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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2022-2기 2022-2기 수료 현수돈님 피드백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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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 건 조회 1,063 회
작성일 22-08-08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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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 “우리를 ReFrame하는 이야기”

(1) 강의의 내용중 나에게 새로운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내가 무엇을 해야만 할까’란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난 어떤 이야기의 한 부분인가’라는 질문에 먼저 답할 수 있어야 한다”라는 알라스데어 매킨타이어의 이야기가 큰 울림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늘 성경의 이야기를 내 삶에 끌어다 맞추곤 하는데 반대로 하나님의 이야기 속에 나의 삶의 이야기는 어디쯤 속해 있는가를 아는 것이 이 복잡한 세상에서 방향을 잃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나침반이 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2) 어떤 질문(의문)이 생겼습니까?

하나님의 큰 그림 속에 일상의 삶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왜 그동안 교회에서는 많이 듣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여기 몽골에서도 최근 3-4년 전부터 크리스찬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나의 일상의 삶은 신앙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솟구치고 있습니다. 교회 설교나 성경공부를 통해서는 그런 이야기를 별로 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주로 세상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후퇴”하여 거룩한? 삶을 지켜야 한다는 메시지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최근까지도 일상의 삶이 하나님의 이야기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이야기는 풀타임 전임 사역자들의 신학과 큰 충동을 일으키는 것을 흔히 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목회자들이 왜 이런 것을 캐치하고 있지 못한지 참으로 강한 의문이 듭니다.

(3) 이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계신다고 생각합니까?

코로나 엔데믹에 이르면서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이 다시 돌아옵니다. 그러면 이 일이 그저 하나님 나라 일이라는 큰 대의만 가지고 어떤 부분 속에서 씨름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큰 그림 속에서 어디쯤 속해 있는지를 잘 생각하지 않고 가게 되는 것입니다. 어디를 향해서 가야 하는지도 보지 않고 그저 앞에 놓여 있는 시계 5미터 길만 따라서 가고 있는 꼴입니다. 이번 첫 번째 이야기를 통해서 주님께서 하고 계신 일에 초점을 맞추고 그 가운데 나는 어디에 속해 있는지를 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Episode 2 “우리의 문화에 담긴 이야기”

(1) 강의의 내용중 나에게 새로운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왜 평범한 사람들이 정의롭지 못한 권력자의 비인간적인 명령을 거부하지 못하는 것일까?"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이 1961년 했던 전기 충격기계 실험의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스탠리 밀그램은 이렇게 결론 맺습니다. <비인간적인 명령을 거부하는 유일한 방법은 불합리한 명령을 내리는 권위자와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불합리한 압력을 가하는 권위자의 자리는 <문화>가 대체하였습니다. 큰 문제는 그 '문화'와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문화'는 끊임없이 우리의 <정체성>을 흔듭니다. 이는 개인적인 삶(private life)과 공적인 삶(public life)이 나뉜 삶을 살도록 압박과 제약(Constraint)을 가합니다.
결국 <정체성>의 문제가 우리의 삶이 이원론적으로 나뉘게 하는 출발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2) 어떤 질문(의문)이 생겼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문화적 메시지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문제는 이 문화적 메시지로 가득한 세상과 완전히 단절하고 분리하여 살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치 중세시대 수도원에서 세상과 단절하여 사는 것처럼 살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더 큰 문제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삶이 녹록치 않다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2장 7-8절에서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
‘우리는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해서는 안 된다’라고 쉽게 결론지을 수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정체성>을 흔드는 문화적 메시지로 가득한 세상에 살지만 속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지 질문하게 됩니다.

(3) 이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계신다고 생각합니까?

