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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2018년 5월 일상사연 - 재봉실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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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29회 작성일 18-05-02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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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봉실 전경


“닉네임이요? 음…… 민트라고 해주세요. 지금 페퍼민트차를 마시고 있으니까요.”


인터뷰에 사용하고 싶은 닉네임이 혹시 있냐고 묻자 그 분은 자신을 ‘민트’라고 불러달라 했습니다. 대학생인 민트씨를 만난 것은 중간고사가 막 끝난 주간이었습니다. 몹시 지친 모습일거라는 저의 예상과 달리 민트씨의 얼굴에는 생기가 넘쳤습니다. 우리는 음료를 주문한 후 까페 창가 테이블에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중간고사 기간 동안 많이 힘드셨죠? 그래도 얼굴만 보면 되게 쌩쌩해 보이네요.”

“사실 우리과 학생들은 중간고사 기간이 약간 쉬는 시간 비슷한 때예요.”

“네? 그게 무슨 말이죠?”


선뜻 이해가 안가는 말에 저는 의미를 물어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민트씨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리과는 과제가 엄청 많거든요. 4학년은 비는 시간 날 때마다 거의 재봉실에 붙어있어야 하는데, 그나마 시험기간에는 재봉실에 안가요. 그래서 중간고사는 우리한테 조금 쉬어가는 기간처럼 여겨져요. 스트레스로 피부 뒤집어져 있던게 시험기간 동안 좋아지는 일도 있구요, 재봉실에 늘 앉아 있느라 아프던 허리도 많이 좋아져요.”

“아, 잘 모르는 세계의 이야기라 신기하네요. 그럼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가기 앞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민트씨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습니다.


“95년 생이예요. 한국 나이론 올해 스물네살이죠. 패션디자인 전공이구요, 4학년이예요. 원래는 졸업했어야 하는데, 작년에 3학년 마치고 1년 동안 휴학했다가 올해 1학기에 복학했어요. 지금은 대학생이면서 학교 앞에 있는 A사(일본 여성속옷 브랜드) 매장에서 알바를 하고 있어요.”

“아르바이트하는 곳도 잘 모르는 세계네요.”


저는 웃으며 말을 이었습니다.


“A사 매장에서 일하게 된 건 혹시 전공과 관련이 있나요? 그 분야 일을 미리 해보고 싶어서?”

“전혀요.”


민트씨는 손을 흔들며 웃었습니다.


“그냥 시간대 맞추다 보니 거기서 일하게 된거예요. 저는 주중엔 부산에서 학교 다니다가 주말엔 마산 집으로 내려가요. 휴학 중일 때 A사 마산점에서 일했는데, 복학할 때쯤 학교 앞 지점에 자리가 나와서 일할 수 있게 된거예요. 사실 마산점 매니져 언니가 소개해준 덕이에요. 감사하게도 화요일·목요일 선교단체 모임있는 날에는 쉴 수도 있고, 배려를 많이 받고 있어요.”

“마산에서 일을 되게 잘하셨나봐요. 의도한 건 아니지만 전공과 아예 무관한 일은 아닌 것 같네요. 원래 패션 쪽에 관심이 있으셨나요?”


#야망인가, 소명인가?


“어릴 때부터 미술 계통에 관심이 많긴 했어요. 유치원? 초등학생? 암튼 어릴 때부터. 그런데 따로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적은 없었어요.”

“그럼 고등학생 때 입시 미술을 배우기 시작한 건가요?”

“아뇨. 따로 미술학원 같은데 다녀본 적이 없었어요. 사실 우리학교 패션디자인학과를 선택한 중요한 이유가요…… 다른 학교에 가려면 실기 시험을 준비해야 하는데, 우리 학교는 실기를 안본다는게 컸어요. 패션디자인학과는 너무 가고 싶고, 입시학원을 다닐 상황은 못되고…… 그랬던 거죠.”


민트씨의 얼굴에 잠시 그늘이 졌습니다. 저는 조심스럽게 질문했습니다.


“대답하기 불편하시면 안하셔도 되는데요…… 입시학원 다닐 상황이 못되었다는 이야기를 조금 더 자세히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친언니는 피아노를 전공했어요. 우리 집 형편이 넉넉한 편이 아니라서, 첫째인 언니에게 교육적 지원이 모두 쏠렸죠. 당연히 언니는 피아노 학원도 주기적으로 다녔어요. 그리고 고등학교도 예고로 갔고요. 어떻게 생각하면 없는 형편에서도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거죠. 저는 뭐…….”

