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상연정에서] 선교적 교회를 꿈꾸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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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한신 작성일 16-06-13 13:58본문
상연정(常戀亭)에서… - 선교적 교회를 꿈꾸며(2)
글 : 홍정환 자료개발위원
배경 및 등장인물 소개
상연정(常戀亭) : 일상생활을 사랑하는 정자[常戀亭]. 동방의 작은 나라에 위치한 곳으로 지자(知子)라는 지혜로운 노인이 머물러 후학들을 가르치는 곳. 인터넷 홈페이지 www.1391korea.net
지자(知子) : 호는 적신(赤身). 3M 정신(맨몸·맨주먹·맨땅)을 몸소 실천하기에 그리 부른다. 맨주먹으로 상연정을 지어 그곳에 머물면서 일상생활이 얼마나 가치롭고 고귀한 것인지를 연구·전파하기 위해 노심초사한다. 혹자는 사람 좋은 미소를 만면가득 지으면서도 맘에 안드는 일은 반드시 지목해서 말한다고 해서 그를 '지적신(指摘神)'이라고도 일컫는다.
종자(從子) : 상연정의 제자 중 가장 오랫동안 지자를 따랐던 제자[從子]. 스승의 말씀을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필기도구를 손에서 놓지 않는 메모광이며, 스승에 대한 충성심이 남달라서 바닥청소를 시키면 화장실청소까지 자청해서 하는 인물이라 혹자는 그가 지자의 '종'이라서 '종자'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식자(識子) : 하나를 들으면 열을 깨닫는 문일지십(聞一知十)의 기재. 아는 것이 많아서 식자(識子)라 불리우지만, 유달리 식욕을 절제할 줄 몰라 식자(食子)로도 불리우는 제자. 이성적이며 합리적 지식을 추구하는 모더니스트(modernist). 막내 제자인 적자(嫡子)와는 다소 껄끄러운 관계다.
적자(嫡子) : 상연정의 막내 제자. 먼저 입문한 선배들을 무시한 채 '스승의 지혜를 배울 뿐만 아니라 패션과 걸음걸이, 심지어 다이어트 경력까지 본받고 있는 나야말로 진정한 스승의 적자(嫡子)올시다'라며 설레발치는 당돌한 제자. 그때마다 식자는 싸늘한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며 '하나를 배우면 열을 잊어먹으니 너야말로 진정한 적자(赤字) 지성이로다!'라며 비아냥거린다.
캄캄한 하늘 사이로 쏟아진 굵은 빗발이 창문을 두드렸다. 창밖의 풍경만큼은 아니지만 실내도 어둑하긴 매한가지였다. 정전이라도 된 것일까? 연두색의 두툼한 양초 끝에 매달린 불꽃 하나만이 아스라이 실내를 밝히고 있었다. 양초는 불꽃과 더불어 은은한 향기를 실내에 가득 퍼트렸다.
“아…….”
흐릿한 촛불에 의지해 실내를 바쁘게 돌아다니던 사람이 굽어진 허리를 펴며 나직하게 한숨을 쉬었다. 그는 모자가 달린 갈색 망토를 걸치고 있었는데, 얼굴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있었다. 손등으로 허리를 몇 번 두드리던 그는 방 한켠에 있는 오디오로 가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1986년 오리지날 캐스트 버전의 OST CD를 집어넣었다. 6번 트랙의 “The phantom of the Opera”가 웅장하게 흘러나왔고 때마침 창밖에선 번개도 쳐주었다. 망토를 걸친 남자, 적자의 입에 미소가 걸렸다.
“이만하면… 완벽하다. 역시 팬텀은 제라드 버틀러보다 마이클 크로포드가…….”
순간! 어둑하던 실내가 깜빡거리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천장의 형광등이 일제히 켜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적자가 가장 껄끄러워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제, 지금 뭐하는건가?”
“사, 사형…… 오늘부터 함께 마이클 프로스트 선생과 앨런 허쉬 선생의 「새로운 교회가 온다」라는 책을 읽고 공부하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아무래도 혁명적인 내용이 담긴 책이니 뭔가 어둡고 신비스런 분위기가 좋을 것 같아서 제가 자리를 준비하고 있었지요.”
