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톡톡크리스찬 #78 시기(2010년7월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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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한신 작성일 10-07-20 14:16본문
부산 CBS 방송 - 월요일을 기다리는 사람들
2010년 7월 12일 방송분 준비
주제 : 7가지 죄악 "시기"
* 자료 발췌 및 참고 자료
신원하 (고려신학대학원 기독교 윤리학 교수)
기독교 사상 "죽음에 이르는 일곱 가지 죄 3"
▲ 들어가면서
우리 속담에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것이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이 잘 되는 것을 보는 일은 축하할 것이 못되며 고통스럽기까지 하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시기입니다. 우리는 일상적인 관계 속에서 자주 시기라는 것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시기라는 것도 중대한 죄 중의 하나일 수 있습니다.
▲ 친구가 울 때 웃고, 웃을 때 우는 죄, "시기" - 시기의 정의와 죄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시기에 대해 정의하기를 다른 사람의 불행에 기뻐하고, 행운에 애통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시기를 "가장 더러운 죄", 혹은 "가장 악한 죄"라고 일컫는 것은 그것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 다른 사람을 넘어뜨리고 불행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도로시 세이어는 "시기란 자기 사랑이 왜곡된 형태로 나타나는 악"이라고 했습니다. 자기를 만족시키고 사랑하는 길이라면 그것이 다른 사람의 불행이 되더라도 개의치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성격을 지닌 시기는 비록 "대죄"의 목록에서 교만 다음에 위치하지만, 그 악함에 있어서는 교만에 뒤처지지 않습니다. 교만과 달리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교만 다음에 배치되었을 뿐입니다. 남의 불행에 기뻐하고 그래서 그것을 은밀히 도모하는 시기는, 그래서 죄질이 가장 추하고 악한 것입니다. 이 시기가 작동하게 되면 어떤 집단도 살아남기 힘듭니다. 사회든 교회든, 그곳에 미움과 불화와 싸움이 생기고, 종국에는 분열로 귀착하게 됩니다.
▲ 질투와의 차이점
시기는 '질투'와 비슷한 뜻으로 이해되고, 종종 혼용되기도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 의미가 다릅니다. 양자는 어원과 용어상으로 구분이 됩니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는 양자를 아주 분명히 구별하고 있습니다. 즉, 질투란 내가 갖고 있지 않으면서도 소유하고 싶어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느끼는 비애라고 한다면, 시기는 그저 다른 사람이 뭔가를 갖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느끼는 비애입니다.
따라서 질투의 무게 중심은 본인에게 있습니다. 질투는 라이벌의 잘된, 성공, 탁월한 업적 때문에 촉발되기는 하지만, 그 사람이 내가 갖고 있지 않는 것을 갖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발생하는 비애입니다. 그러나 질투는 자기도 그것을 갖고자 하는 마음으로 발전되면서, 그것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하는 방향으로 작용하곤 합니다. 다시 말해서 이 감정은 일종의 경쟁심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면 이런 경우의 질투는 악이 아니라 미덕이 될 수도 있습니다. 탁월한 사람을 닮아가려는 열망은 좋은 의미의 질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기는 무게 중심이 다른 사람에게 있습니다. 단순히 다른 사람과 집단이 무슨 큰 일을 성취하거나 뭔가 소유한 것을 보는 것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왜 저 사람이 저렇게 잘 되었지?", "그렇게 탁월한 사람도 아닌데..." 이로 말미암아 속이 쓰리고 아픈 것입니다. 이것은 그 자체로 악입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이 좋은 것을 갖고 있음을 두고 볼 수 없는, 용납할 수 없는 감정입니다. 이점에서 질투와 다릅니다. 상대의 탁월한 것 때문에 비애를 느끼고, 상대가 몰락하는 것 때문에 행복해하는 것입니다. 심리학자 슈크는 이렇게 말합니다. "시기하는 사람은 탐나는 물건을 갖고 싶어 하지도, 그것을 즐겨하지도 않고 다만 다른 누군가 그것을 갖는다는 사실을 견디지 못한다."
▲ 시기의 시작과 원인 - '보는 것'을 주의하라
성경은 시기를 눈과 관련시키고 있습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에 대승하여 개선장군으로 입성하는 다윗, 그리고 그를 환영하는 백성들의 연호와 춤추는 여인들의 노래를 본 사울은 걷잡을 수 없는 시기에 사로잡힙니다. 사울은 "그 날 후로 다윗을 주목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삼상18:9)
예수님도 시기를 눈과 관련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에서부터 나오는 악한 것들인데 그 중 하나가 "나쁜 눈"입니다. 그런데 번역본들은 이것을 대부분 "질투"나 "시기"로 번역했습니다. 이처럼 구약과 신약 모두 시기를 눈과 연관된 단어를 써서 표현했다는 것은, 시기는 바로 눈으로부터 말미암는다는 생각을 낳게 해주는 중요한 근거입니다.
