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 2018년 10월 일상사연 -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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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8-10-02 09:42본문
가족
이래도 사람이 살 수 있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던 여름이 어느새 가버리고 가을이 왔습니다. 하늘을 보니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에나 나올 법한 풍경이 보였습니다. 푸른 하늘과 포근한 구름이 눈에 가득 들어왔습니다. 오늘 만난 구름(가명)씨도 구름을 보면 마음이 편해져서 구름을 좋아한다 말했습니다. 그러고보니 구름씨의 얼굴에서 가을 하늘의 구름이 언듯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올해 스물 넷이 된 구름씨는 자신을 “백수”라고 소개했습니다. 저는 대학생이라 알고 만난 것이라 약간 당황했습니다.
“학생도 맞아요. 원래는 졸업해야 하는데, 졸업을 내년 2월로 미뤘어요. 학생이고, 취준생이고, 백수예요.”
문득 “대학 5학년”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극심한 취업난으로 인해 졸업요건을 충족하고서도 일부러 ‘졸업유예’를 선택한 대학생들을 일컫는 신조어입니다. 교육부의 집계(2015년 기준)에 따르면 졸업요건을 채우고도 졸업을 연기한 대학생의 숫자는 17,000명이나 된다고 합니다(윤영현, 2017).
“졸업유예에 대한 기사를 본적이 있어요. 학생 신분을 유지하려면 수업을 듣도록 강제하거나, 수업을 듣지 않아도 등록금을 받는 대학도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구름씨네 학교는 어떤가요?”
“다행히, 제가 다니는 학교는 그런건 없어요.”
“비용을 더 지불하지는 않고 행정적으로만 학교에 남아있는 거네요?”
“맞아요.”
구름씨는 멋쩍게 웃었습니다.
본격적인 대화에 앞서서 구름씨의 전공을 물었습니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했어요. 취업은 정신건강사회복지사 쪽으로 준비하고 있구요.”
“그냥 ‘사회복지사’는 주위에서 쉽게 봤던 것 같은데 ‘정신건강사회복지사’는 생소하네요. 조금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음…… 기관마다 하는 일이 다르긴 한데요, 정신 장애를 가진 분들을 만나서 면담하거나, 그분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자원을 연결해주거나...... 프로그램을 진행하거나...... 그런 일들을 하구요, 자세한 건 기관마다 달라요.”
“정신건강사회복지사가 되려면 특별한 과정을 거쳐야 하나요?”
“일단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이 필요해요. 1급 자격증을 취득한 상태에서 1년간 수련을 받아야 하구요. 그 다음에 정신건강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이 나와요. 그게 있어야 실무를 할 수 있어요.”
구름씨는 내년에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정신건강사회복지사를 지망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네요.”
“원래는 대학 올 생각이 딱히 없었어요. 저는 OO시 출신인데요, 고3 초반에 예수님을 믿었어요. 예수님 믿기 전에는 사실 뭔가 하고 싶은게 없었어요. 예수님 믿은 후로 의미있는 일을 뭔가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 때 친한 친구가 사회복지학과를 가려고 준비하고 있었어요. 옆에서 보니까 의미있는 일인 것 같아 보였어요. 그리고 다니던 교회에서 지금 학교 이야기를 많이 해서.......”
“아, 기독교 대학교라서.......”
“네. 아무튼 교회에서 우리 학교 이름을 자주 들어서, 지금 학교 사회복지학과에 오게 되었어요.”
저는 심술궂게 웃었습니다.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기독교대학의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셨네요. 그런데 실제로 학교에 와보니 어떻던가요? 생각했던 것과 같았나요?”
“음…… 그게요…… 저는 그때 신앙생활 초기였잖아요? ‘목사님 아들, 딸들은 이럴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죠. 신앙생활 다들 열심히 할 거라고 생각했었죠. 그런데 대학에서 보니.......”
“교회 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은 다들 알죠. 목회자 자녀들이 어떤 상태인지.”
“그애들이 저를 신기하게 생각하더라구요. 목사님 아들, 딸들이 술마시고 할 때 놀라기도 하고 실망도 했어요. 그래도 학교는 좋았어요. 학교 풍경이 예뻐서. 학교 올라가는 길의 경치도 너무 예쁘고, 학교에서 내려다보는 야경도 좋아요. 교정이 많이 좋았어요.”
