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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2018년 4월 일상사연 - 컨설팅은 무슨 컨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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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 건 조회 4,484 회
작성일 18-04-02 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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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설팅은 무슨 컨설팅


지난 2, 3월에 만난 분들은 각각 30대, 40대 기혼 여성이었습니다. 워킹맘과 전업주부라는 차이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두 분의 이야기에서 중복되는 것이 여럿 발견되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결혼과 출산이 “일”을 계속하는데 크나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었습니다. 아마 아주 특별히 예외적인 삶을 사는 분이 아닌한 대부분의 기혼 여성들이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이번 달에는 미혼이며 1인가구로 살고 계신 84년생 지영(가명)씨를 만났습니다. 여기저기 기독교 장식물이 배치되어 있고, 기독교음악과 일반음악이 섞여 흘러나오는 까페에서 저는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했습니다. 지영씨는 약간 어색한듯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전 자기소개를 해본적이 별로 없어서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 나이는…… 서른 다섯인가? 84년생이구요, 생일이 빨라서 제가 유리한데로 말하는 편이예요.”
“아, 모임에서 족보를 배배 꼬이게 만드는 ‘빠른 생’이시군요.”

지영씨는 담백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습니다.

“결혼은 아직 안했구요, 지금 도서관에서 지내고 있어요. 혼자 살아요. 1인가구로…….”
“도서관에서 지내신다구요? 하시는 일을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쉽게 말하면 도서관 사서예요. 사립공공도서관의 사서……. 그리고 우리 도서관이 마을도서관이라서 마을활동가이기도 해요. 도서관에서 이뤄지는 제반활동을 다 한다고 보시면 되요.”

생소한 용어에 궁금증이 생긴 저는 곧바로 질문을 던졌습니다.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요, ’사립공공도서관’이란 말은 좀 낯서네요. ‘사립’과 ‘공공’이 함께 있다는게 재미있기도 하구요. 어떤 개념인가요?”

지영씨는 웃었습니다.

“그렇죠? 이쪽 일 하시는 분 아니면 다들 낯설어 하세요. 공립도서관은 운영주체가 나라나 시, 아니면 도인데요, 사립은 개인이나 단체가 세워서 운영해요. 우리는 운영주체가 따로 있진 않고, 한 두 사람의 마을 사람이 만들어서, 공공성을 추구해오고 있어요. 처음에는 사랑방이나 뭐 이런 걸로 만들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게 도서관이 되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처음 시작한 분들이 본격적으로 공부하시며 만들게 된거죠.”
(인터뷰를 마친 후 ‘사립공공도서관’으로 검색해보니 “도서관법”에서 사용하고 있는 용어였습니다. 제 상식이 부족했던게지요.)
“지금 계신 도서관에선 얼마나 일하셨어요?”
“음…… 2011년에 들어왔으니까, 햇수로는 8년 되었네요.”

지영씨는 햇수를 계산하기 위해 손가락을 꼽았습니다.

“저도 예전에 사서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어요. 무슨 일 하는 줄도 모르고 ‘책 좋아하니까 늘 책보는 일 하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던 거죠.”
“책은 정말 많이 봐요. 읽는 건 아니고 보는 거.”

우리는 얼굴을 마주하고 잠시 웃었습니다.

“어떤 일이든 막연히 꿈꿀 때와 실제 그 일을 할 때의 괴리가 있긴 하죠.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되셨어요?”
“문헌정보학과 출신이예요.”
“아, 그 힘들다는 전공살리기에 성공하신거네요.”

지영씨는 제 너스레에 반응하지 않고 잠시 생각을 고르더니 말을 이어갔습니다.

