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량연구소 ELBiS Club 갈라디아서 6장 1절 10절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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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1391 작성일 16-12-06 23:52본문
ELBiS Club 갈라디아서 6장 1절 10절 요약 161206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과 율법아래 사는 삶을 비교(5:18)하던 바울은 이제 구체적으로 성령으로 살고 행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합니다. 이미 오늘 본문 바로 앞 문맥에서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라는 권면에서 보듯이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은 전적으로 개인의 내성(內省)적 삶이 아니라 공동체적 특성을 지니게 마련입니다.
성령으로 산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1)공동체 안에서 타인의 범죄를 대하게 될 때 가지는 모습에서 드러납니다(1-5절). 성령의 사람은(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회복적(restorative) 의도를 가지고 범죄한 형제를 대합니다. 이것이 서로 짐을 지는 것이며 이를 통해 그리스도의 법(cf.5:14 “온 율법”-서로 사랑)을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2절). 그러나 동시에 타인의 범죄를 대할 때 그 과정에서 자신을 성찰(reflective)하는 모습 역시 드러나는 것이 성령의 사람입니다. “자신을 살펴보아(1절)”“자기의 일을 살피라(4절)”라고 강조하는 바울은 자칫 율법주의적 태도가 갖는 비교우위의식을 겨냥하는 이야기를 3-5절에서 강조하여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자기의 짐을”지는 것입니다.
1절에서 5절까지 범죄라는 부정적인 상황에서의 이야기를 했다면 6절에서 10절에서 바울은 성령으로 산다는 것의 적극적인 상황을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착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는 재정을 기부하는 것을 의미하는 당시의 기술적 표현이라고 합니다. “좋은 것을 함께하라(6절)” “선을 행하되(9절)” “착한 일을 하되(10절)” 이렇게 세 번이나 비슷한 표현을 사용하여서 “성령을 위하여 심는” 혹은 성령에 심어서 결국 성령의 열매를 거두는 성령으로 행하는 삶이 얼마나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공동체와 타자에 대한 헌신으로 드러나야 하는 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범죄한 공동체의 지체들과 비교하여 “스스로 속”이므로(3절) 도덕적 우월감을 가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선을 행할 필요가 있는 즉 물질적이고 구체적인 필요를 가진 모든 이들, 믿음의 가정들, 그리고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의 필요에 “스스로 속이”는 방식(7절)으로 하나님을 업신여기며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을 수 가 있습니다. 이것은 율법주의적이고 기계적이고 종교적인 방식으로 이 모든 덕목을 대하는 이들이 가지는 태도일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질 경우 필요를 가진 자들의 목록을 보면서 불편해 하거나 재단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불편한 마음으로 이런 권면을 듣게 됩니다. 그래서 때로 낙심하거나 포기하는 자리에 이릅니다. 전적으로 반대되는 태도를 가질 때, 즉 신령한(성령의) 사람,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만이 그 열매, 영생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한 편 이러한 상호 회복을 위한 권면과 자기성찰, 그리고 물질의 나눔은 기본적으로 매우 상식적이어서 다양한 종교 전통에서 비슷하게 등장하는 내용일 것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아도 상식적으로 강조할 수 있는 내용이라면 오늘 본문을 통해 기독교 윤리의 독특성을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물론 다양한 방식으로 이러한 삶이 삼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연유된다는 것을 밝힐 수 있겠지만 오히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어쩌면 옛 율법, 유대주의적 전통을 엄수해야 한다고 가르쳤던 사람들에게 이런 매우 상식적이고 당연한 삶에 대한 감각이 결여되기 십상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쩌면 종교 의식을 정교하게 발전시키고 준수하면서 율법주의적이고 종교적이 될수록 당대의 시민사회의 보편적 윤리의식과 오히려 멀어져 버리는 모습, 즉 한국 개신교회의 지금 모습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무 것도 아닌 주제에 뭔가 된 것처럼 자신의 윤리에 취해 사는 사람들에게 우롱당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바울은 자기중심성에 취해 착한 체 하는 행동이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아마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은 동일하게 보일 수 있겠으나, 율법에 지배받는 정신과 성령님께 이끌리어 사는 삶은 커다란 차이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일,삶,구원 지성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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