구름씨도 웃었습니다. 저는 심술을 조금 더 부려보았습니다.
“의미를 찾아서 사회복지 공부를 시작하셨네요. 그런데 왜 그 중에서도 정신건강 쪽을 선택하셨어요? 혹시 페이가 쎄서?”
“그런 것도…….”
구름씨는 다시 웃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분야가 있는 것도 몰랐어요. 교수님이 1학년 때 소개해주셨어요. 정신건강 쪽으로 가면 돈을 많이 준다는 말씀을 하시면서요(웃음). 사회복지사끼리 부부가 되면 바로 기초수급 대상자가 된다는 농담이 있거든요. 그런데 1학년 때부터 스터디 그룹에 들어가서 공부하기 시작해보니까, 그 공부가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정신건강 쪽은 단순한 봉사활동으론 만나기 힘든 분들을 만날 수가 있어요. 보통 노인이나 아이들은 봉사하다보면 쉽게 만날 수 있는데, 이쪽은 실무가 아니면 만나기 힘들어요.”
심술궂은 질문을 따듯하게 받아넘기며, 구름씨는 자신이 하려는 일에 대해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저는 꾸며낸 심술을 걷어내고 구름씨와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자격증 시험은 언제예요?”
“내년 1월이요.”
“그럼 시험에 합격하고 수련 받을 곳을 알아봐야겠네요.”
구름씨의 표정이 흐려졌습니다.
“내년에 바로 수련 받지는 못할거예요.”
구름씨는 잠시 말을 멈추었습니다. 저는 다음 이야기가 나올 때 까지 조용히 기다렸습니다.
“수련 받는 동안에는 필요한 만큼 돈을 벌 수가 없어요. 집의 지원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라서, 일단은 시험만 합격한 후에, 다른 기관에서 일을 하면서 돈을 좀 모으고 그 다음에 수련을 받을 생각이예요.”
부모님의 지원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 구름씨의 입에서 흘러나왔습니다. 이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듣기 위해, 우선 가족에 대해 묻기로 결심 했습니다.
#많이 지치신 거 같아요
“가족 구성원이 어떻게 되나요?”
“아버지, 어머니, 언니, 저, 이렇게 네 명이에요.”
“구름씨가 고3 때 신앙생활을 시작했다고 하셨죠? 다른 식구들은 교회에 다니시나요?”
“어머니가 제일 먼저 다니기 시작하셨어요. 그 다음에 저, 그리고 그 다음에 언니가 나왔어요. 아버지는 아직.......”
“‘아버지’, ‘어머니’라는 표현을 쓰시네요. 집안 분위기가 그런 편인가요?”
“아뇨. ‘아빠’, ‘엄마’라고 하는데 왠지 이런 자리에선 공식적으로 표현해야 할 거 같아서요.”
“아하!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구름씨는 고개를 미세하게 흔들며 웃었습니다.
“좀 유치한 질문인데요...... 엄마가 좋아요, 아빠가 좋아요?”
밑도 끝도 없는 질문에 잠시 당황한 구름씨는 진지하게 대답해주었습니다.
“엄마가 조금 더 좋은 거 같아요. 그래도 아빠보다는 많은 시간을 보냈고, 그래도 아빠보다는 애정 표현을 많이 해주셨어요.”
“아버지와는 관계가 어떤가요?”
“아빠랑은 서로...... 좋아하기는 하지만, 어릴 때부터 딱히 시간을 많이 보내지 않았고, 서로 표현을 많이 안했어요. 그러다보니 이젠 같이 있는 자리를 서로 피하기도 하고. 아빠는 제가 성인이 되고 난 후로, 경제적인 지원이라던지 그런 부담을 덜고 싶어하는 눈치예요. 연락하면 피하는 느낌.......”
“전화하면 돈 달라고 할까봐?”
“비슷해요. 그리고 저도, 아빠랑은 어릴 때부터 시간을 많이 안보내서 어색해요. 피하는 편이죠.”
“언니도 그런가요?”
“언니도 비슷해요. 엄마랑 더 편하게 지내요.”
