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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온라인 ELBiS Club 전도서 4장 1절 16절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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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 건 조회 1,849 회
작성일 21-10-23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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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 브리 오레 시스 성서 사람 삼위 일체 춤, 기타, 사랑, 기타 png | PNGEgg

 

온라인 ELBiS Club 전도서 4장 1절 16절 요약 211022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고 믿기만 하면 자동적으로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잘되고 안전하며 복을 받는다는 진술은 삶의 현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없는 것 같은, “사람(13회반복)”들의 세상 속에서 삶을 제대로 반영하는 것은 아닌 듯 합니다. 성경은 무성의하고 어설프게 인생에 대해 낙관과 희망을 제시하는 책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이란 엉망진창이며 다른 말로 “헛된”(수수께끼같고 알 수 없고 종잡을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을 가감없이 이야기하는 것이 성경이고 특히 전도서입니다. 이런 헛된 세상을 바로 보고 깨닫도록(1,4,7,15절) 공동체, 회중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것이 바로 전도자 (코헬렛 설교가, 이야기꾼)입니다.

 

오늘 본문의 반복에 유의하다 보니 “더 낫다”라는 말이 4개의 문단(1-3,4-6,7-12,13-16)에 고루 퍼져 반복되고 있는데 이것은 지금까지 계속되는 헤벨이란 주제를 더 강화하는 동시에 약간의 숨통을 제공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본문이 이야기하는 4가지 “헛됨”(4,7,8,16) 즉 억압과 폭력의 현실(1-3), 경쟁심에서 비롯되는 노력(4-6), 혼자하는 수고(7-8), 그리고 통치제도(13-16)속에서도, 그래도 “더 나은” 삶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싶어합니다. 헛된 세상에서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낫다”라고 할 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1절에서 3절에 나오는 “더 낫다(더 복되다)”는 것은 방금 전술한 것과는 사뭇 다릅니다. 그 말이 긍정적인 방향이기 보다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 혹은 아예 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 낫다” 라는 말은 오히려 “세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못된 일”의 헛됨을 더 도드라지게 보이려는 효과를 가질 뿐 아니라, 능숙한 이야기꾼으로 전도서 전체의 주제인 “헤벨” “헛되다”의 새로운 변주를 “더 낫다”라는 언어(토브격언_특강전도서)를 통해 풀어내려는 의도로 충격적인 인트로를 사용하고 있는 것같이 보입니다. 이와 조금 다르지만 13절에서 16절에 사용되는 “더 낫다”이야기 역시 그렇지만 긍정적인 결론이 아니라 부정적인 결론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생뚱맞습니다. 그러나 이런 부정적인 방향의 일치의 관점에서 1-3절과 13-16절을 수미상관하게 보면 재미있게도 온갖 억압과 폭력이라는 것이 통치제도와 연결되는 점이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폭력과 권력의 관계에 대해 생각이 확장됩니다. 대조되는 억누르는 사람과 억눌리는 사람사이의 폭력과 못된 일은 어리석은 왕과 가난하지만 슬기로운 그리고 감옥살이한 젊은이의 대조에 드러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왕의 후계자가 된 젊은이의 통치는 억눌리던 사람이 억누르는 사람이 될 수 있음을 그래서 권력과 제도가 헛됨을 보게 됩니다. (아마도 독자 혹은 청중들은 이 대목에서 사울, 다윗, 솔로몬 과 같은 구체적인 인물들을 떠 올렸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런 부정적인 방향의 “더 낫다” 이야기를 너머 그래도 긍정적인 “더 낫다” 이야기를 본문의 중간 두 개의 “더 낫다”이야기에서 보게 됩니다. 첫째는 6절의 “적게 가지고 편안한 것이 많이 가지려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는 것보다 낫다.”라는 격언입니다. 우리말로 안빈낙도(安貧樂道)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두 번째는 9절의 “혼자보다는 둘이 더 낫다.”라는 말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 하나, 둘, 셋으로 연결되는 더불어 사는 삶, 공동체, 연결되어 사는 삶이야 말로 4장이라는 찐빵의 앙꼬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코헬렛, 전도자는 이 헤벨, 헛된 세상속에서 그래도 조금 더 나은 삶이란 더불어 함께 하는 삶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라는 것이지요.

 

“혼자는 외롭고 함께하는 것은 괴롭다.” 촌철살인의 표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공동체다”“그래도 함께하는 삶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오늘 본문에서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 억압과 폭력의 연쇄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1-3절). 둘째, 경쟁심, 비교의식을 벗어버리고 안빈낙도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적게 가지고 편안한” 마음태도가 필요합니다(4-6절). 셋째, 왕으로서 통치하는 것 즉 제도화된 권력의 생리, 리더십의 함정을 이해하고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13-16절). 여기서 또 다시 억압과 폭력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쉽지는 않지만 이 헤벨한 세상속에서 그나마 “더 나은” 삶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혼자가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는 삶, 공동체에서 그 가능성을 보게 될 것입니다. 당연히 성경연구도 혼자보다는 공동체가 더 낫습니다.^^

 

삶,일,구원(3191) 지성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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