“언니가 피아노학원 다니는 걸 보면 ‘나도 미술학원 보내줘!’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한데, 안해보셨나요? 아니면 했는데도 거절 당하셨나요?”

“어…… 지금 생각해보면 사실 전 엄마아빠한테 요구를 당당히 하는 편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물론 투정은 부렸죠. 엄마랑 자주 싸웠어요(웃음). 하지만 구체적으로 뭘 해달라고 하는 데는 소극적이었어요. 그 전에, 어릴 때부터 엄마한테 미술학원 다니고 싶다고 말했다 거절을 많이 당했었거든요. ‘우리 집 형편 알면서’, ‘힘들 것 같다’ 이런 말 들으며 자연스럽게 포기를 하게 된거예요. 그러면서도 마음속에 꿈은 있었어요.”


분위기가 무거워지는 것 같아 질문의 방향을 조금 바꾸어보기로 했습니다.


“미술 계통에 관심이 많았다고 하셨는데, 하필 그 중에서도 패션에 관심을 가진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꾸미는 걸 좋아 했어요.”


민트씨의 눈이 반짝거렸습니다.


“전 초등학교 4학년부터 엄마가 사주는 옷을 안 입었어요. 옷 살 돈 받아서 친구들이랑 같이 시내에 나가서 골라서 사 입었죠. 그 전에 무슨 계기가 있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어요.”

“제 입장에선 정말 대단하다는 말씀밖엔 못드리겠네요. 제가 워낙 그런 쪽에 관심이 없기도 하지만…… 전 어릴 때나 지금이나 옷 사는 일이 진짜 힘들거든요. 흠흠…… 그럼 미술 계통, 특히 패션에 대한 관심은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쭉 가지고 온거네요.”

“맞아요.”

“더 대단하게 보이네요. 좋아했던 분야를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가 대학전공으로 선택한 사람이 그리 많지 않으니까요.”


민트씨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손을 흔들었습니다.


“아, 흔들림 없었던 건 아녜요. 고등학생 때 고민을 크게 했었어요.”

“……?”

“대학 진학을 위해 진로를 고민하던 중에, 패션이라는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때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당시엔 그래서 사회복지나 의료처럼 사람을 직접 돕는 일을 해야 그리스도인다운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때 고민 많이 했죠.”

“‘그리스도인은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하는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합당한 직업은 무엇인가?’식의 고민을 했었던 거군요.”

“맞아요. 그래서 물리치료나 사회복지 쪽도 알아봤어요. 그래도…… 그래도 패션을 하고 싶은 마음은 있어서 힘들었어요. 괜히…… 이게 내 야망인가, 하나님이 주신 소명인가…… 갈등을 많이 했어요.”


민트씨는 찻잔을 입에 가져갔습니다.


“쉽지 않은 상황이었네요. 예체능 쪽으로 어릴 때부터 준비를 계속해온 사람들은 강한 확신이 없더라도 지금까지 해온게 아까워서라도 관성적으로 그냥 하게 되는데, 민트씨는 흘러갈 관성이 없는데다가 정체성 고민까지 같이 하게 되었네요.”

“네네, 맞아요. 그러다가 어느 날 주일 예배 때 설교를 듣다가 패션 쪽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날 설교 내용을 다 기억 못하는데요, ‘하나님은 특정 영역뿐만 아니라 모든 일을 통해서 찬양받기 원하신다’라는게 주된 내용이었어요. 당장 내 생각엔 하나님과 상관없어 보이는 일이라 해도 하나님 보시기엔 모두 연결되어 있고, 하나님은 그 일을 통해 찬양 받기 원하신다는 생각에 결심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지금 우리 학교(패션디자인학과)랑 다른 학교(패션마케팅학과)에 지원했어요. 물론 둘 다 실기 안보는 학교였구요, 사실 전 디자인보다 영업, MD(merchandiser. 상품 판매를 위해 기획, 판촉 등을 담당하는 직업) 쪽에 관심이 더 많아서 다른 학교에 가고 싶었는데 떨어졌어요. 지금도 영업 쪽에 관심이 많아요.”

“그래요? 그럼 혹시 경영이나 마케팅 공부도 따로 하고 있나요? 상경계열 학과를 복수전공(혹은 부전공) 한다던지…….”


