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톡톡크리스찬 #65 스포츠와 영성(2010년4월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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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한신 작성일 10-04-14 11:33본문
부산 CBS 방송 - 월요일을 기다리는 사람들
2010년 4월 12일 방송분 준비
일상생활사역연구소 정한신 기획연구위원
주제 : 스포츠의 영성
* 참고자료
방선기, 그리스도인의 일상다반사, 포이에마, 2009
▲ 들어가면서 - 운동과 스포츠
규칙적인 운동은 하나님이 주신 육체를 관리하는 청지기적 활동으로서 긍정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성도들과 함께 어울려 운동하는 것은 말씀과 기도와 같이 성도들 간에 온전한 교제를 나누는 좋은 통로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운동에도 죄악의 요소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운동에 지나치게 몰입하여 중독이 되는 경우입니다. 예컨대 건강을 위해서 시작한 골프에 빠져 경건생활을 소홀히 하는 것은 물론 가정이나 직장에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게 될 때 그러한 운동은 죄성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운동은 건강을 지키기 위한 활동이지만 현대사회에서는 하나의 대중문화가 되었습니다. 개인의 건강 유지 차원보다는 프로선수들의 게임을 보면서 즐기는 대중문화가 형성된 것입니다. 프로야구, 프로축구, 프로농구, 프로배구 등등은 이제 '스포츠'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특히 요즘에는 프로야구 시청이나 관람이 붐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포츠 신문은 독자적인 매체로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에게 운동은 이제 신체적인 문제에서 정신적 문제로, 결국 대중문화로 자리잡으면서 영적 문제로 확대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백과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스포츠는 경쟁과 유희성을 가지는 신체운동 경기의 총칭이라고합니다.
스포츠의 어원은 라틴어의 ‘물건을 운반한다’라는 portāre의 뜻에서 전화(轉化)하였다고 합니다. 13세기경에는 프랑스어인 de(s) port=disport로 되었고, 거의 같은 무렵에 영어인 sporte로 다시 전화되었는데, 지금은 본래의 게임(game)이나 플레이(play)를 대신하여 국제 공통어가 되었습니다. 어원이 그리스어가 아니라는 점에서 고대 그리스의 제전경기(祭典競技)와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경기는 죽을 때까지 싸운다는 아고니즈(agonize)입니다.
프랑스어나 영어로 전화한 시대는 서민들이 부분적이나마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한 무렵이며, ‘엄하고 가혹한 작업이나 노동에서 잠시 벗어나 기분전환을 한다’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농민 ·기술자 등 일반 시민들이 달리고 뛰고, 헤엄을 치고, 공을 차고, 힘을 겨루고 한 모든 것이 스포츠이며, 어느 경우에는 도박도 이에 속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스포츠가 차차 거리에서 거리로, 마을에서 마을로 번졌고, 교회의 예배일이나 마을의 축제 때 승자에게는 상금이나 상품을 주기도 하고, 승부에 대한 도박도 있기는 했으나 프로 스포츠는 아니었고 아무나 참가할 수 있는 놀이와 같은 경기였습니다.
▲ 스포츠 관람 - 그 유익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면 정신적인 유익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경기장에서 직접 관람하는 경우 스트레스를 발산하고 우리 속에 있는 열정을 분출할 수 있으며, 함께 관람하는 관람객들과 커다란 집단적인 경험을 공유하면서 공감하고 하나되는 공동체적인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러한 가운데 평소에 잘 느낄 수 없는 결속력과 연대의식, 애향심이나 애국심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통해 선수들이 뛰는 모습을 보고 들으며 함께 흥분하다 보면 생활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고, 복잡한 많은 일들을 잊어버리고 몰입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스포츠 경기는 각본 없는 드라마라는 말이 있듯이 스포츠 경기가 그려내는 이야기에 우리 삶의 이야기를 비춰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합니다. 또한 경기에서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서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선수들의 모습은 인간성의 근원에서부터 느껴지는 감동을 주며 교훈을 줍니다. 또한 페어플레이 정신, 승자와 패자를 넘어서는 스포츠맨십의 감동은 우리가 배우고 지향해야 할 인간성에 대하여 강렬한 가르침을 줍니다.
이처럼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는 것은 음악이나 영화 감상처럼 대중문화로서 가치가 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유익이 있습니다. 아울러 스포츠를 하거나 관람하는 일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해방감을 맛보기도 하고,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합니다. 스포츠는 이처럼 우리에게 즐거움을 줄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유익들을 줍니다.
▲ 스포츠 - 그 죄성의 가능성
그러나 스포츠도 죄성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시민들은 투기장에서 노예들이 싸우는 것을 보고 즐겼는데, 이것이 현대 스포츠 문화의 일부를 형성하게 된 역사입니다. 초대 교회의 터툴리안은 그리스도인들이 노예들의 싸움을 구경하는 것을 엄격하게 금했다고 합니다.
