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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톡톡크리스찬 #30 날씨(7월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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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한신
댓글 0 건 조회 9,681 회
작성일 09-07-27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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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CBS 방송 - 월요일을 기다리는 사람들

2009년 7월 27일 방송분 준비

일상생활사역연구소 안대진 객원연구원

주제 : 날씨에 대한 영성

* 본 자료는 Robert Banks and R. Paul Stevens 편저 “Complete Book of Everyday Christianity”의 일부를 안대진 객원연구원이 요약·번역한 것입니다.

WEATHER WATCHING(날씨 보기)

나는 기후통제빌딩(climate controlled building)-창문이 열리지 않는 건물을 완곡어법으로 표현해서-안에서 일합니다. 이론적으로는 나는 날이면 날마다 날씨의 다양한 변화로부터 보호 받고 있으며, 날씨로 인한 제한 사항 없이 일을 즐길 수 있습니다. 솔직히 업무가 지루하거나 때때로 갑갑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나는 원기를 돋우기 위해 기술적으로 잘 디자인 된, 누에고치 같은 건물을 빠져나와 산책을 하기도 하고, 비가 올 땐 비를 맞거나 눈이 올 땐 눈 위를 씩씩하게 걷기도 합니다. 라디오를 켜서 일기예보를 듣는 것은 그리 좋지가 않습니다. 나는 날씨를 경험하길 원하며, 이는 내게 좋은 신학적 이유가 됩니다. 날씨를 경험하는 것은 나의 영적 여행의 일부분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날씨란 무엇일까요?

날씨는 지구 가까이에 있는 대기의 양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 지역의 평균적인 날씨 상태는 기후(climate)라고 부릅니다. 날씨는 온도, 기압, 바람, 수분, 강수량, 지구의 자전 등의 상호작용과 관련된 복잡한 현상입니다. 날씨 체계(weather system)라는 용어는 우리가 실제적으로 경험하는 날씨란 단일의 원인에 의한 결과가 아니라 많은 독립적인 요소에 의한 것임을 말해줍니다. 지구의 일정 지역 내의 바다의 조류의 변화가 내가 살고 있는 바로 이곳의 매일 날씨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소위 말해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라고 불리는-, 글로벌 시스템으로서의 날씨를 우리는 점점 이해해 가고 있습니다. 전보라는 새로운 발명품을 통해 처음으로 정보를 집중수집 하기 시작한 1860년 이래로, 위에서 설명한 이러한 많은 요소가 어떻게 날씨에 영향을 주는지를 예견하는 것은 과학에 의해서 최근에 행해지고 있습니다. 발달된 레이더 기술로 인해 더 높은 수준으로 날씨를 예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해일, 토네이도, 눈 폭풍, 착빙성 폭풍우(ice storm)등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러나 날씨가 없다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존재 할 수 없다는 것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날씨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아무리 날씨를 과학적으로 정교하게 분석할 수 있게 된다 하더라도, 날씨는 미스터리한 분야로 남을 것입니다. 여기에 신학적인 이치가 있습니다.

신비로서의 날씨(Weather as Mystery)

하나님은 날씨만을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일기예보자(weather person)입니다. 하나님은 날씨를 만드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이 만드시는 독특한 창조물로서의 날씨는 하루하루가 다르게 만들어집니다. 하나님은 단순하게 날씨를 즐기십니다. 이러한 진실에 대해 처음 살펴볼 텍스트는 욥기 38장 22절에서 37절 말씀입니다. 이 확장된 스피치 안에서 하나님은 날씨 예측과 관계된 삶과 죽음의 의미,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날씨 예측에 숨겨진 계시에 관한 욥의 속 뒤틀린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십니다. “너는 눈을 쌓아 둔 창고에 들어간 적이 있느냐?.... 하늘에서 내리는 서리는 누가 낳았느냐?.... 번개를 내보내어 번쩍이게 할 수 있느냐?”(욥기 38장 22, 29, 35절) 이 모든 것은 욥이 찬양하도록 의도되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날씨에 관해 그분이 욥에게 말씀하신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은 날씨는 단순히 인간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없는 땅, 인기척이 없는 광야에 내리는” 비를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어찌 비가 우리 모두를 위한 것임을 생각할 수 있을까요?