민트씨는 귀엽게 웃으며 눈가를 찡그렸습니다.


“그럴 시간이 없었어요. 일단 우리 전공 자체가 과제가 너무 많아요. 거기다가 선교단체랑 알바도 해야 해서요.” 


#악덕 사장


민트씨는 휴학 기간에 이어 지금까지 계속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문득 여행비용 마련, 사치품 구입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요즘 20대 중에는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사람도 많다는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슬쩍 한 번 찔러보았습니다.


“지금 대학생들 중엔 ‘생계형 알바’하는 사람도 많죠?”

“네, 저두요.”


민트씨는 냉큼 물었습니다.


“게다가 우리과 4학년은 졸업작품을 준비해야 하는데 제작비가 많이 들어요. 이번 학기엔 알바만 가지곤 해결이 안되어서 처음으로 생활비대출(한국장학재단)도 받았어요. 한 학기에 150만원까지 되더라구요.”

“모임 때문에 화·목 빠지는 것도 타격이 좀 있겠네요. 대학생활 하시는 동안 해온 아르바이트를 기억나는데로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음…… 잠시만요. 우선 고3 때 수능 친 후 부터 1학년 1학기까지 마트에 입점한 O 샐러드바에서 일했구요, 여름방학 때는 S 빙수에서 일했어요. 이땐 방학 내내 일 많이 해서 돈을 좀 모았어요. 그때 모아둔게 있어서 2학기 땐 알바 안할 수 있었죠. 그리고 겨울방학 때 시각장애인들께서 안마하시는 곳에서 캐셔로 일 했어요. 그 다음엔 2학년 1학기 때 D 도너츠에서 방학 때까지 일 했구요, 2학기 때 학교 도서관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일했어요. 그러다가 2학년 겨울 방학 때 P 제과점에서 짧게 알바 했어요. 간신히 구한 자리였는데, 너무 악덕 사장을 만나서 길게 일 못하고 그만뒀죠.”


민트씨는 숨은 언제 쉬나 싶은 속도로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그때 친구가 ‘내일로’(Rail-路/Rail-ro. 5일 또는 7일 연속으로 입석/자유석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철도 패스, 29세 이하만 이용가능)로 여행을 가자고 이야기했어요. 여행하려면 뭐라도 해서 돈을 벌어야 하니까, 즉석에서 또 알바를 구했죠. 에어컨 부품 조립하는 공장 알바였는데 이건 너무 힘들어서 며칠 못했어요. 그래도 ‘내일로’는 탈수 있었죠. 3학년 1학기 땐 ‘교외’ 근로장학생으로 선발되어서 학교에서 지정해주는 재활센터에서 지적장애인 직업교육 보조 봉사일을 했어요. 그걸 여름방학 때까지 했죠. 3학년 2학기부터 마산 A사에서 일했고, 휴학 중에도 계속 일했어요. 아, 그때 너무 인격적으로 서툰 매니저를 만나 휴학기간 4월 한달 동안엔 화장품 가게에서 일했어요. 매니저가 교체되고 제가 알바할 때 사원으로 일했던 언니가 매니저가 되면서 저를 다시 불렀죠. 원래 매니저 때문에 기존 사원, 알바들이 다 그만둬서 일을 할 줄 아는 사람이 필요했거든요. 복학 전까지 계속 A사(마산점)에서 일하다가, 지금(4학년 1학기)은 A사 우리 학교 앞 지점에서 일하고 있는 중이예요.”

“우와, 한 학기 빼곤 계속 일했네요. 표로 그리면 거의 빈틈이 없겠어요.”


감탄한 저는 인터뷰를 마친 후 민트씨의 알바 이력을 실제로 그려보았습니다. 빡빡한 글을 따라가기 힘든 분은 이 표를 보시면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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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민트씨의 알바 이력


한편,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에는 잠시 스쳐간 “악덕 사장”이란 말이 귀에 걸렸습니다.


“P 제과점에서 악덕 사장을 만났다고 하셨잖아요.”


민트씨의 얼굴이 딱딱해졌습니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나쁘신가보네요.”

“아, 진짜 심했어요.”

‘심했다’는 말과 함께 민트씨는 당시에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습니다.


“주말 알바였어요. 주말 오후 2시 부터 밤 10시까지가 근무 시간이었죠. 그런데 일 하는 동안 밥시간도 없고, 쉬는 시간도 없었어요(당시에 막 오픈하는 가게라서 그렇다고 사장이 변명). 그리고 퇴근시간도 10시를 지킨 적이 없고 늘 20-30분 더 일을 시켰어요. 밥은 한 번도 준 적이 없었구요.”