식자는 한숨을 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디서 구해왔는지 테이블 위에는 검은색 천을 씌워두었고, 제사상에서나 쓸법한 황동 촛대 위에 가까운 M마트에서 개당 5,000원에 구입했음이 틀림없는 라벤더향 아로마 양초가 꽂혀 있었다.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식자는 말했다.
“아니, 평소에 알던 사람들끼리 책 읽는 모임에 이 무슨 거창한 세팅인가? 게다가… 자네 꼴은 그게 뭔가? 자네가 간달프나 드루이드도 아니고, 혹시 무슨 코스프레 동호회 정모(정기모임)라도 참석하는 줄 알고 온겐가?”
“사형, 참 딱하십니다. 이런 이야기하시는 것 보니 책을 안 읽으신 것이 틀림없습니다. 3부 9장 ‘매체가 곧 메시지다’ 못 보셨습니까?”
“또 엉뚱한짓 하는구만. 오늘은 1부만 다루기로 하지 않았나? 그리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 복장, 이 분위기가 도대체 무슨 메시지를 전한다는 말인가?”
식자의 이마에 핏줄이 서기 시작했다. 저 게으르고 뻔뻔한, 게다가 고집까지 센 녀석이 오늘도 속을 뒤집어 놓는 것이었다.
“어허, 왜들 이렇게 시끄러워?”
문득 들려오는 목소리, 스승에게는 한없이 충성스러우나 아우들에게는 끝없이 엄격한 종자였다. 종자를 보자마자 식자와 적자는 다급히 변명부터 시작했다. 종자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종자는 한 마디 던지며 밖으로 나가려했다.
“두 사람 모두 조용히 하게!”
“큰 사형, 어디 가십니까?”
“뭐라고 말씀 좀 해주셔야지요? 이 꼴을 그냥 두고 보실 겝니까?”
“끄응… 잔말 말고 방 안에서 근신하고 있게. 스승님 천천히 오시라고 할테니 그 동안 여기 좀 치우고!”
종자는 거칠게 문을 닫으며 밖으로 나왔다. 그리곤 재빨리 휴대전화를 꺼내어 스승에게 전화를 했다.
[스승님, 접니다. 계획을 바꾸셔야겠습니다. 사제들이…… (후략).]
[으음…… 알겠다. 그럼 평범하게 들어가야겠구나. 조금 늦을 것 같다고 말해두거라.]
[예, 그렇지 않아도 사제들에게 일러두었습니다.]
종자의 전화를 받은 지자는 위장크림을 꼼꼼하게 발라 흑인처럼 시커멓게 변한 얼굴을 씻기 시작했다. 세안을 마친 후 지자의 입에서 아쉬움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모피어스 코스프레로 분위기 잡고 시작하려 했는데…….”
지자는 소화제가 들어있는 찹쌀 캡슐 두 개를 테이블에 내려둔채 집을 나섰다. 빨간 색 캡슐 하나, 파란색 캡슐 하나였다.
* * *
“모두 모였느냐?”
“예, 스승님. 맹자는 아내와 선약이 있어서 참석이 힘들겠다고 연락해왔습니다.”
“아쉽구나, 어쩔 수 없지. 이렇게 소박한 첫 모임도 나쁘지는 않구나.”
지자는 세 제자를 돌아보며 가벼이 한숨을 쉬었다.
“모두 책은 다 읽었겠지? 어디 느낀 바를 자연스럽게 이야기해보거라.”
“저부터 하겠습니다, 스승님!”
나서기 좋아하는 막내 제자, 적자가 말문을 열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초반부터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전에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삼은 것을 복음의 승리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오히려 그때부터 기독교가 길을 잘못 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더냐?”