오늘날에 있어서 미스터리란 거의 없어졌습니다. 우리는 지구상의 이 곳 날씨에 대해 오존층이 얇아짐으로서 야기되는 효과를 상세하게 조사하고 있고 심지어 고체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구름 씨를 뿌려 날씨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점차적으로 우리는 날씨에 관해 인간중심적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즉 인류를 위해 인류가 날씨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점차적으로 자동차 오염(스모그 생산), 도시화(열섬 현상), 산업 오염(산성비)을 통한 인간의 행위가 날씨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날씨는 지금 지구에 대한 인류의 청지기적 사명(stewardship)의 음침한 계시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날씨는 항상 하나님의 현존계시와 관계된 신비로, 아직도 신비 일 수 있는 것으로 남아있습니다.(사무엘하 12:17-18) “천둥과 요란한 소리와 번개와 지진”(요한계시록 8:5)은 마치 두꺼운 구름을 수반한 천둥 번개가 흡사 시내산에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처음으로 언약을 드러내신 신비를 표현한 것처럼(출애굽기 19:16), 예수님의 재림과 관계된 모든 위대한 실재들을 동반합니다. 구름은 참으로, 보통 초월적인 실제의 현존을 암시하는, 거룩한 계시의 특별한 장소입니다.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큰 권능과 영광에 싸여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마가복음 13:26) 가장 큰 구름, 무지개는 빛과 수분으로 구현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러나 신비는 통상적으로 날씨와 관계된 것은 아닙니다. 참으로, 날씨는 처음 보는 사람들이나 매우 친한 친구들을 만날 때 대화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합니다: “오늘 날씨 너무 더워!(추워!)”, “비가 올 것 같은데?(날이 좋을 것 같은데?)”, “오늘 일기예보 들었어?(오늘 기온 어떻게 되지?)” 여름과 겨울 사이에 실제적으로 날씨가 빼앗긴 것처럼 실제로 아무런 변화가 없거나, 밤 기온이 낮 기온보다 약간 더 낮아지는 기후에 관한 것 까지도, 사람들은 여전히 매우 짧은 시간에 일어나는 날씨 변화를 즐기거나 혹은 그것을 걱정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잡담은 가볍게 여겨지면 안 됩니다. 잡담 역시 적어도 대화입니다. 잡담은 대화의 시발점입니다. 만일 날씨가 없다면 우리는 주유소 직원이나 집배원 아저씨, 이웃집에서 정원 잔디를 깎고 있는 이웃과 대화를 나눌 수 없을 것입니다. 이 근본적인 일상의 리얼리티는 매일 주어지는 새로운 하루 속에서 우리 이웃들을 생각하게 하는 것들을 우리에게 제공하는 이 천국의 사역을 수행해 나갑니다.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내리는 표징을 보여 달라는 요청을 받으셨을 때, 날씨를 “읽으심”을 통해 사람들의 흥미를 이용하셨습니다. “너희는 저녁때에는 ‘하늘이 붉은 것을 보니 내일은 날씨가 맑겠구나’하고, 아침에는 ‘하늘이 붉고 흐린 것을 보니 오늘은 날씨가 궂겠구나’ 한다. 너희는 하늘의 징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징조들은 분별하지 못하는구나.”(마태복음 16:3-4) 물론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 스스로 기상을 읽어내는 것보다는 미리 2~3일전 기상을 예견하기 위해 과학 기술을 이용하는 전문가-물론 이들이 과학과 예술이 같은 것으로 혼동하더라도-들을 의존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폭풍우가 어디서 불어 닥칠지, 얼마나 큰 해일이 밀려올지, 번개가 어디서 칠지 정확하기 예견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러한 기상전문가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들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특히 그들의 사역은 공중이나 바다에서 날씨로 인해 생겨날 비극을 막고 사람들이 파괴적인 폭풍의 습격으로부터 준비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 큰 흥미와 경외를 가지고 우리 스스로를 위해 날씨를 계속적으로 읽어 낼 수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과학 기술의 도움으로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지켜 볼 수 있는 인공위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메타포로서의 날씨(Weather as Metaphor)