갑자기 제 미래가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반면교사로 삼을 점을 얻기 위해 “아빠의 실책”을 물었습니다.
“아빠는 제가 어릴 때부터 친구나, 바깥 사람들을 많이 만나셨어요. 식구들보다 그 사람들과 더 많이 시간을 보내시고...... 술 많이 드시고.......”
“자연히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 늦어졌겠네요?”
“맞아요. 늦게 들어와서 애정 표현 많이 하는 분들도 있다지만, 우리 아빠는 전형적인 경상도 스타일이라서 그런게 거의 없었어요. 그리고...... 엄마랑도 관계가 좋지 않으셨구요.”
“어머니랑은 대화 많이 하는 편이신가요?”
“엄마랑도 많은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닌데...... 그래도 맛있는거 같이 먹고, 엄마가 요리를 되게 잘하셔서...... TV를 보거나 이야기도 하긴 해요.”
가족 이야기를 하는 구름씨의 표정이 썩 밝아보이진 않았습니다.
“올해로 스물 넷이 되셨잖아요. 어릴 때처럼 편하게 이야기하기 어렵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으세요?”
“집에 경제사정이 좋은 편이 아니예요. 졸업 미룬 후에, 1년간 쉬는 기간에 알바로 저 혼자 해결하면서 살려고 했는데, 그게 쉽지 않았어요. 일단 알바도 잘 안구해졌고, 구하는 알바도 일주일 내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어요. 일주일에 몇 일, 그것도 하루 종일은 못하고 네 시간씩...... 그러보니 집에 손을 벌리게 되었어요. 엄마는 제대로 된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고, 아빠는...... 말씀은 안하셨지만 역시 비슷한 마음이신 거 같아요.”
“그게 화제가 될 때는 대화의 벽 같은게 느껴지셨겠네요?”
“최대한 그 이야기가 안나오게 하려고 말을 돌렸죠. 엄마도 많이 지치신 거 같아요. 자녀들이 독립할 때가 되었는데 계속 의존하니까...... 그러다보니 예전만큼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는 거 같기도 하구요. 음...... 저랑 언니가 자주 집에 안가기도 하구요.”
언니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가족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언니도 다른 곳에 있나요?”
“네, 언니는 @@에 있어요.”
“대학을 그쪽으로 간 건가요?”
“아뇨. 대학은 중간에 그만두고 지금은 일하고 있어요.”
구름씨는 흐린 표정으로 언니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처음에는 휴학하고 교회에 아는 사람을 통해서 주민센터에서 일을 했어요. 그 시기에 신용카드를 만들었어요. 그런걸 잘 관리하면서 쓰면 유익하게 사용할 수도 있을텐데, 어릴 때부터 관리하는 습관 같은 걸 들이질 못했어요. 신용카드를 쓰면서 갚아야 할 돈이 너무 커졌어요. 그걸 자기가 어떻게 알아서 해결해보려고 하다가 3금융? 그런데서 돈을 빌렸어요. 빚이 너무 커졌죠.”
구름씨의 언니는 그 후로 몇몇 도시를 오가며 생산직 근로자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옮긴 @@시에서는 아직 취업한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서 월급을 받지 못한터라 부모님께 도움을 받고 있는 상태라고 했습니다.
언니의 상황은 요즘 그리 드문 일이 아닙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생긴 부채를 주변에 알리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려다 제3금융권, 심지어 불법 사채에서 돈을 빌려서 부채의 규모가 눈덩이 처럼 불어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2017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대부업채에서 대출을 받은 20대 차주 중 95%가 25%를 넘는 고금리로 돈을 빌린 것으로 집계되었습니다(연합뉴스, 2017).
“혹시 부모님이 어떻게 도와주실 수 있는 상황은 아닌가요?”
“맨 처음에 부모님이 아셨을 때...... 일하러 간 곳에서 살 보증금이랑 월세, 당장 급하게 갚을 수 있는 돈을 주셨어요. 그런데 다른 곳에 쓴 거 같아요. 돈 쓰는 걸 좋아해서....... 처음에는 도와주셨는데, 지금은 도와주실 여력도 마음도 없으신 거 같아요.”
“구름씨는 빚이 없나요?”
