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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아버지: 기독교 복음의 핵심 재발견, 톰 스매일, IVP 제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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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08-09-03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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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아버지: 기독교 복음의 핵심 재발견, 톰 스매일, IVP

 

제1장 아버지를 찾아서

저자의 두가지 경험에서 이 책이 출발

아버지 부재와 은사주의 경험

 

일반적 가정에서의 아버지

아들들에 관해서는 일종의 통합자,

아들은 자기 위에 하나의 표준, 교정책, 보호자를 가지게 되며 누군가를 의지하는 것의 안전함을 알게 됨

이런 아버지의 부재가 최악의 불행은 아닌 것은 이런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버지, 연약함으로 포기하거나, 관심이 없거나, 자녀에 대한 공감이나 이해없이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위압하는 아버지를 둔다는 것이 더욱 불행하기 때문

아버지가 제대로 역할을 하는 가정에서 자란 사람들은 통합된 인격을 가지고, 권위자의 주장에 건강하게 대처할 수 있으며, 자신을 연약하게 만드는 많은 염려와 무력하게 만드는 두려움으로부터 지켜주는 , 삶에 대한 자신 있는 자세를 가질 가능성이 훨씬 더 많다. (15)

 

은사주의 갱신운동과 하나님의 아버지되심

은사주의 갱신 운동이 현재 겪고 있는 질병에 대해 한 문장으로 처방 진단한다면, 하나님 아버지를 알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그러나 어떠한 비판도 그것을 바로 잡고 심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해야지 취소해 버리는 것을 목표로 해서는 안된다.)

1)수적 증가와 유지에 실패한 것보다 더 나쁜 것은 성숙에 실패한 것-만병통치적 약속들로 인해 믿음과 기대의 수준을 낮추게 되고 실망과 환멸의 흔적만 남았음

2)복음을 전하고 사회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행동하라는 부르심을 희생시켜 가면서까지, 개인적 체험과 심지어 사소한 섭리들에 집착하는 경향

3)자신들만 성령을 갖고 있다는 주장-건전한 신학이나 현재의 갱신체험은 이것을 지지않음

자신에 이기적인 관심에서 성부 하나님의 보편적인 목적과 뜻에 대한 새로운 순종으로 관심사를 전환할 필요가 있다.

 

삼위일체내에서의 성부 하나님

성부 하나님이 창조에서나 구속에서나 모든 것의 원천이신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것의 목표이시며, 성자와 성령의 사명은 성부의 영광을 드러내고 그분이 만유의 주로 만유 안에 계시게 하는 것.

최근 몇 년간의 하나님 교리에 대한 관심은 적절한 교리적 논의라기보다는 주로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것의 기초, 가능성, 의미에 관한 변증적 관심이었다.

 

삼위일체

1)하나님은 자신을 삼위일체로 계시하신다. (계시적 경륜적 economic 삼위일체)

신약에서 우리는 동일한 하나님을 세 번 만난다. 영광가운데 하늘에 계신 하나님인 성부, 사람으로 성육신하신 하나님인 성자, 교회와 신자들에게 내주하여 권능을 주시는 하나님, 한 분 하나님이 세 가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사시며, 서로 경쟁하거나 나란히 존재하는 세신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신비이다.

2)하나님 자체가 삼위일체시다. (내재적 본질적 immanent 삼위일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복합적인 관계는 하나님이 우리와 교통하시는 수단일 뿐만 아니라, 그 교통의 본질적인 내용이다. 하나님이 역사안에서 성부, 성자, 성령으로 행하실 뿐 아니라, 그분 자체가 성부, 성자, 성령이시다.

 

교회의 삼위일체적 모습

그리스도안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역사적 행동의 모습과 하나님 자신의 삶의 모습이 삼위일체적이라면, 교회의 삶의 모습 역시 삼위일체적이어야 한다.

교회는 교리와 예배와 교제와 증거에서 성부, 성자, 성령과 대등하고 적절하게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다.

삼위일체의 위격중 하나를 적절히 공경하거나 서로의 적절한 관계들을 깨닫는 데 실패한 예들

1)성자없는 성부-철학자들이 말하는 멀리 떨어진 존재, 토론대상으로서의 하나님, 제일원인, 지적설계자-인격적 임재와 권능이기보다는 하나의 개념 혹은 전제, 경배의 대상이기보다는 관심의 주제가 됨, but 성자와 성령없이는 성부도 없다 (요14:6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

2)성령으로만-개인과 집단의 생생한 종교적 경험을 최종적 권위로 삼은-성령의 영역은 성부와 성자의 영역에 전적으로 종속되어 있다. 성령의 진정한 사역을 인식하고 평가할 수 있는 규범과 척도는 그것이 복음서에 묘사된 성부와 성자의 규범적 행동의 반영이며 결과인가 하는 점

3)성자 홀로-십자가 중심적 복음주의, 루터교 전통-회심을 삶의 변화보다 믿음의 변화로 이해-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객관적인 사역과 우리안에서 행하시는 성령의 체험적인 사역이 균형을 이룰 필요-최근의 경향

4)성부없는 성자와 성령-예수님과 성령님을 우리를 “위한”분으로 이해-사람중심적이고 필요중심적으로 복음을 왜곡할 위험-우리 자신의 가장 큰 필요는 자신의 필요에 사로잡혀 있는 것에서 순종 중심의 기독교로 전환하는 것

 

결론

전체 삼위일체에 대한, 성령과 성자 또한 성부에 대한 전적인 방향설정이 필요하다. 인간의 주된 목적이 영혼이 구원을 받거나 육체가 치유되거나 심지어 교회가 부흥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영화롭게하고 그분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임을 상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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