우리가 단절할 수 없는 <문화>의 압박과 제약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이마고 데이"(Imago Dei)를 회복하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음을 깨닫습니다.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 1:16-17)
만물이 그로 말미암았고 그 안에 함께 섰습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도 그로 말미암았고 그 안에 함께 섰습니다.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고 그 안에 함께 섰습니다. '문화'가 결코 흔들 수 없는 우리의 <정체성>도 그로 말미암았고 그 안에 섰습니다. 우리의 <정체성>의 근간(=Imago Dei)을 회복할 때 우리의 삶은 나뉘지 않고 모든 영역에서 그분의 나라를 세워갈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날마다 주님께 접붙임 되는 삶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Episode 3 “창조와 타락”

(1) 강의의 내용 중 나에게 새로운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복음주의 기독교에서는 일반적으로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창조-타락-구속-재림”을 이야기하지만 이중 핵심은 타락 이후 구속에 맞춰져 있습니다. 결국 이는 하나님의 선교의 목적을 인간의 구속으로 한정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습니다. 피조세계와의 올바른 관계 회복.. 즉,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세계의 회복은 필요한 일이지만 부차적인 일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지상명령 즉, 영혼구원 명령(Redemptive mandate)만 남고 문화명령(Creation mandate)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화명령에 포함된 “일(Work)”의 영역은 당연히 세속적인 영역으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분명히 하나님의 구속의 목적이 창조세계를 회복하는 “새창조”에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문화명령”의 유효기간이 끝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문화명령”의 회복과 완성을 향해서 가고 있음을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2) 어떤 질문(의문)이 생겼습니까?

복음주의 기독교가 “인간의 구속(구원)”에 절대 초점을 맞추다 보니 가난한 이웃에 대한 구제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이웃을 고통스럽게 하는 사회구조악의 문제, 기후환경 문제는 등한시 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게 됩니다. 대계명도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첫째 계명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둘째 계명이 우열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음에도 어느덧 한국 교회는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훨씬 더 큰 계명으로 여기고 이웃에 대한 차별과 혐오에 앞장서고 있는 모습도 보입니다. 대계명을 지킴으로 하나님 나라의 회복과 완성을 향해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온 천하를 다니며 몇몇 교인을 얻는 데에 그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세속적인 “일”과 거룩한 “사역”.. “평신도”와 “성직자”의 구분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제가 사역하고 있는 몽골교회에까지 이 영향이 강력하게 미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복음주의 선교운동을 세대주의자들이 이끌었다고 해도 왜 창조 명령과 신학을 잃게 되었는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3) 이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계신다고 생각합니까?

인류가 범죄하기 전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날마다 친밀하게 교제하며 에덴동산을 경작하며 보존함을 통해 주님을 예배하였습니다. 즉, 주일에 드리는 별도의 예배 의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일상의 “일”과 “삶”으로 예배했던 것이지요. 하나님이 우리를 구속함으로 회복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창조 세계의 회복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제가 사역하고 있는 몽골교회는 소위 보수 신학의 영향을 크게 받아 인간의 영혼 구원에 치중하는 경향이 매우 강합니다. 풀타임 사역자의 길은 거룩한 길이고 세속적인 “일터”에 남아 있는 평신도들은 베드로처럼 과감하게 그물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지 못하고 있는.. 주저하는 열등한 제자들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몽골교회에 하나님의 빅픽쳐에 대해서 나누고 도전해야 함을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Episode 4 “이스라엘을 부르심”