“예, 그때부터 시작된 크리스텐덤(Christendom:Christian Kingdom,기독교 왕국) 교회의 DNA에 ‘끌어모으기식, 이원론적, 계층적’이라는 세 가지 결함이 포함되어 있다는 부분에 무릎을 쳤습니다. 제자가 평소부터 교회에 대해 고민하던 내용을 정확하게 요약해주었습니다. 특히 끌어모으기식 교회의 대안으로 삶의 현장으로 스며들어가는 성육신적 교회론을 제시하는데서는 오나전 ㅎㄷㄷ했습니다. 물론 식자 사형은 ‘불편’하셨겠지만요.”
식자가 발끈했다.
“왜 가만히 듣고 있는 나를 건드리는가?”
“그럼 아닙니까?”
“자네랑은 말 안하겠네. 스승님, 사실 제자는 이 책에서 현대 교회를 무조건 크리스텐덤 사고에 젖어있는 교회로 규정하는 방식이 불편했습니다.”
“것 보십시오.”
“자네랑은 말 안한데두! 아무튼 스승님, 약간만 문제있어뵈는 것은 무조건 크리스텐덤으로 몰아붙이는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성육신적 교회론 자체는 당연히 동의하지만, 이 책에서 세세히 언급하는 실제 예를 보다보면 당장 기존 교회를 해체하고 교회 개척에 뛰어들라는 것 같았습니다.
“진정들하거라. 종자는 어떠하더냐?”
지자는 달아오르는 분위기를 진정시키기 위해 종자에게 말을 시켰다. 메모의 달인 종자는 표지에 유성팬으로 ‘#48’이라고 써둔 대학노트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보냄받은 세상으로 스며드는 성육신적 교회론은 이미 스승님께 배워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은 풍성한 사례를 담고 있어 다소 두껍지만 재미있고 유익했습니다. 게다가 쥴리엣 비노쉬님…의 아름다운 자태가 빛났던 영화 <초콜릿>을 통해 그러한 교회론을 설명하는 장면에서는 그야말로…….”
옷깃을 여미며 쥴리엣 비노쉬를 언급하던 종자는 결국 목이 매여 말을 맺지 못했다. 그 틈에 다시 식자가 말했다.
“저도 불편하게만 보지는 않았습니다. 특히 이 책에서 제시한 중심구조와 경계구조를 통해서는 상당히 많은 통찰력을 얻었습니다. 끌어모으는 교회는 울타리를 쳐서 양을 가두는 경계구조의 목장으로, 성육신적 교회는 울타리는 없지만 우물을 중심으로 양이 머무르는 중심구조의 호주식 목장으로 설명하는 것을 읽으며 우리가 지향해야 할 새로운 교회의 특징을 감각적으로 이해하게 해주었습니다.”
“좋구나! 허면 우물, 즉 중심은 무엇이라야 하는지도 기억하느냐?”
“예수님이십니다!”
세 제자가 합창하듯 동시에 외쳤다. 지자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모두들 책을 제대로 읽었구나. 이 책이 말하는 새로운 교회란 실상 가장 익숙한 교회이니라. 오래전 피터 드러커 선생은 미국에서 가장 조직혁신을 잘한 곳으로 걸 스카우트을 꼽았지. 그리고 혁신의 중심에 있었던 걸 스카우트의 총수는 새로운 걸 하려했던 것이 아니라 걸 스카우트 본래의 정신을 충실히 구현한 것일 뿐이라고 대답했느니라. 단순히 유니폼 입고 로프나 들고 다니는 조직이 아니라, 여성에게 선거권도 없던 그 시절에 여성이 가치있는 존재로 살도록 애쓴 것이 걸 스카우트 정신이었다는게지. 이 책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새로운 교회, 변화된 기독교도 그런 것이 아니겠느냐?
“일종의 급진적인(radical) 근본주의라고도 할 수 있겠군요?”
적자의 반문에 지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지. 아, 이 좋은 책을 좀 더 많은 사람이 함께 읽으면 얼마나 좋을꼬?”
“그러게 말입니다. 맹자 이 자식이 결혼하더니 마누라 핑계나 대고…….”
스승의 눈빛을 살피는데 달인의 경지에 이른 종자는 빛의 속도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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