성경에서 날씨는 메타포와 이미지를 통해 간접적으로 더 생각되어지는 진리를 표현하는 방법으로서 비유적으로 사용되어집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목적은 어떻게 이야기 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하나님이 편애 없이 무조건적으로 모든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소통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듯이 하나님은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해를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사람에게나 불의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주십니다.(마태복음 5:45) 어떻게 당신은 하나님과 인간의 실제적인 접촉에 내재하는 이 놀라운 요소들을 신학자들과 소통하고 있습니까?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는 듣지만,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모른다.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은 다 이와 같다.”(요한복음 3:8) 성령에 충만한 사람은 바람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때의 우주적인 재림의 충격을 어떻게 말씀 할 수 있습니까? “번개가 동쪽에서 나서 서쪽에까지 번쩍이듯이, 인자가 오는 것도 그러할 것이다.”(마태복음 24:27)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신이 비밀스럽게 오실 것에 관해 누구에게도 미련한 소리를 듣지 않도록 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 24:26) 70명의 제자들이 잠깐 동안의 자신들의 사역을 마치고 돌아와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들조차 복종시켰음을 보고했을 때, 예수님은 “사탄이 번갯불처럼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누가복음 10:18)

바울 역시 더 높은 목적을 위해 날씨를 언급합니다. 성경을 전적으로 무시하는 루스드라 사람들에게 설교하면서 바울은 날씨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이것은 잡답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비를 내려주시고, 철을 따라 열매를 맺게 하심으로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분은 먹을거리를 주셔서 여러분의 마음을 기쁨으로 가득 채워 주셨습니다.”(사도행전 14:17) 명백하게도 농경생활, 산업화 이전 사회에서 토지와 가까이 지냈던 사람들은 이 아날로그를 이해했고 심지어 믿음으로 이끌어지기도 했습니다. 농부들과 정원사들은 오늘날도 이러한 특권들을 누리고 있습니다. 내가 5년간 목수로 일했을 때, 나는 매일 열에 화상을 입고 이슬에 한기를 느끼는 도전을 통해 좋은 옷을 주시며 따뜻한, 시원한 음식 그리고 그 무엇보다 집을 주신 것을 감사하도록 자극받는데 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기후가 통제된 환경 속에서 매일 컴퓨터 화면을 주시하는 사람들, 날씨 속으로 빠져들지 않고 일하기 위해 여기저기를 다니는 사람들, 지하철을 타며 쇼핑몰 속을 걸어 다니거나 훌륭한 에어컨이 달린 차량을 타고 다니는 사람들은 어떠할까요? 날씨는 그들에게 하나님을 확신시킬까요? 우리는 날씨의 사역(ministry)을 이야기 할 수 있습니까?

사역으로서의 날씨(Weather as Ministry)

잠언에서는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주님은 지혜로 땅의 기초를 놓으셨고... 지식으로 깊은 물줄기를 터뜨리시고, 구름에서 이슬이 내리게 하신다.” (잠언 3:19-20) 더 특별하게, 시편은 하나님의 영광과 선하심의 계시로서의 날씨에 대한 인용구가 가득차 있습니다. “당신은 또 밭이랑에 물을 넉넉히 대시고, 이랑 끝을 마무르시며, 받을 단비로 적시며, 움 돋는 새싹에 복을 내려 주십니다.”(시편 65:10) 이러한 일을 행함으로써 하나님은 “즐거운 노래를 부르게” 하십니다.(시편 65:8) 시편 104편은 우리가 거대한 천둥으로 “빛을 옷처럼 걸치시는” 하나님-세상에 있는 모든 종류의 날씨이시기도 하신-을 경이롭게 여김으로서 그 분을 찬양하도록 만드는 모든 종류의 날씨를 모아놓은 카탈로그입니다. 이 모든 것 중 가장 중요한 곳은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창공은 그의 솜씨를 알려 준다.”(시편 19:1)라는 부분입니다. 웅변적으로 우아하게 표현하면, 밤조차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냅니다.(시편 19:2)