스포츠에서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들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1. 폭력을 조장하거나 긍정하는 스포츠는 그리스도인에게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최근 유행하는 이종격투기는 기술과 힘으로 승부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신체에 폭력을 가해 승부를 결정짓는 것처럼 보입니다. 자신의 몸을 보호하고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권투나 태권도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운동 경기라는 이유만으로 상대방에게 폭력을 행하는 것은 합법적이라 해도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경기를 지켜보면서 흥분하는 것 역시 경건한 성도로서 바람직한 모습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2. 상대방을 어떻게든 제압해야 한다는 경쟁심이 궁극적인 목적이 되는 스포츠는 그리스도인에게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스포츠에서 경쟁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동호인 모임에서도 승패를 가르는 경쟁이 위주가 됩니다. 프로 스포츠의 경우에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성경은 경쟁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을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에 비유하면서 경쟁의 가능성을 인정했습니다(고전 9:24). 운동 경기 뿐만 아니라 삶에서도 경쟁은 서로의 발전을 위해서 필요합니다. 그러나 스포츠에서 상대방을 제압해야 한다는 경쟁심이 궁극적인 동기와 목적이 된다면, 그리서 승패만이 유일하게 중요한 것이 된다면 그리스도의 정신에 어긋나게 됩니다. 이런 경쟁심은 페어플레이 정신이나 스포츠맨십을 훼손하고 오직 결과에만 몰두하게 만들고 약물, 반칙 등을 통해서라도 이겨야겠다는 의지로 나타나게 되며, 상대방에 대한 극단적인 적개심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최근에 교회 대항으로 친선 축구경기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제는 제법 토너먼트식의 경기운영이 가능해질 정도로 지역별, 노회별로 그 규모가 커진 대회들도 있습니다. 이런 대회들의 취지는 교회들 간의 연합과 성도들간의 건전한 교제이지만 대회가 과열되어 경쟁이 심해질수록 그런 취지는 사라지고 승리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상대 선수들에게 상해를 가하거나 응원을 하면서 상대편을 깎아내리거나 반칙을 하거나 심지어 교회들 간에 다투기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과열된 경쟁심이 아니라 온전한 경쟁심으로 스포츠 활동을 하는 지혜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면서도 이런 지혜를 구하며 행해야 합니다.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면서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승리를 기대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응원하고, 응원한 팀이 승리했을 때 기쁨을 함께 누리는 것은 스포츠가 주는 좋은 유익 중의 하나입니다. 이를 통해 국가 또는 기업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승부욕이 지나치면 상대방에 대한 적개심을 불러일으킵니다. 월드컵이나 유럽 축구리그에서 나타나는 관객 난동을 보면 스포츠가 마치 국가간의 전쟁의 축소판처럼 느껴질 지경입니다.
3. 상업주의와 우상화는 스포츠가 죄성에 물들기 쉬운 모습입니다.
현대 스포츠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상업주의의 만연입니다. 스포츠 본연의 순수성은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억대 몸값을 자랑하는 선수들이 있고, 그들을 이용한 광고들이 난무합니다. 스포츠를 통해 결국 남는 것이 돈밖에 없다면 이는 영적으로 문제가 됩니다. 특히 상업주의는 우상화의 문제를 야기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영웅이나 위인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대신 그 자리를 인기스타들과 특히 스포츠 스타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자본에 의해 우상화되고 있다면 이 역시 그리스도인으로서 경계해야 할 부분입니다.
4. '몸'에 대한 관심과 돌봄의 차원을 넘어서서 '몸'에만 집중하는 세태를 생각해 볼 때 스포츠가 이런 현상을 가속화한다면 우리는 바람직한 균형을 잡아야 할 것입니다.
건전한 스포츠는 분명 우리로 하여금 몸에 대한 정당한 관심을 회복하고 몸을 가꾸고 돌보는 하나님의 사명을 잘 수행하도록 하여 몸을 통하여 바람직한 자아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짱, 얼짱 시대로 대표되는 몸 자체에 대한 다소 왜곡된 관심들을 스포츠가 가속화하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도 주의 깊게 지켜보아야 할 것입니다. 나의 나됨을 육체로 드러내고자 하는 몸부림이 바른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의 또다른 사명일 것입니다.
▲ 나가며 - 스포츠에 대한 반문화적인 태도와 이원론적 태도를 넘어서서
스포츠의 여러 문제들을 생각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스포츠 경기를 보거나 하지 않아야 할 것처럼 오해하기 쉽습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요일 2:16)이 가장 잘 접목된 것으로 보이는 영역이 스포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대로 스포츠의 다양한 유익을 생각해 볼 때, 그리고 육체를 긍정하고 육체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경의 태도를 생각해 볼 때 스포츠를 터부시하는 반문화적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한편, 신앙은 신앙이고, 스포츠는 스포츠다라는 식의 이원론적인 태도로 스포츠를 보고 행하는 과정 가운데 있을 수 있는 죄성을 간파하지 못하고 행하는 것도 지혜롭지 못한 일일 것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신 명령을 기억하면서 온전함을 추구하는 스포츠 관람과 스포츠 활동이 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 스포츠를 생각하며 드리는 기도
창조주 하나님, 우리에게 귀한 몸을 허락하여 주시고, 이 몸을 통하여 당신께 영광을 돌려드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스포츠를 하면서 당신이 주신 몸을 더욱 잘 가꾸어 가는 청지기로 살고, 스포츠를 통하여 우리 안에 있는 열정을 건전하게 발산하며,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사람들과 하나되는 놀라운 경험을 누릴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옵소서. 페어플레이 정신과 스포츠맨십을 통하여 참으로 온전한 인간됨이란 무엇인지를 배우는 지혜를 갖게 하여 주소서. 그러나 주님, 스포츠가 폭력을 조장하거나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몸을 파괴하는 일에 사용되지 않도록 늘 경계하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소서. 과도한 경쟁심과 승패에 대한 집착으로 인하여 부정한 방법을 동원하거나 상대를 적대시하거나 페어플레이 정신을 잊어버리는 일이 없게 하여 주소서. 그리고 상업주의에 물든 스포츠 자체나 스포츠 선수들을 우상으로 삼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고, 오직 당신만 예배하고 찬양하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첨부파일
- [CBS65회]스포츠.hwp (35.0K)
- 톡톡100412(월) TGIM 스포츠.mp3 (16.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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