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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상연정(常戀亭)에서… - 폭력 충만한 일상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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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상선약수
댓글 0 건 조회 7,834 회
작성일 12-06-13 22:11

본문

상연정(常戀亭)에서… - 폭력 충만한 일상 (2)
<소리> 2012년 6, 7월호.

배경 및 등장인물 소개

●상연정(常戀亭) : 일상생활을 사랑하는 정자[常戀亭]. 동방의 작은 나라에 위치한 곳으로 지자(知子)라는 지혜로운 노인이 머물러 후학들을 가르치는 곳. 인터넷 홈페이지
www.1391korea.net
●지자(知子) : 호는 적신(赤身). 3M 정신(맨몸·맨주먹·맨땅)을 몸소 실천하기에 그리 부른다. 맨주먹으로 상연정을 지어 그곳에 머물면서 일상생활이 얼마나 가치롭고 고귀한 것인지를 연구·전파하기 위해 노심초사한다. 혹자는 사람 좋은 미소를 만면가득 지으면서도 맘에 안드는 일은 반드시 지목해서 말한다고 해서 그를 '지적신(指摘神)'이라고도 일컫는다.
●종자(從子) : 상연정의 제자 중 가장 오랫동안 지자를 따랐던 제자[從子]. 스승의 말씀을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필기도구를 손에서 놓지 않는 메모광이며(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업그레이드), 스승에 대한 충성심이 남달라서 바닥청소를 시키면 화장실청소까지 자청해서 하는 인물이라 혹자는 그가 지자의 '종'이라서 '종자'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식자(識子) : 하나를 들으면 열을 깨닫는 문일지십(聞一知十)의 기재. 아는 것이 많아서 식자(識子)라 불리우지만, 유달리 식욕을 절제할 줄 몰라 식자(食子)로도 불리우는 제자. 이성적이며 합리적 지식을 추구하는 모더니스트(modernist). 막내 제자인 적자(嫡子)와는 다소 껄끄러운 관계다.
●적자(嫡子) : 상연정의 막내 제자. 먼저 입문한 선배들을 무시한 채 '스승의 지혜를 배울 뿐만 아니라 패션과 걸음걸이, 심지어 다이어트 경력까지 본받고 있는 나야말로 진정한 스승의 적자(嫡子)올시다'라며 설레발치는 당돌한 제자. 그때마다 식자는 싸늘한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며 '하나를 배우면 열을 잊어먹으니 너야말로 진정한 적자(赤字) 지성이로다!'라며 비아냥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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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회 "폭력 충만한 일상 (1)" 바로가기




창문을 두드리던 빗소리는 점차 잦아들었다. 이윽고 상연정에 적막감이 가득해지자 제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입을 다문채 스승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지자는 뺨을 쓰다듬으며 헛기침을 했다.

"험… 왜 그러느냐?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느냐? 아, 혹시 배게 자국이 덜 펴지기라도 했느냐?"

말해놓고도 민망한지 지자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때 갑자기 종자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네? 무슨 자국이 있단 말씀이십니까? 그, 그러고보니 뭔가 흐릿한 자국이 있긴 합니다! 아, 제자는 이제야 알아차렸습니다."
"하하하…… 스승님께서 오늘 급히 나오셨나봅니다."


종자와 식자가 어색한 웃음을 주거니 받거니 할 동안 적자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었다.

"사형들, 급히 나오는 것과 배게 자국 사이에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지 소제는 당췌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그리고 눈이 많이 침침하신가봅니다. 저렇게 선명해보이는 자국을… 게다가 배게에 눌린 자국이라고 하기엔 그 모양이 꼭 밥주걱 자국 같은……."
"쯧! 자네는 그것도 모르는가? 나이가 들수록 피부의 복원력이 떨어지는 법일쎄. 젊은 사람들이야 일어나자마자 허겁지겁 뛰어나와도 버스 타고 몇 정거장 가다보면 얼굴이 펴지지만, 나이 많은 사람은 그렇지가 않네. 평소 스승님께서는 이른 시간에 일어나 눌린 피부를 팽팽하게 펴지도록 세안을 하신 후에 나오셨지! 그러니 스승님의 얼굴에 배게 자국이 남아 있다는 것은 자리에서 일어나신지 얼마 지나지않아 급히 나오셨다는 말이 된다네."