“학자금 대출이 있어요. 아빠는 처음부터 대학 가지 말라고 해서, 학자금 대출을 계속 받았죠. 1,000만원쯤 있어요.”
“상환은 언제부터 해야 하나요?”
“졸업한 후 바로 분활 상환 시작이에요.”
“학자금 대출 상환 때문에 걱정된 적은 없나요?”
구름씨는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딱히 없어요. 그거야 알바해서라도 값아갈 수 있는 거니까요. 학자금 대출 말고 제 이름으로 된 빚이 또 있긴 해요. 언니가 신용불량일 때 제 이름으로 대출을 받은게 있고, 제가 언니 보증을 선 것도 있어요.”
“아…….”
“제 이름으로 된 대출이 연체되면 제 신용등급이 떨어지잖아요. 위태로웠던 순간이 여러번 있었어요. 저도 모르게 ‘가족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어요.”
아픔을 후벼파는 것이 될 수 있지만, 조심스럽게 물어보았습니다.
“‘위태로웠던 순간’이란게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을 말하는 건가요?”
“언니가 일을 하고 있긴 하지만, 다른 대출금을 먼저 갚거나, 아니면 자기가 돈 쓰는 것 때문에 제때 돈을 못줄 때가 있었어요. 대부업체에서 제 집으로 찾아온다고 문자가 오기도 하고....... 보증 선 건 언니가 연락을 안받으면 제게 연락이 와요. 핸드폰에 02로 시작하는 전화가 걸려오면, 이게 그냥 광고 전화일까 아니면 그 전화일까, 라는 생각이 들고, 일상에 지장이 많이 되요.”
구름씨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십수년 전의 제가 떠올랐습니다. 갚아야 할 돈이 100여만원있었는데, 빨리 해결하지 못하니 전화가 수시로 걸려왔습니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라 휴대전화 벨소리를 언제나 무음/진동으로 해두었습니다. 당시의 스트레스가 꽤 컸는지 최근까지도 저는 휴대전화를 무음/진동으로만 사용해왔습니다. 다시 벨소리를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이,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한 두 달 정도 밖에 되지 않을 정도이니 꽤 오래간 편이지요. 이런 이야기를 하자 구름씨는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어, 저도요! 저도 그래서 벨소리를 못하고 있어요. 그런 일로 연락이 올 때면, 언니가 미워지기도 하고 답답해지기도 해요. 제 상태가 안좋을 때는 미워지고...... 내 삶이나 가족의 삶에 대해 비관적으로 생각하기도 해요.”
“언니랑 종종 통화하나요?”
“거의 매일이요.”
“그러면 전화하면서 그런 감정을 쏟아내시나요?”
“아니요. 저보다 힘든게 언니라고 생각해서...... 제 이야기를 하기보단 언니 이야기를 들어주는 편이에요. 대부업체에서 전화가 너무 심하게 올 때만 이야기해요. 그러면 언니가 돈 구해서 보내줘요.”
구름씨는 규모가 큰 지역교회에 출석하는 동시에 기독교 동아리(대학생 선교단체)에서도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02 지역번호로 걸려오는 전화가 일상생활을 심각하게 방해하는 현실을 교회나 동아리 사람들과 이야기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동아리에서는 리더 모임에서만 이야기했구요, 교회에선 딱히 이야기 안했어요. 아주 친한 친구들에게만 조금.......”
“왜 교회에선 이야기 안하셨나요? 교회에서도 서로 삶을 나누는 소그룹 모임이 있을텐데.”
“교회가 큰데요, 소문이 엄청 빨리 퍼져요. 언니도 원래 같은 교회 다녔으니까, 많은 사람이 아는게 싫었어요.”
“02 번호만 뜨면 일상에 지장이 있다고 하셨잖아요. 왜 교회에서는 일상을 나누기 힘들까요?”