“원래 다른 공부를 했었는데요, 문헌정보학과에 가고 싶어서 학교를 다시 간거예요. 나이론 02학번 나이인데, 졸업 후에 07학번으로 진학한거죠. 원래는…… 아니, 지금도 그렇지만, 제가 뭘 해야할지 잘 모르겠어요. 어릴 때 장래희망 써서 내라고 하면, 음…… 여자아이들은 보통 선생님이나 간호사, 남자는 의사, 과학자 그런거 쓰잖아요. 그런데 저는 어릴 때 제일 싫어하는게 선생님이었어요.”
“어떤 선생님을 제일 싫어하셨나요?” (웃음)
“아뇨, 선생님을 싫어한건 아니고…….” (웃음)
“죄송합니다, 실없는 농담을 해서.”
“누굴 가르친다는 행동이 싫고 자신도 없었던거죠. 그렇다고 간호사도 아닌 것 같고. 뭘 해야 할지 어릴 때부터 몰랐어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이없는데 장래희망에 ‘현모양처’나 ‘잘 모르겠음’을 고3 때까지 썼어요. 대학 가야 할 때가 되선, 광고에 관련된 드라마를 보고 광고홍보학과에 진학했구요. 막상 광고홍보학과에 가보니 공부는 재미있었는데, 직업으로 삼기에는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는 일이었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다 입사원서 쓰는 4학년 때 전 하나도 안썼어요.”

#언니는 떨어지고 저는 합격했어요

“그러다 대학교 도서관에 놀러갔어요. 책에 둘러쌓여있는걸 좋아했거든요. 어쩌다보니 도서관에서 근로장학생을 했는데 책 정리하는게 너무 좋았어요. 그 전에는 눈에 안들어오던, 책 아래 붙은 번호 구성도 흥미로웠구요. 그래서 사서 선생님한테 이 일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질문했어요. 문헌정보학과를 나와야 한다고 하시더군요.”

저는 이 대목에서 곧 바로 새로운 학교로 진학을 준비하는 이야기가 이어질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입사원서 한 장 써보지 않은 지영씨는 덜컥 취업이 되었습니다.

“졸업하곤 교수님이 추천해주신 회사에 들어갔어요. 사보 만드는 회사였어요. 사보 만들고 영상도 찍고, 광고도 하고.”
“의외네요. 바로 진학 준비 하실 거라 생각했는데요.”

지영씨는 담백하게 웃었습니다.

“아무래도 4년 간 공부한게 있는데 그걸 포기하고 다른 전공으로 다시 진학하는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던 거죠. 그리고 부모님한테도 죄송했구요. ‘일단 일을 해보자. 해보고 맞는지 아닌지 결정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안 맞았군요.”
“해보니 너~무 힘들었어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지영씨는 말했습니다.

“지금 같으면 이해가 되는 면도 있는데요, 그때는 정말 이해가 안되는게 많았어요. 특히, 평일에 제대로 일을 하면 될텐데 평일엔 술 마시고 주말에 나와서 일하는 시스템이 정말 이해가 안되었어요. 그리고 전 글 쓰는 걸 되게 힘들어하는데 글을 짜내야 하는 것도 정말 힘들었구요. 결국 인턴 3개월하고 그만뒀어요.”
“그리곤 문헌정보학과로 가신 거군요.”
“아뇨. 사서교육원이라고, 거기서 야간 과정을 이수하면 준사서자격증이 나와서 지원했는데 떨어졌어요. 준사서자격증이 있으면 사서공무원 시험에 지원할 자격이 되어서 사람들이 많이 지원했거든요. 그리곤 아르바이트 하면서 지냈어요. 간단한 서류 챙겨주고, 출퇴근 시간 정해져있고, 월급 딱딱 나오는 일…… 한 2년 쯤 아무 생각없이 거기 다니다 ‘내가 지금 뭐하나?’라는 생각이 들어 편입시험쳐서 3학년으로 들어갔어요.”

지영씨의 이야기 중 ‘공무원’이란 단어가 귀에 들어왔습니다.

“처음엔 사서공무원 시험을 생각하셨던거네요?”
“네. 졸업 후 공무원 시험 치는 걸로 계획을 가졌는데 중간에 마을도서관으로 가게 되어 지금까지 왔죠.”

저는 짖궂게 웃으며 물었습니다.

“떨어지셨나요?”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 준비하려고 부산에 내려와 공부를 했어요. 그런데 같은 교회에 다른 학교 문헌정보학과 출신 언니가 있었어요. 그 언니가 마을도서관 설명회에 갈 건데 같이 가자고 했죠. 같이 가서 언니는 설명회 들어가고 저는 밖에서 구경하려 했는데…….”
“했는데?”
“그 안에 있던 분들이 저도 들어오라고 해서 얼떨결에…… 언니는 떨어지고 저는 합격했어요.”
“아, 오디션 보는 친구 따라갔다가 자기가 연예인 된 거 같은 케이스네요.”