밥 한 번 준 적 없다는 말을 하는 민트씨의 눈에서 광채가 쏟아졌습니다.


“저는 알바를 많이 해봐서 체계를 알고 있어요. 결정적으로 제가 전에 일했던 D 도너츠랑 P 제과는 같은 계열사였어요. 그래서 이야기했죠. D 도너츠에서는 몇 시간 일하면 간식이 나오고, 밥은 어떻게 먹을 수 있게 해주고 등등……. 그러니까 사장이 ‘너처럼 따지는 알바는 처음’이라면서 ‘너도 우리 매장 상황 알지 않느냐. 오픈하는 단계에서 그렇게 할 수 없다. 안정되면 챙겨주겠다’라고 했어요. 전 그렇게는 못하겠으니 그만두겠다고 말했죠. 그리고 쉬는 시간 안 챙겨준 건 그렇다쳐도 연장 근무한 건 10분 단위로 챙겨서 돈 더 달라고 요구했어요(D 도너츠에선 그렇게 함). 그러니까 사장이 ‘너는 인간미가 없다’라고 하더라구요. 제가 ‘사장님도 자식 있지 않느냐, 자식이 이런 대우 받으며 일하면 좋겠냐?’라고 하니까 ‘그런 이야기는 꺼내지 마라’고 했어요. 꼴에 가족 건드리는 건 싫어했던 거죠. 결국 싸우고 나왔어요.”

“혹시 어디 신고는 안하셨어요?”

“솔직히 생각은 했어요. 제가 뭘 더 받으려는게 아니라 남아있는 사람들 처우 개선을 위해서.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불만이 없었어요. 그 사람들이 불만을 가지고 있었으면 전 그 사람들 위해서라도 신고하고 나오려 했었는데…… 저 혼자 유별나고 인간미 없는 사람이 되어서 그냥 나왔죠.”


민트씨의 이야기는 P 제과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O 샐러드바에서 일할 때도 되게 이상한 점장(남자)을 만났어요. 전 지각 안했는데요, 다른 알바생들이 1분만 지각해도 그 시간(한 시간) 임금을 통으로 날렸어요. 밥은 좁은 사무실에서 어제 했던 누런 밥이랑 컵라면을 먹게 했구요, 거기도 쉬는 시간은 안지켰어요. 그리고 아침에 알바생들 줄 세워서 군기 잡고, 여자들 외모 지적을 했죠.”


민트씨의 눈에서 줄기줄기 뿜어지는 레이저 광선을 피하며 저는 생각했습니다. ‘분명히 불합리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왜 다른 사람들은 불만이 없다고 했을까?’


“P 제과에 같이 일하던 사람들은 민트씨랑 나이가…….”

“저랑 비슷했어요. 조금 많거나.”

“그분들은 왜 불만이 없었을까요? 민트씨 말씀을 들어보니 불만을 표현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아예 불만 자체가 없었던 것 같은데요.”


민트씨는 찻잔 손잡이를 만지며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음…… 지금 생각해보면요, 제가 P 제과에서 문제를 문제로 인식할 수 있었던 이유는 D 도너츠에서 교육을 받았던게 큰 거 같아요. D 도너츠는 직영점이라(P 제과는 가맹점) 알바들에게 체계적으로 시급, 쉬는 시간 등등을 교육 시켰어요.”

“근로조건 교육을 받고 안받고의 차이가 컸던 거네요.”

“네. 먼저 배우고 일하니, 그게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죠. 근로자의 권리를 알게 된거예요. 사실 저도 전에 O 샐러드바에서 부당한 대우 받으면서도 이상하게 생각을 못했어요.10시 퇴근시간을 안지켜주고 20-30분 더 일하게 해도 ‘손님이 많으니 더 일 해야지’라고 생각했고, 부당한 지적을 받아도 ‘내가 잘못한거니까 참아야지’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여러 알바를 경험하고 교육을 받아보니 그게 아니란 걸 알게 되었어요. 저도 1, 2학년 때는 그런 생각을 잘 못했는데, 3학년 때부턴 주휴수당을 따지기 시작했어요. 아마 P 제과의 언니들은 그런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문제를 문제로 여기지 못했을 거예요.”

“교육이 중요하다?”