(1) 강의의 내용 중 나에게 새로운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분의 형상대로 왕과 제사장으로 창조하셔서 피조물을 돌보고 문화의 창조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죄가 세상에 들어오기는 했지만 하나님의 본래 창조 목적을 무효화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죄는 확실히 비극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때로는 모든 문화가 망가진 것 같이 느껴지고 너무나도 큰 문제들 사이에서 우리 자신이 아주 작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의 모든 측면에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함으로 샬롬을 이루고 세상에 복이 되어 하나님의 구원의 대사가 되도록 부르심으로 그 이야기를 진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이 그분을 실망시키는 순간에도 그 이야기를 진행하고 계셨고 그 이야기를 그리스도 안에서 아름답게 성취되도록 하셨고 모든 피조 세계를 구속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의 삶 가운데 이루어지는 샬롬을 통해서 그분의 나라를 확장해 가고 세워 가신다는 것을 다시금 새롭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2) 어떤 질문(의문)이 생겼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이스라엘처럼 일상의 신실함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 복이 되도록 부르셨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일상이 그리 만만치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는 우리의 힘으로 바꾸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너무나도 많은 상황과 영역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차라리 “평범한” 사람들이 아닌 어밴져스 같은 영웅이 나타나 이 상황을 모두 정리해 주기를 바라게 됩니다. 소위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기독교인이 아닌.. 특출난 “성직자”만이 이 어려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성경의 인물들을 우리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이 아닌 영웅으로 이해하게 합니다. 특별히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으로 우리가 범접할 수 없는 절대 영웅이 됩니다. 이렇게 되면 일상의 신실함이 아니라 어떤 영적 특별함으로 도피하여 그곳에서 샬롬을 찾게 됩니다. 이렇게 만만치 않은 세상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일상의 신실함으로 다른 이들에게 복이 되는 삶을 살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3) 이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계신다고 생각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오늘날의 교회처럼 “평범한” 사람들을 부르셔서 놀라운 일을 행하십니다. 만만치 않은 세상 속에서 일상의 신실함을 지키는 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힘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위대하신 하나님 안에 거할 때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는 일상의 신실함이 아닌 특별한 무언가를 갈망하는 저 자신을 보게 됩니다. 특별함을 통해서 칭찬받고 인정받기를 원하는 것이지요.
몽골교회에 도전하기에 앞서 저 자신부터 그 일상의 자리에 주님께서 저를 두신 이유를 이해하고 그 일상의 삶을 거룩한 산 제사로 올려드림으로 제 일상에 부어지는 샬롬과 복을 흘려보내야 함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Episode 5 “왕이신 예수”

(1) 강의의 내용 중 나에게 새로운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신약과 구약이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된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말라기 선지자가 예언했던 엘리야와 같은 모습의 선지자로 예수님이 오실 길을 예비했던 세례 요한.. 그 세례 요한의 세례와 출애굽하여 홍해를 건넜던 이스라엘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출애굽 후 40년간 광야에서 방황했던 이스라엘 백성의 이야기가 예수님의 40일 금식과 시험으로 연결되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단지 개개인의 구원자로만 오신 것이 아니라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망가진 ‘하나님의 형상으로 이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라는 이 창조명령을 이스라엘 백성을 통하여 새롭게 회복하여 예수님이 진정한 왕으로서 다스리는 새로운 세상을 세우시고자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새로워진 세상의 새로운 삶으로 초대하십니다. 주님이 모든 부분에서 왕으로서 다스리는 새로운 세상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아가는 삶은 평범한 일상을 최상의 예배로 바꾸게 될 것입니다.

(2) 어떤 질문(의문)이 생겼습니까?

예수님을 단지 우리의 영혼을 구원할 구원자로서 생각해 왔기 때문에 영혼 구원이 최종 목적이 되었고 그 너머에 있는 궁극적인 목적인 새창조 즉 예수님이 왕으로 통치하시는 새로운 세상을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우리의 일상 전체와 우리 문화, 나아가 모든 피조세계를 다스리시는 왕으로서의 예수님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습니다. 일상 가운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다스림으로 거룩함을 이룬다는 것을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즉 일상의 거룩함이 아닌 어떤 특출난 성과를 추구하게 된 것이지요.
우리는 언제부터 어떤 이유로 이웃의 삶이 풍성해지도록 돕고 사랑하라는 일상의 삶으로의 부르심이 아닌 그리스도의 “특별한” 부르심을 추구하게 되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어쩌다 종교 영역은 하나님의 영역으로 거룩하고.. 일상 영역은 세속 영역이므로 거룩하지 않다는 잘못된 구분을 하게 되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3) 이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계신다고 생각합니까?