지영씨는 멋쩍게 웃었습니다.

“여러 가지 상황이 안맞았던 거죠. 특히 그 언니는 결혼계획이 있었거든요. 아마 그게 컸던 거 같아요.”

#다른 사람들을 조금씩 보게 되는 경험

“처음부터 전 반상근으로 일했어요. 사서공무원 시험 준비하면서 아르바이트 처럼 했던거죠. 그런데 일을 하다보면 딱 정해진 만큼만 할 수있는게 아니었어요. 도서관 일도 그렇고, 마을 일도 그렇고…… 모임도 많아지고…… ‘제 일만 하고 가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죠. 그러다 자연히 사서공무원도 포기하게 되었어요. 이런 도서관에 있다가 다른 공공기관에서는 일 못하겠다는 생각도 했구요.”
“그렇게 쭉 8년째 일하신거네요?”
“네, 그렇죠.”

저는 지영씨의 구체적 업무내용을 물었습니다.

“저 같은 사람은 잘 모르는 사무실 안의 일을 좀 들려주실 수 있나요?”
“이용자 서비스를 하기까지 보이지 않는 모든 일을 다 하죠. 어떤 책을 사야할지 결정하는 일, 들어온 책을 목록화하는 일, 바코드 라벨 붙이는 일…… 아, 그리고 요즘엔 도서관에서 프로그램 많이 하잖아요. 사람들을 책과 어떻게 만나게 해줄지 고민하고, 실제로 사람들 마나는 일…… 그리고 오늘은 원래 출근하는 날은 아닌데 나갔어요. 일년에 한 번씩 후원자들에게 연차보고서 발송하는데 그거 우편작업하러 나갔죠.”
“크…… 고생 많이 하셨겠네요.”

 지영씨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습니다.

“저는 단순노동이 좋아요. 복잡한 생각 안하고, 일하며 멍 때릴 수도 있고, 다른 생각도 할 수 있고…… 모든 일에 그런건 아닌데 약간 완벽주의 기질이 있어서 완벽하게 할 수 없으면 아예 손을 놓게 되는 성향이거든요. 그래서 손으로 하는 단순한 일이 더 좋아졌죠.”
“그럼 단순노동 말고 일상 업무에서 부딪히는 문제랄까, 어려운 점은 어떤게 있을까요?”
“제가 관계에 많이 무딘 편이예요. 처음 몇년은 마냥 좋았어요. 다른 사람들은 회사에서 관계 때문에 힘들다는데 저는 다 좋았어요. 성향도 다 비슷한거 같고, 분위기도 환대하는 분위기고. 다 좋았죠. 그런데 몇 년 지나니 사람들이 모두 다른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모두 다른데 조화롭게 지내고 있는게 보이기 시작한거죠. 갈등을 풀어가는게 굉장히 성숙한 조직이라는 느낌? 아, 업무에서 어려운 점 물어보셨죠? 업무는 문제가 없구요, 제가 그 일을 잘 못하는게 문제예요.”
“아이고, 그건 저도 마찬가지예요.”

지영씨의 웃음이 조금 더 커졌습니다.

“보통 도서관에서 일한다고 하면 생각나는 풍경이 있어요. 조용한 분위기에서 책 정리하는 이미지. 저도 그 이미지를 생각하고 시작했어요. 사람보다 책이 좋아서 시작한거죠. 그런데 마을도서관은 사람도 좋아해야 해요. 전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하긴하지만…… 외향적이지 않고 혼자있는 걸 좋아해요. 사람들 많이 만나고 이런 것들…… 일반적인 도서관과 달리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에서 제 한계가 느껴지기도 하고…… 나는 말 걸기 싫을 때도 있는데 자원활동가('자원봉사자'를 달리 이르는 말. 지영씨가 소속한 도서관에서는 ‘봉사’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음. 누군가 일방적으로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활동에 주체적으로 참여한다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자원활동가’라는 용어 사용)들과 대화를 해야만 하죠.”
“마을도서관이라 그렇군요. 도서관 사서와 마을활동가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맞아요. 사실 마을활동가로 저 자신을 생각하게 된 건 몇 년 안되었어요. 처음엔 그 영역에 되게 무관심했어요. 제가 그 마을에 살지 않는다는게 큰거 같아요. 지금은 세뇌를 당해서 그런지 (웃음) 그 문화에 점점 젖어가며 저도 많이 배우고, 마을에 이런게 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도 많이 해요. 물론 지금도 엄청 관심이 많고 그런건 아니지만, 무관심했던 다른 사람들을 조금씩 보게 되는 경험을 하고 있어요.”