▲ 시기의 특징과 다양한 양상
1. 시기의 특징은 주로 그 '대상'이 자기와 가까운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즉 아주 친숙하고 가까운 자, 같은 직업에 종사하거나 유사한 학력과 나이에 있는 사람이 시기의 대상이 됩니다. 같은 공간이나 분야에서 일하거나, 익숙하게 알면서 지내는 사람들이 시기의 대상입니다. 그래서 윌리엄 메이는 시기를 '형제에 대해 짓는 죄'라고 했습니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가인과 사울왕의 경우, 바로 곁에 있던 동생 아벨이, 곁에서 함께 일하던 다윗이, 각각 시기의 대상이었습니다. 다른 지역 선교사가 아니라 같은 지역의 선교사들끼리 서로 분쟁하고 미워하는 일이 잦은 것도 시기의 이런 성격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시기의 죄에서는 이웃의 행복과 나의 불행, 친구의 불행과 나의 행복이 철저히 제로섬(zero sum) 게임이 됩니다.
2. 시기에는 다른 사람의 뛰어난 재능과 출중한 성품, 은사 등을 용인하지 않으려는 잘못된 평등주의 의식이 작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은,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고, 또 생명권과 기본권에 있어서 차이가 없다는 의미이지, 지적 능력과 예술적 재능 등 각 사람이 지닌 능력과 질이 다 동등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또한 서로 다른 지적 능력과 인품은 물론 자기 노력의 결과일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신 은사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분량대로 주신 선물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나 바울은 이것을 '토기장이의 비유'로 설명합니다. 이를 부인하는 것은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주신 고유한 재능과 은사를 공평하지 못한 처사라고 부정하는 교만입니다.
3. 시기에는 특정한 사회와 분야에서 존재하는 명예, 칭찬, 존경에는 그 총량이 이미 정해져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내가 박수 받지 못하는 것 때문이 아니라 친구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는 것을 싫어하는 이런 감정에는, 친구가 받는 박수만큼 내게로 올 수 있는 박수가 줄어들거나 사라진다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4. 시기는 극단적으로 자기가 해를 당하더라도 상대의 잘됨을 막거나 행운을 빼앗으려는 '피학적인 시기'로까지 나아가기도 합니다. 라이벌이 존경받는 자리에 오르지 못하게 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자신의 출혈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러한 일을 자행하는 경우도 우리는 종종 볼 수 있습니다.
5. 시기는 미움과 험담과 중상으로 이어져서 공동체를 파괴합니다. 시기는 즉각 미움으로 발전합니다. 시기에 사로잡히면 금방 불편해지고, 얼굴이 일그러지고, 마음이 쓰리고, 미워하는 마음으로 진전됩니다. 분노가 시간을 두고 미움으로 발전하는 것이라면 시기는 즉각 미움으로 발전합니다. 따라서 시기는 공동체의 하나됨과 화평을 깨는 주적입니다. 신약에서도 다툼(고전3:3; 고후12:20), 분쟁(롬13:13), 중상, 한담, 수군거림, 미움(딛3:3; 벧전2:1), 쓴 마음, 적의 등을 시기가 낳는 열매로 묘사합니다. 그레고리 대종은 '시기는 바로 미움으로 이어지고 이것은 또 은밀하게 수군거리는 것으로 발전되고 나아가 노골적으로 험담과 중상을 하는 악을 낳는다'고 보았습니다.
6. 시기는 기쁨을 상실하게 합니다. 늘 만족하지 못하니 감사가 없고 쉽게 슬퍼하게 되며 기쁨이 없어지게 됩니다. 시기는 늘 "왜 나는 저 사람보다 주목을 받지 못하는가?" 등의 불만에 빠져서 기쁨이 사라지게 합니다.
7. 시기는 의욕상실과 나태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시기하는 사람은 우울해지기 십상이고, 이 우울함은 때로는 낙심으로, 그리고 의욕상실과 나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캡스는 탕자의 비유에 등장하는 첫째 아들이 이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탕자의 형은 돌아온 동생이 받는 터무니없는 환대를 보고 아버지와 집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싶은 의욕이 사라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시기의 또 다른 부산물은 자포자기, 의욕상실 그리고 나태한 생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시기의 죄에서 벗어나는 방법
1. 자신이 받은 복과 은사를 세어 보기
시기하는 사람은 늘 다른 사람을 쳐다보기 때문에 자신을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에게만 있는 덕목과 달란트를 갖고 있습니다. 공평하신 하나님이 그렇게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과 은사를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찾아내고 갈고 닦아야 합니다. 사울은 누구보다 준수한 용모를 가졌고, 겸손한 성품을 가졌었습니다. 그런 그가 다윗만을 주목하고 의식하게 되면서부터, 자신이 지닌 것에 대한 감사가 사라지고 삶이 우울해졌습니다. 자신이 가진 것의 고유한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에 자부심을 갖고 발전시키는 것이 시기를 극복하고 관계를 발전시키는 첫 단계입니다.
2.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보면서도 감사하는 태도
자신의 복과 은사를 세어보는 것보다 더 높은 수준은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보면서도 감사하는 태도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자신의 모습을 부족한 그대로 용납하고 사랑하고 계신다는 믿음에서 말미암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감사할 수 없을 만한 상황 가운데서도 감사할 수 있게 합니다.