예수님의 구속사역은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칩니다. 즉 예수님이 우리의 일상의 모든 영역의 주인이자 왕이시라는 것입니다. 십자가 보혈을 통해서 내 영혼의 주인이 되셨을 뿐만 아니라 내 일상의 모든 삶의 주인이 되셨고 모든 피조세계를 왕으로서 온전히 다스리실 것입니다. 문제는 내 일상의 삶 속에서 주님의 왕 되심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머리로는 내 모든 삶의 왕 되시는 주님을 인정하지만 가슴으로는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내 일상을 주님이 왕으로서 다스리시는 일상의 신비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성령을 구하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Episode 6 “새 하늘과 새 땅”

(1) 강의의 내용 중 나에게 새로운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우리도 새로운 육신으로 부활한다는 것을 예수님의 부활이 확증했다는 것은 익히 잘 알고 있었지만 예수님의 부활이 모든 피조 세계를 회복시키고 모든 관계도 새롭게 회복시킬 것이라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약속이라는 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막연하게 주님께서 재림하시면 새 창조를 통해서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릴 것이라고만 생각했지 지금의 훼손된 세상의 변화와 갱신으로 생각하지는 못했습니다. 즉 지금의 세상과 새 하늘과 새 땅을 연장선상에서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부활이 우주적 샬롬의 약속이며 죄로 인해 훼손된 창조세계의 완벽한 변화와 갱신이라는 것은 지금 현재의 삶에 대한 소망을 줍니다. 비록 지금 현재의 모습을 보았을 때는 더욱 더 악화될 뿐 아무런 기대를 갖기 어렵지만 부활을 통해서 약속해 주신 것을 붙들고 나아갈 때 우리의 삶, 소명, 직업을 사용하셔서 세상을 변혁시키실 것이라는 소망을 갖고 나아가게 됩니다.

 

(2) 어떤 질문(의문)이 생겼습니까?

점점 더 악해지는 세상을 볼 때 절망감이 느껴집니다. 몽골은 전세계 평균의 2배가 넘게 기온이 상승했고 올해는 초여름부터 제가 몽골에 온 이후로 최고로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구가 점점 뜨거워지고 있는 것을 체감하고 있고 기후 위기를 되돌릴 수 없을 것 같은 절망감이 몰려옵니다. 지구 온난화로 시베리아 동토층 얼음이 녹아 인류에게 한번도 노출되지 않았던 각종 바이러스가 나와 제2, 제3의 코로나 판데믹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고도 합니다. 미얀마 군부 쿠데타, 아프카니스탄 탈레반 재집권, 우크라이나 전쟁 등 지구촌은 샬롬은 커녕 서로 반목하며 욕심과 증오로 전쟁과 분열을 일삼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러한 세상을 멸절해 버리고 완전히 새롭게 시작하기 보다는 변화와 갱신을 통해 새 하늘과 새 땅을 열겠다고 하십니다. 왜 그렇게 하시려고 하시는 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3) 이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계신다고 생각합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과 새 하늘과 새 땅에 관한 약속 그 중간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임했으나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습니다. 즉 우리는 긴장을 경험하며 삽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망가진 세상을 새롭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을 통해서 지금의 세상을 변혁하고 갱신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을 열겠다는 것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삶과 일을 사용하여 그 일에 동참해야 합니다. 만약 세상을 멸절해 버리고 리셋하시는 거라면 지금의 삶과 노력은 헛된 것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변화와 갱신을 통해 새 하늘과 새 땅을 열겠다고 하심으로 이미 부분적으로 임한 하나님 나라를 지금부터 세워갈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우리의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Episode 7 “교회와 성령”

(1) 강의의 내용 중 나에게 새로운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ReFrame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알라스데어 매킨타이어는 “‘내가 무엇을 해야만 할까’란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난 어떤 이야기의 한 부분인가’라는 질문에 먼저 답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성경이라는 이야기 속에서 우리의 일상의 삶을 포함한 우리가 그 이야기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성경의 이야기 속에 우리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숨 막히는 감동을 느껴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성경과 우리의 이야기를 실제적으로 연결해 주는 그 일을 성령께서 하십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심은 우리가 하나님의 이야기에서 한낱 관객이 아니라 참가자가 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교회를 통하여 우리는 그것을 더욱 더 생생하게 경험하게 됩니다.