왜 우리는 날씨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될까요? 그 이유는 날씨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비록 우리가 죄 된 방법으로 자원을 사용하여 날씨 패턴 변화에 크게-비극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하더라도) 너머에 있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는 날씨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될까요? 그것은 날씨란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자신이 만드신 피조물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자연만물이 번성해지도록(비록 주일학교 소풍 때 비가 온다 할지라도)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는 분임을 드러냅니다. 왜 우리는 날씨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될까요? 날씨는 또한 계속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눈송이를 만드시며 그의 피조물의 다양성을 기뻐하시는, 창조물들을 새롭게 하시는 것을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처럼 매일매일, 매순간, 새로운 날씨를 만들어 냅니다. 하나님은 지루하신 분이 아니며, 지구상의 생명체들도 그러합니다. 왜 우리는 날씨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될까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이루시는 분(시편115:3)이시며 인위적인 예배, 교리, 인간이 만들어 낸 그 어떠한 것 안에 포함될 수 없는 분이시기 때문에, 날씨는 궁극적으로 예견할 수 없다는 점이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만듭니다.

문제로서의 날씨(Weather as Problem)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좋지 않은 날씨를 볼 수 있을까요? 우리는 토네이도, 허리케인, 텍토닉 플레이트의 무시무시한 활동에 의해 발생하는 해일, 혹서, 가뭄, 농작물을 파괴하고 사람들에게 외상을 입히는 우박폭풍을 어떻게 생각해야만 할까요? 보통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인간에 대한 심판으로서 그런 무시무시한 날씨를 이용하신다고 말합니다.(사무엘하 12:17-18) 그러한 예들은 많이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약속된 땅을 차지했을 때 아모리 족속에서 쏟아졌던 우박(여호수아 10:11), 예언된 가뭄(아모스 4:7), 하나님과 화합하지 않는 사람들을 나타 낼 때(요한계시록 6:6). 아모스가 예언했던 최악의 기근은 요즘 서구 사회를 강타하고 있는 그것과 동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기근-말씀을 듣지 못함-(아모스 8:11) 그러나 여기에 메타포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모든 날씨가 나쁘게 보일 때 우리는 날씨 보기(weather watching)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쁜” 날씨나 우리에게 나쁜 경험만을 주는 날씨가 있나요? 우리는 그러한 날씨에 대해 거대한 스케일을 가진 하나님의 주권적 목적을 성취할 부분으로, 글로벌한 기대를 가질 수 있었나요? 그리고 만일 우리에게 나쁜 날씨라면,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날씨 안에 우리를 부르시며, 그러한 날씨 안에 그분의 메시지를 보도록 우리를 초청하시며, 하나님께 의존하고 기도로 가득차게 “우리에게 이런 날과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주세요”라고 부르짖도록 초청하시고 있나요?

인간의 질병-계절적인 영향을 받은 질병-은 기후적으로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데서 사는 사람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병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기후가 더 나은 지역으로 이동해야합니다. 하나님은 많은 방법으로 치료를 하시는데 스탠리 존스의 견해에 따르면, 기도를 통한 직접적인 응답으로, 약을 통해서, 수술을 통해서, 암시를 통해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몸의 부활을 통해서 치료를 받게 됩니다. 하지만 스탠리 존스가 언급한 거의 논의되지 않은 한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기후의 변화를 통해서입니다.(스탠리 존스 203-4) 만일 몸을 상하게 하는 날씨가 있다면, 반대로, 몸을 치유하는 날씨도 있습니다.