이쯤에서 저는 ‘일과 신앙’의 관계를 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세술 말고

“마을도서관에서 보낸 지난 8년이 지영씨의 신앙에 어떤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세요?”

지영씨는 잠시 생각한 후 이렇게 말했습니다.

“처음엔 혼란스러웠어요. 도서관이니까요. 도서관은 일요일에 출근해야 해요. 8년 전에는 주일성수를 못한다는 걸 생각해본적이 없었어요. 주일이면 꼬박꼬박 예배 참석하고 봉사하던 열심당원이었죠. (웃음) 초반엔 ‘이걸 어떻게 하지?’라는 고민이 있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그 생각이 조금씩 무너지며 ‘교회를 가진 않아도 삶에서 예배드리면 된다’라는 생각으로 조금씩 옮겨갔어요. 지금은 ‘가나안 성도’ 처럼 되었어요. 아, 이런 변화에 도서관이 결정적이었던 건 아녜요.”

도서관이 결정적이지 않았다는 말에 정신이 퍼뜩 들었습니다.

“그럼 다른 이유론 어떤게 있었나요?”
“시국 문제도 있었고, 다른 여러가지 문제가 좀 있었어요. 세월호 때…… 청년부 목사님은 그래도 그 주제로 청년부에서 말씀하셨어요. 그때 제가 유년부 교사도 했는데, 청년부를 제외한 다른 곳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전혀 들을 수 없었어요.”
“한국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가 교회에서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던 거네요.”
“네, 게다가 그 목사님이 다른 교회로 가시고 새로운 분이 오셨는데…… 설교가 귀에 들어오질 않았어요. 분명 예전에도 그런 설교를 들었을텐데, 내가 달라진 건지…… 너무 피상적인 이야기, 삶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계속되면서 ’내가 이걸 듣고 있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고, 그 핑계로 점점 안가게 되었어요.”

“한때의 열심당원에서…….”
“가나안이 되어간거죠. 예전엔 신앙공동체에 많이 의지했는데, 함께 지내던 사람들이 결혼하게 되면서 청년부에서 남녀전도회로 갔죠. 남은 사람은 얼마 없고, 나는 어린 후배들과 여기 함께 있어도 되나 싶은 마음도 들었어요. 신앙공동체에 대한 갈급함이 없는건 아닌데, 예전에 함께 했던 사람들을 만나보면, 결혼할 때까지는 괜찮았는데, 아이가 생기고 나서는 아예 관심 영역이 달라져서 같이 이야기 나눌 사람도 없어지더라구요. ‘나 혼자 청년부에서 버티기가 힘들다’라는 생각이 들며 점점 마음이 멀어졌어요.”

지영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예전에 제가 반농담-반진담으로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교회에서 소위 ‘믿음 좋은 청년’을 판별하는 네 가지 암묵적 기준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대학을 나와야 한다. 둘째, 취직을 해야 한다. 셋째, 결혼을 해야 한다. 넷째, 교회에서 봉사를 해야 한다. 이 암묵적 기준을 모두 충족시키지 못하는 사람은 교회에 발붙이기 힘들어진다라는게 저의 주장이었습니다. 지영씨는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기도제목 나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대학부에서 청년부로 올라왔을 때 되게 충격적이었던게요…… 기도제목 나누는데 나이가 좀 있는 언니들은 전부 결혼에 대한게 기도제목이었어요. 되게 충격이었어요. 아, 저게 전반적인 기도제목!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청년부는 결혼 전에 잠시 머무는 곳이라는 생각이 깔려있는 거예요. 결혼하면 진급! 꼭 유년부에서 초등부, 중등부…… 올라가는 것과 같은 방식인거죠. 결혼을 못하면 청년부에 계속있어야 하는데…… 청년부에서 전해지는 메시지는 계속 가정에 대한 것들이예요.”

