혼의 무기력이고 곤고함이라 할 수 있습니다.

▲ 나태의 특징

1. 나태는 '무관심'을 의미합니다.

나태라는 의미의 또다른 단어인 어시디어(acedia)라는 말은 라틴어 아카디아에서 왔고, 이는 또 헬라어 아케디아(akedia)에서 왔는데, 아케디아는 어떤 것에 관심이 없는 것, 즉 무관심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나태는 단순히 몸이 굼뜨고 행동이 느린 것과는 차원이 다른 도덕적 문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단테에 따르면 '나태는 이웃과 주위에 돌아가야 할 분량의 사랑과 관심을 자신에게 돌려 쏟는 것'입니다. 나태는 맡겨진 일을 소홀히 하는 죄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태만히 하는 죄이고, 우리 이웃에 대해 무정한 죄입니다. 우리 사회 속에서 약하고 억눌린 자들에 대해 그들이 고통을 받고 있어도 그들을 위로하거나 그들의 아픔에 동참하려고 하지 않고 그들의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고 그들에게 아무런 말도 건네지 않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의 자기 중심적인 삶이 나태의 죄를 유발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웃으로부터 자신을 격리시키고 자신을 하나의 종교처럼 만들어 자신으로 관심을 집중시키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2. 나태의 또다른 특징은 무의욕, 무감동, 무활동입니다.

나태의 대표적 특징은 '무활동'입니다. 움직이지 않는 것은 마음이 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매사에 감동도, 의욕도 없고, 뭔가 새로운 결심을 하거나 해보려는 의욕이 없으며, 아름다운 것이나 슬픈 일을 당해도 감동이나 아픔이 없는 무뎌진 마음의 상태가 나태입니다. 주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자신은 가담하지 않고 그저 의자에 앉아 멍하니 보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러한 나태의 성격과 상태에 대해 도로시 세이어즈는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나태는 믿는 것도 없고 염려도 없고 다짐도 없고 배우거나 성장할 이유도 없고 인생의 목적도 없고, 살아갈 이유도 없고, 그저 자신이 죽을 이유도 없어서 살아가는 죄이다."

4세기 수도사 에바그리우스는 나태하게 되면 결국 몸에 증세가 나타나게 된다고 했습니다. 무력증이 오고, 잠은 자꾸 쏟아지며, 그저 눕고 싶고, 한 군데 두 군데 몸이 아프기 시작하다가, 급기야 신경이 쇠약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심해지면 감정과 몸이 마비된 것과 같고 겨울잠을 자는 동물처럼 꼼작도 하지 않고 웅크리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나태의 죄는 '아무것도 행하지 않는 죄'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런 자들은 죄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느끼지 않기에 회개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3. 나태의 특징 중의 하나는 새로운 것에의 두려움과 용기 부족으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열정이 없이, 그저 수비 위주, 이미 갖고 있는 것만 유지하려는 현상유지적 태도를 보입니다. 뭔가 도전이고 위험한 일을 하는 것을 피하고, 쉽고 일상적인 일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잠언은 "게으른 자는 말하기를 사자가 밖에 있은즉 내가 나가면 거리에서 찢기겠다 하느니라"(잠22:13)라고 말합니다. 게으른 사람은 일반적으로 쉬운 길, 남이 다 닦아 놓은 길을 택하기를 좋아합니다. 새로운 길은 아예 시도조차 하려 하지 않습니다. 쉬워 보이는 편한 길은 가지만, 힘들고 험한 길은 가려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따르기는 원하지만 십자가를 지려하지 않습니다.

4. 나태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존재하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좌절과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위로와 선하신 인도는 늘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태에 빠지면 하나님의 분명한 은혜조차 보려고 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을 원망하며 하나님 앞에 자신의 상황을 토로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만나고 위로받게 될 가능성이 많지만, 나태한 자는 이조차 포기해 버리며, 냉소적이 되면서 자포자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없다, 관여하지 않는다. 이 부조리한 세상, 아무렇게나 살아버리자!' 이런 식이 되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캐스린 노리스는 "나태란 비록 척박한 곳이라도 거기에 존재하고 있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보기를 거부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귀는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려는 노력을 '바보 같은 짓'이라고 현혹하면서 나태를 조장한다고 설명했습니다.

5. 나태는 해야할 일을 미루는 것을 그 특징으로 합니다.