처음에는 적자의 말을 끊기 위해 입에서 나오는데로 주워섬기던 식자는 점점 자기 이야기에 몰입했다. 하지만 지나친 몰입으로 인해 식자는 스승의 얼굴색이 변해가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지자는 새끼손가락부터 꼼꼼하게 주먹을 말아 쥐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이 쉥키들이……."

다행히 스승을 오랫동안 보필해온 충직한 제자, 종자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종자는 목소리를 높여서 식사의 말문을 막았다.

"자자, 그만들 하게나. 피부관리 12회 무료이용권을 선물해드릴 것도 아니면서 왜 스승님 피부를 두고 그리 말이 많은가! 스승님, 오늘은 어떤 주제로 강론을 하시려는지요?"
"연회비 1억원씩하는 피부과는 아이들에게 무리일테고……."
"예?"
"아, 아니다. 잠시 딴 생각을 하느라……."

지자는 뺨을 어루만지며 눈을 깜빡거렸다. 그리고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더니 적자를 보며 말했다.

"적자야, 네 블로그에 올라온 게시물을 보았다. 반응이 아주 뜨겁더구나."1)
"부끄럽습니다, 스승님. 제자는 그저 학생 지도에 폭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람들의 주장에 기가 막혀서 그만……."

적자는 고개를 조아렸다. 지자는 허허롭게 웃으며 적자의 어깨를 두드렸다.

"나도 네가 링크한 기사를 보았느니라. 아주 허접하기가 짝이 없더구나! 그러나 적자야, 허접한 것을 허접하다고 말하는 데에도 요령이 필요한 법이다. 아무리 옳은 말이라 할지라도 지나치게 비아냥거리는 어조로 한다면 반드시 불편해하는 사람이 나온다. 그러면서 원래의 논쟁은 실종되고, 태도에 대한 논쟁만 소모적으로 진행되는 경우도 허다하고……."
"아, 스승님… 이번에 아주 뼈아프게 실감하였습니다. 키워질2)도 내공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허허허, 키워질에도 내공이라……. 너 다운 이야기로구나. 그래, 그 길은 피도 눈물도 없는 아수라(阿修羅, asura)의 길이지."

지자는 눈을 지그시 감고 아그립바상의 굳은 표정을 재현해보였다. 그리고 잠시 후 지자는 눈을 번쩍 떴다. 지자는 LED 조명을 연상케하는 아우라를 뿜어내며 적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적자야, 내 너의 분한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가 아니다. 하나 네가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 있어 한 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구나."
"말씀하소서. 제자가 듣겠나이다."

480cd(칸델라)의 안광에 심령을 제압당하기라도 한 것일까? 적자는 멍한 표정과 목소리로 대답했고 지자는 준엄하게 말을 이었다.

"자신을 피해자로 생각하는 사람은 많아도 가해자로 생각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너 역시 악성 댓글에 상처 받은 피해자라는 생각은 하면서도, 네 글로 인해 누군가 상처 받았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생각지 않고 있다. 너와 나는 모두 폭력의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이다."

제자들은 숨을 죽인채 스승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잠시 후 지자는 조금 힘을 뺀 눈빛으로 적자와 종자, 식자를 바라보았다.

"현대인의 일상생활 가운데서 가장 폭력적으로 변하는 시공간이 어디라고 생각하느냐?"
"군대…가 아니옵니까?"

식자가 조심스레 대답했지만 적자는 고개를 저었다.

"물론 군대는 일반 사회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폭력이 존재하는 곳이다. 그것이 물리적 폭력이건, 정신적 폭력이건……. 그러나 내가 말하고픈 것은 그보다 훨씬 더 일상에 깊이 밀착되어 있다."