 

(2) 어떤 질문(의문)이 생겼습니까?

성경을 하나의 연결된 이야기로 보면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세계를 회복해 가는 이야기로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의 모든 측면에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함으로 샬롬을 이루고 세상에 복이 되어 예수님이 진정한 왕으로서 다스리는 새로운 세상(새 하늘과 새 땅)을 세우고자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모든 피조세계를 변화시키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확증입니다. 이 약속의 시민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은 이 피조세계 구속의 거룩한 맛보기로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삶을 살아내는 것이 성경의 전체 이야기 속에서 내 삶이 어디에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에 대한 이해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과 우리의 이야기를 실제적으로 연결해 주는 그 일을 성령께서 하신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교회는 왜 필요한 것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3) 이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계신다고 생각합니까?

성령께서는 우리가 그의 이야기와 세상 속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참여하도록 우리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교회도 주십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20)라는 말씀처럼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교회를 통해서 성령께서 자신을 드러내 나타내시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해 성령과 함께 일합니다. 그러고 나서 세상 속에서 성령과 함께 일하기 위해 흩어진 교회가 됩니다. 우리는 복음을 들고, 정의를 들고, 샬롬을 들고 세상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과 동역하기 위해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세상 속으로 들어갑니다. 즉 하나님의 선교에 하나님 백성인 우리가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을 성령께서 주시고 교회를 통해서 그 성령의 능력을 실질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Episode 8 “이방인과 나그네”

(1) 강의의 내용 중 나에게 새로운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모든 피조세계를 변화시켜 회복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확증입니다. 이 약속의 시민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은 이 피조세계 구속의 거룩한 맛보기로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문제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이 땅 가운데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주변 문화에 동화되거나 현실과 동떨어져 그리스도인들만의 게토 안에서 살아가기 쉽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변 문화에 동화되거나 현실과 동떨어진 삶을 사는 것.. 이 두 가지 모두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현실에 동화되지 않으면서 현실 세계를 변화시켜 회복해 갈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속하지 않은 이방인으로 살되 우리의 진정한 시민권은 하나님 나라에 있으므로 하나님 나라의 대사로서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이를 가능하게 합니다.

 

(2) 어떤 질문(의문)이 생겼습니까?

세상에서 살아가되 세상에 속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 시민으로서 정체성을 지키면서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만의 게토를 이루고 되도록 세상과는 거리를 두고 담을 쌓고 살아가게 되는 것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체성을 지키면서 살아갈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을 택하는 것입니다.
몽골 사람들도 교회가 세상과 소통하지 않고 네 담장 안에 갇혀 있다고들 이야기 합니다. 따라서 지역에 교회가 있으나 지역사회에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이방인으로 살되 하나님 나라의 대사로서 정체성을 잃지 않고 세상에 영향을 주며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3) 이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계신다고 생각합니까?

주님께서는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 삼아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일반적으로 ‘우리에게로 <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들을 세상의 문화로부터 빼어 내어 안전한 그리스도인들만의 공동체로 분리시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향하여 가서 복음을 전하여 그들을 악한 세상에서 꺼내어 구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되면 세상의 변화와 회복을 통한 새 창조는 요원해 진다는 점입니다. 세상에서 사람들을 빼내어 지금의 세상과는 동떨어진 새로운 세상을 열게 되면 지금의 삶과 노력은 아무 의미도 없는 헛된 것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께서는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십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 나라의 대사로서 내 일과 삶을 통하여 세상에 영향을 주고 변혁하도록 명령하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지역교회는 성도들이 일상의 삶 속에서 하나님 나라 대사의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성도들을 구비시키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Episode 9 “하나님의 대사”

