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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2016년 8월 일상사연 - 욱 하는 엄마의 희망사항(이하정,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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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 건 조회 4,787 회
작성일 16-08-01 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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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 하는 엄마의 희망사항
이하정

아이를 키우면서 나의 민낯을 자주 본다. 좋은 엄마가 되기는커녕 그냥 엄마가 되기도 힘들다. 아니, 점점 괴물이 되어 간다.

우리 첫째 진호는 너무 잘 운다. 친구들이 놀리는 말에도 마음이 상한다. 자신이 집중하고 있는 만들기나 그림 그리기가 누군가의 방해로 조금만 망가져도 경악하듯 울어 재낀다. 사람도 너무 좋아하고 호기심도 많고 순진해서 무슨 얘기든 진지하게 잘 듣고 반응하는 착한 아이인데 울 때는 정말 싫어진다. 왜 우는지 물어보지만 우는 진호 자체가 이미 맘에 들지 않아서 이유는 어찌됐든 울음을 그치라고 소리친다. 그럴수록 더 운다. 목청껏 억울함을 호소하듯. 심한 경우에는 진호를 문밖으로 쫓아낸 적도 몇 번 있다. 얼마나 잘못된 행동인지 안다. 요즘에는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혼내더라도 진호가 잘못한 것보다 더 크게 다그친다는 것이다. 특히 동생 진혁이와 싸우다가 진혁이를 때린 것보다 내가 진호를 더 심하게 때린 적이 많았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용서가 없는 얼마나 잔혹한 법칙인가 싶었다. 하지만 사실 제일 합리적이고 성경적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죄성 가득한 인간은 자신이 당한 것보다 수십 배 더 갚아주고야 마는 심정을 꿰뚫어본 것이 아닐까. 작은 잘못에 과하게 혼내고 난 뒤 매번 나는 후회하고 죄책감이 든다.

진호뿐만 아니다. 진혁이는 만화를 보다가 그만 보게 하면 울고불고 드러눕고 난리도 아니다. 엄마를 졸졸 따라다니며 조르고 울고 때리고…… 더 이상 참기 힘들어 엄청난 팔 스윙으로 엉덩이를 강타한다. 내 손이 다 얼얼하다. 진혁이는 엉덩이를 만지며 울면서 안아달라고 한다. 너가 좋아하는 카봇한테 가서 안아달라고 하라며 돌아선다.

세 아이와 잠을 잘 때가 제일 힘들다. 막내 진선이 재운다고 정신없는데 진혁이는 꼭 엄마와 자겠다고 진선이와 실랑이를 벌인다. 아빠도 소용없다. 남편이 늦게 오는 날이면 진호까지 거든다. 세 아이가 달려들어 서로 안아달라고 야단이다. 만만한 진호에게 고함을 지르고 진혁이를 발로 밀어버린다. 진선이는 안간힘을 쓰며 나에게 붙어있다. 결국 세 명 모두 목 놓아 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진선이도 점점 그 존재감(?)을 알리고 있다. 돌이 지난 지 한참인데 몸무게가 너무 적게 나간다. 10키로는 넘어야하는데 걱정이다. 밥을 잘 먹지 않는다. 한 숟가락 아니 밥 한 톨이라도 더 먹이려고 밥을 입에 넣으려고 애쓰는 그 시간들이 정말 지리하다. 어른 숟가락으로 한 번에 먹을 양을 대여섯 번 나눠서 주는 것이 너무 고역이다. 그것도 다 먹지 않고 반은 버린다. 밥그릇 집어 던지고 싶은 마음을 꾹 눌리고 줄지 않는 밥을 쳐다본다. 한숨이 길게 나온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숟가락을 입으로 가져가면 고개를 훽~ 돌린다.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짜증이란 정말…….

화난 용이 몸부림치며 불을 내뿜는 것처럼 온갖 분노를 아이들에게 쏟아놓고야 마는 괴물 같은 내 모습에 너무 지쳤다. 끔찍한 얘기지만 자신의 아이를 죽이기까지 때린 부모에 관한 뉴스가 생각난다. 그리고 어린 아기가 아파트 베란다에서 떨어지는 사건, 그 이면에 엄마가 던졌을 것이라는 추측에 고개를 끄덕인다. 이 정도면 정신과를 가야할까.

어디가도 성격 나쁘다는 소리를 별로 들은 적이 없었는데 이런 괴물이 내 안에 살고 있는 줄 몰랐다. 이 괴물을 대면하고 나니 한편으로는 자포자기의 마음도 생겼지만 오히려 마음이 덤덤했다. 어쩌겠는가. 이 모습이 나 인걸…….