3. 상대를 원수가 아닌 동역자로 보기 - 인정하고 칭찬하기
친구나 상대방을 경쟁 상대가 아니라 동역자로 보는 시각 전환은 시기를 극복하는 주요한 방편입니다. 친구를 함께 공동체를 일구며 함께 하나님 나라를 건설해 나갈 파트너로 생각하게 되면, 친구의 능력과 자질은 오히려 공동체와 하나님 나라를 위한 주요한 자산이 됩니다. 그가 발휘하는 탁월한 능력이 곧 내가 속한 집단과 공동체를 윤택하게 하는 것이고,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진보를 앞당기는 힘이 됩니다.
이런 시각을 갖게 되면 동료의 재능, 탁월함이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존중과 칭찬과 감사의 대상으로 보이게 됩니다. 서로가 서로를 칭찬과 격려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되면 본인과 그가 속한 공동체는 말할 수 없이 평화롭게 됩니다.
고린도교회 안에서 바울파, 게바파, 아볼로파로 나뉘어 분쟁이 일어났는데, 이에 대해 바울은 '자신과 아볼로는 복음의 씨를 심고 물을 주고 신자들을 믿게 한 자들이고, 자라게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라'고 하면서 바울과 아볼로가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주의 나라를 위해 함께 일하는 동역자임을 상기한 예를 생각해 봅시다.
4. 한담을 피하기 - 뒤에서 남의 이야기를 하지 않기
시기는 눈에서 시작되지만 입으로, 행동으로 연결되어 전 인격을 넘어뜨립니다. 다른 사람의 명성과 업적을 심심풀이로 들고 나와서 화제를 잡고 한담(gossip)을 하기 쉬운데, 이는 험담으로 빠지기 일쑤입니다. 한담은 이미 시작하는 순간부터 험담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갑니다. 남의 이야기는 칭찬거리가 아니면 삼가야만 합니다. 한담 대신 진실된 언어, 긍정의 언어, 격려의 언어, 그리고 화평의 언어를 그리스도인들은 친구 삼아야 합니다.
5. 궁극적인 대안으로서의 사랑
시기를 극복할 수 있는 가장 궁극적인 방안은 사랑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그것으로 친구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보이는 형제조차 사랑하지 못하고 시기하는 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결코 사랑할 수 없다고 요한은 말합니다.(요일4:20) 바울은 시기와 그로 인해 생기는 분쟁을 치유하는 근본적 처방은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는 것"(고전13:4)입니다.
물론 우리들이 이처럼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을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사랑은하나님께 속한 것이기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 사랑을 주셔야 합니다.(요일4:7-8) 하나님의 사랑은 성육신하시고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통해 가장 잘 드러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더 깊이 묵상할수록 하나님의 사랑을 조금씩 체득해갈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사랑하게 되면, 즐거워하는 형제의 즐거움에 함께 즐거워하게 되고, 우는 자와 함께 울 수 있게 됩니다.(롬12:15) 성경에서 나타나는 가장 아름다운 예는 바로 요나단과 다윗의 사랑의 관계입니다. 내 자리를 차지할 사람, 내가 받을 수 있는 존경과 명예를 누릴 사람, 심지어 내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할 대상이며, 이것까지도 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사명입니다.
▲ 맺으면서
우리는 시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늘 시기와 씨름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고, 그가 엎드러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잠24:17)"고 가르칩니다. 또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12:15)"고 명령합니다.
친구가 가진 것만 보는데서 돌아서야 합니다. 자기에게 있는 것,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것을 보면서 감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친구를 경쟁자가 아닌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 갈 동역자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수님의 사랑을 힘입어 사랑하여야 합니다.
시기로 인한 싸움과 분열이 아니라 형제와의 참된 동거함으로부터 오는 기쁨과 즐거움과 평화의 공동체를 세워가야 합니다.
▲ 시기의 죄에서 벗어나기 위한 기도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주님, 주님의 그 사랑에 감사하며 날마다 주님을 닮아가길 원합니다. 주님, 우리는 늘 친구의 행복을 나의 불행으로 여기고, 친구의 불행을 나의 행복으로 여기는 시기의 죄와 싸우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친구에게 주신 은사와 재능과 성품을 인정하지 않고 폄하하려고 하고, 친구의 불행을 은연 중에 도모하려고 했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와 복을 보지 않고 감사하지 않았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말과 행동으로 친구를 험담하고 중상하려 했던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주님, 이제는 우리에게 주신 은사와 재능과 복을 세어보고, 우리 자신의 부족한 모습 그대로 감사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친구를 경쟁 상대가 아닌 공동체와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동역자로 볼 수 있는 눈을 열어주시옵소서. 무엇보다도 주님의 사랑을 더욱 깊이 알게 하여 주셔서, 그 사랑을 힘입어, 시기를 넘어서서 참된 사랑으로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형제와 동거하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누리며, 이 공동체로 주님의 기쁨이 되게 하여 주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첨부파일
- [CBS78회]+시기.hwp (48.0K)
- 100712(월) TGIM78 시기.mp3 (16.4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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