지자는 답을 맞추지 못하는 제자들이 안스러웠는지 손과 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종자는 스승의 몸놀림을 보곤 뭔가 깨달았다는 듯이 탄성을 질렀다.

"아! 운전, 운전입니다! 운전을 할 때 많은 사람들이 맹수가 됩니다."
"그렇다! 평소에는 온유한 사람이었으나 운전대만 잡으면 링 위의 파이터 처럼 표변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으냐!"

지자는 종자에게 기꺼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거기에 샘이 났는지 적자가 황급히 끼어들었다.

"때마침 그런 사람들에게 꼭 들어맞는 사자성어가 하나 떠올랐사옵니다."
"오, 어떤 말이더냐?"
"외유내강(外柔內剛)이옵니다!"
"……."

순간 상연정의 기온이 3.46도 가량 내려갔다. 식자는 팔뚝에 오돌도돌 돋아난 닭살을 쓸어내리며 입을 열었다.

"아니 사제, 이 상황에서 외유내강이 왜 나오는겐가? 자네, 그 말의 알기나 하는겐가?"
"사형, 저 좀 그만 무시하십시오. 외유내강, 자동차 바깥에서는 온유하다가 차 안에만 들어가면 완강해진다는 말이 아닙니까?"

식자는 콧방귀를 뀌며 대꾸하는 적자를 향해 측은한 눈빛을 보냈다.

"쯧쯧, 자네의 방식대로 하자면, 집 밖에서는 설설 기다가 가족들에게만 폭군처럼 구는 가장을 설명하는 말로도 해석할 수 있겠구만?"
"오~ 사형, 역시 응용력이 대단하십니다."

식자는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의 복잡한 심사를 알아차린 것일까? 지자의 음성이 둘 사이를 갈라놓았다.

"외유내강을 그렇게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재미있구나. 그래, 아무리 부드러워뵈는 사람이라해도 내면에는 억압된 폭력이 있게 마련이지. 흔히 '폭력'이라는 주제를 일상생활과 분리된 큰 이야기로만 이해하려드는 경향이 있는 것을 너희들도 알 것이다. 그러나 커보였던 이야기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일상생활과 깊이 결합되어 있는 문제라는 것을 금방 깨달을 수가 있지. 폭력을 사용하는 사람 역시 뿔 달린 괴물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평범한 심성을 가진 사람인 경우가 훨씬 더 많고……."
"아, 스승님… 참으로 우리의 일상은 폭력으로 충만한 곳인듯합니다."

적자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자는 다시 LED 광채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래, 네 말이 옳다. 하나 일찌기 예언자 스가랴는 '그 날에는 말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될 것이라'(슥 14:20)고 외쳤다. 대제사장의 이마에 붙이는 순금 패에 새겨야할 문구가 말방울에도 새겨질 미래를 예언한 것이지. 말이 고대의 운송수단이었으니 말방울은 요즘으로 치면 자동차의 클락션에 다름 아니다. 잠시 방심하면 폭력적으로 행동하기 쉬운 자동차 운전석에까지 거룩함이 확장되는 것, 그것이 바로 폭력 충만한 일상을 살아가는 하나님 나라 백성의 태도이니라."

지자가 말을 마치자 제자들은 각기 생각에 잠겨들었다. 지자는 제자들의 묵상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용히 상연정 밖으로 나가 길가에 주차된 자동차로 다가갔다. 그리고 백미러에 얼굴을 이리저리 비춰보며 쓸쓸히 중얼거렸다.

"빗맞은 자국인데 왜 이리 오래간단 말이더냐. 아… 서럽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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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호 참조.
2) 현실에서는 소극적이지만 키보드만 잡으면 전사처럼 공격적으로 변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인터넷 신조어 '키보드 워리어'(keyboard warrior)의 줄임말에 파생 접미사 '-질'이 결합된 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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