화를 한 번도 내지 않고 아이를 키운다는 어떤 소수민족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화내지 않아도 아이들이 책임감 있고 독립적으로 잘 자란다고 했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아이들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주면 화낼 일이 없기도 하다. 생태 대안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이 고함지를 일이 없단다. 자연에서 마음껏 놀게 하니 친구들과 장난감으로 싸울 일도 없고, 진도에 맞는 수업을 한다며 아이들에게 틀에 잡힌 질서를 강요할 일도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엄마를 필요로 하고 어떤 것을 요구하는 일은 그 아이 수준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것들 중에 심하게 잘못된 것이 있을까. 무지막지하게 화내고 혼낼 일은 없을 것 같다.

나를 닮아서 잘 우는 진호. 우는 이유를 물어보고 문제를 해소시켜주면 뚝 그친다. 그동안 왜 우는지에 대해 충분히 들어줄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진선이를 낳고 난 후 더욱 그랬다. 해야 할 일이 많기도 했지만 울기만 하는 진호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싶은 마음이 부족했던 것 같다.

진호 진혁이가 서로 싸울 때 혹시나 다칠 일이 생길까봐 다급하게 중재하거나 아니면 진호를 혼내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그렇게 싸우다가도 금방 웃으며 뛰어노는 경우가 더 많았다. 가끔 다치기도 했지만 심하지 않았고 한번 울고는 아무렇지 않게 지냈다. 다칠지도 모른다는 걱정과 무조건 사이좋게 지내길 바라는 나의 기준을 너무 앞세우고 있는 건 아닌지…….

진혁이 나이 때 진호 역시 만화를 많이 봤지만 지금은 조절해서 적당히 본다. 만화를 많이 보는 것을 피해할 일이지만 그것보다 진혁이를 조금 더 기다려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지혜롭게 잘 다독거릴 수 있지 않을까.

10시 전에는 깊은 수면에 들어가야 성장호르몬이 잘 생성되고 면역력도 좋아진다. 그렇기에 잘 생각이 전혀 없는 아이들 모습에 이미 화가 나기 직전이다. 온갖 협박으로 몰아쳐서 재우려고 해도 결국 아이들은 11시 넘어서 잠든다. 훌쩍훌쩍 거리며 잠든 진호 진혁이를 보고 있노라면 왜 그렇게 무서운 목소리로 윽박질렀는지 후회가 밀려온다. 그냥 가만히 둬도 그 시간에 자게 될 일을 말이다.

한참 걸음마 하면서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한 진선이가 밥맛이 별로 없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 중에 하나이다. 밥은 덜 먹어도 사실 잘 자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이들 지금 모습을 하나씩 가만히 따져보니 불같이 화내던 것이 무색할 만큼 이해가 잘 된다. 화내기 전에 이해했더라면 좋았겠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부터라도 받아주기로 다짐해본다. 집안일은 그리 급하지 않기에 먼저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자. 아이들이 싸울 때 끼어들지 말고 크게 다치면서까지 심하게 싸우지 않을 것이라고 믿어보자. 만화 보는 것보다 같이 뒹굴며 놀도록 노력해야겠다. 면역력이나 성장호르몬도 좋지만 ‘지금 아이들이 엄마와 함께 웃으며 하루를 보내면 더 좋은 해피 바이러스가 생겨서 더 잘 자랄 것이다’라고 스스로 주문을 걸어보자. 그리고 화를 전혀 내지 않겠다는 섣부른 결심은 하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지지키 못할 것이니깐. 다만 미리 걱정하여 틀을 만들고는 아이들과 나 자신을 너무 옭아매지는 말아야겠다.

가끔은 결혼 하고 아이 키우면서 자라가는 인격만큼, 독신으로도 그 정도의 성숙에 이르고 곁에 좋은 공동체가 있다면 혼자 사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가보지 않을 길이기에 막연한 허상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어떤 인생을 살든 인격 성숙이 있어야 의미 있는 삶일 것이다. 내가 선택한 이 삶 속에서 억지스런(?) 좋은 엄마 보다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엄마의 모습으로 자라나갔으면 좋겠다. 덥고 습한 날에 온몸에 감기는 불쾌하기 짝이 없는 짜증이 가득한 일상이지만 아이들의 시원스레 웃는 소리를 단비 삼아 오늘 하루도 욱 하지 말고 견디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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