지영씨는 당시에 ‘이게 나에게는 무슨 의미가 있는 메시지지? 요즘에는 비혼자들도 많은데…… 비혼이나 그런 내용도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같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도 리더할 때, 나이 많은 분들을 어떤 셀에 넣어야 하는지를 두고 다른 리더들이랑 같이 고민했어요. ‘다른 그룹에 가면 스물 몇 살 애들이랑 힘들지 않겠어?’ 이런 이야기하면서요. 지금 생각하면 죄송스럽죠.”

지영씨가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저는 질문의 방향을 조금 바꾸어보았습니다.

“요즘은 교회에 잘 안나가시지만, 혹 당시에 일터에서 하는 활동을 위해 교회에서 힘을 얻거나 지지 받은 경험이 있으신가죠?”
“예전을 생각하면…… 교회로 끌어모으는 활동이 많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터에서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긴 했어요. 주로 수련회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일터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같은 주제를 전형적인 방식으로 다뤘죠. 회식 자리에서 술 마시지 않고 동료들과 더 잘 놀기, 주일에 일하지 않기 위해 평일에 더 열심히 일하기 같은 거요. 일종의 처세술 특강?”
“그게 도움이 되었나요?”
“별로요. 예전에 전 술을 안마셨어요. 매일 술 마시는 광고 회사에 다닐 때도 저는 안마신다 말하고 ‘지켰죠.’ 지금 생각하면 술을 마시며 회사 이야기할 때가 서로 좀 돈독해지는 자리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서 빠지면 회사에 대한 속깊은 이야기가 잘 안나오는 걸 시간이 지나며 알게되었어요. 피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닌데…… 교회의 가르침을 따르면 분리된다고 해야 하나? 지금 한 걸음 떨어져서 보면, 교회에서는 ‘구별’이라고 하지만 사람들과 동떨어져진채 녹아들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전에 저를 볼 때 다른 사람들도 이러지 않았을까요?”

저는 자조적으로 웃으며 되물었습니다.

“신앙공동체는 별로 힘이 안되네요?”
“교회가 힘을 주는 건…… 일터에서 깨지고 되게 힘들 때 교회에 와서 사람들한테 하소연도 하고, 철야기도도 하고 그러면 뭔가 풀린듯, 치유 받은 듯한 느낌을 받아요. 주사 한 대 맞은 느낌이죠. 영양제 한 대 맞고, 어설픈 치유…… 눈물도 흘리면 뭔가 해소된 느낌이예요. 그렇게 불금을 보내죠. 주일에는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차원적인 질문은 하지 않은채 수다 떨듯 소그룹 모임을 하고 맛있는 것 먹고…… 일종의 취미활동, 사교활동을 하구요. 그러면 ‘오늘 하루도 잘 보냈네. 말씀도 좀 봤으니까 뿌듯하다’라는 마음으로 다시 월요일을 맞아요.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어찌보면 굳이 교회가 아니어도 가능한 활동들이네요. 기독교 신앙의 독특성이라기보다는 인간관계 등이 주는 역동…….”
“어릴 때부터 교회다니던 사람에게는 위안이 되죠. 그런게 어느 순간 싫증이 났어요. 뭔가 재미가 없었죠. 좀 더 깊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같이 이야기할 사람이 없어진 것도 있구요.”
“다 진급(!)해서요?”
“네, 그래서 후배들이랑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후배들은 별로 궁금해하지 않은 것 같았어요. 시도를 해봤는데, 후배들이 참여를 잘 안하고 흐지부지 되었죠.”
“아무래도 당장 와닿지 않는 주제라…….”
“혹시, 교회가 지영씨를 불러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을 돕고 싶으니 컨설팅을 해주시오’라고 부탁하면 무슨 이야기를 해주고 싶으세요?”
“저 자신도 모르겠는데 컨설팅은 무슨 컨설팅이예요.”

