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딜, 월요일을 기다리는 사람들 - 10. 타협은 더러운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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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한신 작성일 13-07-08 09:19본문
[TGIM 자료]
윌리엄 딜, 월요일을 기다리는 사람들, IVP, 1998
제4부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
10. 타협은 더러운 것이 아니다
'타협'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다. 가장 일반적인 용례는 상호 양보를 통해 차이점을 해결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우리가 일상생활 가운데서 언제나 하는 일이다.
그리스도인들 역시 언제나 이런 타협을 하며 산다.
다만,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양보라는 뜻으로서의 타협이 문제된다.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양보란 어떤 사람이 절대적인 윤리적 혹은 종교적 원칙을 양보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도대체 어떤 것이 절대적 원칙이며, 또 만일 한 가지 절대 원칙을 고수할 경우 필연적으로 다른 절대 원칙이 포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종교적 절대 원칙 문제 전반에 대해 바울이 한 충고는 반드시 읽을 필요가 있다. "...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니 지식은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되었느니라"(고전 8:1-3).
지금 우리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우리가 하나님 사랑이라는 이 한 가지 절대 원칙을 받아들인다면, 절대로 타협 불가능한 다른 원칙이 있을 수 있겠는가?
진실을 말하는 것이 절대 원칙이라지만, 거짓말을 하는 것 외에는 누군가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길이 전혀 없는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타협하려 하지 않겠는가? 죄렌 키에르케고르는 기독교는 교리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기독교는 일련의 법칙이나 명제들을 믿는 것이 아니다. 신앙이란 실존적 선택의 문제이다. 그리스도인은 각 상황의 맥락에서 어떤 길이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지를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절대 가치나 원칙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사실 실존적 선택이란, 먼저 우리에게 강력한 도덕 원칙이 있을 때에만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종교적/도덕적 절대 원칙은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선택 상황에 임할 때 반드시 먼저 갖추어야 할 분석 도구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리스도인은 그 어떤 절대 원칙이라 할지라도 옆으로 제쳐둘 줄도 알아야 한다. 만약 어떤 극단적인 상황에서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잘 성취될 수 있는 유일한 길로 여겨질 때는 말이다.
우리는 자신이 하나님의 제사장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사랑과 정의를 위해 세상 속으로 파견된 그분의 대사들이다. 그러므로 주어진 상황 속에서 어떤 도덕적, 종교적 원칙으로 인해 하나님의 역사가 좌절되도록 놔두어서는 안된다. 예수님은 그러시지 않았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이렇게 말했다. "원칙이란 단지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도구일 뿐이다. 도움이 되지 않을 때는 언제든지 버리는 도구 말이다."
따라서 어떻게 정의되든 타협이란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의 일부이다. 우리가 세상 속에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바로 타협을 통해서이다. 우리를 지배하려 드는 정사와 권세들과 타협을 해야 하는가? 물론 그렇다!
우리는 경쟁 사회라는 권세와 타협을 벌인다. 우리는 경쟁이 지닌 좋은 면을 이용해서 성장, 업무 향상, 잠재력 개발 등을 장려할 수 있다. 그러나 경쟁은 우리를 지배하려고 하는 악마적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알기에, 우리는 조심스럽게 경쟁에 관여한다.
우리는 일이라는 정사와 타협을 벌인다. 우리는 부모로서, 학생으로서, 직장인으로서, 자원봉사자로서 일을 통해 하나님과 이웃을 섬긴다. 그러나 일을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분의 창조 세계를 섬길 때, 그 일이 우리를 노예로 삼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도 유념한다.
우리는 조직체에 참여할 때에 타협을 벌인다. 그것에 의해 삶이 지배당할 수도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하나님은 바로 이러한 창조 세계의 질서를 통해 세상에 사랑과 정의를 가져오신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어느 정도 삶의 안정이 필요함을 인정한다. 그러나 안정이라는 권세에 지배당할 수 있음을 알기에, 거기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기 위해 그 힘과 타협을 벌인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기관에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에 쉽게 중독될 수 있음을 기억하면서, 조심스럽게 그리고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해 이 힘을 사용한다.
우리가 이렇게 이 세상의 정사와 권세들과 타협을 벌일 수 있는 이유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로워진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복음을 이해하고 신뢰하며 복음대로 산다면, 그 권세들은 결코 우리를 지배하지 못한다. 우리는 자신에 대해서는 겸손해야 하나, 우리를 통해 일하시는 성령의 능력에 대해서는 커다란 확신을 가져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라인홀트 니버가 했던 기도를 우리 자신의 기도로 삼아야 한다. "오, 하나님. 우리에게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한 마음을, 우리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를 그리고 그 둘 사이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 정리 : 울산점장 정한신(greenecho7@gmail.com) 201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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