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아버지: 기독교 복음의 핵심 재발견, 톰 스매일, IVP 제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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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상선약수 작성일 08-09-10 01:46본문
잊혀진 아버지: 기독교 복음의 핵심 재발견, 톰 스매일, IVP
제2장 아버지를 발견함
아바에게 부르짖음
‘퀴리오스 예수스(Kurios Ieous 예수는 주님이시다 고전 12:3)’와 ‘압하, 호 파테르(Abba, ho Pater 아바, 아버지 롬 8:15 ; 갈 4:6)’ 두 가지 고백 - 성령이 역사하신 직접적 결과
전자는 사람들을 향한 신앙 고백이며, 후자는 믿음의 고백이기보다는 찬양의 외침이다.
(아바라는 부르짖음은 맥락과 의미에서 암시적으로 삼위일체적이다.)
1. 아바라는 부르짖음 - 그 역사적 위치
a. 성경적 의미 : 이 부르짖음은 아버지의 개념이 ‘자녀들에게 평생의 절대적 감독자이며 주권적 보호자’(탕자의 비유)였던 이질적 문화에서 처음 발언됨. 자녀의 순종을 받을 권위 있고 절대적인 권리를 가진 분.
b. ‘아바’는 ‘창조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 애니미즘에서 플라톤 철학에 이르기까지(예수님보다 훨씬 이전부터) 종교인들은 신들과 하나님에 대해 아버지라고 말해왔다. 보편적 신적 아버지되심이라는 개념은 예수님의 가르침보다 시기적으로 앞선 것임. 19세기 자유주의 개신교는 하나님이 자연적이고 보편적인 아버지라는 것과 그 결과 모든 사람이 형제라는 것을 자신들의 ‘복음’의 두 기둥으로 삼았음(히브리 및 기독교 전통보다는 이교 및 헬라주의적 기원들에 더 가까움)
c. 구약적 배경 : 신적 아버지됨에 대한 이교적 개념들과 의도적이고 근본적으로 반대되는 방향으로 규정. 구약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말하는 것을 매우 삼감. 제한적으로 사용될 때도 창조와 자연적 관계라는 맥락이 아니라 역사적 선택과 최종적 구속이라는 맥락에서였음. 또한 구약에서 아버지는 자기 아들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으나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태도는 애정보다는 존중과 존경이었다. 인간 아버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십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 출 20:12).
d. 예수님의 입에서
i. 아바 - 신뢰하고 순종해야 할 분
아버지의 아들됨은 순종의 의무에서 면제되는 특권을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고난의 잔을 마시고 그분의 뜻에 기꺼이 따르는 것을 함의. 이것은 명령에 의해 강요당하는 법적인 순종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사랑에 대한 신뢰의 반응이다.
ii. 겟세마네에서의 아바
겟세마네에서 아바라 말씀하신 이유. 예수님이 순종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 복음에서 말하는 하나님 아버지는 언제나 예수님과 그분의 구원 사역이라는 견지에서만 규정될 수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언제나 모든 사람의 아버지였다는 일반적 진리가 아니라 예수님이 겟세마네에서 보여주신 것과 같은 순종과 신뢰의 관계를 맺을 때 우리의 아버지도 되신다고 하는 복된 소식을 전해주심. ‘우리 아버지’는 모든 사람의 기도가 아니라 겟세마네 동산과 십자가에서 아바라고 말씀하신 분을 따르는 제자들의 기도다.
iii. 아바 - 새로운 관계를 나타내는 새로운 단어
‘아바’는 가정에서 일상에 쓰이는 아람어. 유대교의 기도 문헌 중 예배나 개인 기도 때 하나님을 아바라고 부른 경우가 없었음. 허물없는 친숙함이 아니라 가장 깊고도 가장 신뢰하는 경외감을 나타내는 표현. 순종하는 경외감이 관계의 핵심인 가족 내에서 사용하는 친밀함의 표현.
2. 아바라는 부르짖음과 성령
하나님의 아버지되심은 그리스도인의 체험의 중심이지만 모든 그리스도인이 이런 관계를 자동적으로 깨닫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가르침이나 권면 받음으로써가 아니라, 성령의 독특한 결과로만 가능하다. 하나님이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에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게 하셔야 한다(갈 4:6).
a. 아바의 자녀들 : 로마서 8:15에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는 성령은 동시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우리 영혼에 증거하시는 동일한 성령이심. 하나님과의 관계를 실존적으로 발견함으로써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된다. 성령의 권능으로 이 관계를 분명히 이해하는 것이 우리를 가장 잘 치유하는 일이다.
b. 아바를 아는 것 - 은사 : 이러한 발견은 성령 하나님의 값없는 선물이다. 우리는 아바라고 부를 수 있기 전에, 성령이 우리 마음속에서 그 말씀 하시는 것을 들어야 한다. 우리 영혼은 그 선포의 중심이자 수령인으로 확실히 포함되지만, 그 권위는 성령께 분명히 속해있다. 성령은 정서와 지성보다 깊은 우리 존재의 원천에서 예수님의 아버지가 또한 우리의 아버지시라고 확신시켜 주신다. 그때 모든 사람의 삶이 새롭게 변화되기 시작한다.
c. 아바의 아들들은 아바의 상속자들이다 : 바울은 상속자가 되는 것이 아들이 되는 것의 결과임을 강조했다(롬 8장, 갈 4장). 상속자로서의 유업, 즉 그리스도의 유업은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순종과 권위, 겸손과 위대함, 약함과 권능, 고난과 영광, 죽음과 부활, 섬김과 통치의 독특한 결합에 들어가는 것이다(유업에 대한 이런 정의는 고통없는 감각적 해결책에만 관심이 있는 값싼 은사주의적 승리주의를 폭로한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고 하면서 이러한 유업을 피할 수 없다.
d. 아바와 그리스도의 관계에 참여함 :
자녀들의 유업에 대한 이야기는 또한 그들의 성화에 대한 이야기다. 십자가의 순종과 부활에 우리가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음주의자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들어가는 것에 집중하여 구원 이후의 삶이 성숙하는 문제에서 힘을 잃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윤리적 행동, 종교적 관행, 복음 전도의 의무라는 외적인 기준들에 순응하는 문제인 양 생각. 성장이 없는 상태 - 탁아소 같은 교회(후안 까를로스 오르띠즈).
갱신 운동은 그리스도인과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생명이 표현되는 것을 보려는 열망’ 때문에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는 것에 대한 신약의 가르침을 무시한 것 같다. 갱신 운동에는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서라는 명령이 현저히 결여되어있었다.
하지만 (고린도 교회처럼) 갱신 운동은 성령의 역사이며, 그렇기에 바로잡고 회복할 수 있는 잠재력이 매우 크다. 갱신 운동은 성령 충만이 그저 은사와 사역만으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윤리적인 열매와 은혜로 구성되어 있음을 잘 안다.
이 책의 주제
그리스도인의 성숙과 거룩함을 은사주의적인 체험과 그 표현들 자체를 편협하게 추구하는 것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아바 아버지를 실존적으로 재발견하는데서 찾아야 한다는 것. 하나님 아버지께 향할 때,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시작했던 때를 되돌아보거나 성령 안에서 그것이 표현되는 것을 외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표(tleos)를 바라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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