“그렇게 생각해요.”


민트씨는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표정을 보니 우리나라의 근로기준법에 해당하는 내용을 어린 시절부터 정규교육과정을 통해 배우는 몇 나라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공교육에서 해결해주면 좋겠지만, 민트씨가 개인적으로라도 알바의 권리를 알려주는 역할을 하시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다른 사람들은 옷 패턴 뜨는 일엔 별로 관심이 없을 테니까요.”

“옷은 사 입어야죠, 만들어 입는게 아녜요.”


우리는 함께 웃었습니다.


#재봉실 전경


“전공 이야기로 돌아가보죠. 초반에 재봉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힘든지 말씀하셨어요. 오히려 시험기간이 잠시 쉬어가는 시간으로 여겨진다는 말씀도 하셨구요. 조금 전에 하신 ‘옷은 사 입는 것이지 만들어 입는게 아니다’라는 말씀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면 될까요?”

“맞아요. 마지막 말은 사실 교수님들이 하시는 말씀이죠.”


저는 환하게 웃는 민트씨에게 평범한 하루 일과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물었습니다.


“음…… 아침에 일어나면 (수업시간만 아니면) 일단 과제를 하러 가죠. 재봉실로 가는 거죠. 오후 5~10시는 알바하구요(월·수·금만. 화·목은 선교단체 모임), 마친 후에 다시 재봉실로 가요. 그날 컨디션에 따라서 귀가 시간은 늘 다르구요. 과제 분량이 너무 많아요.”

“재봉실 모양을 묘사해주실 수 있나요?”

“맨 앞엔 교수님 강의용 칠판이 있구요, 양옆으로 재봉틀이 쫙 나열되어 있고, 중간엔 큰 책상(작업대)이 있고, 밑 끝에 스팀 다리미…….”

“잠시만요.”


저는 민트씨의 말을 잠깐 멈추게 했습니다. 말로 듣는 것보다 그림을 부탁하는 것이 좋겠다 싶어서였습니다. 그런데 가방을 아무리 뒤져봐도 볼펜만 있고 종이는 없었습니다.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


저는 종이 냅킨을 한 장 얻으려 카운터에 갔지만, 그 까페는 냅킨을 제공하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쓸 수 있는 것은 티슈뿐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티슈를 한 장 뽑아와 반 접어 재봉실 전경을 그려달라 부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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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재봉실 전경


“재봉실에서 부딪히는 현실적인 문제들이 많이 있죠?”


민트씨는 볼에 바람을 불어넣었다가 빼기를 몇 번 되풀이한 후 대답했습니다.


“생각보다 작업에 드는 에너지가…… 옷을 만드는데 들어가는데 에너지가 진짜 커요. 먼지가 많아서 피부도 진짜 나빠지구요. 시험 기간에는 재봉실 안간다고 했잖아요, 시험기간 직전에 1차 디자인 심사를 마치니까, 중간고사는 우리한테 조금 쉬는 기간인거죠. 재봉실에서 먼지 때문에 여드름 나고, 허리 아프고…… 그래도 계속 과제하면서 친구들끼리 ‘우리 공순이 같다’는 소리 많이 해요(웃음). 옷 조각조각 패턴이 숫자와 관련이 커서 깔끔하게 하려면 시침핀을 빼곡히 꽂아서 신경 써서 해야 하거든요, 주머니랑 카라 만드는 거, 어려워요. 벨트 만드는 거, 진짜 어려워요. 그래서 교수님들도 ‘옷은 만드는게 아니라 사입는 거다’라고 말씀하시죠.”

“먼지가 많으면 호흡기에도 안좋겠네요.”

“그렇죠. 다 마스크 끼고 해요. 먼지만 많은게 아니라 건조하기도 하고…….”

“많이 힘드시겠네요.”


민트씨는 씨익 웃었습니다.


“힘들긴 한데요, 그래도 재미있을 때도 많아요. 친구들이랑 같이 작업하면서 서로 이야기하고, 누가 배고프다 먼저 말 꺼내면 즉석에서 음식 시켜먹고…… 힘들긴 한데, 다같이 힘드니까 재미있으며 힘들어요. 같이 고생하고, 같이 교수님 험담하고, 재료 부족한 사람 한 명이 시장에 간다고 하면 여기저기서 가는 길에 자기 재료 사달라고 우루루 부탁하고…… 재미있어요.”