“교회에서 소그룹 리더도 하긴 했는데요, 소그룹 모임에서는 겉으로 보이는 것만 나누는 분위기예요. 진짜 고민 말고. 서로 말하는데 필터링을 하니까 저도 딱히 그런 이야기는 하기 싫었어요. 그리고 교회에 있다보면 모임이나 사적인 관계에서 진심을 털어놓았던 사람의 이야기가 제 귀에 까지 들어와요. 그러니 ‘말했다간 내 이야기도 돌겠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조심을 하게 되요. 그리고 원래 저는 제 이야기 많이 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음…… 혹시 재정 상담 같은 걸 받아보신 적은 없어요? 요즘엔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도 여기저기 있고, 동아리 선배 중에 금융 계통 일을 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구름씨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동아리 단톡방에 가끔 한 번씩 광고가 올라오기는 하는데요, 딱히 도움 받을 일이라고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제 일이라면 몰라도...... 제 일이 아니고 언니 일이니까요.”
“응? (보증은 빼도) 구름씨 명의로 된 빚도 있잖아요.”
“상담해주시는 분들이 계획을 세워주셔도 결국 제가 일을 해서 갚아야 하니까, 따로 도움을 요청하고 싶진 않았어요. 그리고 언니있는데 가서 같이 일을 하면 빨리 갚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한 적은 있어요. 그런데 그러면 제가 언니를 내려다보듯 할까봐 안하게 되었어요.”
#스타일
너무 언니 쪽으로 이야기가 집중되는 거 같아 다른 방향에서 질문을 던졌습니다.
“내년에 바로 수련 받는 걸 미루고 다른 곳에서 일하며 돈을 모으려는 계획을 가지고 계시잖아요, 혹시 그 상황을 생각하면 ’난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진 않으세요?”
“지금은 이렇게 하는게 맞는 거 같아요. 천천히 가는게 맞는 거 같아요. 오래 준비해서...... 제대로 가는게 맞는 거 같아요. 더 늦어도 상관 없어요. 더 힘든 건 언니나 부모님이니까. 전 괜찮은 거 같아요.”
구름씨는 왼쪽 아래를 잠시 응시한 후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게 원래 스타일이신가요?”
“빠릿빠릿한 스타일은 아녜요. 모든 면에서 그래요. 이해하는 것도 오래 걸리고, 시간이 필요한...... 원래 그런 스타일이에요. 빨리 하려다보면 실수 하잖아요. 실수하는게 싫어요. 느리더라도 똑바로 가는게 맞겠구나, 라는 생각을 해요.”
“왜 이런 스타일을 갖게 되었을까요?”
구름씨는 한참 동안 말을 멈추었습니다.
“딱히 생각은 안해봤는데, 교회에서 들은 그런 것도 있고......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그런 말...... 동아리에서도 ‘세상은 빨리빨리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천천히 가도 괜찮다’ 그런 말 들으며 더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어요. 예전에는 그런 모습, 제 느린 모습이 싫었는데 이젠 마음이 놓이기도 하고...... ‘나는 그런 사람’이라고 인정하게 되었어요.”
“신앙공동체에서 자기를 긍정하는 법을 배운 거네요?”
“그런거죠.”
“가족들 중에 비슷한 분이 계신가요?”
“엄마랑 아빠는 빠릿빠릿하세요. 언니가 저랑 비슷해요.”
저는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자매가 둘 다 비슷한 성격이면 부모님 중 최소 한 분을 닮았을 가능성이 큰데요.......”
“아, 아빠가 그런 면이 좀 있긴 해요.”
“왠지 아버님 그림이 그려지는 거 같네요. 친구 좋아하시고 주위에 사람이 많은 스타일이시죠?”
“맞아요.”
“그리고 사회생활 하시다보니 본인 업무는 빨리 쳐내고.”
“맞아요, 그런거 같아요.”
구름씨의 일상이 궁금해졌습니다.
“평균적인 하루 풍경을 묘사해주실 수 있겠어요?”
“보통 8시 반쯤 같이 사는 친구가 출근해요. 친구가 일어나는 시간에 맞춰서 일어나서 2시간 쯤 집안 일을 해요. 그리고 나선, 약속이 있어도 주로 오후에 있으니까, 약속 시간 전까지 침대에 누워서 휴대폰이나 TV 봐요. 잡생각이 많아지면 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민하는 척도 하구요. 오후에 약속있으면 나갔다가 저녁식사까지 밖에서 해결하고 들어와서 씻고 자요.”
“되게 흥미로운 지점이 있네요.”
“뭔가요?”
“하루 일과 중 공부 시간이 빠져있어요.”
구름씨는 잠시 멈칫했습니다.