날씨의 지혜(Weather Wisdom)

대부분의 신자들에게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날씨에 의해 통제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존경하고, 숭상하며, 존경에 가득차서 조사해보고 기도 충만할 수 있지만 전반적으로 만족스럽지는 않습니다. 물론 비가 내릴 때 마치 에스라가 민족의 대 회개일 동안 했던 것처럼, 아웃도어 미팅을 그만두는 실제적인 지혜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전도적 열의에 가득찬 성전(聖戰)의 승리(benefit)를 위해 폭풍을 잠잠하게 하신 기적을 행하셨다고 거의 기대할 수 없습니다.(마가복음 4:37) 이따금 하나님은 이러한 일들을 행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제자들의 신앙고백에서 드러나는 믿음을 환기시키는 진리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바람과 바다까지도 그에게 복종하는가!!”(마가복음 4:41) 이 실제는 내가 내 스스로 격한 폭풍우가 불 때 항해를 하면서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내가 경건스럽게 이 사실을 말 할 수 있다면, 우리의 하나님은 날씨 변동에 대해 질문 받기를 꺼리지 않으십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대화를 위해 그 어떠한 변명도 즐기십니다. “닳아빠진” 거의 대부분의 피조물과는 달리, 하나님은 잡담에 대해 높이 평가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떠한 기도제목이 있는 사람들은 그들이 가진 모든 기도제목들에 대해 우리가 행동하도록 만듭니다: 하나님과의 화합. 하나님에 대한 내 아내가 가진 최초의 기억은 날씨에 관한 대화입니다. 그녀가 다섯 살때쯤 정원에서 낙엽을 긁어모으고 있을 때, 그녀는 “하나님 왜 당신은 내가 낙엽을 치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바람이 청소를 방해하도록 하시나요?”라고 물었답니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믿음에 의해 살지, 날씨에 의해 살지는 않습니다. “바람이 그치기를 기다리다가는, [다시 말해, 씨를 뿌리기 완벽한 날을 기다리다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씨를 뿌리지 못한다. 구름이 걷히기를 기다리다가는, 거두어들이지 못한다. 바람이 다니는 길을 네가 모르듯이[예수님이 요한복음 3장 8절에서 사용하신 이미지], 임신한 여인의 태에서 아이의 생명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네가 알 수 없듯이, 만물의 창조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너는 알지 못한다.”(전도서 11:4-5) 믿음으로 살아야지 날씨로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은 춥고 비가 올 때 몸을 감싸는 것이고, 매일 산책을 하는 것이며, 눈보라가 한창일 때 결혼 세미나를 개최하는 것이고, 혹서가 한창일 때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며, 집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님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분명히 지평선 위해 구름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모든 날씨는 하나님의 날씨입니다. 그리고 날씨가 우리에게 무엇을 행하든지 간에 우리 인생들은 하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 날씨를 보며 드리는 기도

날씨를 창조하시고 그 날씨를 통하여 우리와 모든 피조물을 친히 돌보시는 창조주 하나님 감사합니다. 사람들이 날씨를 예측하려 하고 심지어 통제하려 하지만 예측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날씨를 보면서 우리의 일상이 신비인 것과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할 것을 매일 확인하게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 날씨를 보면서 당신의 거룩하신 현존을 볼 줄 아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날씨를 보면서 이 지구를 잘 보존해야 할 청지기적 사명에 눈뜨게 하여 주시옵소서. 날씨를 마치 인간의 전유물인 것처럼 여기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게 하여 주소서. 의인과 악인 모두를 사랑하신 하나님을 보게 하시고, 인간뿐만 아니라 피조물 전체를 유익하게 하시기 위하여 날씨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거대한 손길을 깨닫게 하여 주소서. 날씨를 보면서 하나님 당신을 더 깊이 알아가며 믿음 안에 자라게 하여 주소서. 날씨를 보면서 매일 주시는 당신의 은혜를 보고, 매일을 새롭게 하시는 당신의 창조를 깨달으며, 우리의 통제 범위 안에 결코 머무르지 않으시는 하나님 당신을 인정하여 온전히 당신께만 영광 돌려드리게 하여 주소서. 그리고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나쁜 날씨’들이 하나님의 거대한 주권적 목적을 이루는 것임을 신뢰하게 하시고, 당신의 메시지를 그 안에서 보게 하시며, 다만 겸손히 당신을 의뢰하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그래서 날씨로 인하여 불평하기 보다는 모든 날씨가 하나님의 날씨인 것을 기억하여 다만 믿음으로 사는 지혜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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