“꼭 남자들이 군대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하네요. 같이 고생하니 버틸만하다는…… 3학년 때까진 이 정도로 힘들진 않았죠?”

“그렇죠. 4학년은 아무래도 졸업작품을 준비해야 하니까요.”

“몸 말고 마음이 힘든 건 없나요?”

“마음…….”


민트씨는 ‘마음’이란 말에 수식어를 덧붙였습니다.


“조급한 마음…… 조급한 마음이 절 힘들게 해요. 4학년 1학기 때 작품 만들고, 방학 때 모델 섭외해서 도록(圖錄) 만들고, 2학기 때 쇼를 해야해요. ‘이 정도 시간이면 결과물이 나오겠지’라고 예상했는데, 막상 하다보니 그게 아닌 거예요. ‘과연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며 두려움이 몰려오죠.”

“공감해요. 저도 마감기한 안에 글 쓰려고 하다보면, 생각했던 것보다 안풀리고 시간만 흘러갈 때 정말 미치겠더라구요. 아내는 제가 잠못자고 밤새는 걸 걱정하지만, 사실 전 밤새는 것보다 마치지 못하는게 더 걱정이예요.”


우리는 둘 다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참, 도록 촬영할 때랑 쇼 할 때, 이렇게 두 번 모델이 필요하네요. 그것도 돈들잖아요. 학교에서 지원이 좀 되나요?”

“아뇨, 모델 섭외해서 도록 촬영하고, 장소(BEXCO; 부산전시컨벤션센터) 대관해서 쇼하는 것도 다 우리가 돈 모아서 해요. 우리학교 단독으로 하는 건 아니구요, 부산지역에 있는 대학교 패션디자인 4학년생들이 연합으로 해요.”

“으…… 다른 학교랑 같이 하면 교수님들끼리도 불꽃 튀겠네요. 자존심 때문에.”

“그렇죠. 교수님들 입김이 많이 들어가서 트러블도 많고, 학생들이 지쳐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내 작품 만들고 싶은데, 교수님이 본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피드백 주시면 다시 만들어야 해요. A 교수 피드백 받고 만들었더니 B 교수는 마음에 안들어하는 일도 많고…… 학생들은 지쳐가며 결국 ‘패스만 하자’는 마음을 먹게되요.”

“…….”

“그러면서 서로 위로하고 같이 교수님 까고…….”


우리는 다시 함께 웃었습니다.


“연대감이 생기지 않을 수 없겠네요.”

“4학년 때 재봉실에서 깊어지는게 1-3학년 때보다 훨씬 더 큰 거 같아요. 그 전에도 별 이야기를 다 하지만, 서로에 대해 훨씬 더 많이 알고 많이 친해지고…… 그리고 니꺼, 내꺼도 많이 허물어지고…….”


#비그리스도인에게서 배우는 하나님 나라


“어쨌든 하루하루가 굉장히 힘들다는 느낌은 팍팍 오네요. 수업 듣고 졸업작품 준비만 해도 힘에 부칠 텐데, 아르바이트도 하시고, 선교단체 활동도 하시고…….”

“가정 형편이 괜찮은 아이들은 알바 안하죠. 그러니 체력적인 여유도 있고 거기에 몰두할 수도 있구요. 교수님도 ‘4학년이 무슨 알바냐? 졸업작품에 몰두해야지’라고 말씀하실 때가 종종 있어요. 솔직히 전 그 때 상처 받았어요. 하고 싶어서 하는게 아닌데 말이죠.”


저는 속에서 올라오는 질문을 잠시 누르고 있다가 꺼냈습니다.


“비슷한 일이 신앙공동체 안에서도 있지 않았나요?”

“음…… 1학년 때, 4학년 오빠랑 일대일로 대화를 했어요. 제가 알바 하니까 바쁘고 피곤한 걸 보면서, ‘그거 안했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이야기했어요. 그 오빠는 외동아들이었는데요, 되게 부자는 아니라도 힘들지는 않은 집인 걸로 알고 있어요. 제가 하는 걸 단순한 용돈벌이로 생각한 거예요. 사고 싶은 것 더 사려는 것 정도로 받아들였죠. 전 ‘그게 아니라 당장의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다’, ‘우리 집에 대학생이 세 명이라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했어요. 다행히 그 오빠는 잘 받아들여서 잘 마무리 되었어요.”


저는 뒤통수를 긁었습니다. ‘혹시 나도 비슷한 말을 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에 순간 등줄기에 땀이 나는 것 같았습니다.