(1) 강의의 내용 중 나에게 새로운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세상에 속하지 않은 나그네이자 이방인으로 살되 세상을 변혁하여 회복해 나아갈 수 있는 길은 하나님 나라의 대사로서의 정체성을 갖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대사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산다는 것은 첫째로 주변 문화에 동화되지 않고 하나님 나라 대사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공동체 즉 교회 공동체를 세우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이 세상 가운데에서 어떤 목적(Mission)을 가지고 일하고 계신지를 올바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선교(Mission Dei)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문화(언어)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현실과 동떨어져 그리스도인들만의 게토 안에서 살아가지 않고 세상에 영향을 끼치며 변혁하기 위해서는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접점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넷째로 우리가 딛고 있는 자리를 하나님의 목적(Mission)에 비추어 ReFrame하고 그곳에 하나님 나라가 세워질 수 있도록 순종하는 것입니다.

 

(2) 어떤 질문(의문)이 생겼습니까?

세상에서 살아가되 세상에 속하지 않고 세상에 영향을 끼치며 세상을 변혁해 나가기 위해서는 하나님 나라 대사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살아갈 때 가능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동의하지만 세상에 있는 정말 다양한 분야의 일들을 하나님의 대사로서 하나님 나라의 목적(Mission)에 비추어 ReFrame하는 작업은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서 선교현장에 있는 많은 전문인 선교사들은 자신의 전문성과 선교 사역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정말 많이 갈등합니다. 손쉬운 해결책은 통합하기 보다는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바라보는 것입니다. 소위 우리의 일상의 일들은 영적인(종교적인) 사역을 하기 위한 도구이자 통로로만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오류로 다시 빠지지 않고 우리의 일을 하나님의 목적에 비추어 ReFrame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3) 이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계신다고 생각합니까?

마이클 프로스트가 쓴 <일상 하나님의 신비 (Eyes Wide Open : Seeing God in the Ordinary)>라는 책에 보면 우리가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하나님의 관점과 시선으로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볼 때 그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발견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즉 우리가 매일 살아가는 일상을 ReFrame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목적(Mission)을 온전히 이해하여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과 일상을 바라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성육신하신 것처럼 우리도 그 세상 속에 머물면서 세상이 용납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언어로 풀어내야 합니다. 그들의 일상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도록 우리가 삶으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주님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매일의 일상에서 지켜 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Episode 10 “기쁨이 충만한 삶”

(1) 강의의 내용 중 나에게 새로운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우리가 매일 살아가는 일상을 ReFrame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목적(Mission)을 온전히 이해하여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과 일상을 바라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성경을 하나의 전체 이야기로 볼 때 하나님의 목적(Mission)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의 전체 이야기는 우리의 눈을 열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예수님을 발견하고 좀 더 분명하게 만나게 해 줍니다.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13)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에 하셨던 마지막 기도를 통해 주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이유)과 새창조를 통해서 궁극적으로 회복하고자 하는 바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창조를 통해서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창조세계)과의 관계 속에서 기쁨이 충만하기를 원하셨고 죄로 인해 깨어진 이 관계들을 새창조를 통해서 기쁨이 넘치는 관계로 회복하고자 하신다는 것입니다.

 

(2) 어떤 질문(의문)이 생겼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궁극적으로 모든 관계에서 기쁨이 충만하기를 바라십니다. 즉 샬롬을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 깨어진 이 관계들이 예수님의 재림으로 회복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재림하여 회복하실 때까지 우리는 그저 기대하면서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가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당연히 우리는 일상의 삶 가운데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기 위해서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를 둘러싼 문화 속에서 주님의 제자로서.. 하나님 나라 대사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궁극적인 동기를 불러 일으키고 힘을 주는 원천은 무엇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3) 이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계신다고 생각합니까?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요 17:4-5)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신 일을 이루시는데 있어 궁극적인 동기를 부여했던 것은 <창세 전에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가졌던 영화>를 소망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창세 전부터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누렸던 “기쁨”을 소망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주님의 제자로서.. 하나님 나라 대사로서 살아가는 만만치 않은 삶의 여정 가운데 성경의 전체 이야기가 보여주는 하나님의 궁극적 목적인 모든 만물의 “기쁨”이 회복되는 것을 바라며 원하며 소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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