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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ELBiS Club 전도서 10장 1절 20절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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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 건 조회 1,933 회
작성일 21-12-11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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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BiS Club 전도서 10장 1절 20절 요약 211210

 

어리석음을 대하는 지혜(어리석음)에 대하여

 

전도자가 이야기하는 지혜는 양면적입니다. 지혜를 무조건 긍정하는 잠언과 차별점이 있습니다. 지혜를 무시해서는 안 되겠지만 지혜를 맹신해서도 안 된다는 7장의 이야기에서, 8장으로 넘어가면 상투적인 하나님이해에서 온 일반적인 지혜가 아닌 미지의 하나님이해에서 온 지혜속에서 일상을 누리며 살것에 대한 제안을, 그리고 9장에서는 인간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을 현재의 운명과 아이러니를 넘어서, 이해하기도 파악하기도 어렵지만 하나님의 주권으로 이해하게 될 때 그제서야 삶의 의미들이 새로워 지는 것이며 그 가운데 그 삶을 누리고 즐기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9장 하반부에서 다시 지혜가 중요하지만 세상에서 지혜가 멸시받는 현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10장은 이런 분위기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때 이해할 수 있습니다.

 

10장은 처음 읽으면 마치 잠언을 읽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절 상호간에 연결도 쉽지 않고, 각 절의 내용은 그 말 자체로 금언처럼 쉽게 이해되지만 왜 이 말이 여기에 있는지 생각하기에는 파악이 쉽지 않습니다. 분명 “지혜(1,2,10,12)”에 대한 전도자의 이야기가 계속되고 있지만 특히 10장은 지혜의 반대 개념인 “어리석음(9회 사용, 1절의 경우 개역개정은 “적은 우매가”)”을 통해 전도자 코헬렛이 말하려는 지혜를 이야기하려는 것 같습니다. 이 “어리석음”으로 서로 파편적인 것 같은 10장 전체 구절을 관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절에서 3절은 지혜와 어리석음의 일반적 대조를, 4절에서 7절은 통치자의 어리석음(에 대한 반응)을, 8절에서 11절은 생활속에서 어리석음의 예를, 12절에서 15절은 말과 어리석음의 문제를, 16절에서 20절은 어리석은 왕(의 나라)와 그에 대한 반응의 문제를 다루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흩어져 있는 것 같은 금언을 “어리석음(과 지혜)”이라는 화두로 묶을 수 있는 근거는 10장이 어쩌면 바로 앞 문맥인 9장 17절과 18절의 설명 혹은 주석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통치자의 고함치는 명령보다는, 차라리 지혜로운 사람의 조용한 말을 듣는 것이 더 낫다. 지혜가 전쟁무기보다 더 낫지만, 죄인 하나가 많은 선한 것을 망칠 수 있다.” 특히 18절 하반절은 그대로 10장 1절과 댓구를 이루며 반복 강화되는 표현임을 직감할 수 있습니다.

 

특히 본문을 전체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10장 전체의 일반적인 금언(교훈)들 사이에 구체적인 인칭대명사를 사용하여 권면하는 4절에서 6절과 20절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화자인 나는 당연히 설득하고 있는 코헬렛 전도자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너”는 누구를 이야기하는지 질문을 해 볼 수 있고 여기 권면을 받는 사람인 “너”가 어리석음에 이르지 않게 하려는 것이 화자인 전도자의 의도일 것입니다. 지금 그는 4절에서 7절 사이에서 통치자의 큰 허물인 인사의 난맥상을 보고 있어서 자신의 자리(post)를 팽개치고 싶을 지경에 있는 자이며, 16절에서 20절에서는 준비되지 않은 (어리석은 왕과 잔치에 빠진 대신들과 같은) 지도자, 공동번역의 표현대로 19절의 “잔치는 기뻐하려고 벌이는 것이다. 포도주는 인생을 즐겁게 하고, 돈은 만사를 해결한다”라고 어리석게 떠벌이는 지도자를 대하여 욕이 나오려고 하는 자입니다. 근대의 관점에서 이런 어리석은 지도자를 만나면 즉각적으로 반대하고 갈아 치워야 한다고 해야 하겠지만 우선 본문의 시대는 그런 시대는 아니라는 점을 감안해야 합니다. 어리석은 지도자의 힘은 13절에서 말하는 “사악한 광기”로 치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리석은 지도자들을 대할 때 어리석어지지 않을 수 있는 지혜가 무엇인지 오늘 본문이 이야기한다고 볼 때 드디어 10장 전체가 일이관지해 지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보면 8절에서 11절까지의 일상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어이없는 일들처럼 어리석은 자에 대해 울컥해서 뭔가 해보려 하다가 오히려 망치는, 일이 되게 하기 보다는 일을 거스리는(8-9), 준비되지 않아서 실패하는(10-11), 1절의 표현처럼 향수에 빠져 죽은 파리(1절)같은 우매자가 되는 것입니다. 12절에서 14절 상반절까지 어리석은 말도 일반적인 말에 대한 언급의 차원을 넘어 어리석은 통치자에 대해 하는 말인 듯 합니다. 물론 통치자 바로 앞에서 하는 말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back talk일 가능성이 많아 보입니다. 그것을 20절에서는 마음속으로 욕하는 것과 잠자리에서 저주하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말이든 어떤 행동이든 그것이 단순한 감정의 표현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이 말과 행동이 어떤 변화(특히 이런 고대사회에서는)를 가져올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14절 하반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는 사람은 없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라고 질문한 뒤에 15절에서 “제 집으로 가는 길조차 못 찾는 어리석은 자는, 일을 해도 피곤하기만 하다.”라고 말합니다. 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은데 감정으로 행동하고 말하면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4절에서 “침착하면 (calmness) 큰 잘못을 막을 수 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진짜 변화를 위한다면 섣부르게 말하고 행동하여 국에 코 빠뜨리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냉철하고 침착하게 다른 말로 “지혜”로 어리석음을 이겨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보면 10장이 어리석은 당대의 통치자들을 바라보는 (9장의 가난하지만 젊고 지혜로운) 회중들이 어리석은 선택으로 선한 목적을 망치지 않도록 하는 권면으로 볼 수 있지만 동시에 이 모든 어리석음에 대한 이야기는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어리석음에 대한 금언적 통찰로도 충분히 이해 가능합니다.

 

10장을 읽을 때 21세기 한국 사회속에서 정치지도자연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통치자에게서 볼 수 있는 큰 허물들, 화를 내는 통치자, “어리석은 사람을 높은 자리에 앉히고 귀한 사람을 낮은 자리에 앉히는” 사례들을 수시로 보고 있습니다. “잔치는 기뻐하려고 벌이는 것이다. 포도주(술)는 인생을 즐겁게 하고, 돈은 만사를 해결한다”라고 내심 생각하거나 떠벌이며 지도자연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갑니다. 본문은 일차적으로 이런 자들의 어리석음에 대한 제대로 된 통렬한 비평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런 이들을 대하면서 특히 sns를 통해 또 다른 어리석음으로 제대로 된 변화를 이루지 못할 어리석은 (비속어를 비롯한) 말, 말, 말들과 현명하지 못한(침착하지 못한) 처신들 또한 스쳐 지나갑니다. “향수에 빠져 죽은 파리가 향수에서 악취가 나게 하듯이, 변변치 않은 적은 일 하나(적은 우매)가 지혜를 가리고 명예를 더럽힌다”는 1절의 말씀을 다시 곰씹어 보게 됩니다.

 

삶,일,구원 (3191) 지성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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