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ETT 요한복음 12장 12절 36절 요약 10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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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1391 작성일 10-05-25 17:15본문
ETT 요한복음 12장 12절 36절 요약 100525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은 많은 무리들이 열광하는 가운데 영광을 받으시는 것 같습니다. 무리들은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17절) 일로 인해 예수께서 이스라엘의 왕(13절)이 되리라고 열광할 만 하였습니다. 그들은 43절의 표현대로 늘 사람의 영광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에 이리 몰려들어 심지어 바리새인들이 이 현상에 주눅들어 “볼지어다 너희 하는 일이 쓸 데 없다 보라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라고 할 정도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34절을 기점으로 이런 무리들의 열광적인 반응은 의혹과 불신앙으로 급속하게 바뀝니다. “이에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 함을 들었거늘 너는 어찌하여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하느냐 이 인자는 누구냐.”
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되었는지가 오늘 본문에 차근차근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선 호산나 외치며 이스라엘의 왕으로 추대하려는 무리들의 환호에 걸맞지 않은 어린 나귀를 보시고 그 나귀를 타고 행차하십니다. 요한은 이 당시 제자들도 이 의미를 깨닫지 못했지만 나중에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스가랴 9장 9절의 말씀의 성취를 위해 하신 행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리나 제자들이 생각한 영광과 예수님이 생각하신 영광이 차이가 있다는 이 사건은 바로 이어 개종한 헬라인 몇이 예수님과 만나고 싶다고 빌립에게 청하고 빌립은 이 이야기를 안드레에게 하여 두 사람이 이 문제를 갖고 예수님에게 이야기했을 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속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23절에서 28절까지의 예수님의 말씀, 그리고 하늘에서 들린 아버지의 음성에서 강조되어 반복되는 단어가 다름아닌 “영광”입니다.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라는 첫 선언은 처음 들을 때는 헬라인들까지 추종하는 그런 영광을 의미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예수님이 생각하시는 “영광을 얻을 때”는 “죽음,”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것이었고, 마음이 괴로워서 이 때를 면하고 싶은 그런 “때”였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 많은 열매를 맺는 방식,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므로 영생하도록 보전하는 방식이 예수님이 생각하시는 영광의 때였고 이것은 다름 아닌 구속의 사건들, 십자가와 부활, 성령강림과 교회를 통해 일어날 구속사적 사건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영광”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현현인 쉐키나(shekinah)를 말하는 것인데 이런 쉐키나를 사실 무리들은 곁에 서서 들으며 실제로 경험합니다. 28절과 29절을 보면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라고 아뢰실 때 하늘에서 소리가 납니다.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이 말씀을 듣는 무리는 천둥소리나 혹은 천사의 말로 이 사건을 대합니다. 이런 모든 경험속에서조차 이 무리들은 자신들의 방식, 자신들의 관심속에서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영광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를 위한” “이 세상” “모든 사람”에 대한 관심을 계속해서 내 비치시지만(30-32절), 이들은 자신들의 관점에 걸맞지 않는 예수님의 발언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합니다. 34절의 이들의 문제제기는 그리스도가 자신들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영원히 계셔야 하는 데 왜 영원히 계시지 않고 “들려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이 이유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힘듭니다만 분명한 것은 예수님의 말씀에 어딘가로 움직이겠다는 말이 마음에 걸리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26절 나 있는 곳에, 32절 내게로, 그리고 36절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이들이 생각하는 영광은 이 땅에서 누리는 모종의 영광인 반면에 예수님께서 보여주시고(나귀타는 것을 통해) 말씀하시는 영광은 뭔가 다른 느낌의 것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본문에서 위로가 되는 것은 예수님도 이런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삶에 있어 “마음이 괴로우”셨고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구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괴로움을 극복하는 길을 아버지 하나님께 구하고 그분과 대화하는 것을 통해 구하셨습니다. 삼위일체의 역동, 페리코레시스 안으로 들어갈 때에야만 사람의 영광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게 됩니다.
일,삶,구원 지성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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