“오늘부터 학교에서 특강이 있어요. 인터뷰 마치고 가야 해요.”
“그러면 오늘부터 공부 시작하는 건가요?”
“맞아요. 근데 오늘부터 한다고 하는데 안할 수도 있어요. 최대한 늦게 시작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웃음)
“놀고 싶구나?”
“맞아요!”
결국 구름씨는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뭐하고 노는 걸 좋아해요?”
“맛있는 거 먹고, 집에서 쉬거나 산책하는 거...... 걷는 거 좋아해요.”
“정적인 걸 좋아하나봐요?”
“왁자지껄한거보다는 좋아해요. 그렇다고 시끄러운 걸 아예 싫어하는 건 아니예요.”
저는 웃으며 다른 질문을 했습니다.
“그리고 일과에 아르바이트도 없네요?”
“지금은 안하고 있는데, 이것저것 해봤어요. 식당, PC방, 그리고 단순노동 같은 것들.......”
“‘단순노동’이라면 어떤 걸하셨죠?”
“조그만한 공장에서 구명조끼 포장하는 일도 했고, 불량품 선별이나 실밥 정리하는 일도 했고...... 그런 단순노동이죠. 알바는 지난 달까지만 하고 지금은 아무 것도 안하고 있어요. 원래 계획은 9월까지 일하고 10월부터 공부하는 거였어요, 내년에 수련 받을 생각으로. 그런데 내년 수련 계획이 바뀌면서 알바 일정도 좀 바뀌었어요.”
“아르바이트하면서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경험이 있으신가요?”
“음…… 3학년 때 고깃집에서 일할 때, 원래 정해진 근무시간이 있는데 손님 없으면 퇴근하라고 하고 딱 그 시간 만큼 만 돈을 줬어요. 그리고 올해 3~5월 규모가 큰 PC방에서 일을 했어요. 근로계약서에는 공휴일에 일하면 시급을 1.5배로 계산한다는게 적혀있었는데, 그렇게 안줬어요. 그걸 받아내지는 못했는데, 아무튼 그 이유로 그만뒀어요. 원래는 거기 페이가 괜찮아서 9월까지 일하려고 했는데...... 거기 그만두고 다른 식당에서 일했죠.”
“PC방을 그만둘 때 왜 그만두는지 업주에게 이야기하고 나오셨나요, 아니면 그냥......?”
“말하고 나왔어요. 저는 보통 그런 걸 봐도 그냥 넘어가는 스타일인데, 남자친구가 그런 걸 잘 못참는 스타일이에요. ‘꼭 말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거긴 그만두면 좋겠다’라고 남자친구가 말해줘서 용기를 내었어요.”
“대부분 참고 계속 일하거나, 말 없이 그냥 나오죠.”
“맞아요.”
구름씨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가족
구름씨가 특강을 듣기 위해 일어서야 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어떤 문제로 주로 고민하세요?”
“언니 문제랑 신앙생활에 대해서 주로 고민해요. 그것 말고는...... 앞으로 부모님이 계신 OO에서 살 것인가, 학교가 있는 ##에서 살 것인가...... 그 정도예요.”
“‘가족, 신앙, 그리고 앞으로 어디에 정착할 것인가?’ 이렇게 세 가지네요? 가족 이야기는 앞에서 들었고, 신앙생활에 대한 고민을 좀 말씀해주세요.”
“‘내가 잘 가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내가 일상에서 하나님을 생각하며 살고 있나? 생각은 하고 있는데 실천은 없는 거 아닌가?’ 언제쯤 그런 훈려녀이 잘 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싶어요. 그게 매일 고민인 거 같아요. 일생상활에서 매일 하나님 생각은 하지만 실질적인게 없는게 마음의 고민인 거 같아요. 동아리도 하고, 교회에서도 역할 맡이서 하고 그러지만, 그런거 말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뭐 그런게 없는.......”
저는 구름씨의 눈을 보며 물었습니다.
“왜 그런 고민을 하시죠?”
“하나님이 주신 삶인데, 제 삶의 이유가 하나님인데......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살고 싶은데 그렇게 못하니까...... 그런데도 너무 많은 은혜와 사랑을 주시니까 죄송하기도 하고...... 하나님 안에서 사는 걸 생각하면 좋으니까, 그 행복이 좋아서 고민이에요.”