에바그리우스는 나태는 자꾸 뒤로 미루도록 유혹한다고 했습니다. 기도해야 할 자리, 노동해야 할 자리를 벗어나서 자꾸 쉬라고 유혹하고, 자기 주위에 돌봐주어야 할 사람, 자비를 베풀어야 할 사람이 더 이상 없는 것처럼 생각하도록 조장하는 것이 나태입니다. 한 시간 미루는 것은 두 시간으로, 두 시간 미루는 것은 내일로 미뤄지고, 이것은 또 다른 내일로 미뤄지면서 결국 목표의식이 완전히 사라지게 됩니다. 일상이 점점 느슨해지고 마음은 방만해지면서 매번 적절한 기회와 시기를 놓치는 경우로 발전하게 됩니다. 이처럼 다음에 해야지 하고 미루는 것은 불행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자그마한 일이라도 그날 해야 할 일을 결코 미루지 않는 것이 지혜입니다. 나태는 생각지도 못한 엄청한 결과를 가져다주게 될지 모른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하고 경계해야 합니다.

▲ 나태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 - 목표와 훈련

나태를 극복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목표'를 확보하고 분명하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추구해야 할 가치와 성취해야 할 목표가 무엇인지를 정해야 푯대를 향해 달려갈 수가 있습니다. 갈렙은 팔십이 넘은 나이에도 헤브론 땅을 정복하려는 목표가 있었기에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외쳤고 그 땅의 거민과 싸웠습니다.

목표가 분명하면 그에 따라 도달하는 길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분명한 목표가 있으면, 그것을 향해 나가는 사람의 자세가 달라지게 마련입니다.

나태를 극복하는 두 번째 방법은 훈련입니다. 삶에 분명한 목표가 있으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 훈련해야 합니다. 건강이든, 경건의 훈련이든 게으름과 타협하지 않도록 경건 훈련을 제도화하고 규칙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특히 믿음의 분량과 비전을 확장하고 목표를 더 높은데 두며 훈련하는 일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 나가면서

바울은 로마서에서 우리가 한 날을 다른 날들보다 낫게 여기거나 혹은 모든 날들을 똑같이 여기거나 관계없이, 가장 중요한 것은 매 날이 모두 주께 속한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야 할 것을 강조했습니다.(롬 14:5-6)

게으름은 단순히 해야 할 의무를 무시하고 소홀히 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을 발견하고 누리는 삶을 팽개치고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적인 일, 의로운 일, 도덕적인 일들에 대해 소홀히 하고 꾸물거리고, 관심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유혹에서 자신을 보호해 나가야 합니다. 심지어 절망스런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은혜 베푸실 것을 바라보고 그 은혜를 찾으려 노력해야 합니다. 선을 행하는 것이 당장 변화도 가져오지 못한 채 피곤만 가중시키는 듯이 보이더라도 때가 이르면 반드시 거두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갈6:9)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 글은

고려신학대학원 기독교 윤리학을 가르치시는 신원하 교수님의 죽음에 이르는 7가지 죄악이라는 그 말씀(2004년 3월호)에 연재된 내용과 기독교 사상의 기독교 사상 "죽음에 이르는 일곱 가지 죄"은 기독교사상(2010년 3월호)의 부분을 발췌하여 정리한 글입니다.

▲ '나태함'을 극복하기 위하여 드리는 기도

우리에게 참된 안식을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또한 우리가 당신의 동역자로서 일하며 살게 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들을 잘 감당하며 성실하게 살 수 있도록 매일 매순간 힘을 주시고, 우리에게 누리도록 허락하신 안식을 감사하며 지켜갈 수 있도록 돌보아 주시옵소서. 우리를 무기력하게 하는 나태의 유혹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마땅히 가져야 할 사랑과 관심의 마음이 샘물처럼 솟아나게 해 주시옵소서. 의욕을 잃어버리고 감동을 잃어버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무뎌진 심령을 소생하게 하여 주시고 주님이 주시는 생명력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현상 유지에 급급한 삶이 아니라 새로운 도전을 즐거워하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언제나 존재하시는 당신의 은혜를 볼 수 있는 눈을 열어주셔서 자포자기하지 않고 힘있게 일어나는 삶이 되게 하여 주소서. 오늘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고 행하는 지혜를 배우고 하나님 안에서 목표를 분명히 하는 가운데 모든 경건과 모든 일에 훈련하는 참 제자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옵소서. 일도, 안식도, 모든 삶도 다 당신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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