“일상의 업무가 하나님의 부름이라 생각하세요?”

“네, 예전에는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냥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생각을 많이 해요. 하나님과 동행하며 정직하게, 성실하게 일상의 업무를 해나가는 것…… 지금은 딱 요 정도예요. 사실 그리스도인으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는 고민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계속 고민해야 할텐데, 지금은 딱 요 정도…….”


잠시 생각을 고른 후 민트씨는 말을 이었습니다.


“한편 이런 생각도 들어요. 지금도 이렇게 바쁘고 분주한데…… 내가 일하려는 계통은 주일이라고 따로 쉴 수 있는 직장이 잘 없을텐데,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단순히 주일성수는 옳고, 주일출근은 그르다는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은 해요.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뭔가 스스로 합리화하려는 마음인 것 같기도 하고…… 율법주의가 되지 않으면서도 자기 합리화에 빠지지 않는 적정한 선이 있기는 한건가 고민도 되고 그래요.”

“바쁘게 일하는 동안, 일을 통해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거나, 일 때문에 더 멀어진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있으세요?”

“전 일 자체보다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돌보심을 많이 느껴요. 알바하는 곳의 직원들, 학교 친구들과 깊은 대화를 나눌 때, 고민을 나누며 은연 중 하나님이 떠오르고 상대방을 통해 내게 있었던 유사한 경험이 떠올라요. 그러면서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진다는 느낌이 들어요. 현장에서 함께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하나님이 느껴지고 더 가까워진다는 생각을 하는거죠. 특히 비그리스도인인 학과 친구들과의 만남에서도 그런 걸 많이 느껴요.”


‘관계’를 이야기할 때 민트씨의 눈은 더욱 빛났습니다. 저는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부탁했습니다.


“A사(마산점)에서 일할 때, 솔직히 말해 제가 잘한 것도 있지만(웃음), 좋은 만남을 경험했어요. 전 일 할 땐 되게 성실하고 꼼꼼하게 하는 스타일이예요. ‘정직하게 일하자’, ‘성실하게 일하자’ 두 가지가 제 마인드구요, 출퇴근도 정확해요. 게다가 저는 판매직이랑 잘 맞아서 열정적으로 했어요. 손님이랑 대화도 잘 했구요. 그래서 매니저 언니가 아껴줬어요. 사실 전 친구가 아닌 사람, 비즈니스 관계로 만난 사람들과 깊이 있는 소통이 이뤄질까에 대한 걱정이 좀 있었어요. 그런데 매니저 언니를 통해 부하직원을 인격적으로 대하는게 어떤 건지 실제로 배우게 됐어요. IVF를 통해 배우긴 했지만, 실제로 그걸 경험한 건 매니저 언니가 인격적으로 직원들을 대우하는 걸 통해서였어요.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마인드를 실제로 경험한 거 같아요.


90분을 약속하고 시작한 인터뷰는 어느새 세 시간 가까이 진행되었습니다. 저는 민트씨에게 마무리 질문을 던졌습니다.


“민트씨 나름대로 경험한 것과 고민한 것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거라 생각해요. 혹시 일과 신앙, 혹은 전공공부와 신앙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고민하는 후배가 있다면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으세요?”

“조언요? 제가요?”

“부탁합니다.”


당황하는 민트씨의 표정을 보며 저는 씨익 웃었습니다.


“음…… 예술인으로써…… 1, 2학년 때 ‘하나님과 예술이 무슨 상관이 있는가?’를 많이 고민했어요. 여전히 고민하는 과정에 있지만…… 하고 싶은 말이…… 예술이란게…… 아, 진짜…… 아, <예술과 기독교>(IVP, 2002)에 잘 정리되어 있으니 그 책을 읽어라! 흐흐흐…….”

“무책임하기 짝이 없군요.”


저도 민트씨도 크게 웃었습니다.


“암튼 제 수준에서 이야기하자면, 그런 고민들을 하고 있는 학생이 있는가하면 반면에 안그런 학생도 있어요. 물론 이런 건 다른 사람에게도 다 대입할 수 있는 문제지만, 특히 예술인으로써의 정체성, 그런 것들을……. 아, 정리가 안되어 해줄 말이…….”


말이 풀리지 않자 민트씨는 손으로 얼굴을 가렸습니다. 손가락 사이로 민트씨의 눈동자가 대굴대굴 구르는게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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