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BiS Club 창세기 9장 1절- 17절 하나님의 은혜와 배려가 우리의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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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1391 작성일 09-01-17 23:38본문
ELBiS Club 창세기 9장 1절- 17절
하나님의 은혜와 배려가 우리의 소망입니다
노아의 가족이 홍수이후에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는 장면(1-7)과 노아의 가족을 포함하는 모든 생물과 하나님이 맺으시는 언약의 장면(8-17)이 오늘의 본문이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시는 장면은 창세기 1장과 연관되어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것이지만 그러나 이 단계에서 하나님께서는 땅의 생물들을 식물로 주시고 그로 인하여 생물들이 인간을 두려워할 것이라는 독특한 언급을 하신다. 왜 이런 허용을 하셨을까 하는 질문에 우리는 아마 홍수후의 (생태계의) 상황 때문에 인간의 먹을 것을 걱정하시고 배려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까(복이라는 언급을 생각할 때) 생각해 보게 된다. 동시에 하나님은 피째 고기를 먹지 말라는 명령을 통해 인간을 배려하시면서 허용하시지만 남용을 자제시키기 위해 유보조항을 두시는 것을 느끼게 된다. 생물의 피에 대한 언급에서 사람의 피에 대한 언급으로의 발전은 하나님께서 이제 새로운 인간 세계 속에서 생명의 존엄함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하나님이 노아뿐 아니라 모든 생물과 이제 언약을 맺으시고 다시는 홍수로 멸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시는 장면은 사뭇 충격적이다. 구원론을 인간과 인간의 영혼에만 결부시키는 오늘날의 좁은 구원론에서 피조세계 전체를 포괄하는 성경적인 총체적 구원론의 시각을 여기서도 발견하게 된다. 아이들을 엄하게 훈육한 뒤 다시는 매를 들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는 부모처럼 하나님께서도 무지게를 기억의 매개로 하여 자신의 의지를 강하게 보이고 계신다. 다시 한 번 무지개는 인간이나 생물들이 그것을 보고 전지구적 심판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도구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이 그 무지개를 보시고 언약을 기억하신다는 점이 중요하다.
본문 전체는 홍수 이후의 세계를 보존하시려는 하나님의 마음과 열정이 느껴지는 본문이었다. 하나님의 호의속에서 새로운 출발이 시작되지만 은연중에 인간의 역사에 있을 어떤 뭔가 뚜렷하지 않고 모호하지만 비극적인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는 것도 느껴지는 본문이다. 그리고 바로 다음 본문에서 노아와 노아의 자손들의 실패의 에피소드가 그것을 확증한다. 이 모든 것 배후에서 하나님은 여전히 인간을 배려하시고 일상적인 먹을 것을 허용하시고 무지개를 바라보시면서 스스로 억누르시고 참으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이런 은혜가 없다면, 하나님이 인류를 보존하시고, 생태계와 생물을 보전하시려는 은혜가 없다면 우리에게 어떤 소망이라도 남아 있을 수 있을까?
하나님의 은혜와 배려가 우리의 소망입니다
노아의 가족이 홍수이후에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는 장면(1-7)과 노아의 가족을 포함하는 모든 생물과 하나님이 맺으시는 언약의 장면(8-17)이 오늘의 본문이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시는 장면은 창세기 1장과 연관되어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것이지만 그러나 이 단계에서 하나님께서는 땅의 생물들을 식물로 주시고 그로 인하여 생물들이 인간을 두려워할 것이라는 독특한 언급을 하신다. 왜 이런 허용을 하셨을까 하는 질문에 우리는 아마 홍수후의 (생태계의) 상황 때문에 인간의 먹을 것을 걱정하시고 배려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까(복이라는 언급을 생각할 때) 생각해 보게 된다. 동시에 하나님은 피째 고기를 먹지 말라는 명령을 통해 인간을 배려하시면서 허용하시지만 남용을 자제시키기 위해 유보조항을 두시는 것을 느끼게 된다. 생물의 피에 대한 언급에서 사람의 피에 대한 언급으로의 발전은 하나님께서 이제 새로운 인간 세계 속에서 생명의 존엄함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하나님이 노아뿐 아니라 모든 생물과 이제 언약을 맺으시고 다시는 홍수로 멸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시는 장면은 사뭇 충격적이다. 구원론을 인간과 인간의 영혼에만 결부시키는 오늘날의 좁은 구원론에서 피조세계 전체를 포괄하는 성경적인 총체적 구원론의 시각을 여기서도 발견하게 된다. 아이들을 엄하게 훈육한 뒤 다시는 매를 들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는 부모처럼 하나님께서도 무지게를 기억의 매개로 하여 자신의 의지를 강하게 보이고 계신다. 다시 한 번 무지개는 인간이나 생물들이 그것을 보고 전지구적 심판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도구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이 그 무지개를 보시고 언약을 기억하신다는 점이 중요하다.
본문 전체는 홍수 이후의 세계를 보존하시려는 하나님의 마음과 열정이 느껴지는 본문이었다. 하나님의 호의속에서 새로운 출발이 시작되지만 은연중에 인간의 역사에 있을 어떤 뭔가 뚜렷하지 않고 모호하지만 비극적인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는 것도 느껴지는 본문이다. 그리고 바로 다음 본문에서 노아와 노아의 자손들의 실패의 에피소드가 그것을 확증한다. 이 모든 것 배후에서 하나님은 여전히 인간을 배려하시고 일상적인 먹을 것을 허용하시고 무지개를 바라보시면서 스스로 억누르시고 참으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이런 은혜가 없다면, 하나님이 인류를 보존하시고, 생태계와 생물을 보전하시려는 은혜가 없다면 우리에게 어떤 소망이라도 남아 있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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