저는 지영씨와 마주 웃으며 다시 물었습니다.

“그래도 뭐라도 이야기해주세요.”
“몰라요.”
“그럼 질문을 약간 바꿔볼게요. 목회자들에겐 어떤 부탁을 하고 싶으세요?”
“흠…….”

한참 생각한 후 지영씨는 입을 열었습니다.

“목회를 하는 분들이 일반적으로는 신학공부하고 바로 교회로 오잖아요. 직장 생활을 안한 분들이 대부분이고, 일에 대한 걸 모르는 분이 많은 것 같아요. 어떻게 일 속에서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면 좋겠는데…… 처세술(술자리, 주일근무 피하는 법 등) 말고 일터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려주면 좋겠어요.”

#모순된 마음

“부모님도 기독교인이시면 지영씨 걱정을 많이 하시겠어요.”
“모르세요.” (웃음)
“아, 모르시면 걱정도 없겠네요.” (웃음)
“사실 아빠가 목사님이세요. 예전에 다니던 교회 근처에서 지금은 직장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했는데, 교회는 어디로 다니냐고 물어보셨죠. 직장 가까이에 있어서 종종 나가는 교회에 다닌다고 말씀드렸어요. 어른들은 그렇게 알고 계세요.”

약속한 인터뷰 시간이 꽤 많이 넘어간 시점에, 저는 지영씨가 자기를 소개할 때 ‘아직’ 결혼하지 않은 ‘1인가구’라고 말한 것을 떠올렸습니다.

“결혼을 ‘아직’ 안하셨다고 말씀하셨잖아요. 혹시 의도적으로 그 말을 쓰신 건가요?”
“음…… ‘아직’ 이라면 언젠가는 하겠다는 말이 되나요? 딱히 안하겠다는 생각도 아니고, 해야겠다는 생각도 아니예요. 그것도 제 인생의 고민 중 하나죠. 여성들은 결혼하며 인생이 크게 바뀌는 경우가 많잖아요. 대학을 가는데까진 자기 의지대로 왔더라도, 결혼하면 남편을 따라 가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과연 난 그렇게 살고 싶은가, 아니면 그렇게 살기 싫은가? 사실 잘 모르겠어요. 이 나이에 결혼하지 않은 사람으로…… ‘내가 주체적으로 삶을 살고 있나’라는 고민은 들어요. 지금까지는 그렇게 살았는데, ‘앞으로도 이대로 살수 있을까?’ 고민이 되요. 단적인 예를 들면요, 지금까지 마을도서관에서 8년 동안 일하며 이 월급으로 혼자 생활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나이 들어 병원갈 거 생각하고 이러면 이 일 계속 못해요. 그리고 제가 한 곳에 오래 있으면 되게 답답해하는 성격인데, 부산에 오래 살았어요. 이게 계속되면 힘들거 같은데, 삶을 변화시켜야 하는데…… 계기가 없어요. 지금까진 대학 진학 등이 삶의 터전을 옮기는 계기가 되어 주었죠. 하지만 이젠 결혼이 아니면 새로운 걸 할 계기가 잘 없는 나이가 되었어요. 그래서 누군가를 만나 결혼하고 그 사람을 따라 다른 곳에 가고 싶은 마음이 있기도 해요. 그런데 남편을 따라 그렇게 사는게 싫기도 하고…… 모순된 마음이 왔다갔다 해요.”

문득 지영씨의 SNS에 제주도에서 찍은 사진을 본 것이 생각났습니다.

“여행 좋아하시죠? 한 곳에 오래 머무는 걸 답답하게 느끼는 성격과 상관있는 건가요?”
“그것도 있긴한데요…… 그보다 혼자 사는 거, 남들이 보면 이게 엄청 좋아 보여요. 마음대로 살 수 있으니까요. 저도 이 삶이 좋구요. 하지만 이런 삶에서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그럴 때 여행을 하게 되요. 전 주로 제주도로 갔죠. 제주도 아니면 친구가 사는 곳. 친구를 만나려고 여행을 하거나, 출장 전후로 휴가를 받아서 출장간 김에 친구도 만나고 뭐 하는 걸 좋아해요. 제주도는 올레길이 있어서 혼자서 많이 걸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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