“이런 행복을 잃을까봐 걱정되는 건가요?”
“아뇨! 끊어지지 않을 것이란 생각은 있어요. 받은 은혜와 사랑에 비해서 제가 잘 못하니까, 그게 죄송해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정착’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OO에 있으면 돈이 덜 나가고 교회도 가까워서 편할 거예요. 그런데 집에 있으면 아빠랑 같이 지내야 해요. 엄마는...... 일하시는 곳에 따로 나가서 사세요. 아빠는 술을 좋아하셔서, 술 취하시면 안좋은 이야기를 많이 하세요. 스트레스죠. OO에 있으면 기분이 안좋아요. 가족 문제가 스트레스예요. 그런데 돈은 빨리 모을 수 있을거 같아요.”
“일단 주거비용이 안드니까.”
“맞아요. 반면 ##에는 친구들도 있고, 남자친구도 있어요. OO에 비해 취업 시장도 넓구요. ##에 있고 싶기는 한데, OO에 혼자 계신 아빠 생각하면 찡해요. 그래서 올해도 처음엔 OO에 계속 있으려 했어요.”
“그런데 내려오셨네요?”
“가을에 내려왔어요. 아빠랑 부딪히는게 싫어서. 그리고 모임이나 제가 희망하는 직종 관련된 봉사가 ##에 많이 있어서 왔어요. 한 번씩 집에 가서 컵라면 그릇이랑 술병들 있는거 보면 짠해요. 아빠 혼자 계시니까 잘 못챙겨드세요.”
아버지 이야기를 하는 구름씨의 표정은 복잡했습니다.
“솔직한 마음은 어디로 기울었나요?”
“지금은 지금은 75도 정도 ##에 기울어져 있어요.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졸업 후에 캠퍼스와 분리되는게 벌써 걱정될 정도예요.”
구름씨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보고 싶을 거 같고, 그 모임에 더 가고 싶을 거 같고...... 그래서 졸업유예를 했는지도 몰라요. 2017년에 제가 동아리 대표를 했는데, 그때 핵심 멤버들이 다 졸업하고 4명만 남았어요. 당시에 ‘이 때 졸업을 미뤄줄 사람이 필요하다’라고 간사님이 직설적으로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알겠다’라고 하고 졸업을 유예했어요.”
“교회는 OO에 있는데 크게 끌리지 않나봐요?”
인터뷰 말미에 저는 다시 심술을 부렸습니다.
“3학년 때부터 동아리를 열심히 했어요. 3학년 여름에 동아리 수련회를 처음 갔어요. 그때부터 열심히 했어요. 동아리에서 나누는 교제가 너무 좋았어요. 교회와 달리 내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곳, 진짜 가족 같아요. 물론 교회도 엄청 좋아해요. 많은 도움도 받았고, 사랑하는 공동체예요. 교회에서도 좋은 친구를 만나고, 좋은 시간을 많이 보냈지만, 지금 현재는 동아리가 제게 더 큰 곳이에요.”
구름씨의 얼굴이 환하게 피어올랐습니다.
“오늘 말씀 중에 ‘가족’을 자주 언급하셨어요. 가족이란 말에 정말 복잡한 심경이 담긴 것 같았는데요, 혹시 앞으로 어떤 가족을 꾸리고 싶으신가요?”
“서로의 의견이 존중되고,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은 가족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누군가 이야기를 했을 때 의견이 무시되지 않는, 그리고 말 그대로 시간을 같이 많이 보낼 수 있는...... 그런 가족이요.”
“구름씨가 경험한 가족은 이 두 가지가 잘 안되었다고 이해해도 될까요?”
“네, 네…… 맞아요.”
구름씨는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왠지 동아리(선교단체)에 대한 구름씨의 애착이 이해가 될 듯 했습니다.
* 참고자료
윤영현(2017). “[리포트+] 대학교 ‘5학년생’ 급증… 취업난에 졸업 미루는 청춘들”,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3965256
연합뉴스(2017). “대부업체에 손내미는 ‘벼랑끝’ 청년들… 20대 연체율 상승”,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0/18/0200000000AKR2017101816000000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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